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은 소 / 정임표 - 임명희의 자전에세이『공장지대』를 읽고
1950년 6월 25일 부터 3년 1개월간 지속된 한국전쟁은 약 450만 명의 인명피해(남한 200만, 북한 250만 추산)와 1천만 명이 넘는 이산가족을 만들었다. 43%의 산업시설과 33%의 주택이 완파되었으며, 수십만 명의 전쟁미망인과 고아를 남겼다. 임명희의 자전에세이『공장지대』는 그 지옥의 시대를 일구어 낸 한 소녀가 오늘의 사람들에게 들려주는 “묵시록(黙示錄)”이다. 우리는 그의 글에서 무엇을 읽어낼까?
우리는『공장지대』에서 역사의 주체가 아닌, 내 신체 부위의 끝단인 발뒤꿈치의 굳은살 조각 같이 언제 내 몸에서 떨어져 나가도 따끔한 느낌조차도 주지 못하는 미자, 연옥이(남득이), 금옥이, 옥자, 순분이, 덕철이, 끝남이, 간난이, 춘자, 경자 같은 열대여섯 난 소녀들과 그 보다 조끔 더 큰 진순이 언니, 영월언니 같은 고만고만한 소녀들을 만난다. 의붓아비를 두었거나 계모 밑에서 자랐거나 고아거나, 집이 있지만 입 하나라도 덜고 싶어 하는 반길 이 하나 없는 전라도 경상도 충청도 강원도등 경향각지에서 몰려온 태생부터 흠집투성이인 들꽃 같은 아이들이다. 온기 없는 가정을 출애굽 하듯이 벗어나서 공장지대로 흘러든 그들은 신분부터 감춘다. 본명도 주소도 지운다. 한글을 몰라도 대학생처럼 보이려고 애를 쓴다. 출신성분이 노출되면 평생 인간대접을 받지 못하는 굴레로 작용 할 것임을 너무도 잘 아는 때문이다. 편지를 쓸 줄도 읽을 줄도 모르는 문맹이 대부분인 소녀들은 작가처럼 중학교가 가고 싶어서 공장지대로 들어왔다고도 하지 않는다. 그저 막연한, 작가의 표현대로 “그냥” 그렇게 가다보면 농촌에서 버티는 것 보다는 새로운 무슨 희망이 생기지 않을까 여긴 그 막연함을 향해 모여든 것이다. 그러나 당시의 공장지대는 꿈 많은 소녀들에게 꿈은커녕 잠잘 곳과 먹을 것조차도 제대로 해결해 주지 못한다. 남득이라는 이름을 연옥이라는 이름으로 세탁했지만 다시 공순이 공돌이이라는 새로운 이름의 굴레를 쓰게 되니 소녀들에게 꿈은 아득히 먼 나라의 사치품이었다. 그렇지만 소녀들은 포기하지 않고 자신이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자기 꿈을 만들어 나간다. 일과 후 한글 깨우치기와 바둑 배우기가 그것이다. 그러나 세상은 그 작은 꿈마저 꾸지 못하도록 한다. 공장지대로 짜인 틀을 위태롭게 만드는 “의식화 교육”이 아닌지 의심과 감시를 받게 되고, 왜간장에 마아가린를 넣어서 비빈 밥을 먹으면서 고향으로 송금한 피 눈물 같은 돈들은 ‘그거 몇 푼이나 된다고’로 표현되는 하찮은 취급을 받으며 무가치 곳에다 소용되어버린다.
