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구골 모내던 날
글 德田 이응철(강원수필문학회)
엊그제 고향 살구골을 산책했다. 한창 모내기철인데 조용하다. 며칠 있으면 절기로는 망종이다.
비가 오지 않아 하늘을 원망하며 어린 모종을 한 폭이라도 대지에 꽂으려는 농심이 타들어 가던 60년대가 떠오른다.
고향이 그리워 논둑에 선다. 모든 곡식의 마지노선이 절기 망종이다. 비가 인색하던 예전 농부들은 모심기를 못한다. 천수답에 의존해 하늘만 바라보며 웃 자란 모를 보며 오죽하면 비 맞으며 모냈으면 소원이 없겠다던 말들이 엊그제 같다. 지금은 이양기로 모를 심지만 예전에 모심는 날은 품앗이로 온 동네가 경사였다.
예전 만이양모를 내기위해 중학시절 조퇴까지 맞고 와서 못줄을 잡던 구남매의 젖줄 황새배미를 찾아 간다. 어머니는 농사철이 되면 더욱 여위어 가셨다. 모내기철이면 하루도 빠지지 않고 품앗이로 남의 모를 심기 위해 일찍 출근(?)하신다. 어쩌다 일요일이면 오늘은 동구 밖 홍씨네 모를 심을 테니 그 곳에 와서 놀다가 밥 먹으러 오라고 신신당부하신다.
부드러운 갈을 꺾어 논에 펴고 써레로 전날 논을 평평하게 헷살미를 칠 때면 제비들은 진흙을 물어 집짓기에 한창이다. 면장집의 경우, 한 십여 명이 하루 종일 신트랑 살구골 논에서 모를 심으며 소리치니 그야말로 온 동네 축제였다. 소리소리 지르며 한 줄로 서서 모를 꽂는다. 주인은 사전에 삼태기에 무엇을 훌훌 뿌리며 토양에 힘을 얹는다.
하루 세끼를 먹는다. 오전 새참, 점심, 오후 새참을 먹으며 넓은 평수엔 푸르게 변한다.모를 심을 때면 왁자지껄 웃고 떠들며 저마다 시집 간 애들 사는 얘기가 흥미롭다. 겨릿소 두 마리가 써레를 끌고 이랴-마랴 하며 모 심을 곳을 종횡무진 한다.
문전옥답이 아닌 경우 밥을 해서 동네 아낙들이 머리에 이고 나온다. 온 동네 남녀가 모두 그 집에 일을 도우니 축제가 분명하다. 모를 심는 일꾼들은 한번 모를 꽂고 허리를 편다. 선창을 하면 소리도 따라 하면서 배가 출출하면 제누리가 오나하고 산모롱이를 본다.
농사는 밥심이다. 큰 함지에 광주리에 담아 이고 아낙네들이 한 줄로 서서 논으로 나올 때면 환호성을 지르며 좋아하던 일꾼들-. 모심는 날 반찬이 화려하다. 가장 기억에 남는 반찬이 꽁치조림과 빨갛게 버무린 오징어 마른 반찬이 인기다. 예전 모 심을 시기 바닷가엔 꽁치가 만선이었나보다. 살찐 꽁치조림이 눈에 선하다. 정강이에 개흙도 터는 둥 마는 둥 둘러앉아 줄레줄레 늘어놓은 반찬으로 먹는다. 모밥이 참 맛있다. 조미료 없던 시절, 널브러진 양념으로 마음껏 손맛을 더하던 어머니 반찬 솜씨는 그야말로 일품이셨다.
어머니가 일러준 모 심는 근방에서 논다. 지천이던 개구리를 잡고 찔레순도 꺾으며 호시탐탐 식사 때를 기다린다. 악식만 먹다가 기름진 모밥을 챙기려는 어머님의 자식사랑이 눈물겹다. 빙 둘러앉을 때면 어머니 곁에 가서 맛있는 반찬과 생선으로 배를 채우고 돌아오곤 했다. 우리 어머니는 바느질도 잘 하시지만, 농주 담는 솜씨도 동네서 호가 나셨다. 맷돌에 콩을 갈아 벌겋게 두부찌개를 하고, 김치를 담그면 일꾼들은 유별나게 맛있다고 하시던 예전이 그립다.
김유정작가는 개동부터 다섯 끼를 먹는다고 했다. 조반, 점심 겨누리, 점심, 저녁겨누리, 저녁, 오월의 산골짜기에 보면 쇠기 전 부랴사랴 갈 꺾는 글도 나온다. 논둑에서 밥을 먹다가 지나가는 사람이 있으면 반드시 부른다. 이 논 저 논에서 일하던 사람들이 와서 새참을 함께 든다. 아름다운 인정이 꽃 피던 예전 농촌이다.
며칠 전 다녀온 살구골 논둑이 온통 새빨갛다. 어찌나 제초제를 무더기로 살포했던지 논둑이 숨도 못 쉬고 신음하고 있다. 어디에 하소연해야 할까! 소리없이 지나가는 모 심는 절기 밥 차리고 송화 따던 아낙네가 산에서 손짓하는 것만 같다.(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