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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경기에서 우리나라와 상대를 하지 않는 경우에도 은근히 지기를 바라는 팀이 있다. 바로 일본 대표팀이다. 그러고 나면 대개의 경우에는 왠지 속마음이 찜찜한데, 이 倭國에 대한 감정은 그렇지도 않다. 오히려 샘통이다 생각하게 된다. 지난 6월 15일 브라질 월드컵 C조 첫 경기에서 일본을 상대한 코트디부아르가 2대 1로 역전승했다. 일본이 한골을 먼저 넣고 기세등등하는 장면을 보며 '저 놈들이 이기면 어쩌나' 하고 걱정 아닌 걱정을 하였다. 그런데 후반에 들어와 드록바가 교체투입되면서 그 걱정은 다 사라졌다. 경기 후반 그가 교체 투입되자 코트디부아르는 2분 사이에 두 골을 연거푸 집어 넣고 경기를 역전시켜 버렸다. 축구의 神이란 뜻으로 '드록神'의 칭호까지 가지고 있는 그이기에 가능했던 경기결과였다!
[인사이드 삼바 2014브라질월드컵] 일본 침몰시킨 '검은 예수' 드록바는 누구? 김아사 프리미엄뉴스부 기자 <조선일보> 2014년 6월 15일
‘클래스는 영원하다(class is permanent)’ 위기의 순간, 코트디부아르를 구한 것은 ‘드록신(드로그바의 별명·축구신이라고 해 붙여졌다)’이었다. 후반 17분, 0:1로 뒤지던 상황에서 교체 투입된 디디에 드로그바(36)는 강력한 신체 능력을 바탕으로 한 몸싸움과, 빠른 돌파를 선보이며 일본 수비수들의 혼을 뺐다. 후반 37분 프리킥, 후반 40분 살로몬 칼루가 내준 패스를 세밀하게 터치하며 왼발 슛을 때렸던 장면은 드로그바의 진수를 보여주기에 충분했다. 드로그바 교체 투입후 일본은 2분 간격으로 보니와 제르비뉴에게 동점골과 역전골을 내줬다. 그는 경기장에 나선 것만으로 팀을 추스르고 상대 수비를 흔들었다. 말 그대로 ‘클래스’의 차이를 여실히 보여준 경기였다.
▲6월 15일 브라질월드컵 C조 조별리그 첫 경기 일본과의 경기에서 후반 교체 투입돼 맹활약을 펼친 드록바(앞) AP-뉴시스
‘검은 예수’ 드로그바는 누구? 드로그바 별명은 ‘검은 예수’다. 세계 최고 스트라이커이지만 코트디부아르에서 그는 축구를 잘하는 단순한 스포츠 스타가 아니라, 전쟁을 멈춘 영웅이자 청소년의 우상이다. 지난 1960년 프랑스로부터 독립한 코트디부아르는 북부 이슬람 세력과 남부 기독교 세력이 끊임없이 충돌하며 15년여간 갈등과 내전의 아픔을 겪어왔다. 이 기간 5000여명 이상이 숨지고, 12만명이 난민이 됐다. 유엔과 프랑스가 군대를 파견해 혼란을 수습하려 했지만 총성은 그치지 않고 갈등은 심화됐다.
내전이 한창이던 지난 2005년 10월, 드로그바는 독일월드컵 티켓을 따낸 뒤 TV 카메라 앞에서 무릎을 꿇고 호소했다. “사랑하는 국민 여러분, 1주일 만이라도 무기를 내려놓고 전쟁을 멈춥시다.”
드로그바의 호소는 정부군과 반군을 감동시켰고 이후 일주일간 실제로 총성이 멈췄다. 드로그바는 지난 2011년 정부가 내전을 종식하기 위해 선정한 11명의 화해위원회 멤버기도 하다. 코트디부아르의 상황을 알지 못하던 이들도 드로그바를 통해서 나라의 상황에 관심을 갖고 평화 재건을 위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드로그바는 “우리 코트디부아르 선수들은 언제 어디서 뛰든지 코트디부아르의 친선 대사 같은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고 한 언론 인터뷰서 말한 적이 있다. 그는 UN 홍보대사를 역임하고, 자선 재단을 세워 학교와 유소년 시설 등을 지원하는 활동도 펼치고 있다. 지난 2009년에는 60억원을 종합병원 설립을 위해 기부하기도 했다.
축구 실력도 ‘신’의 경지에 드로그바의 또 다른 별명 ‘드록신’은 오로지 그의 축구 실력으로부터 나온 것이다. 그는 소속팀 첼시를 유럽 정상에 올려놓은 스탬포드 브릿지(첼시 홈 구장)의 영웅이자 런던이 사랑하는 축구 스타다. 존 테리, 프랭크 램파드 등과 함께 그는 ‘첼시’ 구단 상징 선수로 팬들에게 기억되고 있다. 2012년 첼시를 떠나 갈라타사라이서 뛰는 드로그바가 올 초 스탬포드 브릿지에서 챔피언스리그 첼시전에 나서자 경기장 곳곳에는 “Drogba, always in our hearts(드로그바는 언제나 우리 마음속에)”란 현수막이 걸렸다.
