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컨테이너선 에버기븐호가 2021년 3월 23일 수에즈 운하에서 좌초돼, 운하 통행이 일주일가량 전면 중단되었다. 이 사고로 국제 해상운송의 취약성이 그대로 드러났다.
수에즈 운하는 전 세계 교역량의 12%를 담당하는데 이 사건으로 손실액이 시간당 최대 100억 달러(약 11조 2,000억 원)로 추산될 만큼 수에즈 운하 마비의 파급력은 상당했다. 이러한 이유로 대체 항로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다.
러시아는 수에즈 운하의 대안으로 북극항로를 제시하면서 연해주 중심의 신항만 투자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러시아 북극 국제협력 대사 니콜라이 코르추노브는 “수에즈 운하 사고를 계기로 모두 전략적인 해상로를 다변화하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사실 오래전부터 북극항로에 대한 논의가 있었지만, 환경과 비용 관련 우려로 큰 관심을 받지 못했다. 하지만 북극 해빙(바닷물이 얼어서 생긴 얼음)의 두께가 얇아지면서 그 어느 때보다 북극항로의 가능성에 주목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이번 글은 러시아를 중심으로 한 북극항로를 살펴본다.
▲ 북동항로와 수에즈 운하 항로 © 이인선 연구원 |
급부상한 북극항로
북극항로는 북극해를 통해서 극동과 유럽을 잇는 항로다.
북극항로는 북미와 유럽을 잇는 캐나다 해역 ‘북서항로’와 아시아와 유럽을 잇는 러시아 해역의 ‘북동항로’로 나뉜다.
러시아 북동항로는 수에즈 운하를 이용하는 전통적인 항로보다 거리·시간 면에서 이점이 있다.
유럽 최대의 무역항 로테르담에서 부산항까지 운송 시간을 현재 항로와 비교하면 전체 거리의 32%, 약 7,000km 정도가 단축된다. 일수로 따지면 10일가량 줄어든다.
그리고 인도양에 출몰하는 해적과 같은 위험 요소와 운하 사용료가 없는 것이 북극항로의 이점으로 꼽힌다.
다만 북극항로에는 부가비용(쇄빙지원선 사용 비용)과 환경문제 등의 우려가 있다.
북극항로를 이용하려면 얼음을 깨기 위해 러시아의 쇄빙지원선이 필요하다. 쇄빙지원선 사용 비용으로 수에즈 운하보다 3배가량의 운송비용이 더 들 것으로 추정된다. 이에 러시아 정부는 북극항로 운송비용을 낮춰 이용 빈도를 높이려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환경문제도 풀어야 할 숙제다. 스위스 해운사 MSC 등은 북극항로 이용이 대기오염과 해양생태계 파괴 등을 초래한다는 이유로 북극항로 사용을 거부하고 있다. 환경단체는 늘어나는 해상교통량과 쇄빙 활동이 북극의 기후변화를 가속하고 기름 유출 사고 등 다른 재난이 발생할 것이라고 우려한다.
일각에서는 현재 북극항로는 7~10월 정도만 이용할 수 있지만, 오히려 지구온난화로 북극 빙하가 녹으면 2030년 북극항로의 연중 운항이 가능할 것으로 예측하기도 한다.
▲ 크리스토프 드 마르주리호명명식. © 이인선 연구원 |
러시아의 북동항로 활용 계획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2011년 “북극은 세계 최대의 시장인 유럽과 아시아, 태평양을 연결하는 가장 짧은 항로”라며 북동항로 개발의 첫걸음을 뗐다.
러시아는 지난 10년 동안 북동항로 개발을 위한 쇄빙선 건조, 수색 및 구조장비 제작, 그리고 안전한 항해를 위한 인프라 구축에 공을 들였다. 푸틴 대통령은 2018년부터 북동항로를 활용한 시베리아 천연가스 수출을 국책사업으로 선정하고 적극적으로 추진했다.
러시아는 자국의 북극 연안을 따라 형성된 북동항로의 17개 항구를 러시아의 석유와 액화천연가스(LNG)를 포함한 모든 종류의 상품을 운송하는 물류 허브로 육성할 계획이다. 이뿐만 아니라 시베리아 횡단 철도와 이 항구들을 잇는 철도를 구축하고 장기적으로 핀란드와 노르웨이까지 연결할 계획이다.
