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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조 왕건 <제 15회>
씬 1 기훤의 성 외경
종간 (E) 지금 뭐라고 하셨사옵니까?
씬 2 동 궁예의 거소
궁예와 종간이 마주 앉아 있다. 종간이 놀란 눈으로 궁예의 얼굴을 보고 있다.
종간 항복이라고 하셨사옵니까?
궁예 그렇소.
종간 얼마만의 얻은 기회이옵니까? 우리는 요지중의 요지인 이 곳 죽주(안성)를 얻었사옵니다. 헌데 항복이라니요?
궁예 이곳이 요지이기는 하나 뜻을 펼치기는 어려운 곳이오. 그 동안 기훤의 포악함이 세상에 알려져 있어 이들을 기반으로는 아무것도 이루지 못합니다.
종간 하지만... 이만한 터전을 어디서 또 얻으오리까?
궁예 작은 것의 욕심에 얽매이면 큰 것이 보이지 않소이다.
종간 ....?
궁예 어차피 결과가 보이는 것이라면 새로운 길을 찾아야 하는 것이 아니겠소? 그것이 빠르면 빠를수록 좋은 법이오.
종간 ....(아직도 이해가 안 간다)
궁예 양길에게 가십시다. 큰 곳으로 가야 큰 길이 보입니다. 우리는 그곳으로 가서 좀더 세월을 관망해 보아야 합니다.
종간 소인은 아직도 납득이 잘 가지 않사옵니다.
궁예 나의 소원은 진정한 미륵의 세계를 여는 것이오.
종간 ....
궁예 작은 명예나 권력이나 그런 것들은 아무것도 아니오. 내가 나의 세계를 이루고 찾았을 때 모든 것은 저절로 오는 겝니다. 아직은 그 때가 아니 왔습니다. 자, 가십시다.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어요.
종간은 비로소 차분하고 냉랭한 미소를 짖는 궁예를 보며 뭔가를 알것같다. 그런 궁예가 종간은 역시 두렵다. 그들 그렇게 일어나면..
씬 3 동 성 옛 기훤의 거소 외경
군사들이 경계를 서고 있다.
씬 4 동 거소 안
신훤, 원회를 비롯한 장수들이 다 모였다. 모두들 숙연하게 궁예의 말을 듣고 있다.
궁예 지금까지 설명을 하였듯이 우리는 이 성을 양길 장군에게 바치기로 하였소이다. 이는 우리의 처지와 백성들의 안위를 고려한 것이오.
신훤 하오나, 장군. 이곳 죽주는 비로소 도적을 몰아내고 스님께서 장군으로 앉으셨사옵니다. 양길이 비록 큰 세력이라고 하나 스스로 항복을 자청해 간다는 것은....
원회 그러하옵니다. 장군답지 않으시옵니다. 백성과 장졸이 모두 장군을 부처님처럼 따르는데 무엇이 두려워 항복을 하시옵니까?
궁예 불필요한 싸움은 백성들을 피곤하게 하는 것이오. 또한 과한 욕심은 세상을 시끄럽게 합니다. 우리가 무엇 때문에 이곳에 모여 있는 것이오? 그것이 부귀영화였소이까? 아니면 저 신라의 왕관이였소이까?
모두들 ......
궁예 아니오. 우리는 분명 백성들의 평안을 약속하였던 것뿐이오. 양길 장군은 우리 몇 배에 달하는 영토와 군사를 가지고 있소이다. 또한 인물이 담대하고 정의가 있다 들었소이다. 그가 진심으로 백성을 위하는 사람이라면 이 궁예가 평생 그의 신을 지키는 노예가 된 들 어떠하오리까?
숙연하다. 제장들은 더 이상 아무도 말하지 않는다.
종간 그렇소이다. 우리 주군께서는 하나도 백성이요, 둘도 백성밖엔 생각지 아니십니다. 이미 뜻을 세우셨으니 따르는 것이 도리일 것이오.
제장들 ....
궁예 전령을 앞서 보내 나의 뜻을 전하시오. 그리고 제장들은 지금부터 이 성안의 남아있는 문제들을 공정하게 처리하도록 하시오. 병들고 노부모가 있는 군사들은 모두 돌려보낼 것이며, 아울러 우리와 함께 하기를 원하지 않는 자들도 다 집으로 돌려보내시오. 전령의 회신이 돌아오는 대로 떠나도록 할 것이오.
궁예의 그 결연한 표정에서 길게 디졸브.
씬 5 길 (평원)
궁예의 일행들이 가고 있다. 따르는 자들은 그리 많아 보이지 않는다.
궁예와 종간이 앞서 가고 있고 그 뒤로 신훤과 원회들이 따르고 있다. 그들은 아직도 못마땅한 표정들이다.
신훤 알 수 없는 일이야. 성을 통째로 내어주고 스스로 머리를 굽혀 갈게 무엇이냐 말이야.
원회 백성들을 위한 길이라고 하시지 않나.
신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원회 (미소지으며) 이보게, 신훤이. 우리는 처음부터 궁예스님의 큰 그릇을 보았네. 그래서 스스로 모신 것이 아닌가? 대책없이 양길의 밑으로 들어가실 분이 아닐세.
신훤은 그래도 여전히 미덥지가 않다. 그들 그렇게 가고 있다. 그 모습이 평원에서 멀어지면서.
씬 6 또 다른 어느 벌판, 혹은 숲길
궁예들이 오고 있다. 저 만큼 숱한 깃발들과 군사들이 보여온다. 대군은 아니지만 위엄이 있어 보인다. 양길과 그의 수하장수들이 궁예를 맞으러 나와 있는 것이다. 그들 사이가 점차 가까워진다. 그리고 이윽고 그들은 서로를 본다. 양길의 좌우로 그의 장수들인 복사귀(복지겸), 환선길, 이흔암, 은부, 양길의 아우 명길, 사위 1, 2가 보고 있다. 양측은 잠시 침묵을 지키며 서로를 본다.
잠시 후 환선길의 목소리가 터져 나온다.
환선길 그대가 죽주의 장군 궁예스님이시오?
궁예 그렇소이다.
환선길 우리의 주군이신 양길 대장군이시오, 어찌 말에서 내리지 않는 게요?
궁예 아직 뵌 적이 없는지라, 결례가 되었소이다.
궁예가 말에서 내린다. 그러자 함께 온 모든 장수들이 말에서 내린다.
궁예는 양길의 앞으로 가 무릎을 꿇으며 절을 올린다. 모든 따라온 장수들이 궁예와 같이 한다.
궁예 미천한 죽주성의 궁예가 대장군 님께 예를 올리옵니다.
보고있던 양길이 미소를 짖는다.