드로그바는 전형적인 타겟형 스트라이커다. 페널티 에어리어 안에서 치열한 경합을 버텨내며, 쉼 없는 움직임을 만들며 수비수를 괴롭히는 것이 그의 장기다. 일본전 승리 역시 그의 역동적인 움직임이 수비수를 혼란스럽게 하면서 동료 공격수에게 틈을 주는 등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첼시 시절 챔피언스리그 우승 퍼레이드에서 빅 이어를 들고 환호하는 드록바
그는 큰 경기에 강했다. EPL내 첼시 경쟁팀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아스널, 리버풀 등에겐 그의 존재 자체가 고역이었다. 전력 차가 나지 않는 팀일수록 승리를 위해선 강한 피지컬을 바탕으로 골을 넣는 선수가 필요한 것이 현대 축구다. 그는 지난 2004년부터 2012년까지 첼시에서 뛰면서 341경기에 출전해 157골을 터뜨렸다.
스포츠조선첼시에서의 가장 아름다운 추억은 2012년 챔피언스리그였다. 이미 EPL 우승, FA컵 우승, 리그 득점왕 등을 경험한 그였지만 그해 부임한 빌라스 보아스 감독 체제에선 주전 경쟁에서 밀리는 처지가 됐다. 자연히 출전 기회가 줄고 교체로 나선 경우가 많았다. 감독과의 불화설, 나이로 인한 기량 쇠퇴 등의 루머도 줄곧 이어졌다.
그는 보아스 감독이 경질되고 디마테오가 사령탑으로 부임하면서 주전 스트라이커로서의 입지를 되찾았고 챔피언스리그서 강호들을 격파하는데 선봉이 됐다. 나폴리와 16강 2차전에서 득점을 올리며 1차전 1대3 패배를 4대1로 뒤집는데 앞장섰고, 바르셀로나와의 4강전 1차전서 결승골을 터뜨렸다.
드로그바의 백미는 바이에른 뮌헨과의 결승전이었다. 0대1로 뒤진 후반 43분 극적인 헤딩 동점골을 쏘았다. 또 120분 혈투에서 승부를 가지 못한 채 이어진 승부차기에서는 첼시의 마지막 키커로 나서 우승을 결정하는 승부차기를 성공했다. 그는 스탬포드 브릿지에서 ‘빅이어(챔피언스리그 우승 트로피)’를 들었던 때를 생애 최고의 순간이라 표현했다.
첼시에서 축구 선수로 누릴 수 있는 모든 영예를 누린 그는 중국 상하이 선화서 9개월 활약한 후 챔피언스리그에 다시 도전하기 위해 지난해부터 터키 명문구단 갈라타사라이에서 뛰고 있다. 터키에서는 2시즌 동안 48경기에 나서 18골을 넣었다. 동영상을 보시려면 상단 중앙의 배경음억은 잠시 꺼주세요. 전쟁을 멈추게 한 축구의 神 'Didier Drogba'
Didier Drogba | special feature
Didier Drogba - Gone But Never Forgotten - By Feroze
A compilation I made on the Chelsea legend Didier Drogba, who has left Chelsea after winning the Champions League this year along with a lot of silverware during his 8 years at Chelsea! Thank you for everything Didier! 2012. 7. 8 by Feroz [윤정환 감독의 삼바! 브라질월드컵 판독하기] 드록神, 일본 열도를 잠재웠다 윤정환 사간 도스 감독 <조선일보> 2014년 6월 15일
일본-코트디부아르 관전평 역시 드록바다. 후반 드록바의 교체 투입으로 경기 흐름이 완전히 코트디부아르로 쏠렸다. 코트디부아르가 2014브라질월드컵 C조 조별리그 첫 경기에서 일본에 2대1 역전승한 것은 디디에 드록바(36ㆍ갈라타사라이)가 있기에 가능했다. 드록바는 축구를 워낙 잘해 ‘축구의 신(神)’으로 통한다. 그래서 축구팬 사이에 ‘드록신(神)’으로 불린다.
일본은 전반 경기를 잘 풀어갔다. 수비에서 효율적인 압박을 통해 공격 루트를 개척하는 과정도 좋았다. 일본이 원하는 섬세한 조직력 축구가 통했다. 혼다 게이스케의 첫 골로 이어지는 연계플레이를 보면 코트디부아르를 잡는데 문제 없어 보였다. 하지만 후반에 갑자기 체력이 떨어지는 모습이 보였다. 하프라인에서 공격하다 차단돼 역습당하는 장면이 자주 연출됐다.
