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치박스 외 1편
정지윤
빗방울이 떨어진다
혼자 밥 먹기 좋은, 저녁
갠지스 강이 의자에 잠겨
머리 끝 부분만 아슬하다
반전을 기다리는
옆자리는 여전히 비어있고,
잘못 탄 기차를
믿는 이들은 어디로 갈까
혼자서 도시락을 먹는 남자
내 손에서도 카레 냄새가 나는 듯
코가 간지럽다
재채기를 하다 주머니 속
편의점 영수증을 구기고 만다
* 런치박스: 리테쉬 바트라 감독의 인도영화
간격에 대하여
계단들이 멋대로 흔들렸다
연립주택 2층에서 가스통이 터졌다
몸이 흔들리더니 보이지 않던 중심이
잠깐 나타났다 사라졌다
흘러내리는 계단, 올라오거나 내려가는
그림자들의 앞뒤가 뒤섞였다
지워진 간격 속에 갇힌 웃음 혹은 울음의 뼈,
검은 실루엣들 속엔 뼈가 없어
형체 없이 출렁인다
간격과 간격의 사라진 높이를 생각한다
앞차와 뒤차 사이의 5센티미터
포개지지 않을 때 계단은 겨우 살아있다
어제와 오늘, 현관 틈새를 빠져나갈 때
간발의 차로 쌍둥이가 태어나고, 싱크대의
수돗물은 쏟아지기 시작한다
간격이 헐거워지는 찰나의 틈새 속에서
나는 간신히 간격을 유지한 채
가로등처럼 네 앞에 서 있다
─반년간지 『시에티카』 2014년 · 하반기 제11호
정지윤
경기도 용인 출생. 2009년 『시에』로 등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