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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향 | 대구광역시 달성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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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조 | 서한(徐閈),서진(徐晋) |
주요 집성촌 | 대구광역시 달성군 충북 청원군 경북 포항시 경북 상주시 경북 안동시 경북 영천시 경남 고성군 경남 밀양시 경남 양산시 경남 창녕군 |
주요 인물 | [,서한,서진,서기준, 서영,서균형,서거정,서성,서경우,서침,서변, 서문중,서종태,서명균,서명선,정성왕후,서명응,서매수, 서지수,서호수,서유구,서이수, 서영보,서유신,서기순,서유린,서유방,서유문,서섭,서인원,서인충,서용보, 서당보,서상우,서상교,서정순,서광범, 서재필, 서재창,서병호,서상륜,서경조,서병희,서상봉,서상일,서정희, 서범석,서명원,서희원,서병오,서동균,서동진,서상돈, 서정주,서항석,서갑호,서정귀,서일교,서봉균,서석준,서상철,서종철, 서석재,서돈각,서정길,서종열,서윤홍,서기원,서정상,서병찬,서경석,서인석,정대,의현,서동권, 서청원,서정화,서정신, 서상목,서갑원,서병수,서상기,서영교,서용교,서장은,서범수,서천호,서민석 ,서정호,서훈,서호석 ,서정진,서강석,서완수,서영길 |
인구(2000년) | 429,353명 (17위) |
달성 서씨(達城徐氏)는 대구 달성군을 본관으로 하는 한국의 성씨(姓氏)이다.
성씨제도(姓氏制度)는 원래 왕가(王家)에서만 사용하다가 차츰 귀족들과 백성들에게 퍼진 것이다. 한국의 경우 고조선(古朝鮮) 시대에 왕족에 한하여 성씨를 사용하였다는 이야기가 있으며, 이후 삼국시대(三國時代) 고구려의 주몽이 고씨(高氏), 백제의 온조가 부여씨=여씨(扶餘氏=餘氏), 신라의 혁거세가 박씨(朴氏)를 성씨로 사용했다는 기록이 전한다.[1]
서씨(徐氏)의 성씨 기원에 대해서는 여러 견해가 있다.
전하는 이야기에 따르면, 서씨의 기원은 단군시대(檀君時代) 예국(穢國) 군장(君長) 여수기(餘守己)라는 사람이 9명의 아들을 두었는데, 그들에게 고을을 나누어 다스리게 한즉 선정을 베풀었다 하여, 그 공을 못 잊어 백성들이 "여러 사람이 고마움의 뜻을 표한다" 하여 중인변(衆人邊)을 부쳐 여(余)자를 서(徐)라고 고쳐 사성(賜姓)한 데서 유래하였다고 한다.서국(徐國)는 단군 조선의 제후국이며 동이이다. 고대 중국은 이 서국(徐國)을 서이(徐夷)라 부른다.서언왕의 나라인데, 기원전 1236년부터 기원전 512년까지 존속한 나라였다.서언왕이 동이의 맹주가 되었고 이때 주나라는 스스로 천자국이라고 칭하기에는 부끄러운 존재에 불과하였던 것이 된다.단군 조선 21세 단군 소태(蘇台)와 23대 아홀 단군의 기록에 등장한다. 을유년 기원전 1196년 (또는1236)년 남후 검달(금달,今達)이 청구군(靑邱君)과 구려군(句麗君)과 주개(周愷)라는 곳에서 모여서 몽고리(蒙古里)의 군사와 함께 은나라를 정벌하였고 깊숙히 들어가 회대(淮岱)의 땅을 평정하였다. 제후들이 회대의 땅을 평정, 포고씨(蒲古氏)를 엄국(奄國), 영고씨(盈古氏)를 서국(徐國), 방고씨(邦古氏)를 회(淮)땅에 각각 봉하였다.은나라 쇠퇴하였다.서국(徐國)은 기원전 1236년에 영고씨(寧古氏)를 봉한 나라로 기원전1236년부터 기원전 668년제나라에 합병될 때까지 570년간 존속하였다. 기원전 680년경 초나라 문왕에게 한때 수도를 점령당하여 서산(徐山)으로 수많은 백성들과 피난하였다.우리의 기억 속에 잊혀진 인물 서이족(徐夷族)의 지도자인 서언왕(徐偃王)은 중원 대륙에 진출한 동이족의 마지막 전성기를 구가했던 인물이다. 주목왕이 서이가 두려워 서언왕을 동이세력의 맹주로 인정한 것이며 서국의 제후국이 36개나 된다.[2]
동국문헌비고(東國文獻備考)에 따르면, 기자(箕子)의 40세 손이고 기씨조선(箕氏朝鮮)의 마지막 왕인 애왕(哀王) 기준(箕準)이 위만(衛滿)에게 나라를 빼앗기고 뱃길로 남쪽으로 옮겨, 진(辰) 나라 북쪽 변방인 지금의 경기도 이천(利川) 땅인 서아성(徐阿城) 지방에 자리를 잡음으로써 지명을 따 성씨를 서씨(徐氏)라 하였다고 한다.[3] 한국의 성씨 가운데 기자(箕子)에 뿌리를 두고 있는 성씨는 서씨 이외에도 청주한씨(淸州韓氏)와 태원선우씨(太原鮮于氏) 및 행주기씨(幸州奇氏) 등이 있다.