양길 이미 그대의 대명은 오래 전부터 듣고 있었소. 죽은 기훤이와는 달리 그대는 참으로 현명하고 출중한 장수라 들었소.
궁예 칭송이 과하시니 몸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소장과 제 수하 장졸들을 받아주시오소서.
양길 이를 말인가? 내 하도 반가워서 전선에 나가있는 모든 장수들을 다 불러 모아 그대를 맞게 하였소. 일어나시게.
궁예가 일어나자 양길이 다시 말에 오르라며 손짓을 한다.
양길 말에 오르시게. (주변을 보며) 큰 귀빈이 오셨다. 예우를 다해 뫼시도록 하라.
장수들과 군졸들이 일제히 대답하며 앞선다. 기수들이 좌우로 갈라지고 양길과 궁예가 나란히 가기 시작한다.
씬 7 그 길
양길이 매우 기쁜 표정으로 거듭 궁예를 본다.
양길 백성들이 그대를 살아있는 부처라 한다지?
궁예 과분한 말이올습니다.
양길 그대가 내게 오다니, 이만한 복이 어디 있겠는가? 허허허, 하늘이 나를 돕는 것 같네 그려.
그들 그렇게 가면서..
씬 8 복원성 외경
산성으로 이어진 큰 성이다. 그 위로 웃음소리들이 들려온다.
씬 9 동 성안 (연회장)
넓은 방에서 주연이 벌어지고 있다. 큰 성의 주인답게 양길은 그 중앙에 앉아있고 시녀들이 주변을 거들고 있다. 좌우로 장수들이 둘러앉았다.
궁예는 양길의 옆에 앉아있고... 양길의 장수들 속에서 유난히 복사귀와 은부의 눈이 심상치 않게 궁예와 그 수하들을 보고 있다.
의심스러운 눈초리인 것이다.
양길 (호탕하게) 내가 그 동안 천민의 몸으로 일어나 수많은 전쟁을 거치며 땅을 공략하였는데 이번처럼 기쁘고 보람있는 일은 처음이로다.
살아있는 부처가 그 장수들과 넓은 땅을 가지고 내게 왔으니 이보다 더한 기쁨이 어디 있으랴.
이흔암 그러하옵니다, 주군. 그 모든 것이 주군의 위엄이 천하를 감동케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옵니다.
환선길 머지않아 주군께서는 대왕이 되시옵니다. 어디 궁예장군뿐이겠사옵니까? 많은 인재들이 더욱 더 몰려들 것이옵니다.
양길 암, 암.. 그렇게 돼야지. 자, 인사들을 해야지. 우선은 서열이 분명해야 하네. 이곳의 여러 장수들이 하나 같이 공이 크지만은 아무래도 궁예 장군이 그대들의 위에 있어야 한다고 보네. 이의들이 있는가?
제장들 명을 따르오리다.
양길 학문과 그릇으로 보아 마땅한 일일게야. 그리들 알게.
제장들 예....
궁예 황공하옵니다.
양길 자 여기는 복사귀라고 하네, 그의 조상은 중국에서 건너왔고 당나라에서 대단히 큰 벼슬을 했던 귀족 집안이네. 적지 않은 무예도 가지고 있거니와 학문 또한 뛰어나다네.
복사귀 잘 보아주시오소서.
궁예 어인 말씀을...
양길 그 옆에는 은부라 하고... 또 이쪽은 환선길이라 하지. 힘이 장사고 호랑이도 맨손으로 때려잡는다네.
환선길 환선길이올시다.
양길 또 그 옆이 이흔암장군이라고, 그 옆이 내 아우 명길일세. 그리고 그 옆이 내 큰사위, 둘째 사위...
그때마다 그들은 서로 묵례를 주고받는다.
양길 그쪽도 인사를 시켜주시게.
궁예 저의 부장인 종간이라 하옵니다.
종간 종간이옵니다. 대장군.
궁예 이쪽은 신훤이라 하고, 또 이쪽은 원회라 하옵니다. 모두가 다 소장의 부장들이옵니다.
양길 하하하하, 좋은 날이다. 참으로 좋은 날이야. 오늘은 마시세 그려. 무엇들 하느냐? 풍악을 울려라.
여인들이 거문고를 켜기 시작한다. 술판이 왁자하게 벌어진다.
양길 우리 군대는 승승장구일세. 이미 우리의 영토는 이 나라의 중심복판을 다 차지하였네. 머지않아 대 제국을 이룰 것일세.
궁예 소장도 그리 보옵니다.
양길 그대는 큰 역을 해줄 것이야. 싸움이 문제가 아닐세. 문제는 사람이야. 인재가 없으면 아무것도 못하거든, 그대가 할 일이 많네.
궁예 하명만 하시오소서.
양길 하하하하, 자 드세 들어. 이 자리가 끝나거든 우리 둘이 한 번 밤을 세워 마셔보세 그려.
그렇게 웃으며 술잔을 넘기는 양길의 표정에서...
그리고 그들을 살피는 복지겸과 은부의 표정이 보이고, 다시 그들을 보는 종간의 얼굴에서.....
풍악소리는 더욱 높아지고...
씬 10 동 성안 (밤)
곳곳에 횃불이 밝고 군사들이 번을 서고 있다. 양길의 방 쪽으로 불빛이 밝다.
씬 11 그곳 연회장
방안에 불빛이 밝은 가운데 장수들은 이미 상당히 취기가 올라있다. 양길과 궁예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이들 가운데서도 복지겸과 은부는 여전히 술을 삼가는 체 고고하게 앉아있는 종간과 그 옆의 신훤, 원회들을 본다. 환선길과 이흔암, 사위들과 명길은 취해있다.
환선길 (취해서) 어른들은 별채로 가셨고, 이제 우리들 자리올시다. 오늘 참으로 기분이 좋은 날인데 난 궁금한 게 많소이다.
종간 뭐가 말이오이까?
환선길 궁예 장군은 스님입니다. 어디서 도를 닦으셨소?
종간 송악의 세달사라는 곳에 계셨습니다.
환선길 지금 세상에 참다운 스님 만나기 어려운데 참으로 용하시오. 무예도 뛰어나고 부처노릇도 잘하고... 그 한쪽 눈으로 말이오.
종간 허허허, 한쪽 눈만으로도 장군보다 멀리보고 많은 걸 볼 수가 있는 분이지요.
환선길 뭐요?
복사귀 그만들 하십시다. 우리는 이제 같은 반열에 섰소이다. 헌데 종간 부장이라 하셨든가요?
종간 예,
복사귀 학문이 아주 깊어 보이십니다. 하기사 절에서 글공부를 많이 하셨겠습니다.
종간 예, 장군께서도 문무가 고루 높으시다 들었소이다.
