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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을 따다줘] 17
1. 씬. 시골 집 앞 (낮)
-16회 연결 상황에서.
정회장 : 빨강아?
빨강 : 할아버지?
강하 : (두 사람 번갈아 보며) 회장님께서 어떻게 빨강씨를?
빨강 : 회.....회장님? (놀라 정회장을 보는)
강하 : (멍한 정회장을 보다가, 빨강에게) 어떻게 빨강씨가 회장님을 아는 거죠?
빨강 : 회, 회장님이세요? 할아버지가? 우리 JK 회장님 이시란 말이죠?
정회장 : 빨강아, 그 얘긴 나중에 천천히 하고 사람부터 만나보자꾸나. (집 쪽으로 걸음을 옮기는데)
빨강 : 정애 아줌마 없어요.
노파 : 아니, 성호 엄마 찾는 사람이 왜 이렇게 많아? 다들 왜 성호 엄마한테 돈이라도 떼었수?
아이고, 그래서 그렇게 갑자기 야반도주를 한 거구만.
정회장 : 없단 말입니까?
노파 : 어젯밤에 짐 싸서, 뭐 짐이라고 할 것도 없더라구요. 아들하고 달랑 가방 하나씩만 챙겨선 뭐에 쫓기는 사람처럼
가더라니까요. 어젯밤에 내가 고구마 먹으라고 들고 찾아오지 않았으면 그것도 모를 뻔 했는데,
근데 다들 돈을 얼마나 떼이신 거유?
정회장 : (비틀하는)
강하 : (정회장 부축하면서) 회장님?
빨강 : (그 모습, 보면서 뭔가 치밀어 오르는 걸 겨우 참고 돌아서서 걸어가려는데)
정회장 : (강하에게 의지한 채로) 빨, 빨강아?
빨강 : (멈칫 걸음이 멈춰지는데)
정회장 : 사람은 찾지 못했지만, 그래도 약속한 돈은 줄 테니 너무 걱정하지 말거라.
빨강 : (그 말에 복받쳐 오르면서, 돌아서서 절규하듯이) 제가 돈 때문에 정애 아줌마를 찾아주려고 이 고생을 한 줄 아세요?
남이가 아픈 것도 모르고 헤매고 다닌 게 다 돈 때문인 거 같으세요? 없이 사는 사람들은 돈이면 사족을 못 쓰는 줄 아시죠?
정회장 : 빨강아?
강하 : .....
빨강 : 난....난요. 할아버지가 불쌍해서..... 넝마나 주우면서 우리 집에서 밥이나 얻어 자시는 할아버지가 불쌍해서
어떻게든 찾아드리고 싶었던 거라구요.
정회장 : 아...안다. 빨강아?
빨강 : 알긴 뭘 아세요? 할아버지가? 제가 할아버지가 우리 회사 회장님이시면 출세 좀 시켜달라고 매달릴까봐 겁나셨어요?
우리 엄마, 아빠하고 인연 있으시니, 오갈 데 없이 된 우리 어떻게 좀 해달라고 애원이라도 할까봐 속이셨냐구요?
정회장 : 그...그런 거 아니다.
빨강 : 평생 모은 3천 만원까지 저한테 주시겠다는 할아버지를 가여워한 제가 바보 천치예요.
그 돈으로 방 얻으면 저 할아버지랑 정애 아줌마랑 다 같이 살려고 그랬단 말이에요.
정회장 : 내 말 좀.....
빨강 : 그렇게 엄청난 부자신 것도 모르고 전.....비 오는 산속으로 우리 남이 업고 헤매다가 우리 남이 병까지 나게 만들었는데.....
됐어요. 이제 정말 있는 사람들 지긋지긋해요. (걸어가는)
정회장 : 빨강아?
2. 씬. 보건소 내 (낮)
-잠든 남이 안고 있는 빨강.
빨강 : (보건의에게 인사하고)
보건의 : (약 봉지 주면서) 유아용 해열제니까 또 열 오르면 먹이세요.
빨강 : 고맙습니다.
3. 씬. 보건소 앞 (낮)
-강하의 차 옆에 서있는 정회장, 강하.
강하 : 그런 인연이셨군요.
정회장 : 빨강이 저 녀석 저럴만해. 내가 다시 만났을 때, 솔직하게 말을 했어야 하는데. 녀석이 예전하고 달라진 게 기특해서
조금 더 지켜보자 그랬던 건데. 배신감이 들겠지. 오갈 데 없는 넝마 할아버지라고, 저희보다 더 딱한 사정이라 생각하고
거둬 먹이고 숨겨주고 그랬던 건데. 왜 배신감이 안 들겠냐? 저 녀석 마음을 어떻게 풀어줘야 하는지....
-빨강, 남이 안고 나오는.
강하 : (빨강 앞에 서며) 타요.
빨강 : (스쳐가려고 하면)
정회장 : 빨강아?
강하 : 회장님도 사정이 있으셔서 그런 거니까 너무 화만 내지 말고 차타고 올라가면서 오해 풀어요.
빨강 : 전 풀 오해 없어요.
강하 : 빨강씨?
빨강 : 회장님?
정회장 : 그, 그래?
빨강 : 넝마 할아버지일 때는 같이 살 수 있었지만, 이젠 아니에요. 전 회장님이나, 원변호사님 같은 분하곤
같이 살아갈 수 없는 못난 인간이니까 따로 살아갈 거예요.
정회장 : 빨강아, 제발 내 말 좀.....
빨강 : (걸어가는)
4. 씬. 고속버스 정류장 (낮)
-빨강, 남이 업고 정류장으로 들어가려고 하는.
강하, 운전하고 그 옆에 정회장.
강하 : (차 문 열면서) 제가 가서 데려오겠습니다.
정회장 : (강하 팔 잡으며) 그냥 두거라.
강하 : .....
정회장 : 저 녀석, 외통수야, 한번 화나면 좀처럼 쉽게 풀지 않아. 화내는 일은 별로 없는 놈이지만, 한번 비딱해지면,
지 엄마, 아빠도 어쩌지 못하고 지켜만 봐야 했던 놈이다. 그래도 저 놈 제 풀에 풀리곤 해.
저 혼자 생각할 시간을 좀 주자꾸나.
5. 씬. 달리는 고속버스 (낮)
-빨강, 잠들어 있는 남이를 다독이면서.
빨강 :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불쌍한 넝마 할아버지 돕는 일이라고 우리 남이까지 생고생을 시켰는데,
누난 왜 이렇게 멍청할까? 남아?
6. 씬. 정회장 집 앞 (낮)
-강하, 정회장, 강하의 차에서 내리는.
정회장 : (비틀하는)
강하 : 오정애씨 행방은 최선을 다해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정회장 : 어떻게, 하룻밤 차이일까. 하루만 더 거기 살았으면 만날 수 있던 아이들인데.
무슨 고생을 얼마나 더 하고 싶어서 그렇게 떠났는지.
강하 : (순간, 스치던 민경의 모습이 떠오르고)
정회장 : 강하야?
강하 : 네. 회장님.
정회장 : 꼭 좀 찾아다오.
강하 : 그러겠습니다.
정회장 : 그리고 우리 빨강이, 그 아이도 내 친손주나 다름없는 아이다. 빨강이 동생들도 나한텐 귀한 손주놈들이야.