의자왕의 태자인 부여 융이 당나라로 건너가 살다가 당 고종에게 서(徐)씨 성을 하사받았다는 설이다(만성대동보). 하지만, 최근 부여 융과 손녀 부여태비의 유적이 중국 장안 근처에서 발견되었는데, 성씨를 여전히 부여씨(扶餘氏)로 기록하였다. 따라서 이 설은 신빙성이 낮다. 그렇지만 일부 학계에서는 백제의 왕성인 부여씨(백제에서 성씨를 처음 쓴 근초고왕은 여씨로 기록했고, 이후 무왕 때 부여씨로 개칭했다)가 삼국통일이 되면서 성씨를 부여(扶餘)에서 서(徐)로 바꾸고 숨어서 살았을 가능성이 있다는 주장을 한다. 실제 발해 대조영의 후손인 대(大)씨가 고려로 망명한 뒤 성을 태(太)로 바꾸고 살았던 것, 또 고려의 왕(王)씨가 조선 건립 이후 성을 전(全), 옥(玉) 등으로 변형해서 살았던 사례를 볼 때, 이 주장의 신빙성이 없는 것만은 아니다.
서씨의 도시조(都始祖)는 신라 말기에 아간(阿干)을 지낸 서신일(徐神逸)이다. 서신일(徐神逸)에 관한 재미있는 설화가 전해 내려온다. 그의 처음 조상인 서두라(徐豆羅)는 아성(利川城의 옛이름) 대장군으로 있었고, 서신일(徐神逸) 대에 이르러 산촌(山村)에 살고 있었는데, 하루는 사슴 한 마리가 화살을 맞은 채 사냥꾼에게 쫓겨 집안으로 뛰어 들어오므로 불쌍히 여겨 화살을 빼주고 먹이를 주며 극진히 간호해 준 다음 다시 산으로 놓아주었다. 그날 밤 꿈에 한 백발의 신령이 나타나서 말하기를 "오늘 그대의 집에 왔던 사슴은 나의 자식으로 사냥꾼의 화살을 맞아 죽게 되었는데 다행히 그대의 은덕으로 살게 되었으니 그대의 자손이 세세(世世)로 재상(宰相)을 지내리라"고 했다. 나이 80이 되도록 슬하에 혈육이 없던 그는 그날부터 부인의 몸에 태기가 있어 아들을 낳으니, 그가 바로 정민공(貞敏公) 서필(徐弼)이요, 필의 아들이 유명한 장위공(章威公) 서희(徐熙)이다.이 때문에 서씨 가문은 사슴 고기를 먹지 않는 풍습이 있다.
그의 묘소와 신도비(神道碑)는 경기도 이천시 부발읍 산촌리(효양산)에 있으며 음력 10월 1일에 향사한다. 묘소와 관련 사슴과 관련된 설화가 하나 더 있다. 서신일이 천수를 다하니, 사슴이 나타나 상주(喪主)의 옷자락을 끌었다. 이상히 여긴 상주가 사슴이 이끄는 대로 따라가 보니 어느 양지바른 산기슭에 멈추어 서서 발굽으로 자꾸만 땅을 파헤쳤다. 이것은 필시 산신령의 계시라 생각하고 그 자리에 장사하니 지금 이천시 부발읍 산촌리 마을 뒤의 효양산 산록에 있는 시조 서신일의 묘소가 있는 곳이다. 고려시대 이천 서씨(利川 徐氏)는 인주(인천) 이씨, 해주 최씨,남양 홍씨와 더불어 4대 명문가문으로 꼽힌다. [4]
이천(利川),달성,대구(達城,大丘), 장성(長城), 연산(連山), 평당,봉성(平當,逢城), 남평(南平) 서씨 등이 있다.
