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새봉에서 바라본 덕유주릉의 향적봉과 중봉(오른쪽)
우리가 이야기하는 바로 이 순간에도
질투 많은 시간은 새나가고 있으니
현재를 잡아라
내일은 아주 조금만 믿어라
―― 호라티우스
▶ 산행일시 : 2018년 1월 20일(토), 아침에는 흐리고 바람, 점차 갬, 미세먼지
▶ 산행인원 : 18명(영희언니, 모닥불, 스틸영, 중산, 악수, 대간거사, 한계령, 온내,
산정무한, 인치성, 사계, 상고대, 신가이버, 오모육모, 마라톤, 대포, 무불, 메아리)
▶ 산행거리 : GPS 도상 15.8km
▶ 산행시간 : 11시간 25분
▶ 교 통 편 : 45인승 대형버스 대절
▶ 구간별 시간(산의 표고는 가급적 국토지리정보원 지형도에 따름)
00 : 22 - 동서울터미널 출발
02 : 46 - 덕유산휴게소
03 : 57 ~ 04 : 25 - 거창군 북상면 병곡리, 병곡리마을회관, 산행준비, 산행시작
05 : 00 - 능선
06 : 20 - 제비봉(△1,046.7m)
07 : 18 - 헬기장
08 : 17 - 지보봉(1,379.9m)
09 : 14 - 가림봉(1,432.2m)
09 : 52 - 동엽령(冬葉嶺)
11 : 02 - 백암봉(白岩峰, 1,500.4m)
11 : 20 - 1,490m봉, ┫자 능선 분기, 왼쪽이 가새봉 가는 능선
11 : 45 ~ 12 : 23 - 1,395.7m봉, 점심
13 : 05 - 가새봉(1,368.9m)
14 : 04 - 1,165.7m봉
15 : 38 - 용추계곡, 임도
15 : 50 - 안성탐방지원센터 주차장, 산행종료
16 : 24 ~ 18 : 20 - 무주, 목욕(그린모텔사우나), 저녁
20 : 50 - 동서울터미널, 해산
1. 구글어스로 내려다본 산행로
▶ 제비봉(△1,046.7m)
45인승 대형버스에 18명이 타고 가니 각자 차지한 좌석이 2개 또는 4개다. 앞뒤 간 엇갈리
게 앉아 등받이를 뒤로 한껏 젖히게 되고 침대차 다름이 아니다. 곧바로 차내 미등까지 소등
하여 취침모드에 들어간다. 역시 큰 차라서 고속속도로 달리는 중에 차체 요동도 적다. 덕유
산휴게소가 잠시 안면방해할 뿐 세상모르고 잔다.
병곡리마을회관 앞의 너른 주차장에는 우리 버스뿐이다. 제비봉 들머리인 빙기실 마을 빙기
실교까지는 530m 정도 더 들어가야 하는데 일부 도로공사 중이라 대형버스는 통행하기 어
렵다. 이곳 새벽기온은 영하 7도다. 미리 스패츠 매고 복장 튼튼히 여민다. 섣달 나흘 날은
무월광이다. 몇몇 별들만 미세먼지 뒤집어써서 흐릿하다.
대로를 걸어간다. 워밍업하기 적당하다. 분계천(分界川)을 빙기실교로 건넌다.
분계천은 동엽령(1,359m)에서 발원하여 동남쪽으로 흘러 농산리 부근에서 거창 위천에 유
입한다. 동엽령은 거창군과 무주군이 경계를 이루는 분수계다. 분계 지명은 조선시대 이곳에
있었던 분계리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한편 병곡(竝谷)은 서쪽 산수리(山水里) 계곡과 나
란히 짝을 이루어 지명이 유래되었는데, 빙기실이라고도 한다.
어디로 올려칠까 산기슭 경사도와 덤불숲을 가늠해보며 여러 헤드램프로 두리번거리다 왼쪽
사면을 오르는 돌계단 길을 찾아냈다. 의외로 싱거운 시작이라 잔뜩 힘준 눈과 발에 약간 김
이 빠진 건 잠깐이다. 돌계단 길은 우리를 땡땡 얼어붙은 호두나무밭으로 인도하고 사라졌
다. 이내 간벌한 잡목 숲을 헤쳐 오른다. 다행히 간벌이 사납지 않다.
