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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심이 잉태한 즉 죄를 낳고
가정과 건강(1) - 그의 큰 소원은 죄의 짐에서 해방되는 것이었다. 그는 예수님을 뵈옵고 용서의 보증과 하늘의 화평을 얻고자 갈망하였다. 그러면 그는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든지 죽든지 만족히 여길 것이었다.(YHH 282.4)
투쟁과 용기(1) - “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가 분하여 함은 어찜이며, 안색이 변함은 어찜이뇨?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선을 행치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리느니라.
죄의 소원(미움의 갈망과 욕망의 마음)은 네게 있으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창 4:6~7).(CC 26.1)
......죄의 정의는 육체의 본성에서 생각되는 욕망을, 마음에 품고 버리지 않으면 성립(순간 스쳐지나가는 생각은 죄가 아님)
[파워 북(13호) 말씀 설명 중에서] “가인아, 동생 아벨을 향해 미움을 느끼느냐? 미움의 갈망과 욕망이 육체의 본성에서 올라오는 것을 느껴 아느냐? 조심하고, 유의 하거라. 그 마음을 다스려야 한다. 그것을 붙잡고 마음에 품으면, 죄를 범하게 되니, 스스로 미움의 갈망과 욕망의 마음을, 성령의 호소와 양심과 이성으로 다스릴지니라.”
여호와께서는 가인의 분노를 보셨다. 주께서는 가인의 안색이 변하는 것을 보셨다. 이것은 주께서 모든 행동과 모든 의도와 목적과 얼굴의 표정까지도 면밀히 주목하신다는 것을 나타낸다. 사람은 한 마디의 말도 하지 않고서도 얼굴의 표정으로 하나님의 뜻과 방법을 행하기를 거절함을 나타낼 수 있다.—SDA 성경주석1권,1086.(CC 교회에 보내는 권면26.2)
주의 말씀을 주목하라.... [여호와께서 가인에게 하신] 질문은 하나님의 요구를 정면으로 어기고 사단의 충동을 받아 가인처럼 그들의 분함을 드러내는 모든 젊은 남녀들에게 적용될 수 있다.—원고77,1897.(CC 26.3)
만일, 그대가 진리의 거룩하고 제어하는 감화를 벗어던지는 길을 택하면, 사단은 마음대로 그대를 사로잡을 것이다. 그대는 식욕과 정욕에 활동의 기회를 제공하며, 색욕과 악과 가증한 욕망의 고삐를 느슨하게 할 위험에 처하게 될 것이다.
시련과 고난을 당하여 그대의 얼굴에 고요한 평안이 나타나며, 신실했던 에녹처럼 얼굴이 희망과 인간의 이해를 초월하는 평화로 빛나는 대신, 그대의 얼굴에는 육신적 생각과 호색적 욕망이 찍혀지게 될 것이다. 그대는 거룩한 인상 대신 사단과 같은 인상을 지니게 될 것이다. —교회증언2권,92.(CC 26.4)
교회증언 5권(1) - “너희 중에 지혜와 총명이 있는 자가 누구뇨? 그는 선행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온유함으로 그 행함을 보일지니라”(약 3:13). 나의 형제자매들이여, 그대들은 말의 선물을 어떻게 활용하고 있는가? 그대들은 혀가 언제나 계발된 양심과 거룩한 애정의 명령을 순종하도록 그것을 제어하는 법을 배웠는가?
