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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과 구름의 발자국을 따라서’를 읽고
우 승 순
제목부터 마음에 끌렸다. 애써 꾸미지 않고 진솔하게 써내려간 지창식선생님의 수필집 ‘바람과 구름의 발자국을 따라서’를 감명 깊게 읽었다. 특히 등산관련 수필은 압권이었다. 저자는 수필집의 첫 번째 글제인 ‘나의 산행’에서 등산에 관해 이렇게 소회했다. “중학교 1학년이던 어느 날, 나는 생각하였다. 저 봉우리 위는 어떨까? 저 산 너머는 과연 어떤 모습일까?” 그렇게 시작된 산행은 평생으로 이어졌다. 2018년 충남 오서산을 다녀오며 드디어 저자께서는 전국 100대명산 순례산행까지 마쳤다. 산행을 시작한지 45년 만이란다. 그는 진정한 산악인이었다. 수필집을 읽으며 느낀 독특하고 신선한 감동을 두루 엮어보고 싶었지만 어쭙잖은 수식어를 붙이는 것이 저자에게 누가될까 염려되어 생략한다. 다만, 내용 중에 잔잔한 여운이 남았던 부분들을 발췌하여 소개해 본다.
“오랫동안 바쁜 일상에서 이제는 벗어났다. 혼자 산에 올랐다. ...(중략)... 산을 내려왔다. 해질녘에 산 밑에서 쳐다보는 산 정상은 오늘 따라 높고 아득하게 보였다. 내가 어떻게 저기를 다녀왔지? 새삼 신기한 생각이 들었다. 작은 발걸음 한 걸음은 별 의미가 없지만 그러나 그것이 모이면 큰 산도 넘는다.” -먼 옛날의 호숫가를 거닐며- 중에서
“산에서 내려오면서 생각했다. 산속에 있으면 산의 일부분만 보인다. 전체적인 모습을 보려면 산에서 떨어져서 봐야한다. 인생도 그렇다. 가끔은 이방인이 되어봐야겠다. 옛 물에서 벗어나 새 물에서 봐라봐야겠다.” -신연봉에서- 일부
“산악계에 입문한지 오래되다보니 ‘대장님, 회장님 등’으로 불리는데...(중략)...할 수만 있다면 이제는 그런 것들을 훌훌 벗어던지고 싶다.” “이제까지는 늘 저쪽에서 이쪽을 바라보기만 하였는데 오늘 처음 이쪽에서 저쪽을 보는 감회가 새롭다.” (맞은편 산 정상에 올랐을 때) “편안한 마음으로 단풍든 가을 산의 경치를 둘러봤다. 세상의 굴레를 벗어버린다는 것이 이렇게 홀가분할 줄이야.” -홀로 가는 산- 중에서
“몇 해 전 동네에 새로 짓는 중학교 이름을 공모했었다. 대룡산이 빤히 보이는 곳이라 춘천의 대표적인 산 이름을 딴 학교가 하나쯤 있어도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제안한 것이 지금의 ‘대룡중학교’가 되었다는 소식에 기뻤다.” -대룡산의 꿈- 중 일부
“이번 산행은 산악연맹에서 한 달에 한번 일반인들을 위해 실시하는 안내산행을 위한 사전답사 산행이다. 인적이 거의 없는 오지(奧地)다. ...(중략)...세상의 여러 경우에 사람들이 즐겁게 누릴 수 있는 것은 누군가 보이지 않게 먼저 준비하고 수고한 덕분일 것이다.” -오지 답사 산행- 중에서
“산은 올라가면 반드시 내려와야 한다. 삶도 그러하다. 산을 오르는 것처럼 한창 정력적으로 열심히 일할 때가 있고, 그러다보면 절정기에 다다르게 되고, 언젠가는 세상일에서 손을 놓고 내려와야 할 때가 있다. 등산에 하산이 중요한 것처럼 인생에서의 하산도 그러하다고 생각한다. ...(중략)...세상은 온통 올라가는 방법에 대한 교육만으로 가득하다. 서점에 가보아도 성공하는 방법에 관한 책은 많으나 정작 명예롭게 물러나는 방법에 관한 책은 거의 없다.” -하산에 관하여- 중에서
“인생은 선택의 문제라는데 등산도 매한가지인 경우가 많다. 되돌아 생각하면 인생에 있어서 젊은 시절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여러 가지인데 잘 선택하면 평생이 편안하고, 잘못 선택하면 평생이 고단하다. 산길을 들 때는 별생각 없이 들었지만, 길을 잘 들면 하루가 편안하고, 잘 못 들면 하루가 힘들다.” -겨울 계곡- 중에서
“나는 왜 이일을 하는가? 이것은 돈이 되는 일도, 이름을 날리는 일도 아니다. 그러나 하고 싶다. 사람이란 꼭 유용(有用)하다고 생각되는 일만 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때론 다른 사람들에게는 무용(無用)하게 보이는 것이라도 혼자 빠져 몰입 할 때가 있는가 보다. -그리움길- 중에서
이외에도 산으로 인연을 맺었던 ‘C양과 K양의 추억’ 암벽등산의 진수를 그려낸 ‘한빛 바위’를 비롯해 ‘백록(白鹿)을 꿈꾸며’, ‘후지산 기행’, ‘30년 만에 대만 옥산에 오르다’ 등 다양한 등산전문수필과 ‘능이버섯’, ‘참취 예찬’, ‘참나무를 심은 뜻은’, ‘참나물을 아시나요?’, ‘늑대’ 등 자연과 함께하는 수필도 재미와 새로운 정보를 준다. 산행수필과 더불어 역사문화와 생활수필도 저자만의 독특한 필체로 이어진다. 책의 서문에는 저자가 수필에 입문하게 된 동기도 소박하게 그려져 있다.
45년간 산행을 하면서 쌓였을 저자의 사량(思量)이 얼마나 깊을지는 백면서생인 나로서는 짐작키 어렵다. 힘이 있으면서도 그 속에 잔잔한 깨달음과 인생철학이 녹아 있어 감명 깊게 읽었고, 행간을 통해 저자의 초연한 삶도 엿볼 수 있었다. 내가 지금까지 써왔던 수필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고 어느 부분은 길잡이가 되기도 했다. 바람과 구름의 발자국을 따라 홀연히 떠나본 가을여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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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그 책을 벌써 다 읽으셨습니까 지선생님, 대단하십니다. 성치 얺은 몸이지만
내일이면 늦는다는 일념으로 산행하시는 선생님, 본받을 만 합니다.
저자는 독자가 있어 행복합니다.
감사합니다
우선생님 중요한 대목을 꼭꼭 집어 올려주시니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