능선마루에 오르고 눈은 응달진 곳에 군데군데 모였다. 길게 올랐다가 짧게 내리고 다시 길
게 오르기를 반복한다. 외길이다. 능선마루 양쪽 사면은 가파르고 깊다. 956.6m봉에서 숨 고
르고 오른쪽으로 방향 틀어 약간 내렸다가 길게 오른다. 눈길이 시작된다. 설벽이다. 눈 표면
이 딴딴하게 얼었다. 걸음걸음 발 앞꿈치로 찍어가며 오른다. 이 오르막 눈길을 러셀하려 했
다면 무척이나 애먹었을 것이다.
제비봉. 삼각점은 눈 속에 묻혔고 작달막한 안내판이 있다. ‘무풍 446’. 어둠 속 헤드램프 밝
혀 아침 요기한다. 한속은 어묵탕, 호박죽으로 덥힌다. 제비봉을 한 피치 뚝 떨어져 내리고
오름길에 암봉과 맞닥뜨린다. 고개를 뒤로 젖혀 올려다보는 암벽을 직등하기는 아무래도 어
렵다. 오른쪽 사면은 깊은 절벽이다. 왼쪽 사면이 낫다. 긴 슬랩의 크랙을 비집어 오른다.
이때는 손바닥을 암벽에 밀착하거나 돌부리를 움켜쥐고도 손 시린 줄을 모른다. 반대편이 블
라인드 코너가 아닐까 하는 불안감이 없지 않지만 어둠과 다수가 용기다. 암봉 오르고 잡목
헤치는 길이 이어지지만 우리가 오른 길이 맞았다. 너른 헬기장이 나온다. 해뜨기 직전이다.
2. 해 뜰 무렵 헬기장에서
3. 해가 뜨자 바람과 미세먼지로 일기가 사나워졌다
4. 눈 표면이 딴딴하게 얼어 러셀하지 않으니 걷기가 수월하였다
5. 고도를 높일수록 눈은 깊고, 눈 속에 느닷없이 빠지는 경우가 잦았다
▶ 지보봉(1,379.9m), 가림봉(1,432.2m), 백암봉(1,500.4m)
헬기장 지나고 첩첩 산을 한 꺼풀씩 벗겨낸다. 눈 온 후로 우리가 처음 가는 길이다. 얼은 눈
은 걷기에 수월하지만 느닷없이 발이 푹 빠지는 수가 잦다. 그때마다 눈이 깊어 허우적거린
다. 앞사람의 발자국을 그리 믿을 바가 되지 못한다. 몸무게 때문이리라. 나는 빠지고 만다.
낮은 포복하여 팔꿈치까지 동원한다. 몇 번이나 내려 쌓인 눈(우리는 ‘썩은 눈’이라고 한다)
이니 빠진 발을 빼내는 데도 힘이 든다.
나뭇가지 사이로 해가 뜨고 갑자기 맑던 하늘이 흐려진다. 찬바람이 세차게 불어대고 안개인
지 미세먼지인지 몰려온다. 금세 건너편 덕유주릉 무룡산을 가린다. 때로는 산죽 숲의 깊은
눈을 헤친다. 1,379.9m봉. ‘지보봉’이라고 한다. 서울청산수산악회에서 표지판을 달아놓았
다. 바람 피해 왼쪽 사면으로 약간 내리고 휴식한다. 이틈에 신가이버 님은 어묵탕을 끓인다.
컨디션 난조인 온내 님이 맨 후미로 도착하고 바로 출발한다. 고도 40m를 내렸다가 100m를
올려친다. 가파른 오르막길 눈이 깊다. 스퍼트 낸다. 앞사람의 발자국을 착실히 따른다. 앞사
람이 눈 속에 빠졌으면 나도 빠져준다. 미세먼지(?)로 불과 몇 미터 앞이 캄캄하다. 많은 등
산객들이 서성이는 것으로 보아 덕유주릉 1,432.2m에 올랐다.
누군가 돌탑에 ‘가림봉’이라고 썼다. 상고대 눈꽃 움트게 찬바람은 불고 사방이 흐려 아무 볼
것이 없고 내쳐간다. 이제부터 길 좋다. 울퉁불퉁한 돌길을 눈으로 탄탄하게 포장했다. 이러
면 속도전이다. 내릴 때는 발바닥이 간지럽게 미끄럼을 탄다. 다만 눈길이 좁아 마주 오는 등
산객을 비킬 때는 조심해야 한다. 통 크게 양보하느라 등로를 벗어나면 허벅지까지 차는 눈
속에 빠진다.
