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캔버라(Canberra)’는 1913년에 오스트레일리아의 수도로 명명되어 개발되기 시작한 곳이다. 오스트레일리아의 식민지 정착촌들이 1901년 오스트레일리아 연방을 구성한 후 논란을 거듭한 끝에 원주민이 거주하고 있던 그곳에 수도를 건설하기로 했다. 멜버른과 시드니가 서로 다툰 끝에 그 두 도시의 중간쯤이 되는 이곳을 수도로 정했다. Canberra는 그곳 원주민의 말로 ‘만나는 곳’, 또는 ‘여인의 젖가슴’이란 뜻을 지니고 있다고 한다. 내가 오스트레일리아에 머물고 있던 1988년 당시 수도 건설 75주년을 맞게 된 캔버라는 인구 25만 명의 아담하고 쾌적한 도시가 되었다.(참고: 이로부터 35년이 더 흐른 지금 2023년의 캔버라 인구는 45만 명 수준으로 늘어났다.)
철저하게 계획된 도시인 캔버라는 그동안 자연스러운 모습으로 잘 가꾸어진 덕분에 그렇게 인위적으로 계획된 도시만은 아니라는 느낌이 들 정도로 자연이 살아 숨 쉬는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한편으로 그리 넓지만은 않지만 곧게 뻗은 가지런한 길들을 보면 이 도시가 나름대로 면밀한 설계 하에서 건설된 도시임을 알 수 있다.
이 호젓한 도시의 거리는 일요일과 같은 휴일이나 일과가 끝나는 늦은 오후 시간이 되면 특히 다운타운이 아닌 대부분의 다른 지역에는 사람의 인적은 물론 자동차의 왕래도 뜸해진다. 그래서 간혹 거리를 걷다가 건널목을 건너게 되는 경우가 있으면 건널목을 건너기 전에 곧은 길 양편쪽에서 혹이나 달려오는 자동차가 있는지를 확인하게 된다.
신호등이 없는 건널목에서는 차가 우선 지나간 뒤에야 사람이 지나가는 것으로 당연히 훈련?이 된 나로서는 멀리서 달려오는 차만 보더라도 이를 꽤 오랫동안 기다렸다가 그 차가 지나간 후에야 건널목을 건너가고자 했다. 그런데 국내에서 같았으면 너무도 당연했을 이 자연스러운 룰이 이곳 캔버라에서는 한동안 나에게 작은 혼란을 가져다주었다.
멀리서 달려오던 차는 반드시 건널목에 다다라서는 멈춰선 뒤, 기다리고 있던 나나 또 다른 한 두 사람의 행인을 먼저 건너게 한 뒤 길을 달려가고는 했다. 나 혼자 건널목을 지키고 있는 경우에는 내가 먼저 차에게 지나가라는 손짓을 보내보기도 했지만, 그때마다 먼저 기다리고 있던 내가 먼저 건널목을 건널 수 있게끔 배려를 해주고는 했다. 쌩하니 지나치려니 하고 생각했던 자동차는 열이면 열 모두 횡단보도 앞에 멈춰 서서는 행인들을 먼저 건너게끔 했다. 처음에 몇 차례 나는 미덥지가 않아 멈칫거리며 내가 양보를 하는 제스처를 취하기도 했지만, 그때마다 나에게 차량의 양보가 주어지고는 했다. 이런 그들의 건널목 횡단 문화에 내가 익숙해져서 떳떳하게 건널목을 건너는 데는 적지 않은 시간이 걸렸던 것 같다.
차를 타고 빨리 가는 사람들이 천천히 걸어가는 사람들에게 양보하는 여유를 그들이 가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그들의 그런 행태가 ‘먼저 기다린 사람에게 먼저 기회를 준다’는 아주 초보적인 일상생활의 원칙을 스스로 잘 지켜나가고 있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자동차 생활 문화가 다소 일천한 우리 사회에서는 자동차를 타고 다니는 사람이 걸어 다니거나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사람보다는 경제적 지위나 신분 면에서 한 수 위에 있는 것과도 같은 그릇된 우월 의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적지 않은 것 같다. 자동차를 타는 것보다는 걷는 것이 더 여유 있고 건강에도 좋은 것이라는 생각에 미치지 못하는 사람들이 아직도 많다는 이야기다. 건널목에서 길 건너기를 기다리는 사람이 있건 말건 우선은 자동차가 먼저고 그다음이 사람이라는 식으로 운전하는 모습을 너무도 쉽게 많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 사람들은 ‘인도(人道)의 행인들이 마치 그들의 목표물인 양(As if the pedestrians are their targets)’ 운전을 한다는 어느 외국 기자의 표현은 과장되지만 맞는 느낌의 표현이지 싶다. 돌진하듯 차를 모는 많은 운전자의 성급한 태도에 나 자신을 보호하도록 스스로가 길들어져 있다는 것을 자각하기도 한다.
