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계계곡에서 덕주계곡으로 접어 동창교매표소 직전 오른쪽으로 들어섰다. 들머리라고는 하지만 비공식등산로로 발길이 뜸합니다. 그러나 처음부터 암봉이 나타나며 길이 몹시 험하고도 매우 위험스럽습니다. 그러나 오랜만에 바윗길을 걷는 마음은 뭔지 모를 막연한 기대감에 부풀어 부듯하기도 합니다. 두 손까지 네 발로 기기도 하고 밧줄을 잡고 오르내리며 바위틈을 빠져나가기도 합니다. 크고 작은 바위를 안고 지형지물을 최대한 이용하다보니 짜릿짜릿한 스릴을 맛보기도 합니다.
옛 성터를 지나고 전망바위에 올랐습니다. 정말 상큼하니 시원한 바람이 몰려들어 폐부까지 훑어냅니다만 그로는 부족해 배낭을 비우고 가득 담아 짊어지고 싶습니다. 왕관바위를 지납니다. 깎아지른 절벽에 그 밑으로 우회하기도 합니다. 산자락이며 계곡까지 푸르게 뒤덮어 정글을 이루었습니다. 노송이 군락을 이루고 솔바람을 빚어 퐁퐁 진향 향기를 쏟아냅니다. 소나무몸통이 온통 붉은가 하면 거북등을 하고 있는 아름드리입니다. 우리나라 순수 혈통의 토종인 셈이지요.
아주 큰 몸집임에도 훌러덩 넘어진 소나무도 있습니다. 선 채로 고사목이 되어 거죽까지 벗고 뼈다귀만 남은 것도 있습니다. 그러고 보면 나무라고 아주 편안하게 살아가는 것만은 아닌 듯싶습니다. 죽어 헐벗은 모습을 보노라면 자연스럽고도 곱게만 뻗어가지를 못하고 몸뚱이가 엿가락처럼 비비 꼬여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세찬 바람에 몸을 살짝살짝 돌려대며 피하다보니 몸이 꼬이는 줄도 모르다가 아예 근육처럼 그대로 굳어버린 것입니다. 그간 살아오느라 겪었던 고난의 모습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성싶었습니다. 우리의 인생살이 또한 크게 다르지 않음을 증명이라도 하는 성싶습니다.
군데군데 옹이도 보입니다. 삶의 애환이 묻어나며 뭉클하게 합니다. 온갖 역경을 몸으로 끌어안고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듯 안으로 삭였지만 죽음 앞에 어쩔 수 없이 드러낸 것입니다. 지워질 수 없는 깊디깊은 상처이기에 허연 뼈가 드러나도록 그냥은 아물 수 없었나 봅니다. 그러나 그 상처가 이제는 한층 빛이 납니다. 기름기가 잘잘 흘러 윤기가 나며 맑은 눈빛처럼 영롱합니다. 상처도 다스리며 공을 들이다 보면 새로운 모습으로 바뀌나 봅니다. 가슴에 응어리를 갈무리하여 오히려 생기가 돋습니다. 어쩌면 수도승이 그토록 바라고 바라는 하나의 값진 사리와도 같아 보입니다.
소나무는 다른 나무와는 달리 절개가 아주 곧습니다. 백 년을 살아온 나무라도 한 번 목이 잘리면 그뿐 곧장 죽음에 다다릅니다. 구차하게 목숨을 구걸이라도 하듯 새싹이 돋거나 곁가지를 내밀지 않습니다. 그 어느 형태로도 목숨을 대신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꼿꼿하고도 고고하여 의연한 모습은 결코 섣불리 자세를 흩뜨리는 일 없이 독야청청 푸른 숨을 내쉬며 척박한 산자락을 잘 지켜냅니다.
덕주봉에(893m)에 오릅니다. 변변한 빗돌 하나 마련하지 못하여 초라하기 그지없습니다. 이웃에 영봉을 힐끔 쳐다봅니다. 이제 자연성능처럼 암반이 깔린 잘록한 길을 지나 만수봉(983m)으로 오릅니다. 산죽 밭에 어린 갈참나무가 우거져 건강미가 뚝뚝 넘쳐납니다. <검은등뻐꾸기> 인가 <홀딱깍새> 인가가 저 아래로부터 연신 따라오며 울어 산자락을 흔듭니다. 자신의 영역을 침범하였다고 불만을 토하는 것인지 아님 깊은 산속까지 찾아주어 반갑다는 것인지는 각자의 마음에 따라서 달리 들리기도 할 것입니다.
만수봉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고 오른쪽으로 꺾어 하산하다가 다시 용암봉(892m) 자락을 거칩니다. 마지막 쉼터에서 꽃뱀을 만났습니다. 한바탕 노려보는 듯 하더니 제풀에 눌려 슬그머니 고개를 돌려 사라집니다. 아직 독을 만들지 못하였는지 좀은 여린 몸집에 힘이 없어 보였습니다. 어쩌면 만수봉 가는 길에 만수의 처인지도 모른다고 정말 엉뚱한 생각을 해 봅니다.
