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은퇴하셨지만 나의 아버지는 고등학교의 역사 선생님이셨다. 은퇴하기 전에 그가 가르치던 학생들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를 한 적이 있다. 그 중에는 "한국은 어느 대륙에 속해 있는가?"라는 설문도 있었는데 놀랍게도 정답을 쓴 학생은 겨우 전체의 30% 정도였다. 그 학교는 세인트 루이스에서 꽤 알아 주는 고등학교이고 대학 진학률도 상당히 높은 학교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예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듯이 보통의 미국인들은 미국 외 지역에 대해 대단히 무관심하다 (따라서 대단히 무지하다). 미국 외 지역은 고사하고 그들의 관심의 범위는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주나 현재 살고 있는 지역을 좀처럼 벗어나지 않는다. 물론 태평양 건너 동양 문화에 심취한 미국 지식인들이 없는 건 아니지만 (요즘은 특히 동양의 선불교가 인기인 듯 하다) 그 수는 아직 미미하다. 게다가 그들이 말하는 동양 문화란 대부분 중국이나 일본 문화를 지칭할 때가 대부분이다. 한국은 아직까지도 한국과 직접 연관이 없는 사람에게는 머나먼 미지의 세계인 것이다.
남 얘기를 할 것도 없이 내 경우를 봐도 마찬가지다. 나는 92년도에 처음 한국에 왔다. 한국에 오기 전 내가 한국이라는 나라에 대해 가지고 있던 사전 정보는 딱 두 가지였다. 하나는 20세기 중반에 큰 전쟁이 있었던 나라요, 다른 하나는 그 곳에 사는 사람들의 머리카락은 모두 검은 색이라는 사실 정도였다. 한국에서 프로야구가 성행하고 있다고는 꿈에도 생각치 못했었다.
이렇듯 무식한(?) 나였지만 야구 카드와 일본 야구를 다룬 몇몇 영문 서적을 통해 일본 야구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사전 지식을 가지고 있었다. 일본인들은 미국인들이 일본프로야구(NPB)에 대해 무지하다고 불평을 하지만 NPB와 한국프로야구(KBO)는 홍보 수준에 있어 비교 자체가 안될 정도로 격차가 있다. 물론 근년에 들어 한국 야구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고는 하지만 아직까지는 극소수에 불과하다.
요즘 한국 야구계의 핫 이슈 중 하나가 이승엽의 해외 진출일 것이다. 그런데 당초 기대와는 달리 MLB 구단들로부터 이승엽 선수에게 제시되는 계약 조건이 영 신통치 않은 것에 대해 한국 미디어와 팬들이 당혹스러워 하고 있는 듯 하다. 일부 신문에선 MLB 구단들이 한국의 '국민타자'를 무시한다며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 그러나 그 말이 사실일까? 내가 보기엔 MLB 구단들은 한국프로야구(KBO)를 무시할래야 무시할 수가 없다. 왜냐하면 그들은 KBO를 잘 모르기 때문이다!
97년 KBO는 '프로야구 15주년' 기념의 일환으로 영문 책자를 제작하여 미국과 일본의 구단에 배포한 적이 있다. 나는 그 책을 보고 내 눈을 의심했다. 거기엔 영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나조차도 알 수 없는 몽롱한 표현으로 가득했기 때문이다. 나는 해 마다 MLB 윈터 미팅에 참석하는데 (올해는 뉴 올린즈에서 열린다) 아직까지도 그 우스꽝스러운 책에 대해 내게 농담을 걸어 오는 사람들이 있을 정도이다. (한국 야구의 전도사를 자처하는 나는 그렇지만 열심히 KBO를 변호한다.)
나는 KBO 실무자들에게 엉터리 영어가 야기시키는 홍보의 역효과에 대해 강변을 토했다. 그리고 5 년 후, KBO는 다시 '프로야구 20주년' 기념 영문 책자를 발간했다. 이번엔 최소한 엉터리 영어는 눈에 띠지 않았는데 그 이유는 KBO가 집필과 교정 작업에 영어를 모국어로 쓰는 원어민을 참여 시켰기 때문이다.
영어는 외국인들에게 한국 야구를 알리는 중요한 도구이다. 그리고 도구로서의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려면 그것은 '정확한 영어'가 되어야 한다.
한국에는 이상한 영어, 즉 '콩글리시'가 난무하는 나라이다. 사실 한국 내에서 한국인들 간의 의사 소통의 도구로 '콩글리시'를 사용하는 데엔 나도 큰 거부감이 없다. 나 자신도 간혹 '콩글리시'를 사용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핸드폰' 같은 단어 말이다. 그러나 국제 무대에서는 전혀 얘기가 다르다. 그것은 의사 소통의 도구로서 사용되지도 못할 뿐더러 말하는 사람의 신뢰도 마저 크게 떨어뜨린다.
