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눈늘 뜨고 호텔 앞 마당을 거닐었다.
우리 둘만 있는 초록 잔디밭이 나이를 잊게 만들었다.
애들처럼 세상을 품고 날고 싶어졌다.
그리고 외국이라서 누릴 수 있는 자유~~~~^^*
일행이 나올 때까지 우리는 이런 유치한 장난을 치며 놀았다.
허나 여행 일정엔 자그마치 네 도시를 들른다 한다.
가이드북을 펼쳐보니 그 도시들이 남부 해안쪽에 자리잡고 있었고
바다를 중심으로 옹기종기 붙어 있는 것이었다.
자 기대하고 출발~!
로마에서 품페이는 2시간 30분 가량을 버스로 이동해야 한다,
품페이 최후의 날을 영화와 전시회를 통해 접했기에 그 참상을 접하면 두려울 것같았다.
나폴리에서 남쪽으로 20km가량 떨어진 곳.
분화직전의 인구가 2만 5천명이었다는데
생과 사를 가르는 자연재해 앞에서 인간의 무력함을 잠시 떠올렸다.
허나 그곳은 이제 관광지다.
멀리 갈색 머리의 베스비오스 화산이 보였다.
지극히 평화로운 얼굴로 내숭을 떨며 "내가 뭐?" 하는 표정이었다.
지금도 한 쪽에서는 한참 발굴을 하고 한쪽에서는 관광이다.
발굴 유적 이곳저곳에는 고대인들의 생활상이 그대로 보존되어
화려한 품페이의 모습을 엿볼 수 있었다.
신발위에 뽀얗게 화산재가 묻었다.
역에 오는 길 가엔 오렌지와 레몬이 주렁주렁 달렸다.
누군가 오렌지를 사려 했더니 열개 한 봉지를 5유로라 했다던가?
오렌지는 우리가 보던 그 크기인데 레몬은 세 배나 커 보였다.
벗길 때 보니 껍질이 무척 두껍다.
아름다운 바다색으로 눈이 시원하다.
나폴리 역에서 낡은 열차를 타고 우리는 소렌토로 이동했다.
나폴리 민요 '돌아 오라 소렌토로'의 그 소렌토다.
꾀죄죄한 옛 완행열차같은 기차를 타고 오는 길엔 집집마다 오렌지 레몬이 주렁주렁 달렸다.
소렌토역에 내린 후 가게들이 즐비한 꼬불꼬불한 마을길을 걸어 바닷가에 닿았다.
바닷가에 오는 길가엔 레몬 술인 레몬첼로가 여기저기서 우릴 유혹한다.
허나 의외로 알콜도수가 높고 짐이 될까 싶어 우린 보기만 하기로 했다.
깎아지른 절벽 아래 푸른 바다색이 참으로 곱다.
그 절벽으로 난 좁은 길을 따라 바닷가로 걸어 내려 와서 부두에 섰다.
그러니까 품페이 유적을 지나 기차를 타고 소렌토역에 와서
카프리 섬에 가는 배를 타기 위해 해안가까지 걸어온 것이 품페이 소렌토 관광이다.
이러지 않으면 네 도시를 어떻게 돌아 볼 것인가!
혼자서 풋 웃음이 났다.
제법 규모가 큰 유람선을 타고 옵션으로 포함된 카프리 섬에 도착했다.
지중해의 물빛이 실감나게 눈 앞 가득이다.
멀리 베수비오스 화산이 건너다 보인다.
일인용 곤돌라에 몸을 싣고 카프리섬의 정상까지 올라가니
바다를 전체적으로 조망하기에 아주 좋았고
정상에 있는 카페에서 시원한 맥주를 주문해서 일행들과 나눠 마셨다.
술을 좋아하는 취향은 아닌데 순전히 겉멋이다.
참 이상하다, 객기는 나를 자유롭게 한다.
카프리 정상에서 다시 곤돌라를 타고 내려와 해변가에서 자유시간을 가졌다.
여기저기 기웃대다가 모자가게에서 남편이 페도라를 하나 샀는데 무척 맘에 들어 했다.
바닷가에 가 보고 싶어하는 남편을 따라 바닷가에도 가 보고
레이스로 만든 옷 가게도 들르고
또 나폴리시계라는 보석이 가득박인 시계가 특산물로 팔리고 있었다.
그저 눈만 즐겁게 구경을 했다.
그러다가 다시 배를 타고 나폴리에 나왔다.
마피아의 도시 나폴리.
나폴리 항구에서 우리를 맞이 하는 건 부두 정면에 있는 카스텔 누오보 성이다.
카스텔은 성이라는 뜻이고 누오보는 새롭다는 뜻이란다.
프랑스 앙주가의 거성인 이곳을 보는 게 나폴리 여행의 전부다.
마치 허무개그 같다.
나폴리 항구에서 돌아 서서 바라보니 오늘 돌았던 도시들이 건너다 보인다.
나폴리 만을 중심으로 베스비오스 화산, 품페이, 소렌토, 카프리섬이
해안선을 따라 죽 늘어선 곳이라는 게 비로소 이해된다.
이렇게 나마 하루 일정에 그 네 곳을 수박 겉핥기로 돌아 본 것이다.
이탈리아는 남과 북 중 북쪽이 경제력과 정치 문화를 거의 독점해서
남부인 오늘 일정 에 포함된 도시 중 나폴리의 거리는 구석구석이 쓰레기 천지요, 무법지대처럼 느껴졌다.
전차가 다니는 길에도 자동차가 운행되고 길 가 여기저기에서 불법 노점이 자연스레 운영된다.
버스 안에서 영화 하나를 보여 주었는데
북부에서 사는 우체부가 징계로 남부로 좌천되는 장면에서
그는 아내에게 머저리라고 구박을 받으며 홀로 울면서 부임지에 도착한다.
그러나 근무하다보니 남부의 따뜻한 인정에 적응되고
시간이 지나 다시 북부도시로 발령을 받자 이젠 다시 울면서 복귀하는 장면이 나온다.
북부지방은 깨끗하고 잘 정돈된 유럽의 도시같았으나
남부 나폴리는 마치 덜 개발된 구질한 모습이 첫인상이었다.
얼마나 아름다웠으면 노래에 등장했을까 기대에 찼으나
아름다운 건 자연의 바다물빛이었나 보다 싶다.
벌써 몇 끼째 스파게티를 주식으로 먹으며 채소 구경한 지가 한참이다.
저녁식사때는 나폴리 피자, 마르게리따를 추가해서 먹어 보았다.
놀랍게도 엄청 짰다.
먹는 게 고통스러울 정도로 .
어쩔 수 없이 맥주 한 잔을 시켜 그와 나눠 마셨다.
이탈리아 여행에서 식사는 거의 탄수화물이 주식이다.
한식은 전에 로마에 왔을 때 이용했던 곳인데 전보다 맛이 많이 나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