그대들의 대화는 경솔, 교만과 악의, 기만과 불순에서 벗어나 있는가? 그대들은 하나님 앞에서 기만이 없는가? 말은 현저한 능력을 발휘한다. 사단은 할 수만 있으면, 그를 섬기는 데 혀가 바쁘게 사용되도록 할 것이다. 우리는 제어하기 힘든 그 지체를 통제할 수 없다.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의 유일한 희망이다.(5T175.1)
탁월해질 수 있는 방법을 열렬하게 연구하고 있는 자들은 차라리 “첫째 성결하고 다음에 화평하고 관용하고 양순하며 긍휼과 선한 열매가 가득하고 편벽과 거짓이 없”(약 3:17)는 지혜를 얻는 법을 연구해야 한다. 나는 많은 목사들이 이 말을 심령의 돌비에 새겨 두어야 할 필요가 있음을 보았다. 영광의 소망이신 그리스도께서 마음속에 형성된 사람은 “선행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온유함으로 그 행함을 보일”(약 3:13) 것이다.(5T175.2)
‘베드로’는 신자들에게 이렇게 권면한다. “너희가 다 마음을 같이하여 체휼하며 형제를 사랑하며 불쌍히 여기며 겸손하며 악을 악으로, 욕을 욕으로 갚지 말고 도리어 복을 빌라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입었으니 이는 복을 유업으로 받게 하려 하심이라.
그러므로 생명을 사랑하고 좋은 날 보기를 원하는 자는 혀를 금하여 악한 말을 그치며 그 입술로 궤휼을 말하지 말고 악에서 떠나 선을 행하고 화평을 구하여 이를 좇으라. 주의 눈은 의인을 향하시고 그의 귀는 저의 간구에 기울이시되 주의 낯은 악행 하는 자들을 향하시느니라.”(벧전 3:8-12).(5T175.3)
올바른 길이 그처럼 분명히 나타나 있는데 왜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공언하는 자들이 그 길로 가고 있지 않는가? 왜 그들은 한마음이 되기 위하여 연구하고 기도하고 열렬하게 노력하지 않는가? 왜 그들은 악은 악으로, 욕은 욕으로 갚는 대신에 형제로서 사랑하기 위하여 피차간에 긍휼히 여기는 마음을 품고자 노력하지 않는가?
생명을 사랑하고 좋은 날 보기를 원하지 않는 사람이 누구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조건 — 혀를 금하여 악한 말을 그치며 그 입술로 궤휼을 말하지 않는 것 — 에 응하는 자들이 얼마나 적은가.
온유하고 겸손하신 구주의 모본을 즐겨 따르고자 하는 자들은 별로 없다. 많은 사람들은 주님께 그들을 겸손하게 만들어 달라고 구한다. 그러나 그들은 필요한 훈련에 응하고자 하지 않는다. 시험이 닥치고 시련이나 어떤 난처한 일이 생기면, 마음은 반역을 하고 혀는 독을 지닌 화살이나 황폐시키는 우박과 같은 말을 쏟아 놓는다.(5T176.1)
험담은 듣는 사람에게보다는 말하는 자에게 훨씬 더 중하게 내리는 이중의 저주이다. 분열과 분쟁의 씨를 뿌리는 자는 그 자신의 심령에서 치명적 열매를 거둔다. 나쁜 소문을 퍼뜨리는 자, 악을 추측하는 자는 얼마나 불행한가! 그는 진정한 행복을 알지 못하는 자이다.(5T 176.2)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마 5:9). 은혜와 화평은 구설의 다툼에 동참하지 않는 자들에게 임한다. 추문의 행상인들이 이 가정에서 저 가정으로 지나가고 있을 때,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자들은 가정을 정숙하게 수호하는 자들이 될 것이다. 너무도 흔히 쓸데없고 경박하고 악의에 찬 험담에 허비된 시간은 더욱 높고 고상한 목적에 바쳐져야 한다.
만일 우리의 형제와 자매들이 하나님을 위한 선교사들이 되어 병자들과 고통당하는 자들을 방문하고 실수한 자들을 위하여 꾸준하고 친절하게 활동 하기를 원한다면, 다시 말해서, 그들이 모본되시는 분을 본받으려고 한다면 교회는 그 모든 영역에서 번영하게 될 것이다.(5T 176.3)
험담의 죄는 악한 생각을 품는 데서 시작된다. 궤휼은 온갖 형태의 불순을 포함한다. 불순한 생각이 용납되면 부정한 욕망을 품게 되고, 심령이 더럽혀지면 그 정직성도 손상된다. “욕심이 잉태한 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 즉 사망을 낳느니라”(약 1:15). 죄를 짓지 않으려면 우리는 바로 처음부터 죄를 피해야 한다. 모든 감정과 욕망은 이성과 양심에 굴복되어야 한다.
