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는 내가 늙어 갈수록
홍어냄새가 난다고 한다
이 풍진 세상 너무 오래 살아
어느덧 발효가 시작된 걸까
아직 준비가 덜 되었는데
떠날 시간 다가온 걸까
낙엽으로 바스라지기 전
외로운 여정 끝나고 나면
향기 품을 수 있을까
이 몸 발효되고 나면
또 다른 내일 꿈꿀 수 있을까
○ 글 : 문순태
○ 음악 : 향수-박인수 이동원
○ 편집 : 송 운(松韻)
늙은 친구 같은 홍어 / 문순태
오랜만에 만난 늙은 친구들이
홍어를 먹다가 떼창을 했다
취하지도 않았는데
가슴이 먹먹하게 젖어 왔다
아, 고향 같은 친구들
친구 같은 홍어들
너를 마주할 때마다
망각의 하늘 저편에서
그리운 목소리 들려온다
우리 언제 또 만나서
옛 노래 다시 부를 수 있을까
홍어삼합 / 문순태
가슴 후비는 어울림의 한판이자
입안에 꽉 찬, 이 야만적인 충만감
머릿속에 일곱빛깔 무지개 떠올랐다
묵은 김치에 잘 삭은 홍어와
기름진 돼지고기 수육 포개 얹으니
절묘한 조합으로 폭발하는구나
시큼하고 기름지고 알싸한 맛에
코에서는 수천 마리 벌 떼가 날고
입안에서 요지경 속 떼춤을 춘다
다른 것들이라도 셋만 잘 어울리면
아름다운 세상 만들 수 있는 것처럼
화음이 잘 맞은 재즈 보컬 트리오 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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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음어海淫魚 / 문순태
부러워라 죽음보다 더 무서운 사랑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도 온몸 떨리는 뜨거운 희열 끝내 뿌리치지 못하네 휘감은 긴 팔 풀지 않고 마지막 가는 길 따라가는 숙명 같은 해음어 사랑 한 몸에 생식기 두 개 달고도 평생 오직 한 짝만을 품어 온 오. 순결한 영혼이여
해음어海淫魚
홍어의 다른 이름. 수컷 홍이는 생식기가 2개이나 한 마리의 암컷만 사랑하며 짝짓기 중에 암컷이 낚시에 걸리면 수컷도 따라 올라가 같이 죽는다
영산포 보리싹 홍어애국 / 문순태
벚꽃 불불 날리자 봄맞이 연례행사 치르려고
아내와 영산포로 보리싹 홍어애국 먹으러 갔다
된장 맛이 홍어 향기 삼켜 버린 아쉬움 너무 커
흑산 홍어 한 접시에 튀김까지 먹고 나서야
내 마음 발효되어 꽃잎처럼 가벼워졌다
돌아오는 길, 석재공장에서 납골탑을 구경했다
가루가 되어서까지 생오지에 더 머물고 싶어 하는
속된 내 욕심 너무도 구차스러워 고개 흔들었다
이 땅에서 이만큼 누리고도 무얼 더 바라겠는가
내년에도 홍어애국 먹으러 영산포에 올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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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순태文淳太
1939년 전남 담양에서 태어나 1959년 농촌중보> 신춘문예에 소설 「소나기」 당선, 1965년 『현대문학」 시 「천재들」추천, 1974년 한국문학 신인상에 소설 「백제의미소」 당선으로 등단했다. 주요 소설집으로 고향으로가는 바람』 『철쭉제 징소리 된장 꿈꾸는 시계」 『인간의 벽 울타리 오지 뜸부기」 「생오지 눈사람 등이있고, 장편소설로 걸어서 하늘까지 그들의 새벽』 『41년생 소년』 『소쇄원에서 꿈을 꾸다, 대하소설로 타오르는 강(전9권), 시집으로 생오지에 누워 생오지 생각등이 있다. 한국소설문학작품상, 문학세계작가상, 이상문학상 특별상, 채만식문학상, 요산문학상, 송순문학상등을 수상했다.
첫댓글 <문순태 시집 '홍어' >를 보내주신
문순태 작가와 조병기 시인께 감사드립니다
좋은 작품 감상 할 수 있어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안나 이현실 시인님 다녀 가셨군요
감사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