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리터리 마니아라면 한 번쯤 그 이름을 거론하는 영화가 있다. 그것은 미국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로 남은 베트남전을 다룬 <햄버거 힐>(1987년)이다. 이 작품은 당시 유명 감독이 연출한 영화도 아니며, 그렇다고 특출한 스타가 나오는 작품도 아니었다. 또한 다른 뛰어난 전쟁영화와 비교했을 때 연출력이나 스토리가 과히 좋은 작품도 아니다. 어떻게 보면 너무나 평범한 영화 같지만 이 작품에는 전쟁의 처참한 현실이 리얼하게 담겨 있다.
<햄버거 힐>이 리얼리티가 살아 있는 전쟁영화로 탄생할 수 있었던 것은, 실제 베트남전에서 가장 멍청한 전투, 혹은 의미 없는 전투로 불린 '햄버거 힐' 전투를 철저하게 조사해 영화에 반영시킨 존 어빈 감독의 역할이 컸다. 영화 스토리가 상당히 평이하게 흘러가는 대신 존 어빈 감독의 이런 노력 때문에 현실감이 살아 있는 리얼한 전쟁영화로 탄생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영화의 실제 모델이 된 '햄버거 힐' 전투는 과연 어땠을까?
영화에서 다루고 있는 '햄버거 힐' 전투는 월맹군과 미군 양측에게 모두 많은 사상자를 남긴 전투다. 이 전투는 1969년 미군 101공수사단 187연대 3대대가 월맹군 29연대가 차지하고 있던 937고지(미군이 점령한 후 '햄버거 힐'이란 닉네임이 붙음)를 점령하기 위해 치렀던 전투다. 당시 월맹군보다 막강한 화력을 보유하고 있던 미군은 이 작은 고지 하나를 점령하기 위해 엄청난 노력과 희생을 감수하여야만 했다.
'햄버거 힐' 전투는 1969년 5월 10일 공격이 시작되어 5월 20일 종결되었다. 단 10일간 전투가 지속되었을 뿐이다. 하지만 이 전투에서 미군은 약 400여 명에 달하는 전사자와 부상자를 내었다. 미군의 발표에 의하면 미군은 전사자 72명 부상자 372명, 월맹군 전사자는 633명으로 발표되었다. 하지만 월맹군의 경우 이 전투에서 미군 240명 이상을 죽였다고 주장하였다.
양측의 전사자와 부상자의 발표가 완전히 다르지만 10일간 지속된 전투를 통해 약 1500여 명 이상의 전사자와 부상자가 발생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짧은 기간의 전투임에도 이런 추정치가 나온다는 것은 이 전투가 얼마나 참혹하면서도 힘든 전투였는지 보여주는 증거다.
보통 전투는 고지의 이름을 따서 정해지는 경우가 많다. 원래 이 전투 역시 초기에 고지 명을 딴 937고지 전투로 불렸다. 하지만 미군이 이 고지를 점령한 후 어떤 군인이 종이에 적은 '햄버거 힐'과 '이 전투는 가치가 있는 전투였는가?' 하는 문구가 종군 기자의 사진을 통해 알려지면서 '햄버거 힐' 전투로 일반인들에게 알려진다.
베트남 반전 여론에 기름을 부은 전투
그렇다면 왜 미군은 종이에 '햄버거 힐'이란 문구를 새겨 나무에 달아두고 온 것일까? 그것은 다름 아닌 전투가 끝난 후 수많은 시체가 쌓여 있는 고지가 마치 햄버거에 들어가는 고기 덩어리처럼 보여서 그렇게 한 것이다. 이 전투는 당시 참여했던 미군들 개개인에게도 씻을 수 없는 상처와 아픔을 남겼다. 미군뿐만 아니라 당시 고지를 점령하고 있던 월맹군 또한 엄청난 피해를 감수해야만 한 전투였다.
이렇게 양측에게 모두 심각할 정도의 상처를 남긴 '햄버거 힐' 전투는 베트남전에서 가장 의미 없는, 그리고 가치 없는 전투로 이야기되고 있다. 이 전투를 계기로 하여 미국에서도 베트남전에 대한 회의론이 일어나고 반전 시위가 격화되게 되었다. 결국 미군이 베트남전에서 철군하는데 도화선에 불을 붙여준 전투가 된 것이다.
그렇다면 '햄버거 힐' 전투는 왜 이렇게 미군 스스로 평가할 때도 베트남전에서 가장 가치 없는 전투, 그리고 이후 미군이 베트남전에서 철수하는 계기를 만들어준 것일까? 답은 너무나 간단하다. 이 전투가 벌어진 937고지는 라오스와 인접한 국경 지역에 위치하고 있었다. 따라서 937인근 지역은 월맹군의 거점 지역이나 다름없는 곳이었다.