정 붙일 곳 없어서 드나들었지만, 그 애들이 없었으면, 나 진즉에 세상 떴을지도 모른다.
강하 : 제가 잘 타일러보겠습니다.
정회장 : 그 마음만 먹지 않았어도....
강하 : (보면)
정회장 : 진세윤이라고 내가 예전에 너와 함께 이루고 싶은 꿈이 있다고 하지 않든?
강하 : 네.
정회장 : 회사를 처분하고 그 사람과 국내 최대의 무료 병원을 설립하려고 했었다.
강하 : .....
정회장 : 그 사람의 자식들이다. 빨강이 남매.
강하 : (놀라고)
정회장 : 내가 쓰러진 사이 교통사고로 그 내외가 갑자기 세상을 뜨고 난 뒤에 니 집으로 들어간 거구.
강하 : .....
정회장 : 너무 내 욕심만 차리다가 오늘 빨강이한테 그런 상처를 준 거 같구나. 빨강이 아버지와 이루고 싶었던 꿈을
내가 빨강이 그 녀석과 이루는 꿈을 꿨다. 그래서 그 녀석이 좀 더 성장하길 기다려보자 했던 건데.....
강하 : .....
정회장 : (강하, 어깨 잡으며) 지금은 그 녀석 내 얼굴도 보기 싫을 테니. 너만 믿으마. 제발 잘 좀 다독여다오.
강하 : 네.
7. 씬. 강하방 (낮)
-파랑, 청소복장으로 강하의 컴퓨터 앞에 앉아있는.
파랑 : (모니터 터치로 게임하며) 와, 진짜 신기하다니까. 어떻게 이런 걸 생각해 냈을까?
-문 벌컥 열리며 주황 들어오는.
주황 : 이 자식이 커서 뭐가 되려구. 청소하라고 올려 보냈더니 게임이나 하고 있고.
파랑 : 청소했는데?
주황 : 먼지가 그대론데 무슨 청소를 해?
파랑 : 봐. (터치로 휴지통 열며) 변호사 아저씨가 휴지통 꽉 채워놔서 깨끗이 비웠단 말야.
주황 : (쥐어박으며) 조용히 해라. 넌 입만 열면 매를 버니까.
8. 씬. 거실 (낮)
-주황, 빨래 개고, 노랑, 초록, 파랑, 청소하고 있는.
주황 : 설렁 설렁들 하지 말고 구석구석 닦아.
-빨강, 남이 안고 들어오는. 아이들 몰려들고.
주황 : 어떻게 된 거야? 누나? 남이까지 업고 무슨 출장을 간 거냐구?
노랑 : 우리가 청소하고 있었어. 번쩍번쩍 하는 거 같지?
빨강 : 니들 다 들어와. (지하방으로 움직이는)
초록 : 공부 안하고 청소하고 있어서 화난 건가?
9. 씬. 지하방 (낮)
-빨강, 들어와서 짐을 챙기는. 아이들 들어오는.
주황 : 누나 뭐해?
빨강 : 니들도 니들 가방 챙겨.
주황 : 누나?
-노랑, 초록, 동시에, 언니 왜 그래?
빨강 : 이 집에 있는 물건은 건드리지 말고, 우리가 들고 왔던 것만 챙겨야 해.
주황 : (빨강 앞에 무릎 꿇고 앉으며) 누나? 왜 그래?
빨강 : 우리 이 집에서 나갈 거니까, 빨랑들 해.
파랑 : 큰 누나 왜 그래?
빨강 : 내 말 안들을 거야?
주황 : 어디로 가겠다고 이래? 우리 갈 데도 없잖아?
빨강 : 누나가 알아서 할 테니까, 짐이나 챙겨.
10. 씬. 거실 (낮)
-빨강, 아이들 가방 하나씩 들고 나오는. 강하, 현관으로 들어오는.
강하 : (짐 들고 있는 아이들 보고 놀라는)
빨강 : 인사들 해. (강하에게) 그동안 고마웠습니다. 안녕히 계세요.
-아이들 어리둥절한 느낌으로 어쩔 줄 모르고.
빨강 : 빨리 인사들 안하고 뭐해?
강하 : 왜 이럽니까? 진빨강씨?
빨강 : 인사들 안할 거야?
-아이들 하는 수 없이, 고개만 숙여서 인사하는.
파랑 : (강하 뒤로 숨으면서) 누나, 우리 여기서 살자. 난 가기 싫어.
빨강 : 너 이리 안 와? (파랑이 잡으며 때리는)
강하 : (톤 높여서) 정말 왜 이럽니까? 진빨강씨? 가긴 어딜 가겠다고 이러냐구요?
빨강 : 상관 하지 마세요. 어디로 가든 제가 알아서 할 테니까.
강하 : 진빨강씨?
빨강 : 다들 나와.
강하 : (남이 뺏어서 주황에게 주고, 빨강의 팔을 잡고 식당으로 움직이는)
빨강 : 왜 이러세요? 놓으세요. 놓으시라구요.
11. 씬. 식당 (낮)
-강하, 빨강의 팔을 잡아끌고 들어오는.
빨강 : 왜 이러시는데요?
강하 : (빨강의 팔을 놓는) 정말 이렇게까지 해야겠습니까? 회장님께도 그럴만한 사정이 있었다는 생각은 못합니까?
순간적으로 분하고, 억울하고, 그래요, 배신감도 느낄 수 있을 거란 건 압니다. 하지만, 이렇게 무작정
집부터 나가고 보자는 생각은 하지 말아야죠. 진빨강씨 혼자 몸입니까? 애들이 있잖아요? 애들이?
애들을 데리고 지금 어디로 가겠다고 이러는 겁니까? 제발 이성적으로 생각을 해요, 이성적으로. 감정만 앞세우지 말고.
빨강 : 난 똑똑하지 못해서 이성적으로 생각하는 거 못해요. 그렇게 똑똑한 인간이었으면 5년이나 변호사님 따라 다니면서
허송세월 했겠어요?
강하 : 그럼 지금부터라도 이성적으로 좀 생각을 해요. 집부터 나가고 보자는 치졸한 생각 말고.
빨강 : (복받치면서) 당신 때문에 우리 엄마, 아빠가 돌아가셨어요.
강하 : (굳어지는)
빨강 : (감정이 밀려올라오면서) 당신이 백마 탄 왕자님인 줄 알고, 있으나마나 미스진을 황태자비로 만들어줄 인간 인 줄 알고,
잘 보이려고 가정부로까지 들어오겠다고 손을 번쩍 들었어. 남이가 아픈데도 당신한테 조금이라도 잘 보이려고
파마 한답시고 집엘 못가서, 아픈 남이가 걱정 되서 엄마, 아빠가 급하게 집으로 오다가....
강하 : (안타깝지만 어떻게 해줄 수가 없는)
빨강 : 진작에, 정재영 실장님하고 결혼할 거다 그래주면 좋았잖아? 그랬으면 헛꿈 안 꾸고 정신 차리고 살았을 텐데.
지긋 지긋해서 더는 이 집에 못 있겠어. 이 집에 있으면 헛꿈 꾸고 살았던 내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져서 살고 싶지 않다구.
(돌아서서 나가는)
강하 : (멍하니 서있는)
빨강E : 뭐하니? 빨리들 안 따라 나오구.
-아이들. 누나, 언니 하고. 매달리는 소리.
빨강E : 어서들 나오라니까.
