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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춘기 소녀는 굴러가는 나뭇잎만 봐도 웃음보가 터진다지만, 주부들은 찬 바람 부는 가을이 되면 왠지 우울하고 무기력증에 빠지기 쉽다. 가을엔 햇빛의 양과 일조 시간이 부족해져 활동량이 저하되고, 슬픔과 과식, 과수면을 일으키는 생화학적 반응이 나타난다니 이른바 ‘계절성 우울증’이다. 이러한 증상과 무기력증은 가을과 겨울에 나타나다 봄, 여름이 되면 나아진다고. 여기저기서 뭘 해도 몸이 피곤하고, 괜시리 울적하다는 하소연들이 들려오는 요즘, 공감 백배 주부들의 계절성 우울증 극복기를 들어봤다.
초등생 두 자녀를 등교시킨 후 오전 시간, 노영미(38·서울 송파구 잠실동)씨는 베란다 창으로 떨어지는 나뭇잎을 바라보며 한숨 쉬는 일이 늘었다. 부지런히 청소하고 집 안 단장하는 것이 오전 일과였건만, 요즘은 모든 일에서 손을 떼고 싶다. 매주 반 엄마들과 소모임을 하는 정미주(39·경기 성남시 이매동)씨 주위에도 우울감을 호소하는 지인들이 많다. 단풍놀이 계획을 짜도 아쉬울 이때, 자꾸만 무기력증에 시달린다며 서로 해결책을 묻고 있다. 이렇게 가을바람이 불면서 어떤 일에도 흥미를 잃고 우울해진다는 하소연이 많다. 이는 흔히 ‘날씨 탓’이라 말하는 ‘계절성 우울증’ 증상. 다른 우울증과 마찬가지로 남자보다 여자에게 많이 생기며, 그 차이는 일반 우울증보다 커 ‘계절성 우울증 환자의 80퍼센트 이상이 여자’라는 연구도 있다. 그래선지 요즘 가을을 심하게 앓는 주부들이 여기저기 눈에 띈다. 남편과 자녀를 중심으로 살다 보니 존재에 대한 우울감이 부쩍 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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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계절과 더불어 우울감 부추기는 요인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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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시 시즌에 더욱 무거워진 엄마 역할 중압감 대입 수시 모집, 과학영재고 합격자 발표에 이어 고교 선택제며 외고 입시로 한창 머리가 아픈 시기. 중1 자녀를 둔 노은선(44·경기 수원시 조원동)씨는 “요즘 주위를 보면 엄마가 해줘야 하는 일이 너무 많다. 언제, 어디까지 아이를 책임져야 할지 엄마 역할을 잘해야 한다는 부담이 우울감을 부추긴다”고 했다. 주위의 조언에 마음이 오히려 울적해지는 경우도 허다하다. 공부 잘하는 아이 엄마를 만나고 돌아온 날은 정보가 힘이 되기는커녕 ‘나와 우리 애는 왜 그렇게 못 하는 건지’ 무기력해지고, 지친 기색 없이 뒷바라지하는 엄마들 모습에 좌절감만 커진다는 푸념들. 작게는 학교 시험부터 마지막 관문인 수능까지 ‘엄마 역할 성적표’가 날아드는 요즘 30~40대 여성들의 우울이 짙어지는 이유다.
내년엔 일할 수 있을까? 능력 없는 자신만 확인할 뿐 두어 달 남은 한 해를 돌이켜보며 무색한 허송세월에 새로운 계획을 다짐해보는 요즘. 한지연(40·서울 마포구 아현동)씨도 아이가 유치원에 가는 내년부터는 부업에 정착해보고자 그 첫 단계로 기업체 모니터에 도전했다. 그러나 세 군데 모두 불합격된 후론 걷잡을 수 없이 의욕이 상실된 상태. “그 정도는 당연히 할 수 있는 일이라 여겼는데, 떨어지고 나니 과연 내가 무슨 일을 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다. 이제 사회에서는 인정해주지 않는 인력이라 생각하니 너무나 우울하다.” 불합격 통지서보다 더한 독은 아마도 재취업과 부업을 꿈꾸는 이를 향해 ‘넘치는 시간이 만든 여유’라거나 ‘편하게 살며 우울할 이유가 뭐 있냐’ 귀를 막는 주위의 외면일 것이다.
새 학년 분주함 지나니 남는 건 비교뿐 김진희(38·경기 화성시 동탄1동)씨는 아이들이 등교한 오전 10시, 알 수 없는 우울감에 아는 엄마들에게 ‘술 한잔하자’는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하지만 ‘그러자’는 답은 한 명. 결국 망설이던 시간이 무색하게 ‘낮술 속풀이’는 수포로 돌아갔다. 김씨는 “집안일 빼면 별달리 할 게 없는 오전을 활기차게 보내지 못한다. 새 학년의 분주함과 긴장감이 지나가고 나니 남는 건 비교뿐”이라며 “친해진 엄마들과 점심도 먹고 쇼핑도 따라가지만, 가볍게 지갑 여는 엄마들을 보면 욕구불만에 더 우울해진다”고 했다. 맘껏 돈을 쓰고 나면 우울함이 증발된다고들 하지만, 자신보다 아이와 가족을 먼저 떠올리는 여성들이라면 ‘소비의 짜릿함’보다 ‘이후의 후회’가 진할 따름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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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 계절성 우울증, 스스로 벗어나기 위한 실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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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짐! 재취업을 위한 도전 여덟 살, 여섯 살 두 자녀를 둔 김영미(38·서울 동작구 사당동)씨는 내년 취업을 목표로 꾸준히 일자리를 검색하고 있다. 그간 막연하게 오전에만 할 수 있는 부업은 없는지 찾았고, 힘들거나 시간을 많이 투자해야 하는 일은 제외했는데 그러다 보니 마땅히 할 일이 없더라는 것. 이제 본격적으로 취업을 위한 ‘다짐 노트’를 만들어 적극적으로 공략하고 있다. 첫 줄은 ‘취직해서 아이들 휴대폰 사주기’라는 소박한 목표로 시작했지만 결심이 확실해지니 점점 자신의 40대, 노후 계획까지 멀리 보고 힘을 내게 되더라고. 이력서를 보낸 7군데 모두 묵묵부답인 지금 상황이 우울하긴 하지만, 이 또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제대로 찾게 해줄 기회라 여기며 자기소개서 한 줄에도 꿈을 싣고 있다.
