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03월 18일 (토) 가해 사순 제2주간 토요일 복음 묵상
미카서 7,14-15.18-20 루카복음 15,1-3.11-32
< 기다려주시는 주님 >
어느 집안에 아들이 하나 있었는데 커가면서 문제를 일으키더니 돈 먹는 하마가 되었다. 사업한다고 돈 가져가고, 무엇 한다고 돈 가져가고…. 점점 가산이 기울던 어느 날 아들이 이런 제안 겸 선언을 하였다.
“어머니, 돈을 어디에 쓸 것인지 묻지를 말고 3천만 원만 준비해 주세요. 집에 돈이 없으면 집을 팔아서라도 준비해 주세요. 더는 돈을 달라고 하지 않겠습니다.” 하는 것이다. 나 같으면 “이놈아 나 죽고 너 죽자!” 하고 패대기를 쳤을 것인데 그 어머니는 한마디 말도 묻지도 않고 집안의 돈을 다 긁어 아들에게 준비해 주었다. 그리고 그 아들은 그 뒤로 몇 달 안보이더니 다시 다 탕진하고 돌아왔다. 그런데 돈을 다 말아먹고 와서 변한 것이다.
이제는 돈을 달라고 하지 않고 겸손한 자세로 직장에 다니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수년이 지난 지금 그런 효자가 없다는 것이다. 이 이야기를 듣는 순간 나는 눈물이 핑 돌았다. 계속 반항하고 제멋대로이고 나약한 나에 대해서 끝까지 인내하시고, 참아주시고, 믿어주시는 하느님이 생각난 것이다. 주님께서도 나에 대해서 그렇게 하신다.
오늘 복음의 돌아온 탕자, 그는 아버지의 연민을 알았다. 이 극적인 사랑을 누리려면 우리는 자신에 대해서 용서를 해야 한다. 죄책감이 우리를 기진맥진 하게 만들거나 낙담케 하거나 침울케 하도록 놓아두어서는 안 된다.
물론 꼭 필요한 죄책감이 있기는 하다. 우리가 어떤 잘못을 저질렀을 때 죄책감을 느끼는 것은 우리를 타이르는 하느님의 소리인 양심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고해성사를 보러 갈 때 우리 자신이 죄에 떨어졌다는 것을 깨닫지만 예수님께서는 즉시 우리를 용서하신다. 이것이야말로 선하고 연민이 가득하신 하느님의 아름다움이다. 이는 성 바오로가 표현한 “우리가 아직 죄인이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돌아가심으로써, 하느님께서는 우리에 대한 당신의 사랑을 증명해 주셨습니다.”(로마5,8)라는 말씀처럼 우리가 죄 중에 있을지라도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시고 계시다는 것이다. 작은아들은 돌아왔고 하나도 손상되지 않은 자신의 품위를 누렸다.
교회의 반석 베드로도 그랬다. 그는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했다. 이것을 통해 베드로가 체험한 비참한 추락은 상상을 초월한 것이었다. 하지만 가리웃 유다는 자신을 용서하지 않고 절망했고 베드로는 자신을 인정하고 돌아왔다. 이것이 겸손이다. 그는 교회의 반석이 되었다.
우리는 하느님의 연민에 대한 신뢰가 필요하다. 겸손되이 자신을 낮추면서 “예수님, 저는 또다시 죄를 짓고야 말았습니다. 간절히 청하오니 용서하여 주십시오.”라고 말씀드리고 다시 일어나 계속해서 그분의 뒤를 따라가야 한다. 고해성사와 성체성사를 발견하면 모든 것을 발견한 것이다. 내가 잃어버린 순수함과 순결함을 다시 찾을 수 있다.
이제 그만 돌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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