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오신화와 기타 기록
지방 선비의 시대의식을 읽다. 이재난고는 목천현감과 전의현감을 하다 고과가 하등급으로 현직에서 쫓겨난 바 있다. 많은 잡기를 기록으로 남겼는데 그는 고창의 흥덕 출신으로 서울 출신이 아닌 설움을 많이 받은 듯하다. 18세기 과거장 풍경을 쓰고 있는데 쌀 5되 주고 급제를 한 예를 든다. 황윤석은 승려 풍수 방일과 호남 유명 지사들과 산세를 살펴본다. 그의 묘지를 순창 아미산으로 택하는 등 활동을 한다. 그는 양택을 풍수 박상의에게 잡아달라 부탁하여 새. 뱀. 나비 같은 물건 꼴의 음택에는 석물을 하지 않는다. 양택인 가옥에는 기와를 올리지 않고 초가로 자기의 집터의 기운을 보존한다.
사대부 한재락은 의도적으로 기생과 관련한 녹파잡기를 저술로 남겼다. 그의 친동생은 과거에 급제한 한재렴으로 벼슬을 하지만, 그는 한양의 경화세족과 어울리며 창작 활동을 했던 시인이었으나 기생들이 느끼는 인식과 가치와 도덕 등이 기록되어 있다. ‘나섬’이란 기생은 용모가 아름답고 자존심이 강했다. 기풍과 재주가 있는 남자면 떨어진 옷차림이라도 극진하게 모셨다. “제가 기생이 된 것은 운명입니다만, 천성이 뜻을 꺾거나 남에게 굽히질 못합니다. 기생들 속에 묻혀 있으면서 다른 기생이 무네 기대어 웃음을 파는 꼴을 보면 저도 모르게 마음이 싸늘해지고 꺼리는 기색이 얼굴에 드러납니다. 제 마음에 맞지 않으면 황금을 광주리에 담고 구슬을 말로 퍼서 매일 찾아온대도 어떻게 제 뜻을 꺾을 수 있겠어요?.”
금오 신화의 저자 김시습을 알려면 동시대의 문인이자 거족인 서거정을 알아야 한다. 서거정은 세종. 문. 단. 세조. 예. 성종 등 여섯 임금을 모시고 45년간 관직 생활을 했다. 23년간은 조선의 최고 문장가로 활동했다. 서거정의 어머니는 권근의 딸로 권근은 이색의 제자다. 정몽주, 이승인, 정도전 등 당대 석학들과 교유했다. 서거정의 누이와 혼인한 최항의 가르침도 받았다. 최항은 세종이 꿈을 꾸니, 용 한 마리가 성균관 서쪽 뜰의 잣나무를 휘감고 있었다. 세종이 사람을 보내 찾으니 한 선비가 책을 베고 자고 있었다. 세종이 선비를 불러 어디 사는 누군가? 묻고 이튿날 과거를 예정대로 시행해 보니 장원급제가 최항이었다. 세종은 하늘이 나에게 보낸 인물이라고 매우 기뻐했다. 서거정은 세조의 계유정난에 동조하여 좌. 우. 영의정을 지냈다. 김시습이 북한산 중흥사에서 공부할 때 수양대군이 단종을 폐하고 왕위에 올랐다는 소식을 듣고 책을 모두 불태우고 강화도 김화로 들어가 은둔생활을 시작한다. 24세부터 전국을 유람했는데, 31세에 경주 남산에 금오산실을 짓고 칩거하며 금오신화를 저술한다. 금오신화는 대부분 귀신의 이야기 주인공으로 등장하면서 제도와 인습이 파괴되는 전쟁이나 폭력 등으로부터 저항 의식을 보여준다.