강하 : ......
12. 씬. 강하의 방 (낮)
-강하, 멍한 표정으로 들어와서 주먹으로 책상을 치는.
강하 : 아무 것도 해줄 수 없으면서 잡으려고 하지 마. 원강하. 그냥 가게 둬. (주먹으로 책상을 내리치며) 그냥 가게 두란 말이야.
13. 씬. 길 (낮)
-빨강, 화가 나서 남이 안고, 걸어가고, 아이들 울면서 따라가는.
빨강 : (멈춰서고, 핸드폰 꺼내 번호 누르는) 은말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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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씬. 길 (낮)
-빨강, 동생들 서있고, 은말, 진주 달려오는.
은말 : (손에 든 가방들 보면서) 이, 이게 무슨 일이냐?
진주 : 무슨 일이야? 빨강아? 어쩌다 쫓겨난 거야?
노랑 : 우리 쫓겨난 거 아니에요. 언니가 그냥 나왔어요.
파랑 : 변호사 아저씨가 가지 말라고 하는데도 나왔어요, 누나가.
은말 : 이게 다 무슨 말이냐? 쫓겨난 게 아니라, 네 발로 나왔단 말이야? 아니, 왜?
진주 : 무슨 일이 있었던 거니? 빨강아?
빨강 : 은말씨?
은말 : 응?
빨강 : 우리 갈 데 구할 때까지 은말씨 집에 있어도 되지?
은말 : 아니, 그거야....
16. 씬. 옥탑 (낮)
-은말, 앞장서고, 빨강, 진주, 아이들 조심스럽게 올라오는. 진주가 파랑이 든 가방 정도 들어주면서.
은말 : 조용히들 올라와야 해. 주인아줌마가 성격이 별나서 갑자기 식구가 이렇게 늘어난 거 알면 신경질 낼지도 몰라.
17. 씬. 옥탑방 (낮)
-좁은 옥탑방. 행거 하나에 작은 상 하나 정도, 이불 쌓아놓은 게 전부인 살림이 없는 초라한 방.
은말 : 방 꼴이 이렇다. 어서들 들어와, 춥다.
-모두 들어오자 꽉 차는 방.
진주 : 정말 여기서 살 수 있겠어?
빨강 : 은말씨한테 미안해서 그렇지, 우린 괜찮아.
은말 : 나한텐 미안할 거 없지만, 애들이 답답해서 어쩐다니. 내 집은 아니었어도 그래도 원변호사 집은 좀 넓고 좋니.
그런데서 살다가 이런 데서 살려면 애들이 힘들 텐데.
빨강 : 우린 괜찮아. 다들 좋지?
-아이들 시무룩하고.
빨강 : 여기서 마음 편히 살면 되는 거야.
주황 : 우리 변호사님 집에서 마음 편하게 살았잖아.
노랑 : 그래, 언니, 처음에만 그랬지, 요즘은 변호사 아저씨랑 팀장 아저씨랑 태규 오빠랑 다 잘해줬잖아?
파랑 : 나 변호사 아저씨 집에 가서 살고 싶어, 누나.
빨강 : 당분간은 여기서 살아야 하니까 딴 생각들 하지 마.
18. 씬. 거실 (밤)
-준하, 들어오는.
준하 : (둘러보면서) 왜 이렇게 조용하지?
19. 씬. 지하방 (밤)
-조심스럽게 문 열어보는 준하. 비어있다.
20. 씬. 식당 (밤)
-준하, 들어오면, 아무도 없고. 의아한.
21. 씬. 강하의 방 (밤)
-책상 앞에 앉아 눈을 감고 있는 강하. 노크 소리.
강하 : ......
-문 열고 들어오는 준하.
준하 : 형?
강하 : (눈 감은 채로)
준하 : 다들 어디 갔어? 애들이 하나도 안 보이는데?
강하 : (눈을 뜨는)
준하 : 애들 아직 학교에서 안 온 거야? 형 언제 들어왔어? 형 들어왔을 때도 애들 없었어?
강하 : (일어서서 책꽂이에서 책 꺼내며, 무심한 척 가장해서) 다 나갔다.
준하 : 어딜?
강하 : 진빨강씨가 동생들 데리고 나갔어.
준하 : 빨강씨 왔어? 애들 데리고 어디 간다고 안하고 나갔어?
강하 : 짐 챙겨서 나갔다.
준하 : (굳어지면서) 형?
강하 : 이 집이 지긋지긋해서 못살겠다면서 나갔다.
준하 : (다가들어, 강하 어깨 잡으며) 무슨 말이야? 형?
강하 : 그러니까 이제부턴 네가 알아서 해라.
준하 : ......
강하 : 찾아내는 것도 네 몫이고, 찾아낸 뒤에 어떻게 할 건지도 이젠 다 네 몫이다.
준하 :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거칠게 강하 어깨 잡으면서) 빨강씨하고 무슨 일이 있었던 거냐구?
왜 갑자기 빨강씨가 집을 나가냔 말이야?
강하 : 그것도 찾아내서 네가 알아봐라.
준하 : 설마.....
강하 : (보면)
준하 : 흔들어댄 건 아니겠지?
강하 : ......
준하 : 재영이와 결혼할 거면서, 너한테 전혀 마음 없는 건 아니다, 뭐 그런 거 아니냔 말이야?
강하 : 그런 적 없다.
준하 : 근데 왜?
강하 : (톤 높여서) 이젠 다 네 몫이라고 했잖아? 그러니까 다 네가 알아서 해결하란 말이야. 나란 놈은 나설 자격도 없으니까
네가 알아서 하라구, 네가.
준하 : (보다가 나가는)
강하 : (괴로운 심정으로 빼들었던 책을 던져버리는)
22. 씬. 거실 (밤)
-준하, 서성이며 핸드폰을 누르지만, 연결이 되지 않는. 답답해서 어쩔 줄 모르는 심정으로.
23. 씬. 옥탑방 (밤)
-밥하고 찌개, 김치만 있는 밥상에 둘러앉아 밥을 먹고 있는 은말, 빨강, 진주, 아이들. 남이 잠들어 있고.
상이 좁아서 겨우 얼굴만 디밀고 먹는 형편이다.
은말 : 상부터 하나 더 사야겠네.
빨강 : 그건 내가 내일 사올게. 쌀도 사오고.
은말 : 쌀 걱정은 하지 마. 난 촌스러워서 그런가 월급 타면 쌀부터 한 달치 사다 놓는 버릇이 있잖니. 쌀독에 쌀만 그득하면
세상 부러울 게 없고. 쌀 사다 놓은 지 얼마 안됐으니까 걱정하지 마. 그나저나 니들 먹을 반찬이 변변치 않아서 어쩐다니?
-아이들 시무룩하고.
빨강 : 김치, 찌개 있으면 됐지, 뭘 바래? 다들 퍽퍽 퍼 먹어. 복 나가게 밥들 맛있게 안 먹을 거야?
-아이들 억지로 밥 먹는.
빨강 : (속이 상하지만, 억지로 참으면서 밥 퍽퍽 먹는)
24. 씬. 슈퍼 (밤)
-진주, 햄 등 반찬거리 바구니에 담고 있는.
빨강 : (진주 팔 잡으며) 왜 그래?
진주 : 놔봐. 애들 먹을 반찬은 있어야 하잖아.