은행이나 우체국엘 가면 대부분의 곳에는 차례가 올 때까지 기다려달라는 안내판을 보게 된다. ‘Please Wait Here Until Called.’ 그리고 그 안내판이 말해주고 있는 것처럼 몇 명의 사람들이 그 뒤쪽으로 줄을 서서 조용히 차례를 기다리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어떤 때는 먼저 기다리고 있는 이들을 의식하지도 못한 채 창구 앞으로 불쑥 나아갔다가 당황해서는 줄을 서는 경우가 없지 않았던 것이 나의 솔직한 경험이다.
우리의 경우 일반적으로 은행이나 우체국과 같은 공공장소에는 워낙 많은 사람이 기다려야만 하는 때문에 대부분 순번이 적혀있는 번호표를 뽑을 수 있는 보다 현대적인 장치가 설치돼있는 곳이 많다. 줄을 서서 기다리는 것보다는 편안한 곳 아무 데서나 기다릴 수 있기도 하고 해서 한결 더 발전된 시스템이라고 할 수도 있다. 때에 따라서 2, 30명의 줄 뒤에 서서 앞 순서를 기다려야만 하는 때에는 짜증이 나기도 한다.
순서를 기다리고 줄을 서는 그들의 모습을 유심히 바라보면 그 속에는 보이지 않는 엄격한 질서가 있다. 하지만 때에 따라서는 여유 있는 파격이 숨 쉬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자주는 아니지만 여러 사람이 차례를 지켜 기다리고 있는 중에도 그 서열이 너그럽고 참을성 있게 흐트러뜨려 지는 경우가 있다. 장애자이거나 아주 연로한 고객이 있는 경우 직원이 나타나 그 사람을 긴 줄의 맨 앞에 서도록 호의를 베푸는 경우 다른 사람들 모두 이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모두가 쉽게 인정할 수 있는 예외를 적절하게 배려해 줄 수 있는 여유를 지니고 있다.
대수롭지 않은 일일 수도 있지만, 우리의 경우 식당이나 카페에 들어서게 되면 빈자리가 있는 곳으로 다가가 자연스럽게 자리를 정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종업원의 안내를 받지 않고 쉽게 자리를 정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많은 경우는 아니지만 이런 내 습관이 때때로 제지를 받게 되는 경우가 없지 않았다. 얼마간의 시간이 흐른 뒤에는 그런 장소에서도 안내를 받아 자리를 잡는데 곧 익숙해졌지만 이도 일종의 기다림에 대해 서비스를 받게 되는 문화의 한 단편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기다림의 자연스러운 질서가 살아있고 그 질서를 자연스럽게 지켜나가는 여유로운 사회가 우리에게도 곧 오게 되리라고 기대해 본다. (2003. 8. 28.)
첫댓글 나도 새해 2월중 호주여행을 갑니다
순우의 풍부한 해외여행경험 부럽습니다
운전문화가 그 나라의 선진문화의 지표라고 생각됩니다. 우리나라도 이제는 경제부국보다는 문화선진국을 향해 나아가야 하지요. 그에 따라 자연스럽게 배려 예절 여유가 뒤따라올 것으로 생각됩니다.
기다림의 미덕, 양보의 미덕은 선진국의 기본입니다. 아직도 우리나라는 좀 더 기다려야 할 것 같아요. 우측 신호를 넣고 턴하려고 해도 짬을 주지 않고 그냥 들어오는 경우를 요 몇일간 경험했습니다...
순우 덕에 이곳 저곳 가보고 싶은 곳 많이 가네요.
우리는 언제나 자연스럽고 따뜻한 질서 속에서 살 수 있으려는지... 호주, 좋은 곳이로군요.
범죄율도 낮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