지난 달 초 일본 삿포로에서 아테네 올림픽 아시아 지역 예선이 열렸다. 한국은 일본, 대만에 이어 3위를 함으로써 본선행이 좌절되고 말았다. 그러나 한국 팬들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야구는 축구와 달리 국제 대회에 큰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다. 미국 역시 멕시코에 패함으로써 예선 탈락을 하게 되었는데 그것에 비통해 하는 미국 야구팬은 거의 없었을 것이다. 그것은 야구가 아직 세계적으로 보편화된 종목이 아닐 뿐 아니라 경기의 특성 상 단기전으로는 우열을 가리기 힘들기 때문이다.
내가 얘기하고 싶은 것은 국제 대회의 성적이 아니고 국제 대회에 출전한 한국 대표팀의 유니폼이다. 거기엔 색다른 '콩글리시'가 있었다.
점(.)은 문장의 마침표(period) 기능 외에 단어가 축약되었다는 의미로도 사용된다. U.S.A.라는 단어의 예를 들어 보자. 아시다시피 U.S.A.는 'United States of America'라는 단어의 두문자(頭文字)이다. 그런데 여기서 주의해야 할 것은 A 다음에 '반드시' 점을 찍어줘야 한다는 사실이다. 만약 A 다음에 점이 없다면(U.S.A) 그것은 'A 합중국'을 의미하며 그것은 한국에서만 통하는 '국내용 표기법'이다. 차라리 USA라고 아예 점이 없이 사용할 수는 있어도 U.S.A처럼 마치 점이 글자 사이를 갈라주는 기능을 한다는 식의 표기법은 한국 밖에서는 영락없이 오류로 간주된다.
KBO가 한국의 '국민타자'에게 입혀준 유니폼 등 번호 위에는 'LEE.S.Y'라고 쓰여 있었다. 다른 선수들의 성 다음에도 예외 없이 점이 찍혀 있었다. 도대체 이게 무슨 뜻인가? 차라리 'LEE S Y'라고 하던가 아니면 'S.Y. LEE'라고 했다면 아무 문제가 없었을 것이다. 삿포로 돔 전광판엔 그러나 그의 이름이 정확하게 'LEE S.Y.'라고 표기되어 있었다.
말하자면 한국 야구는 만천하에 무식을 드러낸 꼴이 되고 말았는데 사실은 이런 오류가 그 전에도 있었다. 다섯 개의 스포츠 전문지를 포함, 그 누구도 지적을 하지 않았기에 이번에 똑같은 오류가 그대로 반복이 된 것이다.
그깟 점 하나가 뭐 그리 중요하냐고 반문한다면 나로선 할말이 없다. 그러나 MLB 구단들이 이승엽을 '무시'한다고 불평하기 전에 이제까지 KBO 차원의 제대로 된 해외 홍보 활동이 있었는지 알고 싶다. 또한 KBO의 홍보 부진을 제대로 비판한 언론이 있었는지도 알고 싶다. 도대체 세계인들이 무슨 재주로 한국 야구를 알 수 있단 말인가? 우선 뭘 알아야 무시를 하던지 존경을 하던지 할 게 아닌가?
한국 야구는 번역되어야 한다. 그리하여 위상에 걸맞는 대접을 당당히 요구해야 한다. 이치로 스즈키가 미국에 진출하기 '전에' 이미 MLB는 NPB를 알고 있었다. 내가 없는 시간과 돈을 쪼개어 '승엽리닷컴'을 운영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한편으론 한국 야구의 본격적 홍보를 위한 또 다른 영문 웹사이트를 준비 중이다. 이러한 일들을 일개 외국인의 개인적 노력에 맡겨두는 한국 야구를 생각하면서 말이다.
첫댓글 이 글을 쓴 주인공이 누구신가요? 이런분이 KBO에 들어가야 되는거 아닌감?
샤론 누님 멋지십니다....오늘 10년 묵은 체증이 다 내려가네요.....제가 하고 싶었던 말중 하나도 있고 새로운 사실을 알게된 것두 있구요 사론누님이 이 까페를 살리십니다!! 오늘부터 나 팬할래요!~
이글쓰신분이 토마스라고 하는데 싫어하는 사람들 되게 많은분이죠 ...전 저분 하는말 거의 수긍이 가던데 어떤사람들은 디게 싫어하더라구요 스서에보면 저분칼럼많으니까 함읽어보세요 ..
오우~ 여기도 ㅋ ㅋ ㅋ 내가 아는 토마스씨가 맞는 모양인데... 스포츠서울 에다 칼럼을 쓰고... 바른소리 옳은소리를 쓰기는 했는데..... 끝에가서 본색을 드러내는 소리를 했군... "옥의 티" 네 ㅋ ㅋ ㅋ! 포트랜드에서 매너 김d^^b.
스서에 카럼쓰시는 토마스~~씨~~~냉철한 판탄~지적 감사 합니다.
맞는말했네...한구야구를 통해 한국사회 전반의 문재점을 느낄수가 있네여..ㅡ.ㅡ
정말... 이글을 읽어보니, 우리 한국야구의 문제점이 많다는 사실을 다시한번 깨닫게 되네여..ㅜ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