빨강 : 괜찮다니까. 우리 애들 찌개 하나만 있어도 잘 먹어.
진주 : 좋은 집에 있다가 나와서 애들이 풀이 죽어 있는 게 마음 아파서 못 보겠드라.
그럼 먹을 거라도 제대로 챙겨 먹여야 할 거 아냐?
빨강 : (화가 나서) 그러지 말라구. 그 집에서 살던 거 다 잊어버려야 한단 말이야. (나가버리는)
진주 : (놀라서) 빨강아? 빨강아?
25. 씬. 슈퍼 앞 (밤)
-빨강, 걸어 나오면, 진주 놀라 뛰어 나와 빨강 잡으면서.
진주 : 왜 그러니? 빨강아?
빨강 : (울면서) 그 집에서 살던 기억 다 잊어버려야 하는데, 왜 자꾸 이래?
진주 : 빨강아?
빨강 : (고개를 돌리고) 좋은 방에서 편하게 살던 기억들 이젠 잊어버려야 한단 말이야. 앞으로 힘들게 살아야 하니까.....
진주 : (빨강 잡으면서) 너.....아직도였던 거니?
빨강 : (보는)
진주 : 원변호사한테?
빨강 : 아니야. 그런 거.
진주 : (더 꽉 잡으면서) 그런 거지? 너? 원변호사 때문에 괴로워서 나와 버린 거지?
빨강 : 아니라니까.
진주 : 너 이젠 여자로 안 살거라고 그랬지만, 그게 이 악문다고 되는 일이니? 사람 마음이 그런 거냐구?
그래도 5년이나 오매불망 좋아했던 사람인데? 한 집에 살면서 계속 마음이 갔던 거지?
그거 몰라주는 원변호사가 야속하고 그래서?
빨강 : 그런 거 아니라니까, 왜 이래?
진주 : 차라리, 차라리 빨강아? 고백을 해버려. 나 정말 당신 너무 너무 좋다. 그래버려. 사랑한다, 그러라구.
고백도 못하고 속만 태우니까, 이렇게 힘든 거잖아?
빨강 : 그런 거 아니야. 그 사람에 대한 미련 이젠 없어. 정말 하나도 남아있는 거 없다구.
26. 씬. 지하방 (밤)
-둘러보는 태규.
27. 씬. 준하의 방 (밤)
-준하, 계속 서성이면 전화를 하는. 전원이 꺼져 있어, 메시지 나오는.
준하 : (답답해서 어쩔 줄 모르고)
-태규, 뛰어 들어오는.
태규 : 빨강이랑 애들 다 어디 간 거야?
준하 : .....
태규 : 어디 갔냐구? 남이 보행기도 없단 말이야.
준하 : .....
태규 : 애들 짐도 하나도 없단 말이야.
준하 : .....
태규 : (털썩 주저 앉으며) 나 때문이야, 다 나 때문이야. 내가 실연당했다고 단식 투쟁하고 그러니까 미안해서 가버린 거야.
내 사랑이 부담스러워서.
준하 : .....
태규 : (머리 쥐어뜯으며) 내가 죽일 놈이야. 내가. 이 추운 데 나가게 만든 내가 죽일 놈이야.
준하 : (진짜 답답하다)
28. 씬. 강하의 방 (밤)
-강하, 책상 앞에 앉아있는. 울리는 핸드폰.
강하 : 네, 회장님?
29. 씬. 정회장 서재 (밤)
-정회장, 핸드폰 중.
정회장 : 어떻게 됐냐? 빨강이 좀 달랬냐? 좀 진정이 됐어? 좀 진정이 됐으면 내가 지금 갈까 싶은데.
강하E : 죄송합니다. 회장님.
정회장 : 왜? 아직도 화가 나 있어? 잘 좀 달래보지 않구서. (일어서면서) 안 되겠다, 내가 지금 갈 테니까.
강하E : 빨강씨....나갔습니다, 동생들 데리고.... 죄송합니다.
정회장 : (힘없이 핸드폰을 떨구는)
-아줌마, 차 들고 들어오는.
정회장 : (힘없이 의자에 주저앉으며, 정신을 잃는)
아줌마 : (놀라서) 회장님? 회장님?
30. 씬. 병실 (밤)
-정회장, 누워있고, 아줌마, 옆에서 안절부절하고 있는.
인구, 민경, 재영 뛰어 들어오는.
인구 : 아니, 왜 또 쓰러지신 거예요?
아줌마 : 무슨 걱정이 있으신지 저녁도 안 드시고 서재에만 계셔서 차를 가지고 들어갔더니
힘없이 주저앉으시면서 정신을 잃으셨어요.
인구 : (정회장한테 매달리며) 아버지? 진짜 왜 자꾸 이러세요? 저 아버지가 이러시면 정말 피 말라 죽어요.
31. 씬. 옥탑방 전경 (밤)
32. 씬. 옥탑방 (밤)
-빨강, 아이들, 은말, 비좁게 잠이 들어있는.
빨강 : (작은 신음 소리)
은말 : (잠결에 옆에 누워있는 빨강의 신음 소리에 눈을 뜨는)
빨강 : (식은땀을 흘리며 신음하고 있는)
은말 : (일어나 앉아, 빨강을 조심스럽게 흔들면서) 빨강아? 빨강아? 아니, 얘가 무슨 땀을 이렇게..... 빨강아? 빨강아?
빨강 : (힘없이 눈 뜨고) 왜 은말씨?
은말 : 왜는? 왜 이렇게 식은땀을 흘려? 어디가 얼마나 아픈 거야?
빨강 : 아니야, 은말씨. 어서 주무세요.
은말 : 아니긴. 세상에 열이.....
빨강 : 약 먹고 자는 거니까, 푹 자고 나면 괜찮을 거야.
은말 : 약 먹었어?
빨강 : 응. 감기 기운이 있어서 먹었어, 걱정하지 말고 어서 주무세요.
은말 : (다독이며) 빨강아?
빨강 : 응.
은말 : 없이 사는 사람들은 건강이 재산이다. 아프면 병 키우지 말고, 병원 가서 제대로 치료받고 그래야 해.
병 키워서 나중에 쩔쩔 매지 말고. 제 때 제 때 치료하고 그래야 해. 그게 돈 버는 거야.
빨강 : (힘없이 미소 지으며) 진빨강, 몰라? 깡 하나로 살아가는 인간이잖아. 병 키우지 않을 테니까, 어서 주무셔.
은말 : (옆에 눕는) 하긴 고단도 하겠지. (빨강, 다독이면서) 엄마, 아빠 돌아가시고, 애들하고 아등바등하고 살면서
용케 잘 견딘다 했다. 한번 세게 아플 때도 된 거야. 오죽이나 고단했을까.
빨강 : (고개 돌리고 누우면서 눈물이 맺히는, 입술을 깨무는데, 그 위로)
강하 : 애들을 데리고 지금 어디로 가겠다고 이러는 겁니까? 제발 이성적으로 생각을 해요, 이성적으로. 감정만 앞세우지 말고.
-빨강, 눈을 감는데, 이어지는 회상씬들.
처음에 강하의 집에 들어가서 싸울 때부터. 그동안의 추억들이 쭉 이어지는.
33. 씬. 강하의 방 (밤)
-강하, 괴로운 심정으로 술을 마시고 있는.
34. 씬. 준하의 방 (밤)
-준하, 답답한 심정으로 술을 마시고 있는.
