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루
정준호
할머니는 평생
밀가루 반죽을 빚으셨어
칼국수와 수제비를 잘 만드셨지
할머니는 고맙다고
절이라도 하듯
점점 구부정해지셨어
봄엔 꽃가루 알레르기가 있으셔서
기침을 하셨어
기침 소리에 놀라
작은 꽃잎들 떨어질까 봐
조용조용 입을 가리셨어
쪼끄만 땅 짐승 놀랄까봐
발 소리를 줄이다가
점점 가벼워지셨어
작아지고
조용해지고
가벼워져서
할머니는 이제
희고 둥근 항아리 속으로
들어가셨어
무섭지만 나도
손을 넣어 만져보았어
흰 가루가 담긴
항아리 속에서
지금도 따뜻하셨어
박수를 치면서
가루 묻은 손을 털었어
하늘에서도 반기듯
밀가루 같은
할머니 가루 같은
눈이 내렸어
펑펑 내렸어
(2022년 매일신문신춘문예 동시당선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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