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장례식장에서 💐
외삼촌이 새아버지 멱살을 잡고 소리쳤습니다. “남의 여자 돈 보고 들어온 놈이 이제 보험금까지 노리냐?” 저는 그 자리에서 엄마가 6년 동안 쓴 가계부를 펼쳤습니다.
엄마는 제가 고등학교 2학년 때 재혼했습니다. 아버지는 제가 열 살 때 집을 나갔고, 그 뒤로 연락 한 번 없었습니다. 엄마는 혼자 식당 일을 하며 저를 키웠습니다. 늘 강한 사람인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제가 열일곱 살 되던 해, 엄마가 조심스럽게 말했습니다.
“엄마가 만나는 사람이 있어.”
저는 그 말을 듣자마자 화를 냈습니다.
“엄마는 아빠를 벌써 잊었어?”
사실 아빠는 좋은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생활비도 제대로 주지 않았고, 엄마를 자주 울렸습니다. 그런데도 저는 엄마가 다른 남자를 만난다는 사실이 싫었습니다. 마치 내 어린 시절이 부정당하는 것 같았습니다.
새아버지는 동네 작은 철물점을 하던 사람이었습니다. 말수가 적고, 웃을 때도 조심스러웠습니다. 처음 우리 집에 온 날, 그는 제 앞에 과일 바구니를 내려놓고 말했습니다.
“네 엄마 외롭게 하지 않으려고 왔다. 네 아버지 자리를 뺏으러 온 건 아니다.”
저는 대답하지 않았습니다.
그 후로도 저는 그를 아저씨라고 불렀습니다. 엄마가 아무리 타일러도 아버지라고 부르지 않았습니다. 그는 한 번도 강요하지 않았습니다. 제 졸업식에도 왔지만, 사진 찍을 때 뒤로 물러났습니다.
“친척들하고 먼저 찍어라. 나는 나중에.”
그때도 저는 그 배려를 몰랐습니다. 그냥 남이라서 뒤로 빠지는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대학에 들어간 뒤 저는 집을 떠났습니다. 엄마와는 자주 통화했지만, 새아버지와는 거의 말하지 않았습니다. 명절에 집에 가면 그는 늘 부엌에서 과일을 깎고 있었습니다.
“왔냐. 배고프면 밥 차려줄게.”
그게 전부였습니다.
엄마가 아프기 시작한 건 6년 전이었습니다. 처음엔 위염인 줄 알았습니다. 밥을 먹으면 속이 더부룩하고, 자주 토했습니다. 병원에서는 큰 병원에 가보라고 했고, 결국 췌장암 진단을 받았습니다.
그날 저는 병원 복도에 주저앉았습니다. 엄마는 오히려 저를 달랬습니다.
“괜찮아. 요즘 의학 좋다잖아.”
하지만 괜찮지 않았습니다. 항암이 시작되자 엄마는 머리카락이 빠졌고, 몸무게가 빠르게 줄었습니다. 저는 회사 때문에 매일 병원에 갈 수 없었습니다. 그 빈자리를 채운 사람이 새아버지였습니다.
그는 철물점을 일찍 닫고 병원에 왔습니다. 엄마가 입맛 없다고 하면 새벽시장에 가서 전복을 사고, 죽을 끓였습니다. 항암 후 구토가 심한 날에는 밤새 엄마 등을 두드렸습니다. 간호사가 보호자 서명을 부르면 언제나 그가 일어났습니다.
저는 가끔 병원에 가서 그런 모습을 봤습니다. 그래도 마음 한구석에서는 그를 완전히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너무 늦게 온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엄마의 고생을 전부 본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엄마는 돌아가시기 한 달 전, 제 손을 잡고 말했습니다.
“네 새아버지한테 너무 모질게 굴지 마라.”
저는 눈물을 참으며 말했습니다.
“엄마, 왜 자꾸 그 사람 걱정해?”
엄마는 웃었습니다.
“그 사람 아니었으면 엄마 6년 못 버텼다.”
저는 그 말을 제대로 듣지 않았습니다. 엄마가 약해져서 그런 말을 한다고만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엄마는 돌아가셨습니다.
장례식장에 외가 친척들이 몰려왔습니다. 평소에는 거의 연락도 없던 외삼촌과 이모들이 갑자기 슬픈 얼굴을 하고 나타났습니다. 그들은 엄마 영정사진 앞에서 울었고, 사람들 앞에서 말했습니다.
“우리 언니가 얼마나 고생했는데.”
“젊어서 남편 잘못 만나고, 늙어서 병까지 얻고.”
새아버지는 조용히 구석에 앉아 있었습니다. 상복을 입었지만, 누구도 그를 상주처럼 대하지 않았습니다. 친척들은 조문객들에게 저를 가리키며 말했습니다.
