지난 주말의 어느봄날!
4월을 흘러보내는 하순의 길목에 남한산성에 올라,
즐겨 찾는 분위기 좋은 커피숍에 들려 야외의자에 앉아 블루마운틴을 마시면서,
앞산에 펼쳐진 진달래 꽃불을 보고 화들짝 놀라며
그 속에 숨겨진 애달픈 꽃 사연에 시선을 맞추어 본다.
진달래는 봄이 되면 말없이 펴서 한쪽 구석 척박한 땅에서 자라다
거센 봄비에 모든 꽃잎을 떨어뜨리고 봄을 마감하는 그 운명은,
우리민족의 예민한 감수성 앞에서는 그냥 지나칠 수 없는 비련의 꽃이 되었다.
벗 꽃 같은 화사함이나 모란 같은 우아함, 장미 같은 정열은 가득하지 않지만,
겨울이 길고 강수량과 평야가 적으며 척박한 산야가 많은 이 땅에서
외세의 침략을 막아내야 했던 힘든 시절에도, 배고픔을 견뎌내야 했던 보릿고개에도
붉게 핀 진달래는 가장 가까운 곳에서 우리의 마음을 늘 위로했다.
목재로 쓸 만큼 굵은 나무도 아니고 척박한 땅에서 자라기에 키 큰 꽃으로
풍성하게 실컷 피워보지도 못한 채, 화초로도 나무로도 제대로 대접받지 못하며
그저 산야의 이곳 저곳 음지의 빈 구석이면 자리잡아 자라다가 떠날 때에는
혼신의 힘을 다해 온 산야를 붉게 물들이고 이별을 고하는 진달래를 보면서,
마음 한 켠엔 가슴 아린 열차 역에서의 이별의 손수건을 떠 올린다.
그래도, 진달래는 올해에도 우리 곁에 조용히 수줍게 돌아왔다.
아무런 불평과 조건 없이 돌 틈 사이에서 자기가 자랄 수 있는 높이와 넓이만큼 자라며,
자기가 인간에게 보여줄 수 있는 조건 없는 사랑만큼 자란다.
욕심을 더 이상 부리지 않는 자기 절제가 바로 조건 없는 사랑이다.
진달래 꽃말은 조금씩 차이는 있지만, ‘사랑의 기쁨’, ‘이별의 슬픔’, 또 한가지 ‘절제’란다.
이렇듯 진달래가 뭐기에 우리민족의 이별, 아픔과 이루지 못한 사랑에
늘 주연배우로 등장하는 것일까? 그것도 늘 가슴 아파하는 비련의 배우로 말이다.
우리민족에게는 진달래는 꽃이 아니고 사람이다. 그것도 그냥 사람이 아니라,
나의 속병을 다 받아줬던 ‘속 깊은 친구’며 ‘떠나버린 애절한 옛 연인’이다.
그래서 우리나라는 고조선에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애잔한 심정과 한(恨)을
진달래 위에 씌워놓고 자신의 모습으로 의인화해 노래했다.
시인 김소월도 ‘진달래’꽃으로 우리마음 속에 내재된 수 천년 이어진 이별계보를
“즈려밟고 가시옵소서”라는 사무친 진달래로 또다시 잇는다.
올해도 우리와 함께 이 봄을 붉은 사랑으로 채우는 저 진달래를 바라보면서,
나의 인생여정에 흘러간 애닮은 사랑을 꽃불 위에 씌어 본다.
커피 맛이 달콤하지 않고 씁쓰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