[달성 서씨는 고려 군기소윤(軍器少尹) 서한(徐閑)을 시조로 하는 경파(京派)와 고려 판도판서(版圖判書) 서진(徐晋)을 시조로 하는 향파(鄕派)로 나뉘었다. 두 파는 조선 숙종(肅宗) 28년 서기 1702년에 처음으로 족보를 함께 하여 임오보(壬午譜)를 만들었으나 두 파의 의견충돌이 심하여, 결국 영조(英祖) 대에 이르러 서기 1736년 경파(京派)만이 단독 족보를 만들어 대구서씨(大丘徐氏)로 갈라섬으로써 양파가 완전히 족보를 달리하게 되었다.[5] 족보상으로 달성 서씨는 판도판서공(版圖判書公)파라 하고 대구 서씨는 소윤공(少尹公)파라고 갈래지운다. 소윤공파에 약봉파(藥峯派)가 있는데, 그 선대에 5세 실전(失傳)이라는 계대(繼代)의 단절이 있다.조선 3대 명문가의 반열에 올린 사람은 약봉 서성(徐渻)이다.
죽석공 서영보(徐榮輔)의 선대와 후대는 8대를 잇달아 대과에 합격했다. 그중에 두 명은 장원 급제자다. 조선 시대 초유의 일이다. 그의 고조부인 서종태(徐宗泰)가 영의정, 증조부인 서명균(徐命均)이 좌의정, 조부인 서지수(徐志修)가 영의정을 지냈다. 그래서 ‘삼대 정승집’이라는 명예로운 칭호를 받게 된다. 삼대 정승집은 이외에도 청송 심씨의 심덕부, 심온, 심회와, 동래 정씨의 정유길, 정창연, 정태화와 청풍 김씨 김구, 김재로, 김치인을 들 수 있다. 김구의 둘째사위는 서명균(徐命均)이다. 서울 송파구 방이동 몽촌토성 공원 내에 있는 김구의 묘비문 글씨를 쓴 이도 서명균(徐命均)이다.
대구 서씨는 또한 ‘삼대 대제학’ 집으로도 유명하다. 대구 서씨의 서유신(徐有臣), 서영보(徐榮輔), 서기순(徐箕淳)과 광산 김씨의 김만기, 김진규, 김양택과 연안 이씨의 이정구, 이명한, 이일상과 전주 이씨 백강 이경여 집을 들 수 있다. 그런데, 삼대 정승과 대제학이라는 요건을 모두 충족하는 가문은 대구 서씨가 유일하다.
대구 서씨는 조선조에 영의정 7명, 좌의정과 우의정 각각 한명씩 총 9명의 상신(相臣)을 배출하였고 대제학 6명, 왕비 1명으로서 정승의 배출은 전주이씨가 22명으로 가장 많고 동래정씨(東萊鄭氏)가 17명으로 그 다음이며 신안동김씨가 15명, 청송심씨(靑松沈氏)가 13명, 청주한씨(淸州韓氏)가 12명, 여흥민씨 (驪興閔氏)가 12명, 파평윤씨(坡平尹氏)가 11명에 이어 남양홍씨(南陽洪氏)와 같이 제8위이다. 달성서씨의 대표적 인물은 사가정 서거정(四佳亭 徐居正)으로서 세종과 성종에 이르는 6대왕조를 섬긴 신하로서 45년간 6조의 판서와 대제학을 지냈으며, 성리학자로서, 한문학과 천문.지리.의약 등에까지 통달하였으며 경국대전, 동국통감, 대동여지승람,동문선, 동인시화를 편찬하고 향약집성방을 국역하였다. 고려 성리학의 적통인 양촌 권근의 외손자이며 그의 종현손 약봉 서성이 달성서씨 가문을 명문의 반열에 오르게 하였다. 약봉 서성은 율곡 이이와 귀봉 송익필의 문인으로 공조판서와 판중추부사에 올랐으며 서인인 까닦에 인조반정을 계기로 그 일가는 전성기를 맞았다. 네아들 모두 출중하였고 특히 서경우(徐景雨)는 우상(右相)에 올랐으며 선조의 부마가 된 서경주(徐景주)의 가문이 가장 번성하였는데 문벌가로서 널리 알려졌다. 그의 손자 서문유(徐文裕)는 이조판서이고 서문중(徐文重)은 영의정, 문유의 아들 서종옥(徐宗玉)은 이조판서, 서종옥의 아들 서명선(徐命善)은 영의정, 서명응(徐命膺)은 대제학, 명응의 아들은 직제학, 손자 서유구(徐有渠)는 대제학에 올랐으며 병조참판 서문상(徐文尙)의 아들인 서종태(徐宗泰)는 영의정겸 대제학, 그의 두 아들인 서명균(徐命均)은 좌의정, 서명빈(徐命彬)은 이조판서에 올랐으며, 명균의 아들 서지수(徐志修)는 영의정, 지수의 아들인 서유신(徐有臣)은 대제학, 그의 아들 서영보(徐榮輔)도 대제학, 서영보의 아들 서기순(徐箕淳) 또한 대제학에 올라 3세를 이어 문형을 배출하였고, 서경보(徐耕輔)는 이조판서에, 서긍보(徐兢輔)는 참판. 그의 아들 서정순(徐正淳)은 예조판서, 서당보(徐堂輔)는 영의정을 지냈다. 따라서 서종태- 서명균 - 서지수는 3세 상신을 지냈고, 영의정 서지수의 아들 서유신이 대제학에 올라 서유신 - 서영보 - 서기순이 3세로 연이은 대제학을 배출하였다. 서종태로부터 직계 5대 가족이 3세 상신에 3세 문형을 배출한 명문인 것이다.
