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가 가가?'라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저 애가 그 아이냐?'는 것을 경상도 사람들은 '가가 가가?'라고 한다는 것이다. 텔레비전의 인기 있는 개그 프로그램 때문인지, 일반인들의 사투리에 대한 관심이 부쩍 높아진 것 같다. 사람들에게 사투리를 친숙한 언어로 만든 공로는 인정해야 되겠지만, 말의 왜곡이 지나친 것이 개그 프로그램이다.
언어가 되었건 사회적인 어떤 현상이 되었건 개그가 되기 위해서는 일정한 비틀음이 있어야 한다. 예를 들어 '나는 너를 사랑한다.'라는 말을 전라도 말로 하면 '아따 거시기 하요'이고 경상도 말로 하면 '내 아를 놔 도.'가 된다는 식의 말이 그렇다. 번역이 아니라 개그이니까 웃고 넘길 수 있는 문제이지만 말이다.
어린 시절에 어머니와 산에 나무를 하러 갈 때에 어머니가 자주 들려주시던 이야기가 있다. 대개의 사람들이 알고 있을 그 이야기는 충청도 사투리와 관련된 것이다. 갈퀴로 솔가리를 긁다보면 돌멩이가 아래로 굴러 내릴 때가 있다. 그럴 때면 '엄니 독 굴러가요!' 라고 하였는데, 그럴 때마다 어머니는 '그랬드라냐.' 하면서 이야기를 꺼냈다.
'그랬드라냐. 충청도 사람이 까끔에 나무를 하러 갔는디, 갈쿠로 긁다봉께 독팍이 굴러가드란다. 그란디, 그 사람 아래짝에서 아부지가 낭구를 하고 있었는디, 아부지~ 독~ 굴~러~가~유우~ 함서 돌아 봤듬마는 지그 아부지 치상 치르고 있드란다.'
'그것이 문 말이당가?'
'아아따. 독 굴러가유~ 고 말을 하는디, 사날(사흘이나 나흘)이 걸려부렀다는 것이재.'
'근다고 어칳케 사흘이나 걸린당가?'
'이약이 그란다는 것이재. 그라기사 하겄냐? 근디 충청도 사람들은 차말로 말이 그라고 날차분 하단다. 긍께로 충청도 사람하고 말을 하먼 복장이 멕헤 불재.'
충청도 사투리를 매우 과장되게 표현한 이 일화를 통해 나는 우리의 말이 지역에 따라 다르다는 점을 막연하게나마 인식할 수 있었다. 거기다가 서울에서 온 아이들의 입에서 나온 '그랬니?' '어쨌니?' 하는 말들이 왜 그렇게 간지럽게 여겨졌는지.
심하게 느릴 것이라고 오해를 했던 충청도 사투리를 처음 들었을 때, 생각보다 느리지 않음에 오히려 놀랐었다. 그리고 '-어유'라는 말의 구수함은 마음을 다 주는 듯해서 얼마나 정이 가던지. 말이 느리다는 특징을 지닌 충청도 사람 중에서는 자기 지역의 말의 경제성을 들먹이며 농담처럼 하는 이야기들이 있다. 가령 '-하겠어요?'라는 말을 충청도 말로 바꾸면 '할튜?'가 되고, '섭섭하네요.' 라는 말을 충청도 말로 바꾸면 '섭휴.'가 된다는 식이다.
각 지역의 방언 중에는 경제성을 따질만한 말이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전라도 말에서 경제성을 들먹일만한 말을 떠올렸을 때는 가장 먼저 떠오르는 단어가 '핑'이라는 외자이다.
'빨리'나 '서둘러'라는 뜻을 지닌 '핑'이라는 말은 말의 길이도 짧을 뿐만 아니라, 어감도 그 뜻에 그렇게 잘 어울릴 수가 없다. 비슷한 뜻으로 쓰이는 말에 '싸게'라던가. '얼릉'이라는 말들도 있지만, '핑'이 지니는 말 맛과는 차이가 있다. 흔히 '핑'이라는 말은 '핑하니 댕게 오그라!'하는 식으로 '하다'라는 타동사와 붙어서 사용되기는 하지만, 쏜살에서 나는 소리 같은 그 말의 속도감은 다른 어떤 말과 비교했을 때도 돋보인다.
재미있기로는 '싸게'라는 말도 빼 놓을 수 없다. 굳이 한 지역의 말이라고 할 수 없는 이 말은 전라도 지역에서 유독 많이 쓰인다. '걸음을 재게 걷는다'라는 뜻을 지닌 이 말은 '값이 싸다'라는 말과 맞물려 말의 유희를 생각하게 한다. 추운 겨울 나무를 하러 산에 갔다가 어둑발이 들 무렵에 산에서 나오게 될 때면, 어머니는 잰걸음으로 앞서 걸으시며, '싸게 싸게 가자!' 하곤 하셨다. 그럴 때면 몸뚱이보다 더 큰 지게에 얹힌 나무의 무게 때문에 다리가 후들거리고 그랬는데, 싸게 걸어 집에 닿을 무렵이면 지게에 졌던 나무들은 거의 흩어져 버리고, 빈 지게에 가까운 나뭇짐만 남아있는 경우도 있었다.