만복사저포기; 남원을 배경으로 한 소설은 만복사저포기와 임진왜란에서 병자호란에 이르는 긴 전란의 시기에 최척과 그 가족이 조선과 일본, 중국으로 흩어졌다가 다시 만난다는 최척전, 춘향전 등이 있다. 대표적 사찰이 만복사라는 사찰이 공통으로 등장한다. 만복사저포기는 장가 못 간 청년 양생이 등장한다. 양생은 배필을 구하기 위해 부처님과 저포로 내기를 한다. 내기에서 이긴 그는 아름다운 처녀와 만나 개녕동에 있는 처녀의 집을 방문해 함께 지낸다. 그러나 처녀는 왜구 침입 시 절개를 지키다 죽은 귀신으로 그 집은 바로 처녀의 무덤이었다. 다음날 양생은 처녀의 부모를 만나 처녀가 3년 전에 죽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처럼 산 남자와 죽은 귀신 사이의 사랑은 기이한 일에 속한다. 작품에 등장하는 남원. 만복사. 개녕동. 보련사 등은 실재하는 공간이다. 양 씨는 남원을 본관으로 하는 양 씨가 있다. 결국 양생은 귀신과 이별하고 다시는 혼인하지 않고 지리산에 들어가 종적을 감추었다는 점이다.
취유부벽정기; 술에 취해 부벽정에서 놀다 발생한 사연을 기록한다. 뜻이다. 개성에 사는 홍생이란 청년이 평양에서 친구들과 놀다 취흥이 일어 혼자 부벽정에 오른다. 그리고 시를 읊었다. 한 여인이 나타나 홍생의 시에 화합한다. 여인은 기자조선의 마지막 왕이었던 준왕의 공주로, 위만이 나라를 차지하자 고난 속에서 목숨을 걸고 절제를 지키다가 단군에게 이끌려 신선이 되어 천생에 살았는데, 달이 밝자 고국 생각이 나서 잠깐 찾아왔다고 자신을 소개한다. 홍생은 이별을 안타깝게 여기며 돌아온다. 홍생은 공주를 잊지 못해 병이 들었는데 꿈에 어떤 미인이 나타나 옥황상제가 홍생을 하늘로 불러 일을 맡긴다는 명령을 내렸다고 전한다. 얼마 지나지 않아 홍생이 죽고, 세상 사람들은 그가 신선이 되었다고 말한다. 기타 나머지 얘기는 생략한다.
두 천재의 엇갈린 삶을 살다. 김시습은 서거정보다 열다섯 살이 많았지만, 공통점이 있다. 이색의 손자이고 권근의 외손자 이계전의 문하에서 김시습과 서거정은 동문수학했다. 당대 최고 인맥과 학맥을 맺었으나 두 사람은 다른 길을 택했다. 10대에 학업에 전념한 김시습은 어머니가 죽고 자신을 돌보아 주는 외숙모와 아버지가 죽자, 훗날 크게 쓰겠다고 약속한 세종마저 세상을 떠났다. 수양이 계유정난을 일으키자, 승려가 되어 전국 각지를 유랑했다. 사육신이 처형되는 날 시신을 주섬주섬 담아서 노량진 거리에 임시 매장한 사람이 김시습이었다는 이야기가 ‘연려 실기술’에 수록되어 있다.
스승이던 이계전은 세조 찬탈에 참여하여 공신에 책봉된다. 서거정 역시 스승과 함께 세조의 총애를 받았다. 서거정은 자신의 재능을 펼치며 가장 화려하게 산 지식인이었다. 서거정이 죽자, 성종실록에 평가를 보자. “조정에서 뛰어난 실력을 인정받았지만, 그는 명망이 자기보다 뒤에 있는 자가 종종 정승의 자리에 뛰어오르면, 치우친 마음이 없지 않았다. 또 서거정에게 명하여 후배들과 같이 시문을 지어 올리게 한 것이 한두 번이 아닌데, 서거정이 불평하기를 ‘내가 비록 자격이 없을지라도 기문의 맹주로 있은 지 30년인데, 입에 젖내 나는 소생과 더불어 재주 겨루기를 마음으로 달래 여기겠는가? 조정이 여기에 체통을 잃었다.’ 하였다. 서거정은 그릇이 좋아서 사람이 용납하는 도량이 없고, 일찍이 후생을 장려해 기른 것이 없으니 세상 사람들이 그릇을 작게 여겼다.”
