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천 소사에 신앙촌 있습니다 엣날에는 유명했는데 세월가고 시대 바뀌면서 지금은 별로입니다 아 그때 부천 소사로 옮겨군요 이사람은 철저한 확실하 분명한 무신론자입니다 왜 무신론자인지는 시간관계상 다음에 알려줌 종교는 마음의 안식처 좋은검니다 근데 요즘 뉴스 보면 성직자들이 타락 소식 많이 나와요 여자신도들 농락하고 성폭행 성추행하고 하나더 쪈도 엄청 밝히고---사치 향략을 누리며 살고 -정신차려야 합니다 천벌 받을 성직자들 많아요 --이상
제 어린시절에는 지금의 개신교에 못지않게 교세가 컸던 것 같아요. 그래서 서울뿐만 아니라 전국 곳곳에 하얀 건물이 대부분 전도관이었던 것 같아요. 제가 자라던 경북에도 하얀 전도관이 있었고 시니님의 기억속의 장면들을 저도 목격했답니다. 아련히 그 건물을 떠올리며 추억해봅니다.
난 고무다라이 울 엄마가 평생 쓰시던 초기 물건인데요 내가 가져다 아지껏 잘 씁니다. 시골에 잇어요. 빨래삶던 두꺼운 양은 다라이도요. 울엄마가 쓰시던 것이니 적어도 6.70년은 되엇는데 워낙 초창기 튼튼하게 만들어져 지금까지 내 자식들에게 물려줘도 될듯요. 시골에서 쓰고 잇어요.
첫댓글 어릴적 교회가 유일한 놀이터인데..
울부모님은 동네 가까운 교회를 안다니시고
먼곳에 있는 성당을 다니셨어요.
어린맘에도 양심이 있어서
나는 천주교를 다니니
친구따라 동네교회 놀러가면 괜히 혼자서
미안해했던 마음이...ㅋ
어려서부터
바른 마음과 양심이 잇엇어요.
정말 요즘사람으로
좋은 사람 아델님이십니다.
어른이 되어도 양심없고
남의 험담하면 다 부메랑이 되어
자기에게 돌아오는데
그걸 모르는 사람들이 잇습니다.
바른 마음이 참 중요합니다.
어려서, 학교교육, 부모님 교육이
필요하지요.
@시니 네.
부모님께
무척 사랑받았지만
또
엄하셨기에
거짓말을 못하고 ㅋ
성당에선
주일마다
고백성사에
양심을
늘
체크 받으며 컸어요.
소심하게 자란 이유이기도 해요 ㅋㅋ
@아델라인
소해성사라 하나요?
고백성사라 하나요?
이런 사람은
기본이 된 사람입니다.
아델님 늘 보면서
지켜야할 것들이며
바른 마음을
늘 봅니다.
좋은 사람이지요.
추억소환
백과사전 임다 ㅋ ^^
저는요 ^^
왕십리 미나리깡에서
개구리 잡던생각 밖에 안나요 ㅠ
왕십리 미나리깡 이란 단어는 마니 들엇어요.
개구리 잡아서 구워먹던 이야기좀 들려주세요.
불란서에서는 개구리 요리가 고급요리라던데
안 먹어 봣어요.
북경에서 누가 비둘기탕이 좋다고 주문해주엇는데
남비같은 그릇에 맨위에
눈감은 비둘기 머리가 잘 얹혀 잇는 거예용.
끔찍 몬도가네엿어요.
국물맛만 보고 못멋엇습니다.
닭맛이엇던 듯요.
부천 소사에 신앙촌 있습니다
엣날에는 유명했는데 세월가고
시대 바뀌면서 지금은 별로입니다
아 그때 부천 소사로 옮겨군요
이사람은 철저한 확실하 분명한 무신론자입니다
왜 무신론자인지는 시간관계상 다음에 알려줌
종교는 마음의 안식처 좋은검니다
근데 요즘 뉴스 보면 성직자들이 타락 소식 많이 나와요
여자신도들 농락하고 성폭행 성추행하고
하나더 쪈도 엄청 밝히고---사치 향략을 누리며 살고
-정신차려야 합니다 천벌 받을 성직자들 많아요 --이상
소사에는 한번도 안가보앗습니다.
