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뭔 책인데?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는 본래 '대망(大望)'이라는 이름으로 국내에도 수많은 판본으로
수입되어 한 때는 책 좀 꽂아놓는다는 집의 책장에는 으레히 꽂혀있던 일본판 열국지(列國志)라고 하면
이해가 빠르겠다. 당시 대일감정이 좋지 않던 시절에 번역한 책들은 의도적인 오역도 있고,
흥미 위주로 편집을 해서 본래 저자가 써낸 분량을 반토막, 세토막 내서 들여오기도 한 것들이 많았다.
본인이 어릴 적 우연히 띄엄띄엄 보았던 대망은
잔인한 폭력과 노골적인 성애묘사로 순진무구한 본인을 뒤흔들었었다. ㅡ.ㅡ;
지금 생각해보면 그것도 짝퉁인 것이다. 이 책은 이전의 대망을 부제로 쓰고,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전면에
내세워 이전의 편집된 대망들과는 차별화한 진짜 '대망'이다.(전 32권)
(열국지는 여기 추천도서게시판에 본인이 엉성하게나마 올린 적이 있으니 관심 있는 분은 참고하셔요.)
저자 야마오카 소하치(山岡莊八)는 1907년생으로 태평양전쟁에서 종군기자로 전쟁에 뛰어들었던 지식인이고,
이 책을 신문에 연재하기 시작한 것이 1950년 되겠다. 즉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핵폭탄을 얻어맞고,
상징적이나마 일본의 하나님이자 제우스였던 천황(덴노)이 '나는 인간이었다!'라는 커밍아웃을 한 후의 정신적 공황기에
전후 국민정서 복구를 위해 등판한 완벽철벽무쇠팔 구원투수로 역사에서 다시 살아난 인물 되겠다.
그 후 17년동안 연재가 되었고, 미처 연재가 끝나기도 전에 발행한 단행본이 3000만부, 이후에 1억부가
넘게 팔려나갔다는 일본문학사에 다시 없는 베스트셀러다.
저자 자신이 종군기자로 전쟁을 겪으면서 바라본 세계가 어찌했는지,
그리고 이 놈의 전쟁을 시마이(끝냄)하고 영원히 평화로운 세상을 위해서는 어찌해야 할 것인가. 라는
고민이 만들어낸 책이 아닌가 싶다.
2. 도쿠가와 이에야스 는 누구여?
울지 않는다면 죽여버리겠다. 두견새야. (오다 노부나가)
울지 않는다면 울게 만들어 주겠다. 두견새야. (도요토미 히데요시)
울지 않는다면 울 때까지 기다리겠다. 두견새야. (도쿠가와 이에야스)
'도쿠가와 이에야스'(편의상 '대망'이라 하자.)에 등장하는 삼국지에서 보면 조조, 유비, 손권에 해당하는 세 마리의 용 되겠다.
거의 비슷한 시기에 태어났지만, 그들의 성향은 위의 시가가 말해주듯이 상당히 달랐고,
세 인물의 죽음 또한 달랐다. 그러나 그들을 한 라인으로 묶을 수 있는 것은 약육강식의 전국(戰國)시대를
종식시킨 막강 트리오라는 데 있다. 그들의 열망은 어쨌든 전국 통일이었고, 순서대로 해먹으면서
결국은 막판까지 남은 도쿠가와 이에야스에 의해 에도막부가 탄생하면서 일본은 약 260여년 뒤
미국 깡패 페리선장이 들이대기 전까지, 땅따먹기는 끝나고 평화를 유지하게 된다.
군사정권인 무로마치막부의 끄트머리에서 누가 짱먹느냐를 두고 형제끼리 다투고, 중앙에서 컨트롤이 잘 안되니까
동네에서 짱먹던 놈들이 모조리 기어나와 요참에 나도 함 해먹자 라는 심산으로 동군, 서군으로 나뉘어
대판 싸운 것이 '오닌의 난'이 되겠다. 이 때 이후로, 명분이고, 정통성이고 없이 힘 있는 자가 모두 먹는 세상이
되어버렸다.
이런 판에 지방 호족의 자제로 태어나 아버지 잘 둔 탓에 어릴 적부터 포로 생활을 하는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있고, 역시 유력한 지방 호족의 아들인 오다 노부나가가 있다.
여기에 하급무사 출신의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나타난다.
3. 재밌나?
삼국지처럼 아기자기한 전투의 맛은 느끼기 어렵다. 무장의 용맹과 군사들의 지략이 조화되어
최고의 전투시뮬레이션을 만들어내는 삼국지나 초한지에 비하면 전투의 박력은 떨어지는 편이다.
그러나
사람과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의 깊이는 오~ 놀랄 만하다. 특히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거의 신(神)이다.
전후의 혼란을 극복하고 국가의 시스템을 만들어가는 과정은 삼국지나 초한지에서 볼 수 없는 풍경이다.
인물을 등용하고, 제도를 만들고, 외교를 통해 국가의 이익을 더하고, 평화가 지속될 수 있도록
국가의 정신적 토대를 형성해가는 과정은 역사자료를 앞에 두고 저자가 하나씩 모자이크를 만들어가듯
짜내었다고 해도 그 세세한 구성을 보면 아, 대단하다 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17년 동안이나 썼다고 하니, 박경리 선생의 <토지>, 조정래 선생의 <태백산맥><아리랑><한강>시리즈에 비할 법한
일본 작가의 역작이다.
자료를 놓고 분석하여 이야기를 풀어내는
작가의 역량이 탁월하다!