김시습과 서거정에 대한 평가는 사림들이 정치적 태도도 커다란 영향을 주었다. 살아 있을 때 미치광이 취급을 받았던 김시습은 사람들로부터 그가 생전에 보여준 절의와 진정성을 높이 평가받았다. 이에 비해 서거정은 16세기에 훈구파가 점차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지고 사림파가 중앙 정계에 진출하여 훈구파와 대립하면서 비판적인 평가가 이루어졌다. 서거정이 사림파와 대립했던 훈구파의 핵심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동시대를 산 두 천재는 살아서도 죽어서도 엇갈리기만 했다. 그러나 이러한 차이는 김시습은 물론 서거정 역시 본인이 스스로 선택한 삶의 결과였다.
귀신도 시대에 따라 변했다. 현대인이 기억하는 우리나라 대표적인 귀신은 처녀 귀신이다. 처녀 귀신은 산발한 머리에 입 주위에 붉은 피를 흘리고 소복을 입고 있으며, 흐느끼는 소리로 말하기도 한다. 태종실록에 “요망한 귀신 요귀가 청주의 관비였던 백이라는 자에게 내려 공중에서 사람과 말하니, 점치는 자들이 많이 모여들었다.” 당시 조정은 무당 백이가 거짓으로 귀신으로 속여 말한 사람들을 속였다.'라는 죄를 물어 장을 때리도록 명했다. 귀신이 정기적으로 집을 찾아오는 예를 들기도 했으나 생략한다. 어우야담에는 제사에 관한 이야기를 소개했다.
“민기문이 승지로 있을 때였다. 어느 날 새벽 종소리를 듣고서야 대궐에서 퇴근하는데, 말 위에서 잠깐 졸다가 죽은 친구 유경심을 길에서 만났다. 민기문이 인사를 나누며 ‘어디를 가는가? 라고, 물으니 유경심이 우리 집 아이들이 술과 안주를 마련해서 상을 차려주어 다 먹고 돌아가는 길이네’라고 대답했다. 민기문이 말을 마치고 헤어지려는데 술 냄새가 코를 찔렀다. 민기문이 이상한 생각이 들어 사람을 시켜 그 집에 가서 물어보니 유경심의 아들이 ‘오늘 돌아가신 아버지의 제삿날이어서 방금 제사를 마치고 상을 물리는 중이라고 말했다.”
민 기문 1511~1574, 유 경심 1516~1571은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실존 인물이다. 두 사람은 문정왕후와 윤원형의 전횡에 협력하지 않아 미움을 받아 고초를 겪기도 했다. 그런데 묘하게도 유경심이 평안도 관찰사로 재직할 때 병이 있어 한양으로 이동하는 중에 경기도 장단에서 죽었고, 3년 후 민기문도 황해도 관찰사로 부임했다가 얼마 후 좌승지로 임명되어 한양으로 오던 중 가까운 곳인 개성에서 사망했다.
그리고 조선 초 무식한 무신들의 글을 모르는 이야기를 소설로 쓰고 있으나 생략한다.
2024.07.20.
조선의 책-2nd
김진섭 지음
지성사 간행
첫댓글
구성진
옛날 얘기 책 읽는 기분이네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말복이 지나니
폭염이 고개를 숙이나 봅니다.
시원한 하루 되세요.
금년의 폭염은 기록을 세우고 있는데
아직도 둬 장도막은 더
갈듯합니다.
더위는 추울 때
생각을 해 즐기렵니다
등줄기의 땀으로
잘봤ㅈ습니다
더운 여름날 글읽는것도 좋아요
더위 이기는 법은 여러 가지지만, 대청 마루에 모시로 만든 내의 아버지 옷 얻어 입고 열심이던 중학생 때
점심이면 어머니의 맛난 음식 보약으로 알고 먹던 시절이 그립습니다.
대학생 시절은 여름을 먹 갈아 붓글씨 크게 써 놓고 어질러 두면 할머니 모두 잘 펴서 손자 공부한 것 잘 모아 둬야 하신다며
보고리에 담던 모습도 그립습니다
지금의 노인들은 전기 세 무서워 모두 지하철 타고 할일 없이 돌아다니면 피서 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가장 경제적이고 시원합니다. 책 한 권 들고 오늘의 목표 이루면 근처에 내려 별미나 먹고 나도 마누라와 같이 떠나볼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