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우그룹의 비극(?)이 시작된 것은 IMF가 터진 직후
김우중 회장이 전경련 회장직을 맡으면서 부터가 아닌가 합니다.
물론 그 이전에도 대우그룹은 자금력이 풍부하지 않아서 문제가 많이 있긴 했습니다만,
IMF가 터진직후 정부의 서슬이 퍼럴 때
이건희 마저 맡지 않겠다며 몸부림 치던 전경련 회장직을 덥섭 받아 들인게 결정적이었던 거 같습니다.
왜 이건희가 안 맡을려고 했냐면
IMF가 터진 당시에는 삼성뿐 아니라 모든 대기업들의 부채비율이 어머어마했던 터라 정부에서 막아주지 않으면 기업이 망하는 건 일도 아니었기에 정부 지시라면 모두 두말 하지 않고 하던때였으니까…그런상황에서 재계를 대표한다는 건 무모했기 때문이죠.
전경련 회장의 특성상 어느 정도는 정부정책에 맞서 재계의 목소리를 내야하는데 당시의 분위기상으로는 그랬다가는 그대로 황천길이었죠.
IMF가 막 터져서 국가가 죽느냐 사느냐는 판국에 대기업 하나 넘어가는게 대수였겠습니까?
당시 대기업 총수들이 대통령 앞에서는 하나같이 90도로 허리를 숙여 인사를 올릴 정도로 기업의 생사라는 것이 그때는 파리 목숨에 가까웠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우중 회장이 전경련 회장직을 맡은건 아마 대우자동차 때문이었을 겁니다.
대우자동차를 살리기 위한 자금마련이 목적이었던 거죠.
전경련 회장임을 이용하여 마치 정부에서 주도하는 것처럼 “대우전자-삼성자동차”간 빅딜을 밀어붙였고 적자투성이 삼성자동차를 맡는다는 명분으로 거액의 현금을 삼성으로부터 받을려고 했었죠.
대우전자는 그래도 지 밥값은 한다는 논리를 펴면서요.
당시 요구한 현금이 대략 2조원 정도였던걸로 아는데요…
이건희도 첨에는 그런줄 알고 응했는데,
삼성전자에 합병되면 곧 해고될 게 뻔했던 대우전자 직원들이
당시 정부를 향해 대우전자 주식만 맡겨주면 자력갱생 하겠다는 의견을 전달했고,
정부에서는 이건 우리가 추진하는 일이 아니다 라고 발표를 해버리면서
모든게 뽀록이 나서 결국 빅딜도 유야무야가 되어 버렸습니다.
그리고는 대우그룹에 유동성 위기가 오면서 부채까지 급격히 증가했는데요…
항간에서는 이른바 ‘이건희 괘씸죄’에 걸려서 그런 거라는 말들이 많이 떠돌았습니다.
‘빅딜’쇼에 속은 걸 안 이건희가 제 2금융권을 동원해서 대우그룹 부채 만기연장을 안 해줬다고 하더군요…
그리고 그보다 앞서 김우중 회장 자신이 전경련 회장이다 보니
모두가 숨죽일 때 어떤 정부정책에 반대하며 “No”를 크게 외친 일이 있었는데,
그일 또한 대우그룹 해체에 크게 작용했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당시 신문 시사만평만화로 실릴정도로 큰 반향을 일으킨 사건이었거든요.
김우중 회장이 큰 안목을 가지고 “세계경영”을 외치며
해외시장을 적극적으로 개척한 선구자 역할을 했던 건 사실입니다만,
그 역시 철저한 사업가이고 실적주의자였기 때문에
대우그룹의 주력이었던 무역, 조선, 자동차 이외의 계열사들에게는 정말 비인간적 처사를
저질렀다는 것도 같이 알아야 합니다.
특히 빅딜 대상에 올렸던 대우전자는 대우자동차 판매를 위한 딜러망 정도로 여겼는데요.
IMF 터지고 난뒤에는 그룹이 어렵다며 대우전자 직원들에게 대우자동차 판매할당량을 조기 달성할 것을 강요하여 실적을 챙기더니 급기야는 대우전자 직원들에게 자동차가 있던 없던 무조건 대우자동차 한대씩을 더 떠 맡긴 다음 곧바로 빅딜대상에 올려버린 건 유명한 사건이었죠.
어쨌든 김우중 회장 본인으로서야 억울함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대우그룹 문제는 어디까지나 그들끼리 알아서 할 문제이지 뭐 특별히 의미를 부여할 일은 아니라고 봅니다.
솔직히 이제는 기업가들이나 기업들에게 크게 기대도 되지 않고,
대우가 부활해 봤자 현재 재벌기업들과 별반 다를꺼 같지도 않아 보입니다.
다만 대우그룹 해체에는 여러가지 원인이 복합적으로 작용을 했는데
그 것을 다 무시하고 오로지 당시 정부의 기획해체로만 몰아간다면
지난시절 국민의 정부와 참여 정부때의 행적에 대한 시비를 걸게 뻔하기 때문에
궁지에 몰린 새눌당에서 이를 정략적으로 이용하여 또 국민의 눈을 돌리려고는 하지 않을까 하는
그런 걱정이 앞서는 군요.
대우그룹 기획해체설이 모락모락 피는 걸 보니 참 걱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