35. 씬. 옥탑방 (밤)
-빨강, 강하와의 기억들이 이어지고.
빨강 : (손으로 입을 가리고 눈물을 흘리는)
-여기까지 음악 이어지면서.
36. 씬. 길 (아침)
-빨강(남이 안고), 은말, 아이들(가방 들고) 파랑 서있는.
빨강 : 학교 가는 길들 알지?
초록 : 알아.
주황 : 애들 학교 지나서 우리 학교니까 애들 들여보내고 내가 학교 갈게.
빨강 : 그래. 어서들 가. 지각하겠다.
-아이들 은말에게 학교 다녀오겠습니다, 하고 가는.
은말 : 공부 시간에 눈 부릅뜨고 선생님 말씀 잘 들어야 해. 학원도 못 가는데, 선생님 말씀까지 띄엄띄엄 들으면 큰일 나.
-아이들, 네, 하면서 걸어가는.
은말 : (빨강에게) 우리도 빨리 가자.
빨강 : 은말씨?
은말 : 응?
빨강 : 나 오늘부터 회사 안 나가.
은말 : 뭐?
빨강 : 나 다른 직장 알아볼 거야.
은말 : 빨강아?
빨강 : 파랑아? 누나랑 가자.
37. 씬. 회사 복도 (아침)
-은말, 진주, 장수 근심스러운 표정으로 서있는.
은말 : 아무리 말을 해도 듣지를 않는다.
장수 : 아니, 빨강씨 요즘 한참 잘 나갔는데 왜 갑자기 회사를 그만 두겠다는 거예요?
은말 : 낸들 그 속을 어떻게 알아. 왜 그러냐고 아무리 캐물어도 입 딱 다물고 한마디도 안하니. 정말 걱정스러워 죽겠다.
어젯밤에 식은땀까지 흘리면서 끙끙 앓던 애가 남이 안고, 파랑이 끌고 일자리 알아본다고 길을 헤매고 다닐 생각을 하니.
-준하, 급하게 다가오는.
준하 : 저기....
38. 씬. 회사 일각 (낮)
-준하, 은말 서있는.
준하 : 알겠습니다, 어딘지 찾아갈 수 있을 거 같습니다.
은말 : 지금 가도 빨강이 못 만나세요.
준하 : (보면)
은말 : 남이랑 파랑이 데리고 일자리 알아본다고 나갔거든요. 이따 퇴근하고 저랑 같이 가보세요.
39. 씬. 설렁탕 집 정도 (낮)
-주인하고 얘기하고 있는 빨강. 방에 남이랑 놀아주며 앉아있는 파랑.
주인 : (도리질을 치면서) 말이 되는 소리를 해요? 아이가 하나도 아니고 둘씩이나 데리고 무슨 일을 하겠다구?
빨강 : 딱 하루만 시켜봐 주세요. 딱 하루만이요.
주인 : 애나 없으면 몰라.
빨강 : 우리 파랑이가 저 방에서 남이는 잘 볼 수 있거든요. 파랑이 그럴 수 있지?
파랑 : (끄덕이는)
주인 : 처지가 딱한 거 같긴 하지만, 영업집에서 애까지 있는 사람을 어떻게 쓰나?
빨강 : 설거지, 서빙 모두 잘 할 자신 있어요. 오늘 하루만 써보시고 마음에 안 드시면 다신 안 올게요. 네? 네?
40. 씬. 설렁탕 집 주방 (낮)
-설거지 하고 있는 빨강.
41. 씬. 방 (낮)
-남이 자고 있고, 파랑이 그 옆에 앉아 남이 다독이고 있는.
주인 들여다보면서.
주인 : 애기는 순한 거 같네. 애기 울리고 그러면 안 된다.
파랑 : 네.
주인 : (가면)
파랑 : (빈 우유병 가방에 넣다가 핸드폰 보는. 핸드폰 꺼내고)
42. 씬. 강하의 사무실 (낮) -뒷부분 삭제
-강하. 일하고 있는데, 울리는 핸드폰.
강하 : (진빨강이라고 뜬 이름을 멍하니 보는, 믿기지 않는 느낌으로 전화 받는) 여...보세요?
파랑E : 아저씨? 저 파랑이예요.
강하 : 아, 그래, 파랑이구나.
파랑E : 아저씨한테 우리 어디 사는지 알려 드리려구요. 놀러오세요. 아저씨 집에서 진짜 가까워요. 버스 타면 한 정거장이에요.
놀러 오실 거죠?
강하 : .....
파랑E : 아저씨? 아저씨? 전화 끊겼나.
강하 : 말해라, 파랑아.
파랑E : 우리 집이 어디냐 하면요.....
강하 : (복잡한 심정으로 듣고 있는)
파랑E : 아시겠죠? 금방 찾으실 수 있겠죠? 꼭 놀러오세요. 아저씨 너무 너무 보고 싶어요. 아저씨도 저 보고 싶으시죠?
강하 : (괴로운 심정으로 들으며 눈을 감는)
43. 씬. 삭제
44. 씬. 옥탑 (밤)
-은말, 준하 올라오는.
은말 : 불 켜진 거 보니 와 있나보네요. 방이 코딱지 만하다고 흉보지 마세요.
준하 : (어색하게 미소 짓는)
45. 씬. 옥탑방 (밤)
-주황, 노랑, 초록 공부하고 있는데, 은말, 문 여는.
은말 : 어이구, 공부들 하고 있었구나, (뒤를 보면서) 들어오세요.
준하 : (들어서는)
-아이들 모두 반색하고 일어서는.
노랑 : (준하의 팔 잡으며) 아저씨?
준하 : 어. 그래.
은말 : 언니는 아직 안 왔어?
46. 씬. 동네 길 (밤)
-빨강, 남이 안고, 파랑과 걸어오는.
빨강 : 오늘 정말 잘했어, 우리 파랑이. 오늘처럼만 남이 봐주면 누나 계속 거기서 일할 수 있어.
파랑 : 누나?
빨강 : 왜?
파랑 : 나 변호사 아저씨 보고 싶어.
빨강 : 잊어버려. 이젠 그 아저씨 생각하지 마. 누나도 그럴 거니까.
파랑 : 자꾸 생각나는데 어떻게 잊어버려?
빨강 : 그냥 이 악물고 이젠 생각 안할 거다 그래.
파랑 : 그래도 생각나면?
빨강 : 딴 생각해. 아니, 그냥 그 노래 불러. 아저씨 생각 날 거 같으면 도깨비 팬티 노래 불러.
파랑 : (도깨비 노래 부르고)
빨강 : (그런 파랑이 애처롭고. 걸어가는데)
-준하, 차 옆에서 기다리고 있는.
빨강 : (보고)
파랑 : (화들짝 좋아서 뛰어가 준하에게 매달리는) 아저씨?
준하 : 어, 우리 파랑이.
파랑 : 여기 어떻게 아셨어요? 변호사 아저씨가 알려주셨어요? 아저씨 혼자 오신 거예요? 변호사 아저씨는요?
준하 : .....아저씨 혼자 왔는데.
파랑 : (실망스럽고)
빨강 : (다가오는) 여긴 어떻게 아시구?
준하 : 지금 그게 중요해요?
-은말, 집에서 나와 다가오는.