복사귀 과찬이십니다. 허허허. 헌데 병법은 좀 아십니까?
종간 육도삼략과 손자는 좀 배웠습니다만...
복사귀 대단하십니다.
은부 .....(여전히 의심 같은 눈으로 종간을 보고 있다)
이흔암 자 그만하고 술이나 마십시다. 술자리에서 말이 길면 재미가 없습니다.
씬 12 양길의 방
큰 영토의 영주답게 방이 꾸며져 있다. 궁예가 그 앞에 마주앉아 있다. 두 사람은 전혀 술기가 없다.
양길 적지않이 마시었는데도 전혀 술기가 없어 보이네 그려.
궁예 술을 다스리지 못해서야 어찌 병사들을 부릴 수 있겠사옵니까?
양길 그래야지. 장차 한 나라를 경영하자면 말일세.
궁예 (그 말에) 예?
양길 나는 이미 늙었네. 내가 군사를 일으킨 것은 도탄에 빠진 백성을 구하고 귀족 나부랭이만 따지는 신라의 골품제를 없애버리려고 했던 것일세. 그렇게 되면 자연적으로 새 나라가 설 것이 아닌가?
궁예 그렇사옵니다.
양길 죽어서 나라를 가지고 가는 것은 아닐세. 그렇다면 누군가가 내가 세운 나라를 경영해야 할 것이 아닌가?
궁예 ....
그때 밖에서 소리가 들려온다.
미향 (E) 찻상 대령이옵니다.
양길 오냐. 들여오너라.
잠시 후 미향이 조용히 찻상을 들고 들어와 옆에 앉는다. 그리고 차를 따른다.
양길 남쪽에는 이미 견훤이가 들어섰고 동해의 명주에서는 오래전부터 크게 세력을 장악하고 있는 김순식이란 자가 앉아 있어.....(사이) 그렇다면 우리는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나?
궁예 주군께서는 지금 북쪽으로 가려 하시옵니다.
양길 음? (표정이 굳어진다)
궁예 대장군께서 차지하고 계신 지금의 이 영토는 안정적이지를 못하옵니다. 동쪽으로는 백두대간이 막혀있고 남쪽으로는 이제 막 호기를 부리고 일어선 견훤과, 아직도 그 뿌리가 단단한 신라가 있사옵니다.
양길 .....(끄덕인다)
궁예 하지만 저들을 놓아두고 북으로 뻗어가려 해도 그리 쉽지가 않사옵니다. 북쪽은 한산주(경기도 북부)이옵니다. 한산주는 옛 고구려의 호족들이 많고 또한 신라의 큰 군단이 두 곳이나 있는 곳이옵니다.
양길 ...............잘 보았네.
궁예 지금 중요한 것은 무리수를 두어 사방의 적들을 공격하느니 보다는 동쪽을 도모하는 것이옵니다.
양길 동쪽이라니......? 그곳은 김순식이의 땅이야.
궁예 그렇기는 하오나 김순식은 명주성만을 애지중지 끼고 있을 뿐 주변과 연계되어 있지는 않사옵니다.
양길 .....?
궁예 당분간은 관망을 하시오소서. 모든 것을 재정비하고 기회를 보시오소서. 그러는 사이 남쪽에서는 견훤과 신라가 싸움을 계속할 것이고 북쪽은 호족들과 한산주의 신라군들이 또한 부딪힐 것이옵니다. 주군께선 가만히 보고만 계시다가 동쪽으로 향하시는 것이옵니다. 즉, 고립되어 있는 명주를 치는 것이지요.
양길 (고개를 저으며) 하지만 명주가 어떤 곳인가. 군사만 해도 수천이나 돼. 그 크고 넓은 하서주(강원도 일대)를 상징하는 곳이 아닌가?
궁예 그곳을 차지하셔야만이 대왕이 되실 것이옵니다.
양길 그건 그러하이...암, 대왕이 되어야지. 명주성은 필요한 곳이야, 하지만 그렇게 하자면 저 험하고 가파른 백두대간을 넘어야 하고 또 많은 군사를 가진 김순식이를 쳐부수어야 하네. 가능할까?
궁예 가능하옵니다. 그러니까 남과 북에서 저희들끼리 싸우는 동안 우리는 충분한 군사력을 준비하는 것이옵니다.
양길은 생각을 거듭하며 거친 숨을 내쉰다. 궁예의 말에 대단한 욕망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드디어 무릎을 탁친다.
양길 자네말이 맞네. 앞이 훤히 보이는 듯 하이. 군사를 정비하세. 사실 우리는 많이 지쳐있네. 쉬지를 못했어.
궁예 ...
양길 그리고 지금의 전선을 유지하면서 동쪽을 공략하세. 저 대관령을 넘어 명주를 치는거야.
궁예 그러하옵니다. 대장군.
양길 암, 그렇지. 그렇게 해야지. (그러다가 또 고개를 외로 꼰다) 헌데... 가능할까? 정말 가능할까?
궁예 의심하지 마시오소서. 동쪽은 대장군의 땅이 될 것이옵니다.
양길 그렇게 하세. 때를 만들고 기회를 보세. 이 양길의 군대가 곧 천하에 그 이름을 들어내겠네, 그려. 아니그런가? 하하하하.. 자 차가 다 식네 그려, 어서 들게.
궁예 (비로소 미향을 보며) 예.
궁예는 그런 양길을 보고 있고 양길은 미소지으며 차를 마신다. 미향은 조용히 빈 잔에 차만 채우고 있다.
양길 내게는 딸이 셋이 있네. 그 중 둘은 제 주인을 만났고 이제 하나가 남았지.
궁예 ....
미향 ....
양길 이 아이는 내 막내딸일세.
궁예 아, 예.
양길 (미향에게) 이제 되었으니 나가 보거라.
미향이 대답하며 물러간다. 양길이 궁예를 한참 보고 있다가 갑자기 크게 웃음을 터뜨린다. 그런 양길을 보는 궁예...
씬 13 동 방 밖
방을 빠져나온 미향이 멈칫하며 방안의 동정을 잠시 듣고 있다.
양길 (E) 내 딸이 어떠한가?
궁예 (E) 어인 말씀이시온지..
미향이 한숨을 쉬며 그렇게 발걸음을 옳긴다.
씬 14 동 방 안
양길이 궁예를 지긋이 보며 말한다.
양길 나는 오래 전부터 자네의 소문을 듣고 있었고 또 깊이 알아보고 있었네. 딸을 맡기고 싶네만은...
궁예 어인 말씀이시오니까, 소장은 부처님을 모시는 승려이옵니다.
양길 그렇지가 않으이.. 자네가 승려라고는 하나 많은 부하를 이끄는 장수일세. 나의 사위가 되어줌으로써 우리는 더욱 믿고 의지할 수 있을 것이야.
