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들어 6번째 다녀온 신안의 12사도 순례길, 늘 들리는 숙소지만 갈때마다 새롭다. 세월의 때는 묻었지만 엘도라도 리조트의 럭셔리한 잠자리는 누군가의 로망 일 것이다. 꿈결에도 들리는 파도 소리..
둘쨋날 아침, 증도 불치 선착장에서 본 일출, 병풍도를 밀쳐내고 화도를 삼킬 듯 솟아오른다.
일출은 불덩이를 토할 듯 일어선다
아침 배를 타고 들어간 병풍도 맨드라미공원 언덕에서 갯벌을 배경으로 커피 한잔의 여유로움으로 풍경에 젖는다
가을 바람과 푸른 하늘, 맨드라미를 보낸 언덕에는 코스모스와 갯벌의 어울림이 잠시 병풍도에서 발길을 머물게 한다.
병풍도 마을 교회, 맨드라미 공원 언덕배기에는 예수의 12 제자의 조각상이 마을을 지키고 있다. 병풍도 주민의 95%가 기독교인이다.
신안군 증도는 오래 전 육지와 연결됐지만, 증도면 병풍리의 5개 유인도(병풍도ㆍ대기점도ㆍ소기점도ㆍ소악도ㆍ진섬)는 여전히 배로만 갈 수 있다. 작년부터 병풍도 아래 노둣길로 연결된 4개 섬에 예수의 열두 제자를 상징하는 작은 예배당이 세워졌다. 모양이 독특해 하나하나가 작품이다. 12개 작품을 연결한 길은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에 비유된다. 섬과 섬을 걷는 길이니 ‘섬티아고’ 순례길이라 불리기도 한다.
시작점인 베드로의 집, 대기점도 방파제 끝에 위치한다. 물때가 딱 좋은 주말 연휴라 사람들로 붐빈다. 12사도 순례길은 반드시 물때를 알고 들어야 한다. 생각없이 들었다가는 낭패를 볼 수 있다.
1번, 베드로의 집은 짙푸런 지붕과 한얀 외벽이 그리스의 지중해 바닷가를 영상 시킨다. 예배당 옆 작은 종탑과 화장실까지 눈부시다
2번, 안드레아의 집은 병풍도와 연결된 노둣길 언덕에 세워져 드넓은 갯벌을 품고 있다. 흰 외벽에 짙은 청옥빛의 둥근 지붕, 첨탑에 하얀 고양이 두 마리를 얹은 모양이 독특하다.
3번, 야고보의 집은 논둑길을 따라 걸어 들어가면 코스모스가 한들거리는 얕으막한 언덕길 위에 세워져 있다. 심플한 디자인에 붉은 나무 기둥이 안정감을 주는 곳이다.
4번, 요한의 집은 생명 평화의 집이다. 첨성대를 닮은 작은 예배당은 남촌 마을에 사시는 어르신이 땅를 기증하여 지어졌다. 할아버지는 먼저 돌아가신 할머니 묘소가 보이는 곳에 예배당을 지어 줄 것을 간청하셨고, 매일 아침 일터로 나가시기전에 할머니를 위한 기도를 빼놓지 않으신다. 천정은 스테인더글라스로 장식되이 빛의 방향에 따라 아름다움을 더해준다. 소박한 들판 입구에는 외뿔 염소가 반긴다.
장난끼..
5번, 필립의 집은 대기점도 남측 끝머리에 위치한다. 프랑스 작가 장미셀 후비오가 남부 프랑스의 건축 양식으로 지었다. 인근 바닷가에서 주워 온 갯돌로 벽돌 사이를 메우고, 주민이 사용하던 절구통으로 지붕을 마감하는 등 지역의 정서를 담으려 한 노력도 돋보인다. 물고기를 닮은 필립의 집은 노둣길을 배경으로 찍는 사진을 권한다.
6번, 바로톨로메오의 집은 소기점도 해안가 조그마한 호수위에 지어진 예배당은 세상에서 보기드문 독특한 모양으로 감사의 집이다. 프리즘같은 색유리가 수면에 비치는 반영을 생각한 작품이다. 처음에는 작은 배로 접근이 가능 했었는데, 지금은 안전을 위해 호수가에서만 감상 할 수 있다.
7번, 토마스의 집은 인연의 집으로 흰 외벽에 짙은 파란색이 신비감을 준다. 각진 뒷 외벽과 구슬이 박힌 바닥, 바람이 넘겨주는 성경책 앞에서의 기도하는 모습은 추억의 인생샷이 될 수 있는 곳이다.