모든 부정한 사상은 즉시 배척되어야 한다. 그대의 밀실까지 예수님을 따라가는 자가 되라. 믿음으로 기도하고 온 마음을 다하여 기도하라. 사단은 그대의 발을 함정에 빠뜨리고자 주시하고 있다. 그대가 그의 간계를 피하고자 하면 그대는 위로부터 도움을 받아야 한다.(5T 177.1)
모든 사람은 믿음과 기도로써 복음의 요구 사항을 충족시킬 수 있다. 어떤 사람도 강제로 범죄하게 할 수는 없다. 그 자신의 동의를 먼저 얻어야 한다. 정욕이 이성을 지배하고 불의가 양심을 이기기 전에 심령은 범죄의 행동을 의도해야 한다. 유혹이 아무리 강할지라도 죄에 대한 핑계는 결코 있을 수 없다.
“주의 눈은 의인을 향하시고 그의 귀는 저의 간구에 기울이시되”(벧전 3:12). 시험받는 영혼이여, 주님께 부르짖으라. 속절없고 무가치한 그대로 그대 자신을 예수님께 던져 버리라. 그리고 바로 그분의 약속을 주장하라. 주님께서는 들어주실 것이다. 그분께서는 육신적 마음의 성향이 얼마나 강한지를 아신다. 그러므로 그분께서는 시험을 받을 때마다 도와주실 것이다.(5T 177.2)
그대는 죄 가운데 빠져 있는가? 그렇다면 지체하지 말고 자비와 용서를 얻기 위하여 하나님을 찾으라. 다윗은 자기의 죄를 깨닫게 되자, 회개와 겸손으로 그의 심령을 하나님 앞에 토로했다. 그는 그의 면류관은 잃어버려도 견딜 수 있었지만 하나님의 은총을 빼앗기고는 견딜 수 없다고 느꼈다.
자비는 지금도 여전히 죄인에게 뻗혀 있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방황하고 있는 동안 내내 우리를 부르고 계신다. “배역한 자식들아 돌아오라 내가 너희의 배역함을 고치리라”(렘 3:22). 만일 우리가 호소하는 성령의 음성에 유의할 것 같으면 하나님의 축복은 우리의 것이 될 것이다. “아비가 자식을 불쌍히 여김같이 여호와께서 자기를 경외하는 자를 불쌍히 여기시나니” (시 103:13).(5T 177.3)
설교와 강연 1(1) - 나는 몇 절을 더 읽기를 원한다.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속지 말라. 각양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서 내려오나니, 그는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니라.
그가 그 조물 중에 우리로 한 첫 열매가 되게 하시려고, 자기의 뜻을 좇아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셨느니라.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너희가 알거니와 사람마다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며 성내기도 더디 하라.”(약 1:14-19). 하나님의 진리는 사람 전체, 영과 육을 성화 시켜야 한다. 그것을 실행하지 않으면 그것은 그대들에게 진리가 아니다.(1SAT 307.3)
우리의 귀한 예수께서는 진리로 우리를 거룩하게 하시기 위해, 온 하늘을 포기하시고 이 세상에 오셨다. 우리는 성화될 것인가? 그분의 생애와 모본, 그분의 교훈과 말씀 안에 하나님의 영의 성화가 있었다.