꿈을 가로 막는 너무나 많은 장애물들이 가발을 심는 촘촘한 그물망처럼 어린 소녀들 앞에 널려져 있다. 그 그물망을 벗어나서 자유를 누린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어쩌면 거기서 벗어나려는 꿈을 꾼다는 것 자체가 주제넘은 일이고 건방진 일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더욱 화가 난다. 『까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을 읽고 있는 저자의 꼴을 보고 책을 빼앗아 방바닥에 패대기치며 “웃기고 자빠졌네”로 표현하는 경자의 모습이 바로 그걸 대변한다. 그건 조소가 아니라 한 많은 세상을 향해 공돌이 공순이들이 보내는 좌절이자 분노였다. 연탄가스에 중독된 사근동 뚝방촌의 소녀, 미혼모인 처지를 비관하여 자살한 소녀, 사창가로 팔려간 소녀, 남의 집 가정부가 된 소녀, 월급날만 되면 공장 문 앞에까지 찾아와서 월급 봉투째로 받아 가는 부모를 둔 보호자 없는 소녀, 추위와 굶주림과 거친 작업환경으로 인해 중병이든 소녀들은 그렇게 하나 둘씩 들꽃처럼 꺾이고 쓰러졌지만, 함께 동고동락하는 풀꽃들 외에는 아무도 슬퍼하거나 위로를 베풀지 않는다. 가끔씩 수위아저씨처럼 힘도 없는 인자한 아저씨만이 있을 뿐.
“그물망을 짜는 자와 그 그물에서 벗어나려는 자.” 소녀들이 도착할 가나안 복지는 어디에 어떤 모습으로 존재하고 있는 것일까?
작가는 꿈을 찾아 떠난 소녀가 처음 배운 기술이 촘촘한 그물망에다 남의 머리카락을 심는 “가발(假髮)”을 만드는 일임에도 그게 돈으로 연결되니 무엇보다도 좋았다고 한다. 산업화로 치달으면서 우리의 삶이 온통 가짜의 세계로 빠져 들어갔지만 돈으로 연결되니 그게 가짜든 진짜든 불문하고 우리 눈에 보기 좋았더라는 소리이기도 하다. 정말 그리 느꼈을까? 그게 아니기에 일흔을 바라보는 작가는 소가 그 위장 속에다 으적으적 삼켜둔 여물을 끄집어내어 되씹듯이 꾸역꾸역 옛 기억을 되새김질 해 놓은 것이다. 『공장지대』는 작가가 1960년대 후반에서 1970년대 까지 4~5년 동안 면목동 오성공업사에서 부터시작하여 삼정양행의 가발공 생활을 하면서 체험한 스무살까지의 이야기를 쓴 책이다. 그는 무엇을 말하고 싶었던 것일까? 이 책을 다 읽고 난 날이 2016년 5월 14일 토요일이었다. 공교롭게도 그날 대구매일신문에 “늙은 소”라는 제목으로 계명대 한문교육과 교수 이종문의 한시산책이 실렸다.
늙은 소 / 정래교
盡力山田後(진력산전후) 孤鳴野樹根(고명야수근) 何由逢介葛(하유봉개갈) 道汝腹中言(도여복중언) 밭에서 죽으라고 일을 한 뒤에 나무에 묶인 채로 외롭게 우네 소의 말 아는 사람 어디 좀 없나 저 슬픈 울음소리 통역 좀 해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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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이후 추신> 임명희의 자전에세이『공장지대』에 대한 찬사 정임표추천 0조회 1216.07.06 11:08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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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명희 작가님은 우리 수필계에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고 있다고 보여 집니다. 1960년대 후반에서 1970년대 이야기를 쓰셨으니 다음은 아마 70년대 부터 80년대 이야기가 나오지 않을까 기대 합니다. 그렇게 자전 에세이를 계속 발표하시게 되면 그게 우리 근현대사 이야기가 될 것입니다.
제가 독후감을 쓰면서 작가가 적은 월남 파병 이야기를 빠트렸는데 "공순이들과 죽음의 전장터로 나간 젊은 군인들과 팬팔을 나누는 이야기" 입니다. 6,70년대 우리사회의 버팀목이 되는 밑바닥 인생들의 삶이 오늘날 어떻게 변화 되었는가요? 금수저 흙수저로 대변되는 우리사회는 여전히 심각한 신분세습의 갑질 사회가 아닌가요?
시나 수필이나 개인의 신변 잡사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문학 대접 받지 못합니다. 자기가 체험한 이야기를 쓰되 모두의 이야기가 되도록 공동체 정신에 입각한 대승적인 글을 써야 문학 대접을 받게 될 것입니다. <<공장지대>>는 아주 훌륭한 수필입니다. 내가 문학상 심사위원이라면 최고의 수필문학상을 드릴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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