궁예 그렇지가 않사옵니다.
영을 거두어 주시오소서.
양길 내 호의를 거절하지 말게.
궁예 다시 말씀 드리옵니다만은 불문의 제자로써 어찌 여인을 취할 수 가 있겠사옵니까? 살펴 헤아리시 오소서.
양길 자네와 나는 이미 생사를 함께 하는 주군과 신하의 사이일세. 이것은 나의 명일세.
궁예 ....
양길 장수에게는 안해가 필요한 것이야. 나는 지금까지 한 번 내린 영을 거둔 적이 없네. 그리 알게나. 오늘밤 신방이 마련되어 있네. 이것은 내가 자네에게 베푸는 최대의 호의야.
궁예 .......(거절이 어려움을 알고) 하오면 대장군,
양길 말해보시게.
궁예 정히 그러하시면 안해가 아니라 부처님의 제자로 대하겠사옵니다.
양길 부처님의 제자?
궁예 그러하옵니다.
양길 (한참 보다가, 웃음을 터뜨린다) 그건 자네 마음일세.
이미 나는 딸을 주었고 그 다음의 일은 자네 할 나름이지.
궁예 허면, 분명 약조를 하셨사옵니다.
양길 암, 나는 이렇게 생각하네. 남녀가 만나면 반드시 인연이 맺어지는 법이라고..
자네도 결국은 그리 될걸세, 핫 하하하하...
궁예 .....
양길 그리고 여독이 좀 풀리면 석남사로 가게.
궁예 ...?
양갈 석남사는 이 곳에서 그리 멀지 않네. 조용한 곳이니 그 곳에서 푹 쉬면서 천천히 동쪽을 도모할 준비를 하여주게나.
궁예 영이시라면 그렇게 하겠사옵니다.
양길 아, 정말 좋은 날이야.
이제 막내 사위까지 얻었으니 더 바랄게 무엇이 있겠는가? 안그런가?...하하하하
궁예는 더 이상 대답하지 않는다. 양길은 혼자 만족한 듯 껄껄껄 웃고 있다.
씬 15 미향의 방
시녀가 미향을 곱게 단장
시켜주고 있다.
미향은 눈물을 머금고
있다.
시녀 아가씨, 궁예장군이 정말 대단한 분이신가 보옵니다.
미향 ....
시녀 이렇게 단숨에 혼인을 정하시다니요.
미향 ....
시녀 그분께서는 어떠하시옵니까?
여전히 미향은 대답이 없다. 말없이 눈물을 떨군다.
그리고 눈을 감는다.
씬 16 동 성안 종간의
처소 밖
원회와 신훤이 다가와 헛기침을 날린다.
원회 안에 계시옵니까?
종간 (E) 예, 들어오시구려.
그들이 방안으로 들어가면
씬 17 동 방 안
두 사람이 앉으며 묘한
표정을 짖는다.
원회 궁예 장군의 일을 들으셨습니까?
종간 무슨 일을 말하는 것이오?
신훤 지금 신방을 꾸미고 있다 합니다.
종간 예? 신방이라니요. 아니 누구와...?
원회 양길 대장군의 막내 딸이라 합니다.
종간 그래요? 아니 어떻게 그런, 혼례 준비나 잔치도 없이 말입 니까?
원회 그렇습니다. 이미 이 곳에 오긴 전부터 준비가 된 듯 합니다.
신훤 양길의 두 사위도 지금처럼 별 의례를 치루지 않고 부인들을 맞았다 합니다.
종간은 잠시 생각에 잠긴다. 그러다가 피식 웃음을 터뜨린다.
보고있던 신훤이 묻는다.
신훤 왜 그렇게 웃으십니까?
종간 양길 대장군의 욕심이 과하기 때문이오.
두사람 예?
종간 우리 주군께서는 평생을 이곳에 머무실 분이 아니십니다.
두사람 ......?
종간 주군께선 훗날 천하를 호령하는 대제국을 창업하실 분이십니다. 양길 장군의 딸은 황후감으로써는 맞지 않지요.
두사람 황...후요....?
종간 (혀를 차며) 당연한 일을 가지고 무엇들 그리 놀라십니까? 허허허, 안되었어요.
아비의 욕심 때문에 아가운 처자 하나가 박복하게 되었구먼, 쯧쯧쯧쯧.....
씬 18 궁예의 처소 밖
미향이 시녀들의 부축을 받아 궁예의 처소 밖에 이른다.
시녀 장군, 신부께서 드시옵니다. (사이) 신부께서 드시옵니다.
궁예 (E) 뫼시게.
조용히 문이 열리며 미향이 안으로 인도된다.
씬 19 동 방안
시녀들이 미향을 앉혀놓고 조용히 빠져나간다.
촛불이 휘황하게 타고 있다. 얼마만큼 시간이 흘렀을까, 궁예의 시선은 미향을 보고 미향도 궁예를 본다.
궁예 고개를 드시오.
미향 ....
궁예 아버님께서는 그대를 나에게 맡기신다 하셨소.
미향 ....
궁예 나는 승려요. 백성들을 위해 미륵의 세계를 열어주려 하는 부처님의 제자요. (사이)
그걸 알고 계시오? (사이)
우린 부부가 아니라는 뜻입니다.
미향 소녀는 장군의 안해가 되라는 아버님의 영을 받았습니다.
궁예 그렇지가 않소. 나는 부처님의 제자로써 그대를 받겠다고 하였소.
미향 소녀는 그저..... 아버님의 영을 받들뿐이옵니다.
궁예 그러면 되었소. 이제 나는 그대를 보살이라 부를 것이오. 부처님 모시는 공부를 하도록 하시오.
미향 예...?
궁예 부처님의 세계는 끝없이 아름 답고 평화로운 곳입니다. 내가 그대를 그곳으로 인도할 것이오. 자, 보살. 팔을 내시오.
미향 어인...... 말씀이신지...?
궁예 부처님의 제자가 되려면 팔에 연비를 해야하오. 자 어서....
미향 ......(두려움)
궁예 연비란 나를 태우는 의식이오. 번뇌와 망상을 태우고 결국은 미련한 자신을 다 태워버리는 의식이오. 팔을 내시오.
미향은 더욱 두려운 듯
궁예를 본다.
궁예는 표정이 없다.
아니, 차가움 그것이다.
궁예 (재촉하듯) 어서...어서요.
미향은 점점 더 공포스럽게 변한다.
궁예가 차가운 미소를 지으며 그런 미향을 보며 손을
잡는다. 더욱 크게 떠지는 미향의 공포어린 눈에서...