성화는 우리를 위해 그분에게 있었다. 하나님 자신께서 인성을 통해 역사 하셨고 마치 인성이 인성을 통해 일해야만 하는 것처럼 역사 하셨다. 그래서 그분은 인성이 그 자신을 위해 어떻게 일하는 지를 가르치시기 위해 인성을 그분 자신이 취하셨다. 그분은 우리를 위해 죽음을 경험하시기 위해 인성을 취하셨으며, 그분의 생애와 죽음을 통해 우리가 생명과 불멸을 가질 수 있도록 인성을 취하셨다.(1SAT 307.4)
“내가 비옵는 것은 이 사람들만 위함이 아니요, 또 저희 말을 인하여 나를 믿는 사람들도 위함이니”(요 17:20). 이제, 그리스도의 기도는 진리를 통해 우리가 성화 되도록 하기 위해 우리를 위한 것이다.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같이, 저희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요 17:21). 그대들의 심령으로부터 냉담함을 버려라. 악한 추측을 버려라. 악한 생각을 버려라. 주 예수께서 심령의 보좌를 차지하시고 거기에서 다스리시게 하라.(1SAT 308.1)
“내게 주신 영광을 내가 저희에게 주었사오니 이는 우리가 다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이니이다”(요 17:22). “곧 내가 저희 안에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 저희로 온전함을 이루어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은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과 또 나를 사랑하심 같이 저희도 사랑하신 것을 세상으로 알게 하려 함이로소이다”(요 17:23).(1SAT308.2)
우리는 그것을 안으로 취할 수 있는가? 하나님께서 그분을 믿는 자들을, 그분이 그리스도 자신을 사랑하신 것처럼 사랑하신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우리는 하나님과 하나 되게 만들어졌으며, 우리는 그 하나 됨을 원한다.
우리는 한번 성도들에게 전달된 그 믿음을 위해 그분을 열렬하게 찾기를 원하며, 셋째 천사의 기별의 영을 원한다. 우리는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웠음을 깨닫기를 원하며, 말하는 것은 달란트이며, 믿음은 하나님의 선물이요, 우리는 하나님께서 그 믿음을 보존하시도록 일하고 기도해야만 한다.(1SAT308.3)
그대들은 발을 말씀 위에 바로 두어야 하며, 이렇게 말해야 한다. 나는 믿는다, 나는 믿을 것이다, 나는 상(賞)의 푯대를 향하여 좇아 갈 것이며, 나를 방해하는 모든 것은 없어질 것이며, 나는 내 영혼과 하나님 사이에 끼어드는 어떤 것도 허용하지 않을 것이다.(1SAT 309.1)
그렇다, 만일 우리가 믿음이 그 안에 가라앉도록 한다면 사단의 검은 그림자는 즉시 우리 길에 나타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독수리가 구름 속에 있고 또 안개 속에서 방황할 때처럼 해야 한다.
그 독수리는 마음이 산란한 것처럼 이쪽저쪽으로 가지 않는다. 그러나 그것은 위에 있는 빛에 다다를 때까지 구름을 뚫고 위로 치솟는다. 그러므로 우리도 사단이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빛을 가리려고 애쓸 때 사단의 지옥 같은 그림자를 뛰어 넘어 전진해야 한다.(1SAT309.2)
이제, 우리를 하나로 만들기 위해 우리는 심령에 그리스도의 생명을 원하며, 거기에는 연합된 행동이 있게 될 것이다.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의 푯대를 향하여 전진해야만 한다.
그리고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은 하나님을 그분의 말씀대로 받아들이는 살아 있고 활동적인 믿음이다. 우리는 그것을 가져야 하며,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그렇게 하면 이것을 갖도록 해 주실 것이다.(1SAT309.3)
우리는 좌절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불신을 제거해야 하며, 우리는 그것을 말하거나 행하거나 생각하기를 원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의 푯대를 향하여 전진하기를 원한다. 나는 초조함을 느낀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백성들이 자신들의 아름다운 옷을 입어야 할 때가 왔음을 알기 때문이다.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이는 네 빛이 이르렀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위에 임하였음이라.”(사 60:1). 그분께서 그대들이 먹고 마시기를 원하시는 것은 무한한 능력의 말씀이다. 그분은 여러분들이 그분의 살을 먹고 그분의 피를 마시기를 원하시며, 그렇게 될 때 하나님의 능력은 그대들 중에 있을 것이다. 그 때에 그 음성은 특별한 능력으로 감지될 것이다.(1SAT309.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