묵직한 봉우리 2좌 넘으면 동엽령이다. 등산객들로 장이 섰다. 양지바른 데크 쉼터 세 곳을
차지하여 먹고 마신다. 이때는 바람이 자고 사뭇 봄날이다. 탁주는 덕산 명주 그리고 중산 님
이 사케를 준비했다. 안주는 예의 메아리 대장님의 과메기와 스틸영 님의 쇠고기무침이다.
사케는 확실히 데워 마셔야 제 맛이 난다. 안주발에 금방 술기운이 얼근해진다. 일부러 오래
쉬려 한다. 그래야 가새봉 가는 길의 얼었던 눈이 녹아 거기에 푹푹 빠지는 맛이 있다.
동엽령(冬葉嶺)은 원래는 동업령(同業嶺, 동업이재)이었던 모양이다. 『한국지명유래집』
에 따르면 무주군 안성면 공정리 통안에서 거창군 북상면 월상리로 넘어가는 재를 높고 멀어
서 ‘혼자는 못 가고 여럿이 모여야만(同業)’ 올라갈 수 있었다고 전한다. 일제 강점기에 발간
된 조선 총독부의 지형도에서는 동업령의 ‘동’이 ‘겨울 동(冬)’으로 기록되어 있다고 한다. 국
토지리정보원 지형도에는 ‘冬葉嶺’으로 표기하고 있다.
백암봉 가는 길. 도상 2.3km가 줄곧 오르막이다. 속도 내기 알맞은 눈 포장길이다. 1,300m
대 준봉 3좌는 왼쪽 사면으로 길게 돌아 넘는다. 주릉에 들면 걸음마다 전후좌우 원경이 경
점이다. 백암봉 가는 길이 만년설원이다. 그러나 여느 때는 뒤돌아보면 지리산 주릉이 하늘
금으로 분명했는데 흐린 오늘은 가망이 없다. 가까운 무룡산마저도 가렸다.
점차 날이 개고 따스하다. 오가는 등산객이 많다. 앞에 펼쳐지는 너른 설원은 가경이라 자주
걸음을 멈추게 한다. 1,378.2m봉 넘고 가파른 데크계단 오르막이 이어진다. 백암봉(白岩
峰). 많은 등산객들이 모여 있다. 오른쪽 빼재로 가는 백두대간 길도 눈길이 잘 났다. 진작 앞
서간 대간거사 님과 오모육모 님이 1,490m봉에서 떨며 기다리고 있지나 않을까 쉬려다 말
고 발걸음을 재촉하다.
6. 덕유주릉 동엽령 가는 길. 눈길이 다져서 줄달음하기 좋다
7. 동엽령 가는 길, 점차 날이 개기 시작한다
8. 동엽령 가는 길
9. 동엽령에서 바라본 백암봉 쪽 지리주릉의 서쪽 사면
10. 백암봉 가는 길. 앞은 모닥불 님
11. 끝이 백암봉이다
12. 백암봉 가는 길의 1,378.2m봉
13. 중봉
14. 왼쪽이 가새봉
15. 가새봉. 장쾌한 덕유주릉을 가장 잘 볼 수 있는 경점이다
▶ 가새봉(1,368.9m)
중봉 가는 길은 사계절 장관이다. 봄날에는 진달래 수놓은 길이 오늘은 백설로 단장하여 한
층 장려하다. ┫자 능선이 분기하는 1,490m봉은 설산인 중봉을 바로 바라볼 수 있는 경점이
다. 우리는 한참 휴식하다 왼쪽 능선의 가새봉을 향한다. 표면이 얼었던 눈은 얼추 녹았다.
깊다. 내리막이라 우선은 낫다. 잡목 헤치랴 앞사람 발자국에 내 발 맞추랴 손과 발이 여간
바쁘지 않다.
한 피치 길게 떨어졌다가 잠깐 멈칫한 1,395.7m봉 눈밭에서 점심밥 먹는다. 바람이 불지 않
고 따스한 햇볕이 가득하여 밥 먹고 나자 노곤해진다. 가새봉 오르는 길은 여전히 험로다. 날
등은 암릉이라 오른쪽 사면으로 돌아 넘고 암벽 밑을 지나 슬랩 오르고 산죽 숲 헤쳐 정상에
선다. 덕유주릉의 장쾌한 모습을 여기보다 더 잘 볼 수 있을 데가 또 있을까 싶다. 향적봉에
서 중봉과 백암봉 넘어 무룡산에 이르는 주릉이 장성장릉이다.