또한 작가가 남자인데, 여성의 심리묘사를 어쩜 그리 잘 해낼 수 있을까.
막판으로 갈수록 긴장이 떨어지면서 지루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나 거기에 작가의 인생이 녹아 있는 듯하다. 작가 자신이 도쿠가와 이에야스라는 역사적 인물 속에
들어가려고 엄청나게 애를 썼다는 것이 느껴진다.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만년은 이래 저래 생각할 거리를 많이 던져주었다.
4. 덧붙이고 싶은 말 있나?
언젠가 베르나르베르베르의 <타나토노트>를 보면서 일본의 무사도에 대해 경도된 적이 있었다.
특히 죽음에 대한 그들의 의식이 참으로 미묘하면서도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었다.
이제 대충 그 느낌을 알 것 같다.
역사적 상황만을 두고 객관적으로 보자면, 도쿠가와 이에야스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아는 분은 일본의 김종필이라는 말을 하셨다. ^^; 물론 김종필은 막판까지 최고권력자가 되진 못했고, 막판이
영 씁쓸해서 이에야스에 비할 바는 못된다.
삐뚤게 보자면 냉혹하고 잔인한 정치가로서의 모습이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어쩌랴. 플라톤의 철인(哲人)정치라는 것이 현실에서 어느 정도까지 가능할까 말이다.
작가가 책의 머리말에서 밝혔듯이 이 책은 '이상(理想)소설'이다.
도쿠가와 이에야스라는 인물을 통해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이리라.
그러나 그 이야기가 충분히 설득력있는 진지한 노력이었다는 데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전쟁이 없어질까?
소설에 등장하는 사나다 유키무라 같은 인물은 전쟁은 사라지지 않는다고 말한다.
오히려 그의 의견이 설득력 있게 다가오기도 한다. 보는 입장에 따라 더 현실적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이에야스의 노력에는 박수를 보낸다.
역사를 기억하지 못하는 이에게 역사는 반복된다.
그러기에 역사는 반복된다.
전 32권. 야마오카 소하치 | 이길진 역 | 솔출판사 | 2000.12.01
5. 같이 보면 좋을 책이 뭘까?
만화 <먼나라이웃나라>가 먼저 떠올랐다. 막판에는 같이 봤다. 이미 전에 한 번 봤던 내용이지만,
시간이 흘러 다시 보니, 여러가지 의문을 풀어내는 데 도움이 되었다.
그냥 이것만 봐도 재미있다. 아이들을 상대로 하는 책이다보니 분석에 한계가 있긴 하지만,
일본인의 정신을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와和' 와 혼네(本音)와 다테마에(建前)에 대한 설명은 이해하기 쉽게 되어 있다.
전 2권. 일본인편, 일본역사편
<국화와칼>
태평양 전쟁을 거치며 자살특공대, 카미카제(神風)특공대에게 학을 떼었던 미국이
일본을 접수하고 일본에 들어가니 천황의 한마디에 순한 양이 되어버리는 일본인에 대해
도대체 어떻게 저럴 수 있느냐라며 놀라,
루스베네딕트라는 인류학자에게 의뢰해 탄생한 보고서이다.
국화와 칼로 상징되는 일본에 대한 이야기. 기억에 이론서 중, 이 책이 제일 나았던 것 같다.
<칼의노래>
이순신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김훈의 소설이다.
워낙 유명한 소설이라 더 말할 것도 없겠지만,
'대망'에서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일본을 통일한 후에 대륙진출을 꿈꾸며, 조선을 침략하는 과정을
조선의 입장에서, 이순신의 입장에서 바라본 이야기이다.
소설적 재미도 재미지만, 전쟁에 대한 생각을 정리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다.
물론 이순신이라는 인물을 통해 말하는 김훈의 이야기도 비장하다.
* 잘못된 점이 있으면 댓글 달아주심, 손보도록 하죠. ~^^
첫댓글 전 오다 노부나가를 무척 좋아해요..돌아이 같아서...
매력적인 인물이죠. 상대의 허를 찌르기 좋아하고, 시대를 앞선 독특한 발상의 소유자인 오다 노부나가는 영화를 만든다면 가장 개성 있으면서도 매력적인 인물로 등장하지 않을까 싶어요.
국화와 칼 얼마전에 보다 포기ㅡㅡ;.. 대망은 아주 오래전 히트쳤을때 제목만 보고 안봤어요. 그땐 어릴때라 반일감정 극에 달해서 책조차도 보기 싫어했죠 ㅎㅎ.. 애술가님 멋지시다~~~. 오 다시봣어요^^
ㅎㅎ 뭐~ 다시 보기까지야... ^. ^;ㅋ
대망은 중반까지는 흥미진진했는데. 히데요시 죽은 다음부터는 이에야스를 무슨 부처님처럼 묘사해서 좀 거시기 했습죠.;;
대략 3부부터가 그렇죠... 신불(神佛)이라는 일본식 부처의 뜻에 합당하게 '염리예토(厭離穢土) 흔구정토(欣求淨土)'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고, 말 그대로 이 땅에 불교식 천국인 정토를 실현하기 위해 애를 쓰는 과정, 그 지난한 인고의 과정이 독자에게도 인내심을 요구하는 것 같아요..^^
그래도 최후반부에 사나다 유키무라가 나와서 그부분은 좀 빨리 읽히기는 했는데. 작가 스타일이 원래 그런거 같더군요.;
대망과 함께 했던 지난 겨울이 떠오르네요... 따뜻한 침대에 누워서 열심히 귤을 까먹으며 열독했었더랬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