은말 : 방에서 기다리시라니까 추운데, (그러다 빨강 보고) 왔네. 팀장님이 아까 아까부터 오셔서 너 기다리셨어.
준하 : 저기요. 저 빨강씨랑 얘기 좀 해야겠는데, 남이랑 파랑이 좀....
은말 : 아, 네. (빨강이에게 남이 뺏어서 안는)
빨강 : 전 할 얘기 없는데요.
은말 : 너 왜 그러니? 너랑 할 말 있어서 여기까지 오신 분한테. 그럼 못써. (남이 안고) 파랑아 들어가자.
파랑 : (은말과 들어가면서) 변호사 아저씨도 꼭 놀라오라고 해주세요.
-은말, 파랑 데리고 집으로 들어가는.
준하 : (빨강 어깨 잡고) 사람이 왜 이럽니까?
빨강 : ......
준하 : 사람이 어딜 가면 간다고 말을 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퇴근해서 와보니까 집에서 나갔다고 하지, 전화는 안 받지.
사람을 어떻게 이렇게 답답하게 만들어요?
빨강 : 그건 죄송해요, 인사라도 하고 나왔어야 하는데.
준하 : 내가 지금 인사 안하고 나갔다고 이러는 거예요?
빨강 : 그동안 고마웠습니다. 팀장님이 많이 도와주셔서 있는 동안 편했어요.
준하 : (어깨 잡고 흔들면서) 진빨강씨?
빨강 : .....
준하 : 귀 틀어막기로 결심이라도 한 거예요?
빨강 : .....
준하 : 그래서 내가 아무리 외쳐도 듣지 않는 거냐구요?
빨강 : 들어가 봐야 해요. 애들 밥도 먹이고.
준하 : 같이 들어가요.
빨강 : (보면)
준하 : (어깨에서 손 내리고) 들어가서 애들 데리고 집으로 가자구요.
빨강 : 안가요.
준하 : 빨강씨?
빨강 : 그 집에 들어간 거 처음부터 억지였어요. 들어가지 말았어야 하는 거예요. 길에서 자는 한이 있어도
그 집엔 들어가지 말았어야 하는 건데.
준하 : 왜요?
빨강 : .....
준하 : 우리 형이 있는 집이라서요?
빨강 : 어차피 나와야 하는 집인데 우리 아이들한테 잠시나마 너무 편하게 사는 방법을 가르친 거 같아서요.
우리하고 어울리지 않는 집인데, 우리 애들 마치 거기가 오래 전부터 우리 집이었던 것처럼 생각해요.
이제라도 그 생각 뜯어고치면서 살게 해줘야 해요. 저희들은 나중에 그런 집에 살 수 있을지 모르지만,
누난 그런 집에 살게 해줄 능력이 없으니까.
준하 : 형, 결혼해서 나갈 거예요.
빨강 : .....
준하 : 그럼 복잡한 생각 안하면서 그냥 살 수 있을 거예요.
빨강 : 그게 저하고 무슨 상관인데요? 변호사님이 결혼하셔서 그 집에서 사시든 말든. 안녕히 가세요. (인사하고 들어가려고 하는)
준하 : 그래서 나온 거잖아요?
빨강 : .....
준하 : 아닙니까?
빨강 : 아니에요.
준하 : 그럼 다행이네요. 오늘 가기 싫다면, 오늘은 여기 있어요. 하지만 나 내일도 모레도 계속 찾아올 겁니다.
빨강씨가 마음 바꿀 때까지.
빨강 : (집으로 들어가는)
준하 : (집을 바라보며 서있는)
47. 씬. 병실 (밤)
-정회장, 눈 감고 누워있고, 민경 옆에 서있는. 인구 전화 중.
인구 : 웅담이든 산삼이든 뭐든 다 구해줘. 미친놈. 내가 먹으려는 게 아니라 우리 아버지 드리려고 그러는 거니까 좋은 걸로 구해.
좋은 걸로. 빨리 구해서 가져와, 알았냐? (전화 끊고, 민경에게) 한약상 하는 동태. 미친놈이 나 회춘하려고 그러냐잖아?
이름이 동태라 그런지 생각하는 게 물고기 수준이야.
민경 : 조용 좀 해요. 아버님 거슬리세요.
-들어오는 재영, 강하.
인구 : 어, 강하도 왔구나.
정회장 : (눈을 뜨는)
재영 : 저희 왔어요, 할아버지.
정회장 : (일어나 앉는)
인구 : 왜 일어나세요?
정회장 : 나 강하랑 할 얘기가 좀 있는데, 나가들 보거라.
인구 : 무슨 강하랑 비밀 얘기 하실 게 있다구. 다 같은 식군데 저희 듣는데서....
정회장 : 나가들 봐.
-인구, 민경, 재영 하는 수 없이 나가고.
정회장 : 강하야?
강하 : 네.
정회장 : 빨강이 어디로 갔는지 정말 모르냐?
강하 : 압니다.
정회장 : (화들짝) 알아냈어?
강하 : 네. 어디 살고 있는지는 압니다.
정회장 : 그럼, 빨강이 좀 데려 오거라. 내가 그 놈한테 무릎이라도 꿇고 용서를 빌어야겠다.
강하 : .....
48. 씬. 옥탑방 (밤)
-은말, 아이들 모두 잠들어 있는. 빨강, 잠들지 못하고 일어나는.
주황 : (눈을 뜨는)
49. 씬. 옥탑 (밤)
-빨강, 멍하니 밤하늘을 올려다보는데. 주황, 나오는.
빨강 : 왜 안자고 나와?
주황 : 누나는?
빨강 : 잠이 안와서. 금방 들어갈 테니까 어서 들어가서 자.
주황 : 누나?
빨강 : 왜?
주황 : 엄마, 아빠 모르셨어.
빨강 : (보면) 뭘?
주황 : 엄마, 아빠 남이 아픈 거 모르셨어. 내가 말 안했어. 남이 때문에 빨리 오시려고 하다가 사고 난 거 아니라구.
빨강 : (울먹해지고)
주황 : 그러니까 누나 때문이라고 생각하지 마. (돌아서서 방으로 들어가는)
빨강 : (주저앉으며, 입을 틀어막고 우는)
50. 씬. 설렁탕 집 (낮)
-빨강, 서빙하고 설거지 하고 바쁘게 일하고 있는. 파랑, 방에서 남이랑 놀고 있는.
파랑 : (핸드폰) 아저씨?
51. 씬. 강하의 사무실 (낮)
강하 : .....
파랑E : 팀장 아저씨는 놀러 오셨는데, 왜 아저씨는 놀러 안 오세요?
강하 : 파랑아?
파랑E : 네?
강하 : 지금 어디 있니?
52. 씬. 설렁탕 집 (낮)
-빨강, 주문 받고 있는.
빨강 : (주방을 향해) 설렁탕 특 두 개요.
-돌아서는데, 문 앞에 서있는 강하.
빨강 : (굳어지는)
강하 : (다가오는)
빨강 : .....
파랑 : (방에서 보고 화들짝 뛰쳐나오며) 아저씨?
강하 : (파랑이 머리 쓰다듬는)
파랑 : 찾기 쉽죠. 저 설명 진짜 잘하죠?
강하 : 그래. 찾기 쉬웠다.
빨강 : 파랑이 너.
강하 : 파랑이한테 뭐라고 하지 말아요. 내가 알려달라고 해서 알려준 거니까.