푸틴 대통령은 2021년 6월 4일 상트페테르부르크 국제경제 포럼에서 “앞으로 교통과 통신, 관광 부문에 대한 투자를 늘릴 것”이라며 북동항로 운영을 위해 2035년까지 핵추진 쇄빙선 9척을 추가 운용할 것이라고 밝혔다.
러시아는 실제로 화물을 운반할 쇄빙선도 대거 제작하며 북동항로를 개발을 주도해왔다. 러시아 국영 원자력 기업인 로사톰의 북해항로국장 뱌체슬라프 룩샤는 “연중 북쪽 바다 항로를 안전하게 항해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현대적 쇄빙선단 구축은 우리나라(러시아)의 전략적 목표”라고 밝힌 바 있다.
러시아는 현재 전방위적인 신 북극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러시아는 2017년 이후 북극항로 이용 관련해 해운·조선 분야 법률을 제·개정하고 조직을 확대해왔다. 신 북극전략은 국제항로로서 북동항로 입지를 강화하며, 러시아 해운산업 성장을 목표로 한다. 푸틴 대통령은 2019년 2월 기존의 극동개발부를 극동북극개발부로 개편해 북극전략을 극동개발과 연계해 추진할 것을 공표하기도 했다.
이 같은 전략 추진 성과로 북동항로 물동량은 2016년 748만 톤을 기록하고 2017년엔 처음으로 1,000만 톤을 돌파했다. 2018년 1,968만 톤, 2019년 3,150만 톤으로 3년 만에 물동량이 4배 이상 증가했다. 2020년에는 코로나19와 저유가 등으로 물동량 성장세가 더딜 것이라는 예측이 나왔지만, 북동항로 물동량은 3,300만 톤에 달했다.
러시아는 2020년 중장기 북극 전략인 ‘2035 북극개발·안보 전략’도 수립했다. 아래는 그중 주요 과제와 단계별 과제이다.
- 주요 과제
▲(사회발전) 보건의료 현대화, 교육, 원주민 문화 보전, 교통 인프라 개선 등
▲(경제발전) 특별경제구역 지정, 민간 투자에 대한 국가 지원, 러시아산 장비·제품 활용도 제고, 수산·농업(온실재배)·임업 현대화 등
▲(인프라) 북극항로 인근 해역 통합 인프라 발전, 북극항로 운항 선박 관리를 위한 해양작전본부 창설, 원자력 쇄빙선 건조, 국제통과운송 확대 등
▲(환경보호) 특별자연보호구역 지정, 기후변화에 따른 경제활동·인프라 조정 등
▲(국제협력) 북극을 평화·안정·상호호혜 협력 지역으로 유지, 북극 연안국의 권리 및 국가이익 보호를 위해 북극 국가들과 협력, 2021-23년 북극이사회 의장국의 성공적 수임, 외국 자본·투자 유치를 위한 협력 등
▲(군사안보) 작전환경 개선, 군 현대화, 군사기지·보급 인프라 정비 등
- 단계별 과제
▲(1단계: 2020-24년) 경제사회발전 가속화를 위한 체계 조성.
▲(2단계: 2025-30년) 북극 지역 경제활동 경쟁력 강화.
▲(3단계: 2031-35년) 대륙붕 개발, 북극항로 경쟁력 확보 및 국제 컨테이너 운송 기반 마련, 환경보호 등
러시아는 앞서 언급한 북동항로의 우려 지점을 해소하기 위해 방안도 마련하고 있다.
올가 스미르노바 극동북극개발부 고문은 북동항로가 친환경적인 항로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그는 러시아가 북동항로를 개발하는 데 있어서 화물 운송과 환경 안전을 우선으로 하는 선박을 이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러시아 국적의 쇄빙선 ‘크리스토프 드 마르주리호’는 지난 2017년 8월 노르웨이 함메르페스트를 출발해 북동항로를 이용해서 충남 보령항에 도착한 바 있다. 이 선박의 연료는 액화천연가스였다. 이를 보아 러시아는 액화천연가스를 기본으로 친환경적인 연료를 사용해 선박을 운항할 것으로 예상된다.
