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16장
진실로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너희는 울고 애통할 것이나 세상은 기뻐할 것이며,
너희는 슬퍼하겠으나 너희의 슬픔은 기쁨이 되리라.
요한복음 16장 20절
1. 위 말씀에 나타난 세상은 기뻐하나 우리는 슬퍼한다는 의미에 대해서 생각해봅시다.
한 가지 사건에 대해서 한쪽은 울고 애통하나 다른 한쪽은 기뻐한다는 것은
각각 다른 여건과 처지와 입장이 있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와 세상은 다른 입장과 여건과 처지에 있다는 것을 생각하여야 합니다.
세상이 우리를 억울하게 욕해도 그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모두를 만족시키기 위해서 살다가 정작 본인은 행복하지 않는 삶에 빠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모두를 만족시킬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말씀의 기준으로 최선을 다하여 이웃 사랑을 하면 되는 것입니다.
악한 자를 만족시키려면 그들과 같이 악한 일을 동참해야만 그들이 만족할 것입니다.
우리가 그 악한 자들을 만족시키려면 죄를 지어야 하는데 그것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세상과 하나님을 동시에 섬길 수 없으며,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만 합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승인을 받아 복음을 위탁받은 대로 전하노니
이는 사람들을 기쁘게 하려 함이 아니며 우리의 마음을 시험하시는
하나님만을 기쁘시게 하려 함이니라.
데살로니가전서 2장 4절
세상은 우리와 다른 여건과 처지와 입장에 있다는 것을 알고 세상과 충돌하는 일이 벌어질때에
그런 충돌은 일어나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현실에서 그런 충돌이 일어날때 우리는 스스로를 자책하고 혼란스러울 수 있으나
말씀의 기준으로 세상이 우리를 욕하고 원망해도 무시할 것은 무시해야 하는 것입니다.
말씀이 없고 믿음이 없는 사람들은 기준이 없기 때문에 좋은 것이 좋은 것이라는 무기준의 기준으로 살아갑니다.
그런 것으로는 결국은 혼란과 허무로 인생이 이어져 나갑니다. 세상이 어떻게 보면 상식적이고 합리적으로 보이나
그 세상의 실체는 악합니다. 겉으로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세상은 악하고 우리를 속여서 죄의 길로 끌어들이려는 본질을 가진 존재입니다. 이것을 잊지말아야 합니다.
위에서 말한 세상과 우리의 입장차이는 곧 목적지의 차이입니다.
세상은 심판을 받아 멸망하는 것으로 예정되어 있습니다. 또한 그들은 그것을 이미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이 세상에서 누리는 것에 집착하는 것입니다.
무엇을 먹을 까 무엇을 입을 까 고민 고민하는 것은 이 세상에서 누릴 수 있는 더 나은 것을 취하기 위하여
모든 시간과 힘을 쏟는 것입니다.
앞으로 그들이 가게될 지옥에서는 그 어떤 것도 가질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여기서도 말씀없이 구하다가 여기에서도 진정으로 만족하지 못하고 지옥을 경험하면서 사는 모습을 보게됩니다.
반면 우리는 여기서의 삶은 지나가는 과정일 뿐입니다.
여기서는 예수님이 주신 새 계명으로 살아가는 것이 최우선입니다. 진정한 행복의 길을 우리는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가질 수 있는 최고의 행복은 우리를 만드신 창조자와 함께하는 것입니다.
그 어떤 것도 그 이상을 우리에게 해줄 수 없습니다.
우리가 아는 것은 이세상의 쾌락이나 만족은 영원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진정 영원한 것은 아직 경험하지는 못한 것입니다.
부분적으로 나마 말씀으로 알고 그것을 바라보는 소망을 가지고 말씀대로 살면 그 모든 것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지금은 우리가 유리를 통해 희미하게 보나 그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마주 볼 것이요,
지금은 내가 부분적으로 아나 그때에는 내가 알려진 것처럼 알게 되리라.
고린도후서 13장 12절
세상의 주장은 듣되 그들의 입장을 생각해보고 감안해서 듣는 것이 말씀으로 알게되는 지혜의 은혜입니다.
내가 이런 일들을 너희에게 말한 것은 너희가 내 안에서 화평을 지니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할 것이나 기운을 내라. 내가 세상을 이겼노라."고 하시더라.
요한복음 16장 33절
2. 위 말씀에 나타난 환난의 속성에 대하여 생각해보고 우리가 가져야할 마음가짐에 대해서 생각해 봅시다.
"너희가 환난은 당할 것이나"라고 말씀하신 것으로 보았을 때에 우리가 세상에서 환난을 당하는 것은 예정된 일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환난은 전혀없이 살기를 바라고 그것을 기대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부자도 아무리 권력을 가진 사람이라고 해도 그 사람의 삶에 환난이 없을 수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마찬가지로 세상속에서 계속하여 이어지는 환난속에서 사는 것입니다. 그런데 환난을 대하여 생각할 수 있는 입장은 두가지로 나뉩니다.
첫번째로 나타나는 사람들의 태도는 원망입니다.
