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르푸13 - 궁전에서 산길을 내려가서는 한적한 바닷가에서 망중한을 즐기다!
2024년 5월 6일 코르푸 Corfu 섬에 도착해 올드 포트리스 요새 Old Venetian fortress 와 올드
포트 Old Port 에 새 베네치아 요새 New Venetian fortress 를 보고 다음날인
5월 7일 10분을 걸어서 버스정류소에 가니 메소기 Messoghi (Mesongi) 는 보이지 않습니다.
물어서 100미터를 더 가서 다른 정류소에서 10번은 아킬리온 Achilleion 행이고 6번은 베니체스
Benitses 행이라 우린 10번 버스를 타고 30분 가까이 달려서 종점인 Achilleion 에
도착하니 마침 Strike(파업) 중이라..... 문은 굳게 닫혀있으니 산길로 해서 바닷가로 내려갑니다.
여기 hotel Kaiser 앞 해변에 버스 정류소에는 버스 시간이 남은지라 도로를 건너 계단
으로 해서 바닷가로 내려가니..... 작고 한적한 해변인데다가 해수욕철이
아닌 봄철이라 사람이 없으니 바닷물에 손과 발을 담근 후 모첨럼 망중한을 즐깁니다.
그런데 어떤 부부가 와서는 이 외진 해변에서 선탠을 하면서 수영도 하는지라
구경을 하는 중에..... 버스 한 대가 내려오기로 급히 도로로 올라섭니다.
버스가 도착했는데 정면에 쓰인 목적지를 보니 우리가 가려는 메소기를 거쳐 섬 최남단에 자리한
Kavos 행이 아니고 6번 베니체스 Benitses 행이라 버스가 섰는데도 타지 않고 그냥 보냅니다.
그러고는 버스정류소에서 다시 한적한 해변으로 내려가서는..... 해수욕장이면
으례 있는 눕는 침대에 누워 서늘한 바람을 맞으며 다시 망중한을 즐깁니다.
그러면서 조금전에 우리가 내려온 산길을 바라보다가 문득 문성환 님의 시 억새 꽃 이 떠오릅니다.
연분홍 코스모스 꽃길 건너
연 양리 뜰 굽이굽이 돌아
하얗게 웃는 이 가을의 꽃
은빛 휘 나래치는 억새들이 꽃 가슴엔
하늘 깊은 곳으로 흐르는 음률이 열린다
저 순백의 리듬 한가운데
담백한 기품의 소리 군무를 추는
올곧은 지조의 긴 세월 묵향이날아
잘 익은 가을날의 연정을
이시대의 심장 속으로 청자빛 휘파람 분다
하늬바람 불어올 서북노을
시간의 정자 위로 기러기 꿈 아려 안고
달빛 내리는 남한강 물길위에
풍경소리 울리는 묵고의 강월헌
침묵의 나옹 선사 시 문답 소리 들리는
그런데 Alekos 버스 정류소에 서 있자니 조금 전에 우리가 타지 않고 그냥 보냈던 베니체스 Benitses
행 6번 버스가 다시 되돌아 오는 것을 보는데....... 저 위쪽에 카이자 브릿지를 지나 사라집니다.
우리가 가려고 했던 버스 노산을 보니.... 코르푸 - Perama .... 내륙.... Achilleion -
Gastouri ... 해변 .... Benitses - Ag. I. - Moraitika - Messoghi 입니다.
그러고는 시간이 되었는데도 Messoghi 나 Lefkimi 또는 섬의 최남단인 Kavos 로
내려 가는 버스가 오지 않으니 그럼 버스도 부분 파업이라도 하는 것일까요?
시간이 흐르다 보니 조금 전에 6번 버스를 타고 베니체스에라도 갈 것을 하고 생각
하니 후회막급 인데.... 베니체스 Benitses 는 어촌으로 도시 남쪽에는
아기오스 이오아니스, 페리스테론, 모라이티카 해안 등은 일급 휴양지 라고 합니다.
지나놓고 보면 선택의 중요성을 온 몸으로 느끼는데.... 의도하지 않은 선택이 제1차 세계대전이니
누구도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 조그만 선택들이 결국 전쟁으로 이어졌으니 동아일보
‘임용한의 전쟁사’ 라는 칼럼에 실린 “대량학살 못 막은 집단지성” 이라는 글이 문득 떠오릅니다.
2월 21일은 1차 대전중인 1916년에 베르됭 전투가 발생했던 날이다 . 뫼즈강의 요새
도시 베르됭을 두고 독일과 프랑스 사이에 벌어진 베르됭 전투는 1차대전
사상 최대 희생자를 낸 전투였다. 단일 면적당 희생자가 제일 많았던 전투이기도 하다.