여직 잇으니 신앙촌집이 잇지요.
당시 집팔고 재산정리해서
소사 신앙촌으로 들어간 사람들이 잇엇어요.
사이비종교의 효시인 듯합니다.
부천 소사동 성가병원앞이
큰오빠집이라
거기서 통학을 했지요.
올케가 참 정성스럽게
대해 주었는데
진심으로
고맙단 표현을 못했어요.
부천 소사 하면
그시절이 찐하게
생각나요..전 ㅋ
제 어린시절에는 지금의 개신교에 못지않게 교세가 컸던 것 같아요.
그래서 서울뿐만 아니라 전국 곳곳에 하얀 건물이 대부분 전도관이었던 것 같아요.
제가 자라던 경북에도
하얀 전도관이 있었고
시니님의 기억속의 장면들을 저도 목격했답니다.
아련히 그 건물을 떠올리며 추억해봅니다.
시골에도 전도관이 그리 잇엇군요.
몰랏던 이야기입니다.
본부가 도화동이엇답니다.
어렷으니
당시는 뉴스도 많지안아
몰랏을겁니다.
언제 뉴스에
박태선장노 아들이 나쁜탕아 구룹에
잇엇다는 소식을 들엇지요.
지금도
신앙촌물건들이
생산되고 있나봐요~^^
그때는
신앙촌에서 생산되는 물건들이 품질이 괜찮다고들 하곤 했는데..
압구정동 골목에서도 보앗습니다.
몇몇 괜찬은 물건들이 잇다고 하더군요.
나는 서소문 로타리 근처에 천막으로 지은 교회가 생각나요.
그 교회가 지금 세계에서 제일 크나는 순복음 교회가 아니였나 생각합니다.
(아니면 말고...)
여렸을 적에 먹은 것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역쉬 막걸리 담그고 남은 찌꺼기...
우리 할머님은 그것을 <재강>이라고 하셨죠.
사카린 타서 들큰하게 해서 한사발 먹으면
배는 부르지만 정신이 알딸딸 했죠. ㅎㅎ
어느 글엔가 썻지요
제강인지 재강인지...
그거 맛잇엇어요.
친구집에서 그럴 먹엇엇는데
지금 술은 잘 못합니다.
동시대 사람입니다.
저도 전도관 조금 알아요.
박태선장로가 세운 교단인데 신앙촌에서 간장등을 생산해서 팔고
그러는것 어린시절 봐서
기억하지요.
마죠요. 간장도 잇엇어요.
난 옷과 빵을 기억합니다.
저는 지금도 신혼때 샀던
신앙촌 스텐다라이 셋트로
오만거 다 해먹어요ㅋ
양푼바닥에 돌출된 신앙촌 세글자
사이비종교 물품이라 안샀어야 맞는데
양푼이 뭔 죄있나요ㅎ
대물림으로 써도 닳지를 않으니
잘쓰고 있습니다ㅎㅎ
요즘 시니님 옛이야기가
가장 재밌습니다^^
스텐 다라이 세트
살 정도면
좀 있는 집안이었네요.
전
프라스틱 쓰다가
스텐으로 바꾼지 얼마 안되요 ㅋ
@아델라인 ㅎㅎㅎ
귀여워서 꼬집고싶다ㅋ
길거리에서 펼쳐놓고 파는거
5개셋트 3만정도 산거같어요
얌전하게 잘쓰니까
지금도 반짝반짝 가보됐어요
특히 잡채를 버무릴때는
얼마나 이뿐지 몰라 ㅎㅎ
난 고무다라이
울 엄마가 평생 쓰시던 초기 물건인데요
내가 가져다 아지껏 잘 씁니다.
시골에 잇어요.
빨래삶던 두꺼운 양은 다라이도요.
울엄마가 쓰시던 것이니
적어도 6.70년은 되엇는데
워낙 초창기 튼튼하게 만들어져
지금까지 내 자식들에게 물려줘도
될듯요.
시골에서 쓰고 잇어요.
