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머니날에...
가세가 기울어 우리집에도 먹구름이 몰려들었다.
평생 자식들 뒷바라지에 빠질대로 힘이 빠진 어머니는
당장 저녁 때거리를 걱정할 처지가 되었다.
설상가상 흉년이 들어 쌀독 인심조차 사나워지니
어디가서 양식 빌려달라고 손벌릴 처지도 못되었고
일년내내 쌀항아리에 식량이 떨어지지 않던 큰 살림에
배고프고 갈데 없는 나그네까지 소홀함없이 거두어 주시던
어머니께서 이토록 어려운 처지가 되리라는 것은
언강생심 꿈도 꾸지 못하던 일이 현실이 되고 말았던 것이다.
당장 식구들을 먹여 살려야 하니
이젠 체면같은 것은 그저 알량한 자존심에 불과 했다.
그 시절, 인천앞바다에서 건져올린 강냉이 가루가
이집 저집에 식량으로 둔갑하여 허기진 배를 채울때였다.
그런데,
그 강냉이 가루는 마을사람들이 인천 앞바다에 정박하고 있던
미군함정에 소형목선(뗏마)으로 접근하여 얻어온다고 들었는데,
바닷물에 빠진 것을 건져오는 바람에 짠물이 배여있어
그냥 먹을 수가 없으니 몇시간 동안 물에 담구어 놓았다가
건져서 음식을 하곤 했다.
어린나이에도 집안이 어려워졌다는 것을 눈치 챈 나는
학교에서 돌아오면 혹시 내가 어머니를 돌와드릴일은 없을까
궁리를 하곤 했다.
그 날도 학교에서 돌아오자 부엌에서 무엇인가를 만들고 계신
어머니를 도와 아궁이 불 때는 일을 돕기 시작했다.
아궁이에서 나오는 열기와 연기 때문에 눈물, 콧물, 땀까지
뻘뻘흘리며 어머니를 도왔다.
그 일이 끝나고 부엌을 나오다 보니 앞마당 우물가 옆 양동이에
뿌연 쌀뜨물이 담겨 있었으니
아무 생각없이 어머니를 돕겠다고 양동이를 들어다가
돼지우리 먹이통에 붓고 빈양동이를 들고 들어오다가
혼비백산하고 말았다.
부엌에서 나오시다가 빈양동이를 들고 들어오는 나를 보신 어머니는
“아이구머니나, 이를 어째! 그걸 어쩌자고 돼지우리통에 부었냐?”
들고계시던 국자까지 동댕이 치시면서 낙담을 하시는게 아닌가?
쌀뜨물이라고 생각한 양동이의 뿌연 물은 우리집 저녁 때꺼리인
강냉이가루 였다.
짠물 빠지라고 물에 담가 놓은 것이 마치 뿌연 뜨물처럼 보였는데,
멋도 모른 채 돼지죽통에 갔다 부었으니 이런 낭패가 있던가?
난, 그 때의 어머니 표정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평생 그렇게 낙담하신 표정을 볼 수가 없었다.
고생하시는 어머니를 돕겠다고 시키지도 않던 일을 털썩 저질러놓고
망연자실하는 어머니의 그 표정이 오십여년의 세월이 지났는데도
눈에 선한 것은 설음중에 배고픈 설음이 제일 크다는 것,
가족들의 배고픔을 조금이라도 지켜주고 싶어하신 어머니의
마음이자 가족에 대한 한없는 사랑이셨다.
이제는 어머니께서 그렇게 낙담하시던 양식, 강냉이가루가 아닌 양식을
얼마든지 사 드릴 수 있는데 어머니는 그게 다 소용이 없어지셨다.
계절의 여왕 오월에
어김없이 다가오는 어머니 날이 바로 내일이다.
내일은 어떻게 어머니를 기쁘게 해드릴까?
곰곰 생각중이다.
2013. 05. 07. 雲海 김종억 글.
첫댓글 야고보님 정말이지 엄청난 효자란 생각이 듭니다.
글을 읽으면 늘 저를 돌아보게 되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