1학년 아이처럼 일기 쓰기 초등학교 1학년 딸이 쓴 일기를 보고 ‘이렇게 감정 표현을 솔직히 다 하고 살면 좋겠다’는 부러움이 들었다는 최윤정(38·경기 안양시 귀인동)씨. ‘친구가 내 물건을 안 썼으면 좋겠다’ ‘선생님이 나를 안 시켜줘서 기분이 나빴다’는 식으로 거침없이 써 내리며 투덜대다가 어느새 기분을 푸는 아이를 따라 해봤다. 차마 말할 수 없던 서운함도 툴툴 털어놓고, 남편한테도 상의하지 못하던 꽉 막힌 속내도 마구 적었더니 자정작용이 되면서 우울함이 덜어지더라고. 자신의 마음 변화를 그대로 쓰다 보면 스스로 얽매이는 것들이 마음가짐과 행동에 따라 어떻게 변했는지 알 수 있다.
자신감 찾으면 우울감 줄어 ‘우울감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자신감을 갖는 게 최고’라 말하는 홍혜영(42·서울 서초구 서초동)씨. “주위에 온라인 쇼핑몰 세일하는 곳을 찾아 알려주고, 간식 만드는 요령도 알려주며 살림 정보꾼 역할을 하는 것도 큰 역할이다. 남과 비교해 좌절감을 맛보기보다 자신이 잘하는 분야에서 우쭐한 기분을 갖는 게 도움이 되는 것 같다”고. 이는 자신의 능력은 물론 자녀 교육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란다. ‘학원비 들여 100점 받는 것보다 스스로 해서 4개 틀리는 게 훨씬 잘하는 것’이란 소신이 아이한테도, 자신에게도 자신감을 갖게 하는 ‘생각의 전환’이라 전했다.
나만의 공간에서 스트레스 해소 찬 바람 부는 퇴근길을 거쳐 귀가해 엉망이 된 집, 제멋대로인 아이들을 보면 울고 싶을 정도라는 김정연(40·서울 성동구 성수동)씨. 그렇다고 아이들 앞에 쏟아 부을 수 없는 탓에 일단 집어 드는 것이 ‘자동차 열쇠’다. “혼자 차에 앉아 음악을 크게 틀어놓고 있다가 집에 돌아간다. 친정 부모님과도 같이 살다 보니 집 안에 나만의 공간이 없어 스트레스를 풀기 힘들었는데, 이렇게 풀고 나면 우울함이 덜해진다”는 김씨만의 해소법이다. 쌓인 스트레스가 원인이라면 스스로 해소하는 게 중요한 만큼 자기만의 방법을 찾는 게 필요하다. 여자가 남자에 비해 장수하는 이유는 남자들은 속으로 삭이는 반면, 여자들은 풍부한 감성을 이용해 잘 울고 웃음으로써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때문이라는 조사도 있다.
아침 운동으로 활기 찾기 성은주(40·경기 용인시 죽전동)씨는 아이들이 일어나기 전 근처 탄천에 나가 30분씩 걷는다. “아침에 신선한 공기를 마시니 심신이 상쾌하게 깨어나고 기분이 달라진다. 아이들한테 아침 잔소리도 덜하고, 일찍 잠자리에 드니 늦은 밤 우울해지는 일도 사라졌다”는 소감. 우울한 상태에 빠지면 걷는 일도 귀찮아지고 운동량이 감소하는데, 그럴수록 활동이 필요한 것 같다고. 단 혼자서 걷기는 오래가지 못하고 지루하니 파트너와 함께 수다를 떨며 해볼 것을 권했다.
코드 맞는 이들과 수다, 모임 아이들 등교 후 삼삼오오 요가원에 다니거나 수영을 배우러 가는 엄마들이 눈에 자주 띈다. 조용한 야외 카페에서 정기적으로 모임을 갖는 엄마들도 많다. 우울할 때는 이렇게 주변 사람들과 어울려 맘껏 수다를 떠는 것이 묘약임을 경험한 이들이다. 우울에서 벗어나려면 자신의 감정을 누군가에게 말하는 것이 중요하다. 정신과 의사나 부모, 친구 등 누구라도 자신이 편하다고 느끼는 사람에게 털어놓고 도움을 청한다. 마주한다는 것부터가 치유의 시작이며, 무엇을 하든 수동적인 것보다 능동적으로 해보는 것이 좋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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