파랑 : (강하의 뒤로 숨는)
빨강 : 왜 여기까지 찾아오셨는데요?
강하 : 회장님이 쓰러지셨습니다.
빨강 : (놀라고)
강하 : 빨강씨를 찾고 계십니다.
빨강 : .....
53. 씬. 병실 (낮)
-정회장, 침대에 앉아있는. 노크 소리.
정회장 : 네.
-강하, 들어오는.
정회장 : 빨강이는?
강하 : (뒤에 대고) 들어와요.
-빨강, 남이 안고 망설이며 들어서는. 파랑도 따라 들어오고.
파랑 : 할아버지?
정회장 : 어, 우리 파랑이도 왔구나.
파랑 : 할아버지? 어디 아파요? 배요? 머리요?
정회장 : 응. 할아버지가 니들한테 큰 죄를 져서 마음이 많이 아프구나.
빨강 : .....
54. 씬. 병원 복도 (낮)
-강하, 남이 안고, 파랑과 나란히 앉아있는.
파랑 : 그건 말도 안 되는 거죠? 그렇죠?
강하 : .....
파랑 : 생각나는데, 생각 하지 말라고 하는 거 진짜 말도 안 되죠?
강하 : .....
파랑 : 누난 그렇게 된대요. 진짜 이상하죠? 그죠?
강하 : 파랑아?
파랑 : 네?
강하 : 아저씨도 그러려고 한다.
파랑 : 네?
강하 : 아주 많이 생각나는 게 있는데, 생각하지 않으려고 그래.
파랑 : (갸우뚱)
강하 : 이젠 정말 생각하지 말아야 해서, 생각 안하려고 아저씬 술도 많이 마시고 그래.
술 아주 많이 마시고, 아무 생각 없이 자려구.
파랑 : 뭐가 그렇게 생각나는데요?
강하 : 그런 게 있어. 근데 말이다.
파랑 : 네?
강하 : 니 말대로 그건 진짜 말이 안 되는 거야. 생각나는 걸 생각하지 않으려고 하는 건 말도 안 되는 거야.
파랑 : 그죠? 내 말이 맞죠?
강하 : 그런데 그럴 수밖에 없을 때가 있다.
파랑 :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요. 아저씨, 저 쉬 좀 하고 올게요.
강하 : 그래.
파랑 : (뛰어서 화장실로 들어가는)
강하 : (웃고 있는 남이를 보면서) 넌 알아듣니?
남이 : .....
강하 : 그래, 어쩌면.....어쩌면 말이다. 네 누나를 사랑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네 누나처럼 이상한 여자는 처음이거든.
근데 아저씨는 네 누나만큼, 아저씨 동생도 많이 사랑해. 아저씬 준하 아저씨한테 상처를 많이 준 사람이야.
그래서 또 상처를 줄 수가 없어. 그래서 네 누나를 사랑한다고 말 할 수가 없단다.
55. 씬. 병실 (낮)
-정회장, 침대에 앉아있고, 그 앞에 서있는 빨강.
빨강 : (눈물이 글썽한)
정회장 : 그래서 그런 거였다. 네 아버지와 함께 꿨던 꿈을 너와 함께 이룰 수 있지 않을까. 네 녀석이 많이 달라진 거 같아서.
동생들 데리고 씩씩하게 사는 네 녀석 모습을 보면서, 역시 진원장 자식이구나. 그럼 저 녀석과 내가 못 이룬 꿈을
이뤄보자. 그래서 니들이 어렵게 살고 있는 거 뻔히 알면서도 좀 더 지켜보자, 그랬던 거다.
빨강 : (눈물을 흘리는)
정회장 : 그래도 널 속인 건 잘못 했다. 빨강아, 이 못난 할애비를, 제 욕심만 너무 챙긴 이 할애비를 용서해주겠니?
빨강 : ......
정회장 : (침대에서 내려오면서) 내가 무릎이라도 꿇고.....
빨강 : (정회장 잡으며) 편찮으시다면서 무슨 무릎을 꿇겠다고 이러세요? 오버 좀 하지 마세요.
정회장 : (보고, 씩 웃는) 그럼 용서하는 게야?
빨강 : 오버하지 마시라고 했지, 언제 용서 한다고 했어요?
정회장 : 이 녀석아, 그게 그거지.
빨강 : 아, 좀 앉으세요. (침대에 억지로 앉히며) 대 JK 생명 회장님께서 그만 일로 픽픽 쓰러지기나 하시고.
용서고 뭐고 전에 깡이나 좀 먼저 키우세요. 이러셔서 어떻게 원대한 꿈을 이루시겠어요?
정회장 : 또 버럭 댄다.
빨강 : 천성이 그런 걸 어떡해요?
정회장 : 자랑이냐?
빨강 : 지금 뭐세요? 용서 받으시겠다면서 시비 거시는 거세요?
정회장 : 얘는 언제 내가 시비를 걸었다고. 나가서 강하 좀 들어오라고 해라.
56. 씬. 병실 (낮)
-정회장, 침대에, 빨강, 남이 안고 서있고, 그 옆에 강하, 파랑이는 침대에 걸터앉아 정회장 가슴 쓸어주고 있는.
파랑 : 마음이 아프면요, 이게 최고예요.
정회장 : 우리 파랑이가 만져주니까 다 나은 거 같다.
파랑 : 저도 커서 의사 될 거예요. 우리 아빠처럼.
정회장 : 그래, 아주 좋은 생각이구나. 강하야?
강하 : 네.
정회장 : 빨강이가 동생들 하고 살 집을 하나 구해줬으면 싶은데.
빨강 : 아니요, 할아버지.
정회장 : (보고)
강하 : (보고)
빨강 : 그러지 마세요. 말씀은 너무 고마우신데요. 저 갑자기 그렇게 편해지면, 옛날 있으나마나 미스진으로 돌아갈 거예요.
우리 애들한테도 그건 아무 도움이 안 되는 일이구요. 그런 건 로또랑 똑같은 거잖아요?
정회장 : 빨강아?
빨강 : 들어보니까 로또 맞아서 예전보다 형편이 못해진 사람도 많대요. 저랑 우리 애들 그렇게 살고 싶지 않아요.
정회장 : 당장 있을 데도 없으면서.
빨강 : 있을 데 있어요. 그러니까 그런 걱정은 하지 마시구.
정회장 : 네가 나와 같이 큰 꿈을 이루려면 앞으로 공부도 더 해야 하고....
할애비 생각은 네가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대학엘 가서....
빨강 : 저 공부 못했어요.
강하 : (어이가 없고)
파랑 : 우리 누나 진짜 공부 못했대요.
빨강 : 저 공부 머리 없어요.
정회장 : 그건 기회가.....
빨강 : 우리 엄마, 아빠가 저 대학 보내고 싶지 않으셔서 안 보내셨겠어요? 해도 안됐어요, 저.
정회장 : 이 녀석아, 그건 자랑이 아니지.
빨강 : (버럭) 제가 언제 자랑을 했다고 그러세요? 있는 사실을 있는 대로 말씀 드리는 건데.
강하 : 진빨강씨? 공부 머리가 따로 있는 게 아니거든요. 좋은 선생님들께 개인적으로 수업도 받고 그러면.
빨강 : 지금 공부 잘했다고 뻐기시는 거예요?