유리 트루트네프 러시아 부총리 겸 극동연방관구 대통령 전권대표는 2021년 4월 초 북극항로 텔레그램 계정을 통해 “북동항로는 수에즈 운하를 이용한 운송보다 더 저렴해져야 한다”라고 역설했다. 북동항로가 미래 아시아와 유럽을 연결하는 주요 교역 통로로 자리를 잡기 위해서는 경제성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 쇄빙선이 얼음을 깨면서 선박의 항로를 만들고 있다. © 이인선 연구원 |
북극항로를 둘러싼 각국의 입장
최근 북극 해빙이 기존 예측보다 두 배 빠르게 감소하고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영국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UCL) 연구진은 북극 해빙의 변화량을 분석한 결과 북극 해역에서 해빙의 감소 속도가 기존 예측보다 70~100% 더 빠르리라 예측한 글을 2021년 6월 4일 국제학술지 ‘빙권(The Cryosphere)’에 게재했다.
이에 따라 북극해의 일부 해역에서 해빙이 2040년 안에 사라질 수도 있다는 주장이 있다.
해빙이 줄어들면서 기후 위기가 가속될 가능성은 커졌지만, 역설적으로 해상운송 면에서는 오히려 위험 부담이 줄어든 셈이다.
북동항로로 인해 북극해와 맞닿은 시베리아 지역의 지하자원 개발은 힘을 얻었다. 시베리아와 북극해 주변에 매장되어 있는 가스·석유와 같은 에너지 자원뿐 아니라 알루미늄·니켈·구리와 같은 광물·산림자원·수산물들의 개발 속도가 높아지고, 북동항로를 통해 수송이 더 빠르게 될 것이다.
또한 러시아는 미국·노르웨이·덴마크·스웨덴·캐나다·핀란드·아이슬란드와 북극이사회를 운영하고 있다. 북극이사회는 몇몇 북극의 원주민 공동체와 함께 지속 가능한 개발과 환경보호를 비롯한 공동문제의 협력·조율·상호활동을 하는 협의기구다.
러시아는 2021년 5월부터 2023년 5월까지 북극이사회 의장국으로 ▲원주민을 포함한 북극 거주민의 삶의 질 제고 ▲기후변화를 포함한 북극의 환경보호 ▲북극의 사회·경제적 발전 ▲북극이사회의 관리체제 강화 등을 추진해 나간다.
중국은 북극이사회에 다른 국가들과 더불어 정규참관국 자격으로 2015년 중앙북극해 어업 중단 협약의 협상과 협약 체결 과정에 참여했다. 그리고 아이슬란드와 자유무역협정을 체결하고 주변국들과 함께 북극 석유 탐사와 북극 광물자원 채굴 사업에 참여하고 있다.
중국은 기존의 일대일로(육상 비단길+바닷길) 전략에 ‘북극 실크로드’를 일도(一道, 하나의 길)로 추가하며 노르웨이령 스발바르섬에 북극연구소를 설치했다. 또한 중국은 러시아와 석유·가스 탐사, 북극항로 인프라 건설 등 다방면에 걸쳐 공동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미국은 러시아와 중국을 비난하면서도 북극항로(북서항로) 개발에 나서고 있다.
미국은 냉전 종식 이후 알래스카 등 북극 지역을 전략적 의미가 높지 않은 곳으로 인식해 왔다. 하지만 북극 지역의 자원 개발 가능성 증대와 이로 인한 연안국 간의 충돌 가능성 등으로 북극 지역에 대한 전략적 가치를 재평가하고 있다.
미국의 외교 및 국제문제 전문 연구기관인 외교평의회가 2017년 3월 ‘북극 최우선 과제: 미국의 제4해안 전략 보강’이라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보고서는 유엔 해양법 협약 비준과 쇄빙선 함대 및 북극 기반시설의 확충을 북극 정책의 주요 목표로 제시하고 있다.
이는 미국이 다른 이해 당사국들에 같은 규칙에 따라 움직이도록 압박하는 동시에 이익을 보호, 획득할 수 있는 실질적인 수단을 마련하는 것이다. 이러한 제안에는 무엇보다 미국이 ‘북극 경쟁’에서 러시아는 물론이고 중국에까지 뒤지고 있다는 문제의식이 깔려 있다.
미국은 서유럽 국가들과 유엔 해양법 협약에 따라 북극항로에 대한 군용 선박의 자유로운 접근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러시아는 북동항로 해역이 자국의 안보와 자원 개발 등 전략적으로 중요하다는 이유로 반대하고 있다.