'핑'이나 '싸게'나 '얼릉'이라는 말이 있다고 해서 전라도 말이 '빠름'을 강조하는 것만 있는 것은 아니다. 먼길을 걸어서 갈 때 전라도 사람들의 입에서 잘 나오는 말 중의 하나로 '싸복싸복'이라는 말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천천히'라는 말보다는 훨씬 더 느리게 그러나 지속의 뜻을 지니고 있는 이 말은 단순하게 속도만을 뜻하지는 않는다. 일행 중 누군가가 '싸복싸복 가세!'라는 말을 했다고 할 때, 이 말은 '찬찬히 가자!'라는 뜻도 있지만, 가는 길을 '포기하지 말자!'라는 다짐도 들어있다.
느리게 어딘가를 가는 것에 해당되는 말에는 '싸복싸복'만 있는 것이 아니다. '싸복싸복'이라는 말은 말한 이에 따라 '싸묵싸묵'이나 '싸목싸목'이 되기도 한다. 요즈음 인구에 희자되고 있는 '느림'이라는 말도 '싸복싸복'의 뜻이어야 가치가 있는 것이지, 단순하게 '느리다'는 뜻만으로 곡해를 한다면 게으름에 다름 아닐 것이다.
느린 것을 긍정으로 보는 말이 '싸복싸복'이라면 그것을 부정의 의미로 보는 말로는 '날차분하다'나 '꿈시랑대다' 등의 말이 있을 것이다.
'날차분하다'라는 말은 일을 할 때 많이 쓰이는 말인데, 논에 망옷(퇴비)을 낼 때나 모내기를 할 때 자주 들었던 말이다. 리어카로 망옷을 내는 일은 여간 고되기도 하여서 리어카를 끌고 가다가 쉴 때가 있는데, 그럴 대면 지나가던 동네 어른들이 '그라고 날차분하니 해 갖꼬 언제 다 낼래?'하면서 핀잔 아닌 핀잔을 주고는 하였다.
'날차분하다'라는 말을 '날이 다 가도록 그 자리에 그대로 있을 것처럼 차분하다'라는 의미로 해석을 한다면 무리일까. '날차분하다'라는 말은 일의 속도나 걸음의 느림을 뜻하기도 하지만, 성격을 나타낼 때 쓰이기도 한다. 무슨 일을 하건 서두름이 없이 하는 사람을 가리켜서 '날차분하다'는 말을 붙이기도 하는데, 그럴 때면 딱히 부정의 의미라고 하기보다는 약간은 희화화되어 사용된다. 가령 어머니가 자신의 자식을 가리키면서 '우리 집 영감님은 성질이 날차분해 갖꼬, 누가 이녘 소를 돌라가도 뒷짐지고 어흠 하고 쫓아갈 것이여!' 하는 식이다.
'꿈시랑대다'라는 말은 해야할 일을 하지 않고 미루고 있는 상황에서 다그칠 때 쓰는 말이다. 가령 아이에게 심부름을 시켰는데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을 때, '이노무 자석아 심바람 시긴지가 은젠디 안직까장 그라고 꿈시랑대고 있냐? 핑하니 댕게 오랑께는......' 하고 나서도 아이가 움직일 기미를 보이지 않으면, '아이~. 얼릉 갔다 와부러야.' 하게 되는데, 이 때의 '아이'는 짧게 발음되지 않고, '이'자가 길게 늘어지면서 간곡한 뜻이 담긴다. 이쯤 되면 아예 말을 안 듣기로 작정한 경우가 아니라면, 엉덩이를 자리에서 떼어야 하는데, 그 다음에 이어지는 말은 입에서 나온 말이 아닐 수가 많기 때문이다.
창문을 열어 두어도 몸에서는 땀이 죽죽 흐르는 날이다. 한적한 팽나무 그늘 아래 좋은 사람들과 함께 앉아 러닝구 차림으로 막걸리나 한 잔 하고 싶다. 날차분하게 앉아서 이러저러한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폭염도 순해져서 그늘 한 쪽에 앉게 되리라.
첫댓글 오랜만에 인사 올립니다. 책 간행 문제 때문에 정신이 없는 여름입니다. 다들 좋은 날 되소서!
좋은글 잘 봤습니다. 새 책 나오면 제목도 올려주십시요? 애독자들을 위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