나 어릴적 중학교무렵
화자가
집에서 꽤 먼거리를
새벽에 전도관을 같이 다니자고..
힌건물 인데..
울고불고 바루바닥치고 소리질르고.
다음부터는 화자가 싫어지더라구요.
지금은 종교계에서 큰인물 됐을려나요........
저도
친구따라 갔다가
사람들이
울고불고 해서
무서워서
집으로
내달려 왔지요..ㅋㅋㅋ
지금도
귓가에...ㅋ
화자 이름이 하도많으니
찾아볼수도 없고
내가 아는 화자도
서넛 되나봐요ㅎ
@강마을 우리는 의정부에서
자라서 스켄들도 많아요
중삼 때 과외공부 다니던시절
화자가 해승이를 좋아했는데
해승아 화자가 너보고싶데 ~
해승이는 질색을 ㅎㅎ
@여름에
다리 놓아주려 했는데
해승이가 언니를 좋아한듯요
이뻐서 남자애들 줄섰죠? ㅋ
맞아요.
울고 불고 마루바닥치고 소리지르고
누군 마당에 묶여잇기도 햇어요.
당시
아려운 시절
얼마나 서러우면 그랫을까?
어린 우리는 구경하는 것이
재미잇엇어요.
우리는 친구들과
빵주고 공책주고
친구들과 노는 재미로 갓어요.
부모님은 물론 안갸셧구요.
마포에도 도화동이 있나요 ?
여기 인천 도화동에도 전도관이 있거든요.
지금은 철거했나 ? 건물이 오래되었던데...
마포와 용산의 경계에 도화동이 잇엇어요.
지금은 뭐라 바뀌엇는지 모르겟어요.
시니방장님~
추억이 새록 새록...
인천 도화동은 알겠는데
마포 도화동은???
좋은 글
아름다운 이야기입니다^^
ㅋㅋ~ 제가 바로 위의 댓글에...
우리는 인천 도화동 전도관 알죠. 하얀 건물~
전차종점은 마포동
그 위는 도화동이엇어요.
다 마포구엿죠.
도화동은 작아서
도화동 사는 사람도 마포산다 말햇어요.
도화동 꼭대기에 성당이 잇엇어요.
김태순이라는 친구 오빠가 신부
그 성당에 잇엇어요.
전도관...지금은 천부교
고인이 되신 제 어머님이 집사셨습니다
저도 어릴적 따라 다녔구요
동대문에 있었고 바로 옆에 권투 세계참피온 김기수 체육관
박태선을 용모님이라 불렀고요
이단 맞습니다
통일교도 이단이지만 지금은 세계일보.워싱턴타임지 등 재벌
아들 박동명이 잘 했다면 지금쯤 순복음과 비견될 교세가 대단했습니다
요즘도 만민교회 등 당시 전도관 아류들이 예수님을 빙자
여기저기 사회를 혼란게 하죠
호가정님이 그 후를 이야기해주시네요.
그렇게 되엇군요.
저는 어려서 경험하고
이리저리 떠나서 그 후는 잘 모릅니다.
전도관을 여러사람들이 아시네요.
시골에도 잇엇다는
베리꽃님말씀이 쇼크입니다.
박장로, 전도관이 원효로에 있었지요.
건물은 단층 건물로 큰길가에 있어서,
항상 지나다녔지요.
원효로, 용두동, 도화동, 마포..
친근한 동네입니다.
실내는안들어가보셧네요.
좁게 2층이잇엇던 걸로 기억합니다.
용산구 원효로 끝과 마포구 끝이 만나는 지점이구요.
도화동은 마포구 소속이엇습니다.
한강을 끼고 돌다보면 언덕위에 보이지요.
조금더 마포쪽으로 가면
이승만박사 별장이 잇엇던 곳이 잇습니다.
석양이 아주 잘 보이는 곳요.
수위아저씨가 우리들 귀엽다고
안을 구경을 시켜주셧던 기억도 납니다.
용두동은 동대문구 소속입니다.
아!신앙촌 이군요.
저도 시집올때 엄마가 신앙촌밍크담요
사줬는데 거기 물건들이 좋긴했어요.ㅎ
네 맞습니다. 그 신앙촌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