강하 : (확 하는) 아니, 내가 언제 공부 잘했다고 뻐겼다는 겁니까?
빨강 : 공부 잘해서 변호사 되신 분은 잘 모르는 세계가 있거든요. 해도 안 되는 세계가....
강하 : 그게 지금 자랑입니까?
빨강 : 아니, 할아버지나, 변호사님이나 제가 무슨 자랑을 했다구들 그러세요.
강하 : 공부 못했다고 자랑처럼 떠들고 있지 않습니까? 진빨강씨가 지금?
정회장 : (그런 두 사람을 묘한 눈길로 보는. 강하의 저런 모습은 처음이다)
빨강 : 그러니까 할아버지, 저 괜히 공부 시키려고 그러지 마세요. 저, 좋아요. FC 로 성공해볼게요.
그게 제가 제일 잘할 수 있는 일인 거 같아요.
강하 : 그래서 전국 최하위 했습니까?
빨강 : 저 지난 달엔 꼴찌 면했거든요.
강하 : 그러지 말고 회장님 말씀대로 공부도 하고....
빨강 : 아 싫다니까 왜 그러세요?
-인구, 민경, 재영, 들어오는.
인구 : 아니, 이 아가씨는....
재영 : 진빨강씨가 여긴 웬일이에요?
정회장 : 마침들 왔구나. 빨강아 인사해라. 내 아들 내외고, 손녀딸이다.
빨강 : (재영을 보고 어색하지만, 인사하는)
정회장 : 진세윤이라고 내가 오랫동안 믿고 의지하면서 함께 큰일을 도모했던 사람의 딸이다.
-모두 굳어지고.
정회장 : 내 친손녀나 다름없는 아이니까 앞으로 잘들 지내길 바란다.
57. 씬. 병원 복도 (낮)
-인구, 민경, 재영, 강하, 빨강(남이 안고) 파랑 걸어 나오는.
강하 : 가보겠습니다. (인사하고) 가죠, 진빨강씨.
재영 : 같이 가.
민경 : (재영을 잡으며) 넌 나랑 얘기 좀 해.
재영 : 엄마?
민경 : 가 봐요. 원변호사. 진빨강씨도 잘 가요.
-강하, 빨강, 인사하고, 파랑과 같이 걸어가는.
재영 : (초조하고)
민경 : 여보, 당신은 아버님께 좀 들어가 봐요.
인구 : 이게 어떻게 된 거야? 진세윤의 딸이 왜 갑자기 나타나?
민경 : 아버님이 찾자고 하셨는데, 못 찾으셨겠어요? 어서 아버님께 들어가 봐요.
인구 :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되가는 판인지, 머리가 다 어지러워서. (병실로 들어가는)
민경 : 진세윤의 딸이 우리 회사 FC였단 말이지. 등잔 밑이 어둡다더니.
재영 : .....
민경 : 강하가 찾아냈구.
재영 : (입술을 깨물며 불안한)
민경 : 저 애의 등장이 뭘 말하는지 아니?
재영 : ......
민경 : 할아버님이 친손녀처럼 생각하시겠다는 게 무슨 뜻인 줄 아냐구?
재영 : ......
민경 : 진세윤에게 주시려 했던 걸 저 아이한테 줄 수 있다는 뜻이야.
재영 : 그런 일 없을 거예요.
민경 : 그걸 어떻게 장담해?
재영 : 그럴 재목이 못 되요.
민경 : 네 할아버님이 마음만 먹으시면.....
재영 : (발악하듯) 그런 일 없을 거라구요.
58. 씬. 병실 (낮)
-정회장, 침대에 앉아있고, 인구 그 옆에. 민경, 재영 들어오는데.
인구 : (경악해서) 아버지? 지금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거예요?
정회장 : .....
-민경, 재영, 정회장을 보는데.
인구 : 저 애도 상속인 중에 한사람으로 올리시겠다니 그게 무슨 말씀이냐구요?
정회장 : 들은 그대로다.
인구 :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쟬 왜 상속인으로 하시겠다는 거예요?
정회장 : 말했잖니? 내 친 손녀나 다름없는 아이라구.
-재영, 민경, 굳어지는.
59. 씬. 동네 길 (밤)
-차에서 내리는 준하. 헤드라이트에 눈을 가늘게 뜨고 뒤를 돌아보면. 강하의 차 멈춰 서는.
차에서 내리는 강하, 빨강(남이 안고), 파랑.
준하 : (굳어지는)
강하 : (준하를 보고).....
준하 : (다가서며) 어떻게들 같이 와?
파랑 : 우리 할아버지 만나러 갔었어요.
준하 : 할아버지?
강하 : 회장님과 빨강씨가 아는 사이다. 회장님께서 입원 하셔서 문병하러 갔다 오는 길이구.
준하 : .....
강하 : (차에 타고 떠나는)
빨강 : (그런 강하를 보고 있는)
준하 : (빨강의 표정을 놓치지 않는) 여기서 기다릴 테니까, 들어갔다 나와요. 남이랑, 파랑이 두고.
빨강 : 그냥 가세요.
준하 : 나올 때까지 밤새 기다릴 테니까 들어가요.
빨강 : ......
60. 씬. 동네 길 (밤)
-준하, 차 옆에서 기다리고 있는. 빨강, 나오는.
준하 : (차 문을 열어주는)
빨강 : 그냥 여기서 얘기 하세요.
준하 : 타요.
빨강 : (준하를 보는)
준하 : (단호한 표정으로) 타요.
61. 씬. 야외 장소 (밤)
-준하, 빨강 벤치에 앉아있는.
빨강 : 말씀 하세요.
준하 : 형이 있는 집이 겁나는 게 아니라면 들어와요.
빨강 : (일어서면서) 그 얘기 하실 거면 그냥 갈게요. 전 지금 있는 은말 할머니 집이 훨씬 편해요.
준하 : (빨강의 손을 잡는)
빨강 : (내려다보는)
준하 : 태어나서 처음으로 형 껄 뺏고 싶다는 생각을 합니다.
빨강 : .....
준하 : 단 한번도, 태어나서 단 한 번도 그런 적 없지만. 그래서 늘 내 마음 같은 건 숨기며 살아왔지만,
처음으로 형이 빨강씨를 사랑한다고 해도 이번만은 양보할 수 없다는 생각을 합니다.
빨강 : 갈게요.
준하 : (일어서서 빨강의 어깨를 거칠게 잡으면서) 내가 그 지겨운 짝사랑 걷어치우고 다시 시작한 것처럼
당신도 그래달라고 애원하고 있는 거야, 지금. 내가 애원이라는 걸 하는 거라구.
빨강 : (눈물이 복받치면서) 어떻게 그래요?
준하 : (멍하니 보는)
빨강 : 다 기억하는데....
준하 : .....
빨강 : 재판이 있는 날이면, 엘리베이터 앞에서 두 번 쯤 그냥 엘리베이터를 놓치며 서있는 걸. 밥을 먹을 땐, 꼭 물부터 마시는 걸.
교육실에서 자료를 돌릴 땐 꼭 왼쪽 줄부터 돌리는 걸. 답답할 땐 꼭 바지 주머니에 손을 넣으면서 말을 하는 걸.
그런 걸 다 기억하는데...... 어떻게 그래요?
준하 : (멍하니 보는)
빨강 : (눈물이 흘러내리는)
-그런 두 사람의 모습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