서부 전선에 배치한 사단의 3분의 2가 이 좁은 땅에 투입되었고, 독일과 프랑스군
합쳐서 3500만 발이 넘는 포탄이 발사되었다. 그중에는 포스겐 가스탄도
있었다. 독일과 프랑스 양측을 합쳐서 사상자는 60만 명에서 100만 명에 달한다.
1962년에 앨리스터 혼이 쓴 ‘베르됭 전투’ 는 이 전투에 관한 고전이라고 할 수 있는
책이다. 혼은 이 전투를 주도한 지휘관들에 대해서도 상세하고 비판적인 고찰을
남기고 있다. 작가가 이런 분류를 하진 않았지만, 등장인물들은 이런 분류가 가능하다.
전투가 전략적 목표를 잃고 오직 지옥 같은 소모전이 되고 있음에도 잘못을 알지 못하고 무조건 공격
과 승리에 집착하는 장군, 전투가 잘못된 줄 알면서도 우유부단하고 책임만 전가하는 장군,
잘못된 전투임을 알고 병사들을 희생시키지 않기 위해 창의적인 전술과 방법을 모색하는 장군이다.
기묘한 사실은 베르됭 전투가 처음의 전술적 기교를 잃고, 맹목적인 학살극으로 바뀌어 가자 경악
하고 진절머리를 내는 장군들이 많았음에도 전투는 중단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처음
공격을 시작한 독일군은 제5군으로 사령관은 국왕 빌헬름 2세의 황태자 빌헬름 폰 프로이센 이었다.
황태자도 처음에는 의기양양했지만, 나중에는 이 전투에 진절머리를 냈고,
“공격하자, 반드시 승리해야 한다” 고 주장하는
장군들을 경멸했다. 그러나 황태자 자신도 이 전투를 중단시키지 못했다.
대중들은 현명했을까? 전시의 보도 통제나 선전에 휘둘렸던 것일 수도 있지만,
대중들은 승리의 소식을 가져다주는 ‘피의 도살자’ 형
장군들에게 환호를 보냈다. 신중하고 고뇌하는 지휘관들은 결국 비난을 받았다.
인간은 절대로 현명하지 않다. 집단지성은 더욱 그렇다. 공포와 욕망에
사로잡힐 때, 이성은 눈을 감는다. 베르됭은
언제든지 재현될 수 있다. 지금 세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쟁도 그렇다.
1914년 오스트리아 황태자가 세르비아 청년에게 암살되니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는데 오스트리아
제국은 세르비아에게 선전포고를 하자 러시아 제국이이에 반발하며 총동원령을 내리니.....
오스트리아제국의 동맹 독일 제국이 러시아 제국과 러시아의 동맹인 프랑스에게 선전포고를 합니다.
1914년에 암살된 황태자 프란츠 페르디난트는 조금 전에 우리가 본 아킬리온 궁전을 지었으나 이때는 이미
죽은 시시 (엘리자베스 황후) 의 두번째 시동생인 카를 루트비히의 아들로, 시시의 남편 프란츠 요제프
황제는 큰 전쟁을 일으킬 생각은 없었으나 수상이 독일의 원조를 약속받는 바람에 세계대전으로 이어집니다.
세르비아는 1915년 11월 프리슈티나가 함락된후 페타르 1세와 국민들은 험준한 산맥을 넘는등
500km 를 가로질러 여기 코르푸섬으로 탈출을 감행(Great Retreat) 했는데, 아드리아해 해안
까지 도달하는데 성공한 세르비아군은 12만명에 피난민은 6만명에 불과했으니 엄청 죽었습니다.
1923년에는 이탈리아 왕국이 그리스-알바니아 국경에서 피살당한 이탈리아 장군 텔리니의 죽음을
빌미로 그리스의 사죄 및 배상을 요구하며 섬을 폭격하기도 하였으니 이른바 코르푸 사건 입니다.
2차 세계대전 시에는 1941년부터 이탈리아, 1943년 부터는 나치 독일이 바로 이곳
코르푸섬을 점령하였다. 이후 섬의 유대인들은 상당수가 살해되었다.
그리고 연합군은 노르망디 상륙작전에 대한 양동 작전으로 코르푸 섬을 폭격하였다.
코르푸는 1944년 10월에 독일군이 철수하며 해방되었지만 1946년부터는 냉전의 전초전인
코르푸 해협 사건이 일어났으니 알바니아군의 영국 함대에 대한 포격 사건이니
마치 1866년의 시모노세키해협에서 조슈번의 포대가 미국 상선에 포격한 것과 비슷합니다.
따라서 코르푸 일대가 기뢰밭이 되기도 하였고, 40여명의 영국 해병이 사망하였다.
이 사건을 코르푸 해협 사건이라 부르며, 국제법상 무해통항권과 통과통행권
을 국제법적으로 다룬 첫 사례로, 국제사법재판소 (ICJ) 의 1호 판결이기도 하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