씬 20 인서트
(양길의 성 외경, 아침)
씬 21 동 성안 어느 곳
봄풍경이 물씬 보여온다. 신훤과 원회들이 건물 한쪽에서 성안 거리를 굽어보고 있다.
백성들의 행보나 건물들이나 그리고 지나치는 군사들의 움직임은 질서가 있어 보인다. 평온해 보인다는 것이다.
원회 여긴 죽주와는 달라.
성안의 백성들이나 군사들이나 모두 질서가 있어보이질 않나?
신훤 (끄덕이며) 그렇구먼
원회 양길 장군은 그런대로 백성들 에게 인심을 얻고 있어. 우리가 받들었던 기훤이와는 달라.
신훤 그러니까 이만한 군사들과 영토를 얻었겠지.
원회 우리 주군께서는 이런 일들을 미리 다 아시고 스스로 몸을 굽혀 오신게야. 죽주에서 이정도의 기반을 이루려면 너무도 많은 세월이 필요해.
신훤 그렇구먼 이제서야 알 것 같네. 큰 기업을 이루시려면 결국은 이들을 이용할 수 밖에.... 그래야 황제가 되실게 아닌가?
원회 쉬이... 누가 들으면 어쩌려고 그러는가?
씬 22 궁예의 처소
궁예가 참선에 들어있다. 미향은 지난 밤의 모습
그대로 앉은 채 궁예를
보고 있다.
밖에서는 새소리들이 들려온다. 미향이 낮은 한숨을 내쉰다. 얼마의 시간이 흐른 뒤 궁예가 눈을 뜨고 미향을 돌아본다.
궁예 잘 주무셨소?
미향 ......
궁예 날이 밝았구려.. 아침이란 참으로 좋은 것이지요. 하루 중 가장 정신이 맑고 청정한 시간들이기 때문이오. 그대도 참선하는 것을
배워보시오.
미향 ......
궁예 참선이란, 부처님께로 가는 가장 가까운 길이오. 선정에 들어서면 미지속에 갇혀있던 나를 보게 됩니다. 나를 찾으면 상대가 보이고 상대가 보이면 세상이 보입니다. 세상을 보게 되면 나도 부처가 되지요. 부처 말이요.
미향 ....
궁예 석남사로 가게 되면 그대의 모든 것이 변하게 될 것이오.
미향 (공포같은) 무...무엇이...말이옵니까?
궁예 아수라장 같은 이 난세속에서 부처의 세계를 보게 될 것이오. 내가 가르쳐 드리리다.
미륵의 세계를 말이오.
미향 .....?
그때 밖에서 소리가 들려
온다.
시녀 (E) 아뢰옵니다. 조반상 대령이옵니다.
궁예 들이거라.
문이 열리고 미향의 시녀가 하녀들과 함께 진수성찬의 아침상을 들여온다.
보고있던 궁예가 정색을 한다. 상이 막 놓여지는데....
궁예 이것이 무엇인가?
시녀 조반상이옵니다. 장군님.
궁예 물리거라.
시녀 예?
궁예 불제자들은 아침 공양을 죽으로 대신하느니라.
모두들 ....?
궁예 죽을 먹음으로써 새벽의 맑은 정신을 그대로 유지하는 것이야. 밥을 배불리 먹으면 총기가 흐려지고 나태해지느니라.
사람이 나태해지면 게으르게 되고, 결국은 부질없는 생각이 찾아들게 되어있지.
미향 ....(질려서 본다)
궁예 이것을 내어가고 간장종지와 죽 두 그릇을 가져오너라.
시녀들은 어쩔줄 모르고
결국은 미향의 눈치를 본다. 미향은 그냥 눈을 내려감고 만다. 궁예는 미소지으며 다시 참선으로 들어간다. 그 모습을 보는 미향의
표정에서..
씬 23 성안 양길의 처소 밖
산책 중인 듯 양길이 화원의 꽃들을 보고 있다.
저 만큼에서 복사귀가 들어오고 있다.
예를 올리며 옆에와 선다.
복사귀 편안히 주무셨사옵니까?
양길 어서 오게. 날씨 한 번 화창 하구만...안으로 가서 차나 한잔 하세.
복사귀 오면서 들으니 오후참에 제장들을 모두 모이라 하셨다 들었사옵니다.
양길 그렇게 했지.
복사귀 무슨 일이 있사옵니까?
양길 들어가서 얘기하세. 허어, 좋은 아침이야.
복사귀, 무언가 의아해서 그런 양길의 뒤를 따라
들어간다.
씬 24 양길의 처소
차를 마시다 말고 복사귀가 의아해서 묻는다.
복사귀 대장군, 전투를 중지하다니요?
양길 그렇게 할 참일세.
이것은 궁예 장군의 생각이며 나의 뜻과도 같아. 우리는 오랜기간 한 번도 쉬질 못했네.
복사귀 무작정 군사를 쉬게하는 것은 아니실터이고....
양길 물론이지. 우리는 이 나라의 한 복판에 있어. 앞뒤로 적을 가지고 있는 좋지않은 상황이지. 하지만 옆으로는 성보다도 더 단단하고 높은 백두대간이 우리를 막아주고 있어서 그동안 안심 하고 우리의 영지를 넓혀왔네. 앞으로는 그렇게 되지가 않아.
복사귀 ...그야 그렇겠사옵니다만은....
양길 앞일을 대비하자면 바로 그 동쪽을 보아야 할걸세.
복사귀 동쪽이라면 명주를 말씀하시는 것이옵니까?
양길 그렇다네.
복사귀 명주는 큰 성이옵니다.
대군이 버티고 있을뿐 아니라 그곳으로 가는 길도 험하기가 그지 없사옵니다. 그곳의 성주 김순식이는.....
양길 아아..알고 있네. 그러니까 허를 찌르자는 것이지.
복사귀 .....
씬 25 인서트
발해와 신라 9주가 그려진 지도가 수파된다.
그중 카메라는 신라 전체도를 보여주면서 서서히 하서주와 수약주의 경계를 긋고 있는 백두대간의 경계선을 보여준다. 그리고 해설을 따라 화살표가 흐른다.
해설 백두대간, 우리나라 땅을 동서로 크게 갈라놓은 산줄기를 이르는 말이다. 이 산맥은 백두산을 시작으로 해서 동쪽 해안선을 끼고 밑으로 흐르다가 태백산 부근에 이르러 서쪽으로 기울어지며 남쪽 내륙의 지리산까지 이르는 거대한 산줄기를 말한다. 지금의 강릉인 명주가 속해 있는 하서주는 강원도 일대를 말하는 것으로서 그 백두대간의 동쪽에 길게 위치해 있었다.