우리는 지난 한겨울에만 두 번이나(2011.1월과 2016년 1월이다) 이곳을 올랐다. 그럼에도
가슴 벅찬 감동은 그때에 비해 조금도 덜하지 않다. 깊은 눈 속 잡목과 산죽 숲을 헤쳐 가새
봉 정상을 벗어나고 헬기장 눈밭에서 휴식한다. 이제부터는 내리막길의 연속이다. 미끄러져
넘어지고 자빠지고 엎어지는 것은 대개 오르막이 아니라 내리막이다. 조심하고 또 조심하여
내린다.
가새봉 내리막길은 오른쪽 가파른 사면을 길게 트래버스 하여 주능선에 든다. 산죽 숲길이
다. 다른 때는 키 큰 산죽 숲 사이로 길이 잘 났는데 오늘은 눈이 쌓여 키 큰 산죽이 길을 가
로막고 누워버렸다. 새로이 거칠게 길을 낸다. 그런 산죽 숲길의 연속이다. 숨 가쁘게 쏟아지
던 내리막길이 잠시 주춤하고 여러 잔봉우리 오르고 내린다. 1,165.7m봉은 왼쪽 사면으로
돌아 넘는다.
묵은 헬기장 눈밭에서 가새봉과 그 왼쪽 뒤 중봉의 위용을 다시 본다. 남진한다. 고도 1,000
m를 벗어나자 눈은 눈에 띄게 얕아졌다. 낙엽이 드러나기 시작하고 언 땅에 걸핏하면 미끄
러져 넘어진다. 아예 자세 낮춰 내린다. 용추계곡 통안천에 다다르고 살금살금 발소리 말소
리 죽여 계류 건너고 주등로인 임도에 올라선다. 산행 내내 고전하였던 한계령 님의 완주 소
회, 지금껏 살아오면서 자신에게 축하할 일을 두 가지 든다면 술을 끊은 일과 오늘 산행의 완
주라고 한다. 어쩌면 중산 님의 시종 앞장 선 넉넉한 완주에 말은 못하고 속으로만 끙끙댔을
지도 모를 일이다.
임도 1.2km는 빙판이다. 빙판은 수많은 등산객들이 아이젠으로 무수히 쪼아놓아 그다지 미
끄럽지 않다. 줄달음한다. 안성탐방지원센터 앞에 공중화장실이 있다. 2011년 1월 15일 산
행 때의 일이다. 하늘재 님이 이 화장실 앞에다 스틱을 세워두고 일을 보고 화장실을 나설 때
는 그만 스틱을 잊고 버스를 탔다. 그대로 버스가 출발하고 얼마간 시간이 지나서야 하늘재
님은 스틱을 두고 온 것을 알았다.
버스 안에서 안성탐방지원센터에 전화하여 화장실 앞에 둔 스틱의 안부를 물었으나 ‘없다’라
는 답변이었다. 옆 좌석에 앉아 그 얘기를 들은 숙이 님이 자신의 속앓이를 다독였다. 실은
자기도 거기에 스틱을 두고 왔는데 이제 조금은 덜 섭섭하다고.
16. 중봉
17. 중봉, 오른쪽 능선은 오수자굴을 거쳐 백련사로 간다
18. 중봉
19. 중봉
20. 가새봉에서 바라본 덕유주릉 백암봉
21. 왼쪽이 향적봉, 오른쪽은 중봉
22. 가운데가 우리가 지나온 능선, 왼쪽은 중봉
23. 앞은 가새봉, 그 왼쪽 뒤는 중봉
첫댓글 요즘 눈보기가 대갓집 자손보기 보다 귀해서 도무지 대첩에 이를 정도가 된 적이 없는 거 같네요. 남은 겨울기간에 어떻게 잘 되길 기대해 봅니다.
1368.9 m 봉이 무명봉인줄 알았는데, 가새봉이라는 명칭이 있는 산이었군요.
2011년에 숙이님은 이곳에서 코에 동상이 걸려 고생한 기억이 납니다.
모든 분들 수고하셨습니다....
오직 가새봉 전망을 그리며 열심히 올랐고
시간도,체력도 가능했었는데 허망하게 지나쳐
버렸네요.
바로 앞에 선두가 있었는데 ..날씨가 허락하면 다시 가봐야겠네요.
ㅋㅋ 죄송합니다^^
거시기는 재작년에 다 쓸어가서 보이질 않더라구요, 미세먼지만 없었어도, 끝내주는 하루였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