넷째 천사가 자기 호리병을 해에 쏟으니, 해에게 불로 사람들을 태우는 권세가 주어지더라.
그리하여 큰 열기로 사람들을 태우니 그들이 이러한 재앙에 권세를 가진
하나님의 이름을 모독하더라.
그들이 회개하지 아니하고 그분께 영광을 돌리지 아니하니라.
요한계시록 16장 8절 9절
태양에게 불로 사람들을 태우는 권세를 주실 수 있는 분은 오직 하나님이십니다.
그들은 평상시에는 부처와 알라와 각 우상에게 빌다가 재앙이 닥치면 그 재앙을 막아주지 못하는 자신들의 우상을 원망하기 보다는 진짜이신 그 재앙의 권세를 가지신 하나님을 찾아 원망합니다.
이들도 사실은 우상을 섬기지만 하나님의 존재를 알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은 진리보다 자기의 주인됨으로의 삶을 살기 위하여 그것을 위장한 우상을 섬기는 것을 택한 것입니다.
세상의 종교들이란 대부분 그 자신이 우선이고 우상은 보조입니다.
사람들이 우상을 섬기는 이유는 바로 이런 조건이 허용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진리의 생명이신 하나님은 그런 것을 허용하지 않으십니다.
그러니까 사람들은 바로 이런 것을 알기 때문에 하나님을 아는 것을 미루거나 가짜에게 의탁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자신이 극복하기 힘든 일들이 나타나면 진짜를 찾아 회개하여 도움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진짜에게 원망을 제대로 하는 것입니다. 그들이 하는 우상을 숭배함은 가짜이나 하나님에 대한 원망은 제대로 된 진짜입니다.
자신들의 고통과 헌데로 인하여 하늘에 계신 하나님을 모독하되
자기들의 행위는 회개치 아니하더라.
요한계시록 16장 11절
또 무게가 각기 한 달란트나 되는 큰 우박이 하늘로부터 사람들 위에 떨어졌는데,
사람들은 그 우박의 재앙 때문에 하나님을 모독하니 이는 그 재앙이 심히 크기 때문이라.
요한계시록 16장 21절
이들이 하나님을 모독하는 모습도 나와있는데 그 재앙이 크기 때문이라고 나옵니다.
그것은 지금 사람들이 하늘도 무심하시지하는 모습과 똑같습니다. 해도 너무한다라는 의미가 담겨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적당히는 받아들이겠다는 의미입니다. 스스로 죄인임을 알고는 있습니다.
정말 그 원망을 부처나 알라 마호멧트에게는 왜 안하는 지 정말이지 궁금합니다.
정말로 그들은 자신들의 주인된 모습을 위장하기 위하여 자신들까지 속여가며 우상으로 위장한 채 주인된 삶을 살아가는 것이 맞는 것입니다.
믿지도 않던 진짜를 굳이 찾아서 원망할 정도의 사람들이 자신들이 섬기던 우상에게는 그토록 관대한지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정말로 이들은 자신들의 자신들의 삶에 주인이고 악세사리로 우상을 섬기며, 자신을 먼저 속이고, 그 다음에는 타인도 속여서 지옥으로 가는 행위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사람들은 작은 재앙에서는 사람을 원망하고 큰 재앙에서는 하나님을 원망하고 있는 모습이 보입니다.
두번째는 나타나는 모습은 원망하지 않는 모습입니다.
O 그때에 그의 아내가 욥에게 말하기를 "당신이 아직도 당신의 완전함을 간직하려 하느뇨?
하나님을 저주하고 죽으라." 하더라.
그러나 욥은 그녀에게 말하기를
"당신은 어리석은 여자들 가운데 하나가 말하듯이 말하는도다. 무슨 말을 그리하는뇨?
우리가 하나님의 손에서 좋은 것을 받았을진대 나쁜 것도 받지 아니하겠느뇨?" 하며
이 모든 일에도 욥은 자기 입술로 죄를 짓지 아니하더라.
욥기 2장 9절 10절
욥은 이 당시에 많은 모든 것을 읽고 질그릇 조각으로 피부병의 환부를 긁고 있었던 때입니다.
좋은 것을 주시는 것도 하나님이시고 우리에게 나쁜 것을 주시는 권세를 가지신 창조주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이것을 우리는 알고는 있지만 막상 겪으면 욥과는 반대로 입술로 죄를 짓기도 합니다.
죄는 입술로도 지을 수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세상법이 말로하는 죄에 대해서 관대한 것은 우리와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결국에 재앙을 당했을 때에 하나님을 원망하는 마음이 생기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의 차이는 자신이 자신의 삶에 주인인가 아니면 하나님이 우리의 주인인가의 차이입니다.
즉 말씀을 믿는 것은 자신의 주인을 자신이 아니라 하나님에게 맡기고 사는 것입니다.
우리의 주인이 하나님이시면 우리는 하나님과 영원히 함께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 반대라면 하나님과 아무런 상관도 없는 자들은 빛이신 하나님이 없으신 곳 곧 지옥에서 영원히 거주하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