그 때문에 이 지역은 험한 산세를 경계 삼아서 지금의 난세에서도 비교적 평온을 유지하고 있었다. 양길은 궁궁예의 말을 듣고 그곳을 탐내기 시작한 것이다.
씬 26 다시 양길의 처소
양길 동쪽이야, 명주를 우리 손에 넣는 것이야. 저들은 겉으로는 편안 한것 같지만 사실은 고립 되어 있어.
복사귀 대장군, 그토록 궁예를 신임 하시는 것이옵니까?
양길 (한참 보다가) 얼마나 영특한 인물인가? 우리가 생각지 못한 것을 궁예는 단숨에 지적해 주었어.
복사귀 험하고 높은 그 대간을 누가 군사를 끌고 넘을 것이옵니까?
양길 물론 이 생각을 해낸 궁예가 가야겠지..대책없이 말을 꺼냇 겠는가?
복사귀 대장군께서는 그 자를 얼마나 아시옵니까?
양길 자네가 의심하는 것은 당연하이, 실은 나도 그러하니까..
복사귀 예?
양길 하지만 해볼만한 가치가 있지 않은가? 그러니까 군사를 정비 하자는 것이야.
복사귀 .....
양길 궁예는 혼자의 힘으로 일어나 죽주의 기훤을 무너뜨리고 장군이 된 자일세. 명주의 김순식이가 강하다 해도 궁예라면 해볼만한 일이 아닌가?
복사귀 ....
양길 궁예를 진정한 우리 사람으로 만들어야 하네. 일단 석남사로 보내서 한동안 두고 지켜보세나. 다른 생각이 있는 것인지 정말로 이 양길이에게 충성을 하는 것 인지... 은부를 딸려 보내면 어떻겠는가?
복사귀 .........?
씬 27 종간의 처소 밖
신훤들과 종간이 마주해 있다.
종간은 마치 구경하듯 밖의 거리들을 보고 있다.
그 옆에 앉아있던 신훤이 중얼거린다.
신훤 주군께서 신혼재미가 대단하신 모양입니다. 아직까지도 기척이 없으십니다.
원회 그러실 분이라면 얼마나 좋겠나? 주군께서 여인 보기를 마치 더러운 오물보듯 하시니 우리도 입장이 얼마나 난처한가?
종간 허허허, 난처하다니...
원회 두 분이 다 똑같습니다. 우리는 막 살아온 놈들입니다. 하루도 계집이 없으면 살 재미가 없는 놈들이라구요.
종간, 재밌다는 듯 웃는데 저만큼에서 은부가 다가온다. 그들 모두 일어나 맞는다.
은부 여기들 계셨습니다그려.
종간 어서오시지요.
은부 궁예장군께선 우리 대장군의 사위가 되셨는데 여기서 무엇들 하십니까? 잔칫술이라도 한잔씩 하시지 않고...
종간 그러게 말입니다. 허허허... 어인 걸음이신지..
은부 이제 저도 여러분과 한솥밥을 먹게 생겼소이다.
종간 그건 또 무슨 말씀이신지..
은부 이제 곧 궁예장군은 석남사로 가시게 될겝니다. 이 사람이 함께 따라가게 되있지요.
원회 석남사라니요?
은부 치악산 남쪽에 있는 대단히 큰절이올시다. 지금은 절이라기 보다도 가끔씩 군사들 훈련장으로 쓰고 있지요. 제법 넓은 땅이올시다.
종간 .....?
은부 그곳에서 한동안 머무시면서 고을 백성들도 다스리고 또 군사들도 조련하시게 될 겁니다.
신훤 (정색을 하며) 아니, 그렇다면 우리를 그런 오지로 쫓아내겠다는 것이 아닙니까? 우리 궁예장군을 어찌 보시길래....?
신훤처럼 원회도 불쾌한 표정이다.
종간은 담담히 은부를 본다.
은부 (아무렇지 않은 듯) 그럼, 뭐 크게 기대라도 하셨소이까?
신훤 뭐요?
은부 종간 부장이라고 하셨던가요?
종간 예.
은부 허허허, 세상이 그렇게 어리숙한게 아닙니다.
모두들 ....(긴장해서)....?
은부 양길대장군께서는 그대들을 얼마쯤 믿어줄까 고민하고 계시지요. 궁예장군이 대체 진심으로 온 것인가 아니면 영토를 도둑질하러 온 자인가 그것을 두고 보시겠다 이겁니다.
신훤 아니, 이보시오.
종간 (그런 신훤을 만류하며)
허면 은부장께선 어찌 보십니까?
은부 그걸 몰라서 묻소? 나는 그대들을 도둑으로 봅니다.
모두들 ........?
은부 그대들이 이곳으로 온 것은 훗날을 도모하자 생각한 것이지요. 어떻소이가? 내 말이 틀렸소이까?
종간 (잠시 그런 은부를 보다가 웃는다) 하하하하....이 성에는 모두가 의심병 환자들만 있나보구료. 그래서야 어찌 큰 일을 이루겠소이까?
은부 핫하하하하... 그렇게 어물쩡 넘어가지는 못할게요. 이 은부와 복사귀가 있는 한 말이요.
종간 .........?
은부 나는 그대들이 처음 왔을 때 우리 대장군께 말씀드리려 했소이다. 만나는 즉시 목을 쳐버리라구요. 이들은 분명 큰 후환이 된다 하고 말입니다.
모두들 .........(긴장하고).?
은부 하지만 대장군께서는 이사람의 의견을 듣지 않으셨소이다. 욕심때문이지요.
종간 ....
은부 결국은 저 석남사 구석으로 보내서 천천히 관찰을 해보자 하는 것이 우리 대장군의 결론입니다. 버리기는 아깝고 안심하기는 이르고....그런 사람이 바로 궁예장군 아닙니까?
종간 오해요. 그렇다면 따님가지 주셨겠소이까?
은부 대장군은 사위분만 세분이십니다. 다 이런 식으로 맺어진 것이지요. 생사를 가늠하는 전란 속에서 딸이란 하나의 선물 같은 것에 불과 하오. 궁예장군의 예도 그와 같소이다.
종간 허허허...알겠소이다. 결국은 은부장께서 우리를 감시하게 되겠군요?
은부 핫하하하....준비들 하시구려. 곧 떠나야 할 테니까요. 석남사, 참 좋은 곳입니다. 땅도 넓고 잘 보면 요지 중의 요지지요.
은부는 껄걸 웃으며 다시 되돌아간다.
세사람은 뻥해서 그런 은부의 뒷모습을 본다.
특히나 종간은 뭔가 생각이 깊다.
신훤 허....이거야...꼼작없이 유배를 가는 신세가 아닙니까?
종간 준비들 하십시다. 곧 주군께서 오실 터이니......
씬 28 길
궁예들이 가고 있다.