이 분위기는 후반 17분 드록바가 그라운드에 나서면서 극단적인 상황으로 이어졌다. 드로그바가 교체돼 그라운드에 모습을 드러내면서 일본 선수들은 당혹감에 빠진 듯했다. 체력 저하의 모습을 보이던 일본 선수들이 순간적으로 뭔가 홀린 듯했고, 코트디부아르는 갑자기 의지가 불타오른 듯했다. 드록바가 그라운드에 모습을 들어낸 지 불과 5분도 되지 않은 동안 코티디부아르는 상황을 완전히 반전시켰다.
▲6월 15일(한국시각) 브라질에서 열린 브라질월드컵 C조 조별리그 첫 경기에서 코트디부아르 드록바가 일본 수비 2명으로부터 집중 견제를 당하고 있다. AP 뉴시스 후반 19분 윌프리드 보니, 후반 21분 제르비뉴가 연속 헤딩골을 터뜨리면서 일본을 침몰시켰다. 특히 실점하는 2분 동안은 2011년 몰아닥친 쓰나미 같았다. 일본 선수들에겐 마치 축구판 쓰나미를 당한 격이었다. 이 순간 일본 열도도 침묵에 빠졌다. 그가 월드컵 직전 평가전에서 5연승하면서 기세 당당하던 일본팀 모습을 볼 수 없었다.
반면, 코트디부아르는 드록바 효과를 실감했다. 사타구니 부상으로 선발 출장하지 못한 그가 경기에 나서면서 반전은 물론 경기를 완전히 지배하게 한 것이다. 감독으로서 이런 선수를 보면 만감이 교차한다. 우리 선수라면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하겠지만 상대팀 선수라면 감독 입장에서도 정말이지 경기하기 힘들다. 아마도 일본은 드록바가 선발 출전명단에 없어서 심리적으로 편했을 것이다. 세계 최정상급 선수가 나서지 않는다는 것만으로 위안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드록바가 경기장에 들어서자 일본팀 수비는 무너졌다. 더구나 후반 체력 저하로 집중력이 떨어지는 시점에서 전반 조직력 있게 움직였던 수비라인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역전 골을 허용한 뒤 공격적으로 나가야 하는 축구를 시도했지만 수비 부담을 떨칠 수 없는 상황이 계속된 것이다.
일본이 코트디부아르에 패한 이유는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①첫째, 일본 특유의 장점인 템포축구를 못했다. 상대 코트디부아르 선수들은 유럽 빅리그 경험이 많은 선수들이라 콘트롤 플레이를 했다. ②둘째, 경기에 대한 체력 안배가 필요했다. 전반 전진 압박을 한 것은 효율적이었지만 후반 급격한 체력 저하로 상대 선수들에 밀렸다. 체력이 유지돼야 압박을 통한 인터셉트로 공격의 물꼬를 트는데 공격하다 오히려 상대에 차단당하면서 오히려 역습을 허용한 것이다. 후반 역전당하면서 선수들은 땅을 보는 횟수가 많아졌다. 이런 상황에서는 이기기 어렵고 선수들이 그런 모습을 보여서도 안 된다. ③셋째, 조직적인 플레이가 실종됐다. 일본 중앙수비수들은 드록바가 투입되면서 집중력이 현지 떨어졌다. 수비들이 압박감을 느끼면서 기존 선수들에 대한 수비 조직력이 무뎌진 것이다.
물론 일본은 이길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첫 득점 후 득점 찬스가 주어졌다. 하지만 득점 찬스에서 골을 넣지 못한 골 결정력도 패배의 한 가지 원인이다. 반면, 코트디부아르가 이길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명확했다. ①첫째, 야야 투레나 드록바처럼 피지컬이 워낙 강한 선수들이 있기 때문이다. 일본보다 체력적으로 신체조건이 월등히 앞서 상대 수비를 뚫을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다. ②둘째, 일본보다 기술과 스피드가 앞섰다. 더구나 전술적으로 상대의 약점을 파고들었다. 일본의 측면 수비수 나가토모 유토의 약점을 교묘히 활용했다. 세르주 오리에(22ㆍ툴루즈)가 이 공간을 파고들어 두 차례 살인적인 크로스를 한 것이다. 사실 축구에서 1대0으로 상대를 이기기는 어렵다. 이 스코어는 이기려는 팀에게 피를 말린다. 때문에 일본이 이기기 위해서는 체력 안배와 집중력이 필요했다. 감독입장에서 야야 투레와 드록바에게는 10점 만점에 각각 9점, 10점을 줄 수 있지만 카가와 신지와 혼다에게는 각각 5점, 7점을 줄 수밖에 없다. 특히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소속 카가와 신지의 경기력은 실망이다. 왜 그가 박지성과 비교돼야 하나? 굳이 박지성과 비교하자면 90분 내내 뛰는 박지성과 90분 내내 뛰지 못하는 것이 두 선수의 극명한 차이라면 차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