이런 위험한 곳에서 미군이 전투를 벌인 가장 큰 이유는 월맹군의 구정공세 이후 팽배해지고 있던 미국 내의 반전 여론을 무마시키고 월맹군의 보급선을 차단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실제 이곳 고지 하나를 점령하기 위해 미군이 들어간다는 것 자체가 이미 위험한 발상이나 다름없었다. 월맹군 거점 지역에서 벌이는 작전의 위험성에도 이 지역 고지 점령을 명령한 그 순간부터 미군은 깊은 수렁에 빠져든 것이나 다름 없었다.
그리고 더한 아이러니는 미군 지휘 수뇌부가 고지 점령 후 바로 철수를 명한 것이다.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하고 엄청난 피해를 가져온 '햄버거 힐'의 전투를 통해 미군이 얻은 것이 사상자 외에 남지 않게 된 것이었다. 수뇌부의 잘못된 판단과 고집, 그리고 경직된 지휘체계가 가져온 어처구니없는 전투 결과였다.
이렇게 잘못된 판단과 착오로 인해 발생한 '햄버거 힐' 전투는 당시 전투에 참가했던 101공수사단 187연대 3대대 대원들에게도 도저히 이해할 수도, 받아들일 수도 없는 전투가 되었다. 대부분 전투 생존자들의 증언은 이 전투가 무의미한 전투, 그리고 왜 이 전투를 해야 하는지 반문하고 있는 것이 그 증거다.
분명히 미군 70여 명 사망에 월맹군 633명 사망이란 미군의 발표만 놓고 본다면 완벽한 미군의 승리였다. 하지만 '햄버거 힐' 전투는 미국 내의 베트남전 참전에 대한 회의적인 시각을 더 높이고 반전 분위기를 고조시켰다는 점에서 완벽한 미군의 패배이기도 하였다. 결국 '햄버거 힐' 전투는 미군과 월맹군에게 모두 전쟁이 얼마나 참혹한 것인지 일깨워주는 하나의 사건으로 남게 되었다.
영화 <햄버거 힐> 전쟁의 참혹함을 보여주다
영화 <햄버거 힐>은 미국인들에게 기억하고 싶지 않은 베트남전을 다루고 있는 작품이다. 이 영화가 나왔던 1980년대 미국 영화계는 '팍스아메리카나'(미국이 세계 평화를 유지)가 절정을 달리고 있던 시절이다. 소련이 건재했던 당시 공산주의와 대적하는 미국의 이미지는 '팍스아메리카나'를 통해 미국인들의 자긍심을 높여주었던 것이 사실이다.
특히 <람보>와 <코만도>로 대표되는 미국식 영웅주의 액션영화를 비롯하여 미국의 힘을 과시하는 그리고 애국심을 고취시키는 영화들 대부분이 미국에서 흥행 성공을 거두었다. 물론 이런 조류에 반하는 전쟁영화들 역시 있었다. 1979년도에 나온 전쟁영화의 걸작 <지옥의 묵시록>, 1986년 <플래툰> 등이다. 하지만 이런 작품들은 정말 가뭄에 콩 나듯 나온 것 역시 엄연한 현실이다.
이런 분위기에서 나온 <햄버거 힐>(1987)은 미국인들의 아픈 상처를 건드리는 작품이었다. 특히 미군에게 씻을 수 없는 오명을 남겼던 전투를 소재로 하여 제작되면서 당시 미국 영화 조류를 생각했을 때 쉽게 흥행 성공하기 힘든 작품이었다. 물론 영화 전체적인 완성도에도 문제가 있었다. 이런 부분들 때문에 마니아적인 성격이 강한 작품이 된 것 역시 현실이다.
분명히 단점이 있지만 <햄버거 힐>의 가장 큰 장점은 전쟁과 전투의 참혹함, 그리고 전쟁에 참여한 군인들의 인간적인 감정을 고스란히 표현해낸 리얼리티이다. 이 작품은 전쟁을 미화하지 않는다. 그리고 전쟁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음을 보여준다. 또한 승리한 전쟁이라 하더라도 참여한 군인 개개인에게 남는 것은 전쟁의 상처와 인간성 파괴라는 것을 보여준다.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을 이야기하라고 한다면 베트남전에 참여한 군인들 스스로 '햄버거 힐' 전투를 경험하면서 베트남전쟁에 대한 당위성을 고뇌하는 부분이다. 영화 속에서 스스로 전쟁에 참여한 정당성을 만들기 위해 애국심을 고취시키기기 위해 노력하던 군인들조차 이 전쟁의 당위성을 고뇌하는 모습은, 전쟁이 가지고 있는 무의미한 가치를 다시 한 번 일깨워주는 부분이기도 하다.
분명히 '햄버거 힐'은 블록버스터 전쟁영화와 달리 재미있지는 않다. 그리고 대중들에게 많이 알려진 작품도 아니다. 하지만 <햄버거 힐>은 전쟁영화의 숨은 보석이라고 할 만하다. 치열했던 실제 '햄버거 힐' 전투를 현장감 있게 잘 표현했으며, 전쟁의 참혹함과 리얼리티를 잘 살린 작품이기 때문이다.
<햄버거 힐>은 그 어떤 경우에도 전쟁은 정당화 될 수도, 그리고 미화 될 수도 없음을 알려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