호위 군사들이 앞을 섰고 그 뒤로 신훤과 원회가 궁에와 미향일행을 호위해 간다.
그리고 그들 뒤로 종간과 은부가 가고 있다.
얼마쯤 가다가 종간이 정중히 말한다.
종간 도와주셔서 고맙소이다.
은부 .........?
종간 우리가 떠나기 전 성 안에서 은부장이 한 말씀은 우리를 도우려 한것인줄 알고 있소이다.
은부 헛허허허허.....이제서야 인사를 받는구료.
종간 왜 우리에게 그런 것들을 일러준겝니까?
은부 양길장군은 그릇이 작습니다. 겉으로는 호걸인체 하지만 어리석고 욕심이 많으며 의심으로 뭉쳐 있는 사람입니다.
종간 ...........?
은부 그동안 그 욕심과 의심병 때문에 많은 일들을 그르쳤어요.
종간 .....?
은부 이번 일도 그래요. 나 같으면 궁예장군을 석남사로 보내지 않습니다. 석남사는 우리의 영지중 가장 변방이면서 동쪽으로 갈 수 있는 길목에 있습니다. 말하자면 한동안 지켜보다가 의심이 풀리면 동쪽을 공략하게 하자는 것입니다. 동쪽이라....(갑자기 미친 듯 웃는다)
종간 .....아니. 왜그리 웃으시오?
은부 그대들은 양길의 의심을 충분히 벗어날 겝니다. 그리고 동쪽으로 가겠지요. 그 미지의 땅으로 말이오....그리고 당신들은 돌아오지 않을 겝니다.
종간은 꿈틀한다.
은부는 웃음을 거두며 날카롭게 종간을 본다.
은부 그래서 내가 쫓아온 겝니다. 나도 그 땅을 구경하려고 말이오.
종간 (미소지으며) 고맙소이다. 참으로 든든한 동지를 하나 얻었구료. 이건 우리 주군의 큰 복이외다.
은부 궁예장군은 앞을 볼 줄 아는 사람이요. 그래서 이 은부는 말머리를 돌린 것이외다.
종간 참으로 잘 보셨소이다. 저분은 미륵이십니다. 세상을 구원하실 분이지요.
은부 알고 있습니다. 아무나 영웅이 될 수는 없습니다. 양길은 자격이 없어요. (사이) 허허허허, 이제서야 참다운 난세의 주역들이 서서히 제 모습을 드러내는가 봅니다.
은부는 아무렇지 않은 듯 그렇게 중얼거린다.
종간은 여전히 미소 짖고 있다.
그리고 고개를 끄덕인다. 행렬은 그렇게 멀어져가고..
씬 29 무진주 성 외경
씬 30 동 성안 내아
왕성의 모습은 아니지만 옛 관아 건물들 사이로 제법 품격을 갖춘 관리들과 장수들 그리고 궁녀들이 오가고 있다.
그 일각으로 옥이가 궁녀들과 함께 황후전 쪽으로 가고 있다.
씬 31 동 황후전 앞
근위무사들이 서 있다. 그들은 철기군들이다. 김총이 주변을 경계하고 있다. 옥이들이 다가오면은 김총이 끄덕이며 군사들에게 눈짓을 한다.
옥이가 그 황후전 앞으로 가면..
씬 32 동 황후전 안
옛 태수가 쓰던 내아이지만 상당부분 황후의 방처럼 꾸며져 있다.
두 아들(신검, 양검)과 갓난아기가 보인다.
박씨와 견훤이 마주앉아 있다. 견훤은 서책들과 옛 고지도들을 보고있는데, 밖에서 옥이의 소리가 들려온다.
옥이 (E) 페하, 약탕 대령이옵니다.
박씨 들이거라.
옥이가 약탕기를 들여와 앞에 놓고 물러간다.
박씨가 약탕기의 뚜껑을 열고 견훤에게 밀어준다.
박씨 폐하, 약을 드시오소서.
견훤 허허, 약은 무슨.. 나는 아직 기운이 멀쩡하오. 그동안 이곳에만 머물러 있었더니 오히려 너무 비둔해지는 것 같아. 역시 사내란 말을 타고 전장터를 달려야해.
그러면서 견훤은 약을 마신다. 그리고 다시 지도를 보며 말한다.
견훤 보시오. 황후, 우리의 군사들이 하루가 다르게 우리의 영지를 넓혀가고 있어요. 가는 곳마다 철기군의 명성이 하늘을 찌르고 있어요. 무적의 철기군, 이 견훤이의 철기군이 말이요. 하하하하...
박씨 하지만 폐하.
견훤 왜요?
박씨 이미 신첩의 자식이 셋이 되었사옵니다.
견훤 .....?
박씨 폐하께서는 대왕이 되셨지만 여전히 아버님은 상주에 머물러 계십니다. 부자 분께서 언제까지 서로 인연을 끊고 사실 것입니까?
견훤 (인상 찌푸리며) 아버님과 나는 맞지가 않아요.
박씨 백성들이 뭐라고 하겠사옵니까? 서로가 등을 돌리고 합치지 못한다면 그야말로 볼썽 사나운 것이 아니겠사옵니까?
견훤 (한숨을 지으며) 아버님은 너무도 급하시오. 도대체 자식의 말을 들으려고 하지 않아요.
박씨 그것은 폐하께서도 똑같으십니다.
견훤 ....
박씨 능애 서방님을 보내시어요. 벌써 보내셨어야 하옵니다.
견훤 그 생각만 하면 답답하오. 천하를 얻을 수는 있어도 아버님 마음만은 어찌 해볼 도리가 없소이다.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지 않소?
박씨 그래도 사람을 보내셔야 하옵니다. 능애 서방님을 보내시오소서.
견훤 (계속 한숨지으며) 한 번 더 생각해 보십시다.
그때 소리가 들려온다.
김총 (E) 폐하, 대전에 능환군사께서 와 계시옵니다.
견훤 알았네. 자, 가봐야 겠소이다. (아이들을 보며) 허허, 우리 왕자들 많이들 컸다. (갓난 아이보며) 이제 우리 공주까지 생겼으니 이 견훤이는 부러울게 없구나.
견훤이 그렇게 나가고 나면 까닭모를 박씨의 한숨에서...
씬 33 동 대전 앞
견훤이 김총들의 호위를 받으며 대전으로 오고 있다. 대전 앞에 기다리고 있던 많은 호족들이 일제히 고개를 숙이며 견훤을 맞는다.
견훤 이들은 무엇인가?
김총 폐하를 알현하러 온 지방고을의 호족들이옵니다.
견훤 국사가 바쁘니 나중에 오라 일러라.
김총 예, 폐하.