“딸이 상주야. 저 사람은 재혼한 남자고.”
저는 그 말을 듣고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솔직히 저도 그가 어떤 자리에 서야 하는지 몰랐습니다.
문제는 둘째 날 밤에 터졌습니다. 외삼촌이 술에 취해 새아버지에게 다가갔습니다.
“보험금은 어디 갔어?”
새아버지는 조용히 말했습니다.
“그건 지연이가 처리할 겁니다.”
외삼촌은 갑자기 새아버지 멱살을 잡았습니다.
“남의 여자 돈 보고 들어온 놈이 이제 보험금까지 노리냐? 우리 누나가 너 때문에 고생하다 죽었어!”
장례식장이 조용해졌습니다. 새아버지는 반항하지 않았습니다. 그냥 두 손을 내려놓은 채 서 있었습니다. 그 모습이 이상하게 제 마음을 찔렀습니다.
외삼촌은 저를 보며 말했습니다.
“너 정신 차려라. 저런 놈한테 엄마 돈 뺏기면 안 된다.”
그 순간 저는 가방에서 엄마가 남긴 가계부를 꺼냈습니다. 엄마가 돌아가시기 전, 제게 맡긴 것이었습니다. 저는 그때 제대로 읽어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장례식 전날 밤, 잠이 오지 않아 펼쳐봤고, 모든 걸 알게 됐습니다.
저는 가계부를 식탁 위에 펼쳤습니다.
첫 페이지에는 엄마 글씨로 이렇게 적혀 있었습니다.
‘2018년 3월, 항암 시작. 병원비 230만 원. 그이 철물점 적금 해지.’
다음 장.
‘2019년 7월, 입원비 410만 원. 그이 오토바이 팔아서 냄.’
또 다음 장.
‘2021년 11월, 지연이한테는 말하지 말 것. 아이가 마음 아파한다. 그이가 또 돈을 빌려왔다.’
페이지마다 새아버지 이름이 있었습니다. 엄마 병원비, 약값, 간병비, 생활비. 대부분을 새아버지가 감당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외삼촌을 바라보며 말했습니다.
“삼촌, 엄마 입원했을 때 병원에 몇 번 오셨어요?”
외삼촌은 얼굴이 굳었습니다.
“그게 지금 무슨 말이야?”
저는 계속 말했습니다.
“엄마 항암할 때 누가 머리 밀어줬는지 아세요? 엄마가 밤새 토할 때 누가 옆에 있었는지 아세요? 삼촌이 말하는 그 남의 남자가 했어요.”
이모가 끼어들었습니다.
“그래도 피붙이는 우리잖아.”
저는 엄마 가계부 마지막 장을 펼쳤습니다.
거기에는 편지처럼 긴 글이 적혀 있었습니다.
‘지연아, 엄마 죽고 나면 친척들이 네 새아버지 욕을 할 수도 있다. 그 사람은 말이 없어서 해명도 못 할 거다. 엄마 부탁이다. 그 사람을 지켜줘라. 네 아빠는 아니어도, 엄마한테는 마지막까지 남편이었다.’
그 글을 읽는 순간, 저는 무너졌습니다. 장례식장에서 처음으로 소리 내어 울었습니다.
새아버지는 그제야 고개를 숙였습니다. 그의 어깨가 아주 작게 떨렸습니다. 저는 그에게 다가가 처음으로 말했습니다.
“아버지.”
그는 놀라 저를 봤습니다.
저는 울면서 말했습니다.
“엄마 옆에 있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장례식장에 있던 친척들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외삼촌은 멱살을 잡았던 손을 천천히 내렸습니다. 하지만 사과는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끝까지 자기 잘못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발인 날, 새아버지는 영정사진을 들고 싶어 했지만 망설였습니다. 저는 직접 사진을 그의 손에 쥐여주었습니다.
“엄마 남편이 드세요.”
그는 한참 사진을 바라보다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엄마가 떠난 뒤 저는 자주 새아버지에게 전화합니다. 여전히 말수는 적습니다. 제가 “식사하셨어요?”라고 물으면 그는 늘 “먹었다”고만 합니다. 하지만 이제 저는 압니다. 어떤 사랑은 말이 많지 않아도, 영수증과 가계부와 병원 복도에 남아 있다는 걸요.
여러분이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피가 섞인 친척들은 장례식장에 와서 목소리를 높이고, 피 한 방울 안 섞인 새아버지는 6년 동안 병원비와 간병을 버텼다면, 가족이라는 이름은 누구에게 더 어울릴까요?
피가 가족을 만드는 걸까요, 아니면 마지막까지 곁에 남는 사람이 가족이 되는 걸까요?
☔️ 비바람 과 함께
눈물이 흘러 내립니다.
감사합니다 💚
-모셔온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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