특히, 이곳은 새하얀 회벽의 비대칭 창문이 특징이다. 정문을 장식한 푸른 안료는 신비감을 더하기 위해 모로코에서 가져왔다고 한다.
8번, 마태오의 집은 소기점도와 소악도를 잇는 노둣길 갯벌위에 세워졌다. 게스트하우스에서 먼 배경으로 찍어도 예쁜 사진을 건질 수 있는 마태오의 집은 러시아 정교회 풍의 외형으로 황금빛 양파 지붕 돔이 독특하다. 내다보이는 창밖으로 펼쳐진 갯골의 흐름은 이색적인 풍광이다.
9번, 작은 야고보의 집은 소기점도 마지막 둑방 어귀에 위치한다. 유럽의 바닷가에서 볼 수 있는 ‘어부의 기도소’에서 모티브를 얻었다 한다. 프로방스풍의 아름다운 오두막을 연상시키는 이곳은 고목재를 사용한 외관의 곡선이 부드럽게 다가온다. 자그마한 내부에 들어서면 마루바닥이 주는 안락함과 푸른 물고기 모양의 스테인드글라스가 인상적이다.
10번, 소악도 삼거리에 위치한 유다 타다오의 집은 작은 파스텔 톤의 그림동화 같은 집이다. 어구가 버려져 쓰레기장 같이 어지럽던 곳에 뾰족 지붕의 부드러운 곡선과 작은 창문을 불어넣은 앙증맞은 집을 지었다. 외부 바닥의 오리엔탈 문양이 럭셔리하게 어우러져 잠시 앉아서 꿀 같은 휴식을 취하고 싶은 곳이다.
11번, 시몬의 집은 진섬 남쪽 바닷가 언덕에 지어졌다. 안밖의 문틀에는 문이 없이 바다로 열린 공간으로 바람과 함께 들려오는 파도 소리와 넉넉한 바다 풍경이 채운다. 사각의 공간으로 향한 카메라의 심도는 마치 바다로 빨려 들어갈 것 같은 느낌을 주는 곳이다
시몬의 집은 열린 공간으로 치유를 바라는 작가의 의도가 반영돼 있다고 보인다. 뒷모습이 풍경과 잘 어울리는 아름다운 곳이다.
12번, 다롯 유다의 집은 딴섬에 홀로 위치한다. 대숲 오솔길을 접어들어 모래톱을 지나면 만난다. 이곳은 만조 시 바닷물이 차면 들어 갈 수 없어 먼발치에서 봐야 한다. 모래 해변 넘어로 보이는 마지막 예배당은 프랑스의 ‘몽생미셀’과 흡사하다. 고딕양식의 예배당 앞에 붉은 벽돌을 나선형으로 돌려 쌓은 종탑이 특이하다. 순례자는 이곳에서 열두 번의 종을 울리며 순례길을 마무리 한다. 지치고 힘든 심사를 하나씩 허공에 날려버리고, 희망의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는 힘과 지혜를 얻을 수 있는 깨달음을 얻는다. 뒤 돌아 나올 때는 모래톱과 갯바위를 따라 나오면 색다른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마지막 다롯 유다의 집은 12사도 순례길 피날레로 확실한 존재감을 남긴다.
12사도 순례길에서 만나는 각각의 예배당 내부는 독특한 분위기의 작은 기도 공간으로 꾸며져 있다. 12사도의 이름이 붙여진 하나하나의 예배당에는 "건강ㆍ생각ㆍ그리움ㆍ평화ㆍ생명ㆍ감사ㆍ인연ㆍ기쁨ㆍ소원ㆍ칭찬ㆍ사랑ㆍ지혜"의 집이라는 별칭을 갖고 있다. 종교와 관계없이 한번쯤 자신을 돌아보는 사색의 길을 걸어봐도 좋을 듯하다.
병풍도를 거쳐 들어가는 12사도 순례길 트레킹은 지금까지 여행과는 거리가 먼, 때묻지 않은 섬이다. 그만큼 불편하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320여명이 거주하는 5개 섬에 숙박시설은 민박집 몇개와 신안군에서 개설한 게스트하우스가 전부다. 관광지마다 흔한 펜션도 없고 미니 카페는 병풍도와 대기점도 길가에 1개가 고작이다. 순례길 5개의 섬은 ‘노둣길’로 연결돼 있다. 애초 징검다리였지만 현재는 차 한 대 겨우 지날 정도의 콘크리트 도로다. 매일 두 차례 만조 시 2~3시간 동안 사람과 차가 통행할 수 없다. 물때는 매일 바뀐다. 물때를 모르고 가면 자칫 헛걸음이 되며 위험도 따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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