견훤은 그렇게 대전 쪽으로 떠나가고 김총이 호족들에게 이른다.
김총 폐하께서는 지금 매우 바쁘시오. 별처에 가 계시면 영을 내리시는 대로 곧 통보를 드리리다. 물러들 가시오.
호족들은 답답한 표정들이고 어떻게든 견훤을 만나려는 모습들이다.
호족1 사흘? 폐하를 뵙지 못했소이다. 꼭 좀 알현케 해주시오.
김총 폐하께서 바쁘시다고 하지않소. 별처로 가 계시오. 자 어서들 가시오.
씬 34 동 대전
능환과 추허조, 수달, 신강과 그 부장 그리고 능애가 함께 해 있다.
김총은 견훤의 뒤에 시립하고 서 있다.
능환 행세께나 하는 여러 고을의 호족들이 연일 폐하를 뵙고자 찾아들고 있사옵니다. 이는
폐하의 덕이 사방천지에 미치고 있음을 말하는 것이옵니다.
견훤 허허, 무슨 말을.... 그건 다 능환군사와 여기 모여있는 제장들의 덕이오.
모두들 망극하옵니다. 폐하.
추허조 우리의 철기군은 이제 수만에 이르는 강병으로 컸사옵니다. 이제는 이 여세를 몰아 청주와 완산주를 공격해야 할 것이옵니다.
견훤 추장군은 언제나 성급해. 서두를 필요야 없지 않은가?
신강 그렇사옵니다. 폐하께오서는 이미 난공불락의 성이었던 이 무진주를 점령하셨고 인근 고을들을 접수하고 계시옵니다. 지금으로써는 피를 흘리며 땅을 넓히기보다는 내실을 다지는 것이 시급한 때이옵니다.
견훤 .....
능환 신강장군이 좋은 진언을 올렸사옵니다. 지금은 국가의 체계를 제대로 갖추는 것이 시급하옵니다. 그것이 대왕의 위엄을 더욱 빛나게 할 것이옵니다.
견훤 그래요. 그럴때가 되었지. 옳은 말이오.
능환 뿐만 아니라, 나라의 천년대계를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인재를 널리 구하셔야 하옵니다.
견훤 나도 동감이오만은 허나 그게 어디 쉬워야지.
능환 폐하께서 처음 군사를 일으키신 금성포구는 신라의 중요한 대외 통로 중 하나였사옵니다. 그동안 세상이 어지러워 닫혀있다가 폐하께서 평정하신 후로 다시 그 뱃길이 활발해졌다 하옵니다. 그곳의 태수 종례에게 이르시어 십분 활용토록 하시오소서.
견훤 맞아. 그곳의 중요성은 아무리 말해도 모자라지 당연히 그리해야해.
추허조 폐하, 신이 듣건데 북쪽에서는 양길이라는 자의 세력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하옵니다. 이미 북원과 죽주, 충주 등을 점령하였으니 언젠가는 사벌주로 향할 것이옵니다. 그쪽의 일도 대비를 하셔야 할 줄로 아옵니다.
신강 그건 그러하옵니다. 죽주의 기훤이를 몰아낸 궁예라는 중이 양길의 밑으로 들어갔다 하옵니다. 예삿일이 아니옵니다.
견훤 궁예라.. 그자가 죽주를 차지했다가... 양길의 밑으로 들어가? 궁예가 말인가?
추허조 예,
견훤 허어, 내가 아는 궁예라는 사람은 그럴 위인이 아닌데...양길의 밑으로 갔다?
추허조 양길은 중원에서 일어났기 때문에 결국은 한산주(경기 북부 일원)와 사벌주(충청 경상도 일원)로 향할 것이옵니다. 그렇게 되면 아버님이신 아자개님과 부딪힐 것이옵니다.
눙환 추장군의 말이 일리가 있사옵니다. 당장 시급한 것은 아니오나 대책은 세우셔야 할것이옵니다. 폐하께오서는 양길을 회유하시고 또 사벌주에 계시는 아자개님과도 선을 연결하셔야 할 줄 아옵니다.
견훤 그래요, 그래요. 그렇게 되면 일이 복잡해지지. 더군다나 궁예라는 자가 양길이에게 갔다면 이것은 예삿일이 아니야. 그자는 내가 잘 알아. 절대로 가볍게 봐서는 아니되지. 궁예가 양길이에게 가?
씬 35 석남사 외경
씬 36 동 석남사 궁예의
거소
넓은 거실에 고을 호족들과 승려들과 궁예의 부장들이 모두 모여있다.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궁예 그대들은 잘 들으시오.
모두 예.
궁예 이곳 석남사는 양길 대장군의 영지 중 한 곳이오. 비록 고을은 크지 않으나 이 궁예가 이곳을 잠시 관장하게 되었소이다.
모두 ....
궁예 나 궁예는 그 본분이 승려요, 따라서 승려의 계율을 지킬 것이며 부처님의 법으로 그대들을 다스릴 것이오. 아시겠소?
모두 예.
궁예 백성들은 굶주리고 갈 곳이 없어 유리걸식하고 있소. 부처님의 법에는 모두가 공평하오. 니것과 내것이 없으며 철저히 자신의 것을 갖지 말라는 무소유를 가르치셨소. 이곳의 장자들은 들으시오.
장자들 예.
궁예 모든 장자들은 오늘 부로 자신들의 곳간을 다 열어 그 양식을 굶주린 백성들에게 나누어 주도록 하시오.
장자들은 대답이 없다. 모두 표정이 굳는다.
궁예 왜 대답들이 없소? 내 말을 알아들으시었소?
장자들 예.
궁예 또한 모든 장졸은 직위고하를 막론하고 이 궁예와 더불어 백성들과 함께 농사를 지으며 훈련을 하게 될 것이오. 일하지 않는 자는 먹지 말라 하였소.
모두들 ......
궁예 모든 백성들은 높고 낮음이 없이 우리와 함께 먹고 입으며 또한 병든자는 누구나 무상으로 치료를 받고 또 일한 만큼 분배를 받게 될 것이오. 이것이 미륵부처님의 법이오. 알아들으셨소?
모두들 예.
궁예 미륵부처의 세계에서는 누구나 공평하오. 그것이 바로 이 궁예의 법이오.
차갑다.
궁예의 서릿발 같은 명령과 번뜩이는 외눈 앞에서 모두들 굳어있다.
해설 석남사의 궁예, 궁예는 비로소 이곳에 자리를 잡음으로써 진정한 첫출발의 문을 열었다.
그러나 그것은 서릿발 같은 그의 계율로부터 시작되었다.
그는 무소유와 평등을 주장함으로써 그가 처음 목표를 세웠던 미륵으로서의 길을 가기 시작한 것이다.
< 15회 끝> (03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