비 좀 와야 하겠습니다. 냇물이 말라가며 이끼가 많이 끼어 미끄럽습니다. 물고기들도 활동반경이 현저하게 줄어들면서 좀은 불안한지 몸놀림이 아주 둔합니다. 그런대로 발을 담그고 땀을 씻어냅니다. 만수교가 가까워지면서 길가에 산딸기가 발갛게 익었습니다. 시퍼런 숲 속에 빨간 보석이 주렁주렁 매달렸습니다. 손등을 긁히며 한 움큼씩 열심히 모아 입안에 털어 넣습니다. 좀은 시큼한 맛도 있지만 달콤함에 피로가 금세 가시는 듯싶습니다. 손이 붉게 물듭니다. 어느새 청정지역에서 맛보는 산딸기 맛이 유년으로 아렴풋이 이끌고 가기도 합니다.
뒷사람들을 기다리며 토끼풀밭에 섰습니다. 보다 맑은 마음 깨끗한 눈빛에 초점을 집중하여야 비로소 네 잎 토끼풀을 찾아내며 행운을 점쳐보기도 하는 여유를 가져봅니다. 오늘 산행은 시종 능선을 타며 수많은 바위 속을 거닐었습니다. 아름드리 토종 소나무 군락을 지나고 신록의 터널을 통과하며 꽃뱀도 만나고 산딸기를 맛보며 네 잎 토끼풀 행운을 찾아 월악의 정기를 듬뿍 받았으니 이제 <붉은 악마>가 되어 목이 터져라 월드컵 응원전에 나서야 할까 봅니다.
괴산 장연을 지납니다. 곳곳에 길길이 자란 옥수수가 군중처럼 모여 있습니다. 아직은 철이 아니어 푸른 제복을 입고 있지만 <붉은 악마>의 마음을 지니고 응원전이라도 펼쳐보려는가 봅니다. 이제 불과 몇 시간 후면 <토고>와 예선 첫 번째 경기가 벌어집니다. 한반도에 살아있는 모두가 길거리 응원전에 나설 것입니다.
저쪽에서 깃발을 펄럭이며 파도타기 하듯 물결을 이룹니다. 금세라도 <대~한민국> 하며 환호성이 쏟아져 나올 성싶습니다. 한국을 넘어 독일 프랑크푸르트 월드컵경기장에서 12번째 전사인 <붉은 악마들>이 모여 세계가 깜짝 놀랄 응원전을 펼치며 우리의 저력을 보여주려 합니다. 점점 시간이 다가오며 축제 한마당이 펼쳐집니다.
옥수수도 머잖아서 이파리 겨드랑이마다 불룩불룩하게 대학 찰옥수수가 여물 것입니다. 향수에 젖듯 하모니카를 불면서 좋은 맛을 볼 수 있으리라 여기면서 오~ 필승 코리아입니다.
버드내도 축구 판이 펼쳐졌어요.
벌어진 월드컵축제 한마당
토고의 전반전 선제 골로
다소 불안했지만
우린 믿고 기다렸지요
너도나도 다함께
대~한민국
목 터져라 외쳐댔어요
후반전 이천수의 프리킥 동점에
안정환의 역전골로
대한민국이 들썩들썩
여진에 한반도가
아니 독일 넘어 세계가
흔들거린 통쾌한 순간 이었지요.
<토고>가 어디 있는 나라인지
월드컵이 가르쳐 주었듯이
동방의 대한민국
휘둥그렇게 배우고 있을 지구촌.
첫댓글좋은 글 잘앍었습니다. 힘든 산행중에도 아주 예리한 관찰과 매끄러운 필치로 덕주산 산행의 새로운 감명을 느게하는군요. 숨이 헉헉차오른는 힘든 발걸음에 제대로 주변 감상도 못하는 산행꾼들에게 감로수같은 시원함을 줄것입니다. 사진을 보는것보다 분명 더욱 깊고 길다란 산행의 여운을남기게하는군요. 수고하셨습니다.
첫댓글 좋은 글 잘앍었습니다. 힘든 산행중에도 아주 예리한 관찰과 매끄러운 필치로 덕주산 산행의 새로운 감명을 느게하는군요. 숨이 헉헉차오른는 힘든 발걸음에 제대로 주변 감상도 못하는 산행꾼들에게 감로수같은 시원함을 줄것입니다. 사진을 보는것보다 분명 더욱 깊고 길다란 산행의 여운을남기게하는군요. 수고하셨습니다.
월악산에서 파리여행을 했으니 월드컵 프랑스전은 보나 마나 이기겠지요? 뭔 이야기인지 아시는 분은 덕주봉에 함께하신 분 입니다. 만나뵙게 되어서 즐거웠습니다.
늘.. 그렇습니다. 문방님이 함께 하신 산행에는 안도와 기대가 함께합니다. 풀밭에서 네잎클로버를 찾으시던 맑은 눈빛과 웃음..솔향기 짙던 바위능선을 훨훨 날듯이 기뻐하셨을 모습에 미소도 지어집니다. 상치쌈에 함께 점심 들고 싶었던 기대는 무너졌지만 지나가신 자욱을 따라 우리도 많이 즐거웠습니다. 고맙습니다. 늘~ 건강하세요~~^^*
상추쌈 대신 산딸기을드셨네요 상추쌈 함께 하고 싶었습니다 언제나 건강하시게 산행하시는 모습 늘~반갑고요 항상 행복하세요.잘보고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