대구서씨(大丘徐氏)는 서미성(徐彌性) 목사(牧使),서거광(徐居廣) 의금부도사(義禁府都事), 서거정(徐居正) 의정부좌찬성(議政府左贊成), 서팽소(徐彭召) 사헌부장령(司憲府掌令), 서후(徐厚) 대사간(大司諫),서호(徐浩) 의금부사(義禁府事),서고(徐固) 예조참의(禮曹參議),서성(徐渻) 판중추부사(判中樞府事), 서경우(徐景雨) 의정부우의정(議政府右議政),서원리(徐元履) 관찰사(觀察使), 서문중(徐文重) 영의정(領議政), 서광보(徐匡輔) 부사(府使),서병순(徐秉淳) 부사(府使), 서상후(徐相後)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 서형리(徐亨履) 사재감첨정(司宰監僉正), 서유봉(徐有鳳)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 서유복(徐有福)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서헌수(徐獻修)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서유련(徐有鍊) 승정원동부승지(承政院同副承旨),서신수(徐愼修) 부사(府使), 서경보(徐敬輔) 영장(營將), 서병준(徐丙俊) 의금부도사(義禁府都事), 서기순(徐耆淳) 이조참의(吏曹參議), 서상조(徐相祖) 판돈녕부사(判敦寧府事), 서경순(徐經淳) 좌부승지(左副承旨),서상준(徐相駿) 승정원부정(承政院副正), 서상범(徐相範)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 서상하(徐相夏) 의금부도사(義禁府都事), 서연순(徐璉淳)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 서병길(徐丙吉) 의금부도사(義禁府都事), 서상욱(徐相旭)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 서상진(徐相臻) 도사(都事), 서상익(徐相翼)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 서무순(徐戊淳)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 서정악(徐廷岳) 비서원승지(秘書院承旨), 서명순(徐明淳) 돈녕부사(敦寧府事), 서병일(徐丙逸) 도사(都事), 서상건(徐相健) 오위장(五衛將),서화순(徐華淳)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서홍순(徐泓淳) 부호군(副護軍), 서정순(徐貞淳)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 서유건(徐有健) 부사(府使), 서춘보(徐春輔)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서명무(徐命茂) 부사(府使), 서유룡(徐有龍) 어사(禦使, )서치보(徐致輔) 부사(府使), 서유영(徐有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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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徐가가 칠관이있는데 달성이 그하나이고 그중에 달성으로 보계하는자가 둘인데 서울에있어서는 군기소윤 휘 한이요 재향에서는 판도판서달성군 휘 진 으로써 원조를 삼았다 대개 판도공이 이땅에 식읍하였고 네번 전하여 구계선생에 이르러서 선생의 살고 있는터가 국가의 중요한터라 하여 국가에 바치었는데 나라에서 상을주기로 하였으나 이것을사양하고 본읍상환곡을 석당5승식감하게 하다 부민이 그은혜를 감복하여 구암서원에 향사하였다 아 지금으로부터 판도공은 칠백년전이다 세대가멀고 문적의 증거가없어 보책에 다만 고려봉익대부 판도판서 달성군이라고 실렸을뿐이고 그외에는 가고할수없으니 오직 공주만성보에 이르기를 판도판서는 중랑장한의증손이요 검교군기감 愼의손이요 밀직사사 無疾의자 예의판서 진위 이자영의외손이라 하였다 부인은 초계주씨인데 부에는검교장군穉요 조에 소부소감鉉이라하였는데 이것이 한증거가되나 선부노께서 그일을 신중히여겨 감히 상계에 올리지 못하였다 有子3인이니 長엔 달천군 기준인데 구계선생의 증조요 차에 상호군 宥요 子 상주목사 고에이르러 대가 절하였다 끝에 생원 遠은 돈암지 高祖이시다 찬해 가로되 조정에 벼슬을하여 한城의 록을 먹으니 그덕을세워서 사업을 이룬것을 알것이요 후손에게 복을주어 백세토록 번창하니 그근원이 멀고 흐름이 긴것을 알았도다 하늘이 백성을 낳으시고 우리 후인을 돈독게하니 오직달성이 천억년을 이에 징험할지어다(학유공파보 가전 출처 후손 석화문집제13권중에서) 달성 서씨 유허비는 대구 달성공원(達城公園)에 있다. 오늘날 달성공원의 주소는 대한민국 대구광역시 중구 달성동 294번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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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유익하고 귀한 자료 잘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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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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