그렇기에 미국은 러시아 주도의 북동항로 개척에 민감한 반응이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2021년 5월 19일 해안경비사관학교 졸업식 연설에서 “러시아가 항행과 무역의 자유 등 기존의 해양 규칙에 도전하고 있다”라며 “전 세계 무역에 있어 방해받지 않는 흐름을 확보하는 것은 미국의 외교 정책에 매우 중요한 관심사”라고 강조했다.
우리나라 전문가들은 미국의 정치적 견제와 환경문제를 우려하면서도 북극항로 개척으로 얻을 수 있는 다양한 이해관계 확보에 주목했다.
우리나라는 2013년 북극이사회 참관국 가입을 계기로 북극 정책을 마련해 시행 중이다. 대외무역 의존도가 높고 90% 이상의 무역이 해상운송으로 이뤄지는 우리나라의 입장에서는 북극항로 개발에 관한 관심은 당연하다.
전문가들은 북극항로를 이용하면 우리나라 해운업계 성장의 중요한 발판이 될 뿐만 아니라 나아가 에너지·철도·조선·관광 등 여러 방면에서 수혜를 입을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황진회 한국해양수산개발원 부연구위원은 “정부나 민간차원에서 이뤄지는 북극항로와 극동 신항만 투자는 해운업뿐 아니라 철도·에너지 수송·러시아 자원 수입, 수출 효과 등에서 윈-윈 효과를 볼 가능성이 크다”라고 내다봤다.
다만 황진희 부연구위원은 “미국이 ‘세컨더리 보이콧’이라고 해서 러시아와 거래한 국가에 불이익을 주려고 한다. 바이든 정부에서 어느 정도 선까지 용인할지는 모르겠지만 기존 기조가 유지된다고 하면 개별 기업으로선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최수범 인천대학교 동북아물류경영연구소 초빙연구위원은 북방물류리포트를 통해 북극항로와 내륙수로에 정부의 적극적인 관심 투자가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또 최수범 위원은 지구온난화로 인한 북극의 해빙을 피할 수 없다면 자연이 주는 기회를 최대로 활용하고 국부 창출에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말했다.
결론
러시아의 북동항로가 북극해 해역의 해빙으로 더 주목받게 된 점은 마음 아픈 일이다. 하지만 북극해의 급속한 환경 변화로 북동항로에 대한 관심은 연안국뿐만 아니라 주변 국가들까지 확산하고 있다. 특히 북동항로 이용에 가장 경제적 이익을 볼 수 있는 한국·중국·일본 등의 동북아 국가들의 관심이 최근 급증하고 있다.
러시아는 북극 자원 개발, 환경보호 그리고 북동항로의 상업화를 위해 예산 확충과 공세적인 발전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북동항로 이용과 활성화에 가장 적극적인 러시아는 주요 정책 실행과 더불어 항로 이용의 경제성 증대를 위해 약점 해결과 방안 모색에 주력 중이다.
전 세계 공업 생산의 80%는 북위 30도 이북 지역이 차지하며 대부분 중요한 공업지역은 북극에서 6,000km 안에 있어 향후 북극해를 통한 국제간 물류 수송은 경제성이 클 것으로 전망된다.
북극해 항로개발은 단기적으로 러시아의 북극해 연안의 석유·천연가스 등 자원 개발과 물자수송을 위해 활용되고, 장기적으로는 유럽·아시아·북미 서해안을 연결하는 세계 무역에서 물자수송의 최단 해상 항로로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앞으로 북극해 지역의 에너지 개발·수송이 본격화하고 북극항로를 통해 전 세계로 물류가 이동하는 시기를 예상하며, 북동항로의 성장을 지켜보자.
수에즈 운하는 전 세계 교역량의 12%를 담당하는데 이 사건으로 손실액이 시간당 최대 100억 달러(약 11조 2,000억 원)로 추산될 만큼 수에즈 운하 마비의 파급력은 상당했다. 이러한 이유로 대체 항로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다.
러시아는 수에즈 운하의 대안으로 북극항로를 제시하면서 연해주 중심의 신항만 투자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러시아 북극 국제협력 대사 니콜라이 코르추노브는 “수에즈 운하 사고를 계기로 모두 전략적인 해상로를 다변화하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사실 오래전부터 북극항로에 대한 논의가 있었지만, 환경과 비용 관련 우려로 큰 관심을 받지 못했다. 하지만 북극 해빙(바닷물이 얼어서 생긴 얼음)의 두께가 얇아지면서 그 어느 때보다 북극항로의 가능성에 주목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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