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5월13일 저녁 7시30분 부터 9시까지 성 바실 성당 에서 한비야 의 강연회 가 있었는데 다녀온 소감 입니다.
58년 개띠 여자 가 처녀의 몸으로 7년간 지구 3바뀌 반 을 걸어서 여행하며 세계 의 구석구석을 누비고 깨달은것은
나 자신의 부귀 와 영화 를 위해 노력하는 삶 보다는 남 을 위한 은혜 와 사랑으로 봉사하는 삶이 행복하다는것이며
무었이 내 가슴을 뛰게 하는가? 라는 자문으로 그 대답을 얻어야 함을 얘기 합니다.
내 가슴을 뛰게하는 그것을 찾아서 그것을 위해 일하고 노력한다면 행복하게 그리고 보람되게 살수 있답니다.
현재의 고통은 고통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대장간에 들어온 칼 이라고 여기며 그 뜨겁고 험한 담금질 과정도 名劍으로
태어나기 위한 과정이라고 생각하며 고통 과 장애 를 극복해야 합니다.
'바람의 딸' 한비야씨가 바람처럼 LA에 왔다. 어제 성 바실 중앙 천주교회에서 한인들에게 희망을 강연했다.
한씨는 보스턴 터프츠 대학교에서 인도적 지원에 관한 석사 과정을 막 끝내고 LA로 왔다. 원래 가톨릭 사제를 대상으로 강연을 할 예정이었으나 북미주 한인 사목사제 협의회가 종교를 넘어 모든 한인에게 열린 강연회 자리를 만들었다.
강연회 입장권이 몇 시간 만에 동난 사실은 사제협의 결정이 옳았음을 보여준다.
한씨는 여행 자유화 이후의 한국이 배출한 스타이자 베스트 셀러 작가다. 그렇다고 그저 유명인에 머무는 것은 아니다. 그는 한국인에게 새로운 삶의 방식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이 시대의 롤 모델'이다.
그는 삶의 무대를 세계로 넓히는 것을 보여줬고 마침내 '지도 밖으로 행군하라'고 외쳤다. 그는 오지 탐험가에서 전세계인의 고단한 삶 속으로 뛰어드는 긴급구호팀장으로 인도적 지원을 체계적으로 공부한 석사로 쉬지 않고 변신했다.
사람들은 한 곳에 안주하지 않고 미지의 세계를 탐험하고 좋아하는 일을 거침없이 해치우는 그의 삶의 방식에 열광했을 것이다.
한씨의 강연은 금융 위기 후유증으로 움츠러든 한인들에게 에너지 덩어리를 경험하는 자리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 한씨는 이렇게 말한다. "고통을 위한 고통이 아니라고 생각하면 되지 않을까요? 대장간에 들어온 칼인 거죠. 그 과정이 너무 길고 뜨겁다? 그럼 무지하게 좋은 칼인가 보죠."
한씨의 강연회에서 많은 한인들이 어떤 고통이나 좌절에도 깨지지 않는 단단한 희망의 씨앗을 하나씩 분양받아 갔기를 바란다. 그리고 그 씨앗이 주위 사람들에게 다시 분양되기를 바란다.
‘바람의 딸’ 한비야. 그는 지난 1년간은 ‘책벌레’로 살았다.
지난해 복막염 수술을 받고, 곧장 보스턴 터프츠대 플레처스쿨 인도지원 석사과정(MAHA)에 입학했던 한씨는 24일 졸업식을 앞두고 있다. 이 과정은 1년 프로그램이다.
지난 1년간 아침 8시부터 새벽 1시까지 도서관에서 책과 씨름했다는 그는 “엉덩이와 싸움했다”고 털어놓았다. 3층 도서관 두 번째 좌석은 비어 있어도 “저기는 비야 언니 자리야” 라면서 아무도 앉지 않는 그만의 지정석이었다.
미국 유학생활 동안 이틀에 한 번씩 잠을 잤고, 지난 3일간은 아예 잠을 자지 못했을 정도로 억척을 떨었다.
‘학생 한비야’에 충실하기 위해 지난 1년간 언론과 인터뷰도 일절 미뤘던 그는 7일 뉴욕중앙일보와 첫 인터뷰를 통해, 세상과 소통했다.
인터뷰한다고 “일년 만에 처음으로 마스카라까지 발랐다”고 너스레를 떠는 한씨는 상아탑에서 배운 지식을 구구절절 풀어냈다. 생생한 현장, 거기서 주운 구슬을 꿰는 정책, 또 그것을 연구하는 학자. 이 삼박자가 잘 맞아야 한다는 금쪽같은 교훈을 다시 한번 절감했다고.
최근 발표했던 석사 논문의 제목은 ‘긴급 구호 현장에서의 급식’. 삶과 죽음이 오가는 긴급구호 현장에서 학교 급식을 통해 아이들이 ‘아, 일상으로 돌아왔구나’ 라는 안정감을 얻을 수 있는 방안을 모색했다.
터프츠대학에서는 평생 교류할 롤모델도 만났다. 그가 배운 교수들은 1년의 반은 현장과 교실에서 지내고 있는 한비야가 꿈꾸는 모델들이다.
플레처스쿨이라는 대장장이에게 신나게 두드려 맞았다는 한비야, 앞으로는 논다.
8월 한국으로 돌아가는 한씨는 길게는 1년까지 열심히 빈둥거릴 계획이다. 한씨는 “현재 육체·정신적으로 기진맥진하고 포화상태”라면서 “어디로 갈 지 나중에 결정하겠다”고 말했다.
책도 말랑말랑한 연애소설, 환타지만 읽고, 지리산부터 타면서 백두대간을 시작한다.
그래도 피가 끓는 한비야는 못 속인다. 논다면서도 계속 중국 타령이다. 올해 말에는 중국으로 가서, 중국말을 한국말처럼 배울 요량이다. 말로는 “놀면서 배우는 거야”라고 하지만 아직 자신도 모르는 꿍꿍이 속이 있는 것 같다.
52세, 한비야는 여자다. 지금도 짝을 찾는 여자다. 1년간 싸돌아 다니지 않고 ‘보스턴 정착민’으로 살면서 남자 하나 만나지 않을까 기대도 있었지만, 아직까지 소식 없다.
“지금도 쫓아다니는 사람 있어요. 근데, 연애는 가슴이 통해야 하는 거 아니에요?”
그래도 딸은 하나 갖고 싶다. 그래서 젊은이들을 그렇게 챙긴다.
학교서 만난 한인 학생들을 보면, 가슴이 벅차오른다. “우리 아이들 보면 가슴이 설레요. 정말 저 친구들이 크면 어떤 사람이 될까 너무 궁금하거든요.”
한비야가 부모들에게 당부했다. 자기 책 읽고, 괜히 우리 아이 딴 짓 할까봐 가슴 졸이지 말란다. 엄마 아빠 눈에 조금 색다른 것 같아도 일단 밀어주면 확 피어버릴 우리 아이들이기 때문이다.
“우리 아이들이요, 가슴에 숯불이 있어요. 옆에서 바람만 조금 불어주면 확 피거든요.”
내달에 미주한인청소년재단 행사 참석 차 뉴욕을 또 방문하는 한비야씨는 부풀어 있다. 이날 아이들에게 ‘지도 밖으로 행군하는 법’을 들려줄 참이다.
“나요, 그날 우리 애들한테 불화살을 쏠거에요.”
첫댓글 평범한 사람은 아니군요 에너지가 넘치는 사람이기도 하고... 이 세상에 태어나서 특별하게 쓰임을 받는 사람 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