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래된 짐을 버려라 / 법상스님
가진 것이 너무 많아 하나씩 하나씩
꼭 필요하지 않은 것들은 정리해야겠다고
늘 생각해오다 이제서야 묵은 일을 시작해 본다.
꼭 필요한 것들이라는 것은
정말로 꼭 필요한 최소한의 것들을 말하는데,
우리가 소유하고 있는 대부분의 것들은 이 속에 들기가 어렵다.
나는 때때로 간디가 말한
‘욕망이 아닌 필요에 의한 삶’에
내 소유물들을 대입시켜 보곤 한다.
소유하고 있는 것들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노라면
이것이 욕망의 소산인가,
아니면 '최소한의 필요'의
범주에 들어있는 것인가가 보인다.
'최소한의 필요'가
아닌 것들은 대개 욕망이 개입된 것들이기 쉽다.
불필요한 것들을 정리하다 보면,
모든 물질마다
제각기 독특한 분별과 집착이 따르게 마련인데,
대부분 그로 인해 첫 정리대상이었던 것들이
다시금 '소유'의 범주로 슬그머니 들어오기 쉽다.
그래서 정리할 때는 마음을 잘 비추어 보아야
그 분별에 속지 않을 수 있게 된다.
조금만 방심해 버리면
그놈의 분별과 소유욕의 불길에 휩싸이게 되는 것이다.
때때로 가지는 이런 정리의 시간이
내게는 일종의 삶의 점검의 때이기도 하다.
소유하고 있는 것들의 무게가 얼마 만큼인지,
그것이 내가 감당할 수 있을 만큼인지
아니면 필요 이상으로 넘쳐나는 것들인지를
수시로 확인해 보는 오래된 습관 같은 것이다.
내가 이런 정기적인 정리와
버림의 작업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출가에 있다.
오히려 출가를 결심하는 일은 쉬웠다.
오래 전부터 언젠가는 떠날 것을 예감했기에
그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런데 처음 출가를
결심하고 집에 들어와 그간의 자취생활에서
모아 놓았던 온갖 짐들을 정리하는 작업,
그 작업이 내겐 더욱 출가의 의미를 심어 준
계기가 되지 않았나 싶다.
막상 집에 있는 물건을 정리하려다 보니
모든 물건 하나 하나마다 제각각의 애착과 추억들이 떠 올랐다.
‘이건 누가 선물해 준 것이고,
이건 정말 어렵게 돈을 모아 산 것이고,
또 이건 내가 정말 아끼던 거라 제대로 써 보지도 못한 것인데’
하는 등의 생각들이 떠오르며 이웃들에게 나누어 주고
홀가분하게 가려던 마음에 자꾸만 제동이 걸리는 것이다.
소유하고 있는 것들 하나하나에 독특한 애착과 추억들이
함께 담겨 있기에 물건 하나를 정리하는 일은
그에 따른 애착과 추억들까지도 함께 버리는 작업이다.
그것이 어려운 일이었다.
그러면서 순간 내 마음을 보게 되었다.
이런 것이 출가구나.
작은 것 하나 하나에도
이렇듯 특별한 애착들이 서려있다는 것에 새삼 놀랐다.
이러한 정리의 과정, 작은 것에서부터
집착을 버리는 과정, 비움과 나눔의 과정이야말로
참된 의미의 출가가 아닐까 싶었다.
겨울 눈꽃이 이 산사를
또 뒷산 자락을 한창 투명하게 물들이고 있다.
앙상한 나뭇가지에 피어오른 눈꽃의 고요한 잔치를
어떻게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
그 아름다움이란
아마도 무소유에서 오는 호젓한 평화로움일 것이다.
지난 가을, 화사하게 이 산사를 물들였던
단풍잎이 떨어지고,앙상한 가지만을 남기며
홀로 서 있는 것을 보고는 왠지 모를 안쓰러움을 느꼈었다.
그러나 그건 내 생각일 뿐,
때가 되어 나뭇잎을 떨군 나뭇가지는
홀가분한 자유를 느꼈을 것이다.
낙엽을 다 떨구어 낸 무소유의 호젓한 가지만이
한 겨울 그 어떤 추위에도 결코 시들거리지 않고,
우뚝 솟아 그 텅 빈 가지 위로
아름다운 눈꽃을 피우고 있지 않은가.
우리의 삶 또한 때가 되면
훌훌 털어 버리고 일어나야 그 텅 빈
무소유 안에서 새로운 삶의 향기로움을
다시 채울 수 있을 것 같다.
이 겨울, 내가 소유하고 있는
이 모든 것들로부터 또 나를 소유하고 있는
이 모든 소유물들로부터 자유로워지자.
출처: [부자보다는 잘 사는 사람이 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