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체육대학 95학번 동기인 고영태-노승일씨는 「최순실 사건」의 중심 인물이다. 고영태씨는 최순실씨가 서울 강남구 신사동에 마련한 「대통령 전용 의상실」 내부를 촬영한 CCTV 파일을 TV조선
K스포츠재단 사업기획본부 부장인 노승일씨는 재단에서 작성한 각종 서류들을 검찰에 제공했을 뿐만 아니라, 검찰에 소환돼 조사를 받고 있던 중에도 독일에 있던 최순실씨에게 검찰 수사 상황을 보고하고 대책을 지시받았다. 이처럼 노씨는 한편으로는 검찰 수사에 협조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최씨와의 국제전화 통화 내용을 몰래 녹음해 검찰 및 야당의원에게 제공한 장본인이다.
기자는 이러한 내용이 기록된 고영태-노승일씨의 검찰 진술조서를 입수했다. 두 사람이 검찰 조사를 받은 것은 작년 10월 25일에서 10월 31일 사이로, 최순실씨에 대한 검찰의 직접 수사가 이뤄지기 전이다. 두 사람은 모두 참고인 자격으로 검찰 조사를 받았다. 때문에 이들의 검찰 진술조서는 자유로운 상태에서 이뤄진, 「진실에 가까운 증언」이라고 할 수 있다.
두 사람 가운데 먼저 검찰 조사를 받은 사람은 노승일씨다. 노씨는 박근혜 대통령이 제1차 對국민담화를 발표한 작년 10월 25일 검찰에 소환되었다. 이에 앞서 검찰은 10월 21일, K스포츠재단 초대 이사장이었던 정동구씨를 조사했고, 10월 23일에는 K스포츠재단 김필승 이사를 조사한 데 이어 노승일씨를 소환했다.
그로부터 이틀 뒤, 태국에서 잠적 중이던 고영태씨가 돌연 귀국하여, 검찰에 자진 출두했다. 고씨가 타고 온 검은색 카니발 차에는 그가 최순실씨로부터 받은 각종 서류와 K스포츠재단에서 만든 자료들이 실려 있었다. 고씨는 이 자료들을 검찰에 스스로 제출했다. 고영태씨가 조사받은 자리에 노승일씨도 동석했다. 검찰은 10월 27일 밤 9시부터 다음 날 오전 6시45분까지 두 사람을 상대로 번갈아 가며 조사했다.
고영태씨는 검찰에 자진 출석한 이유에 대해 '저와 韓體大 동기로서 우정이 매우 두텁고 현재 K스포츠재단에 근무하는 노승일 부장이 며칠 전 검찰에서 조사받고 나온 뒤 저에게 전화하여 '검찰에서 의지를 갖고 수사하는 것 같다. 사실대로 진술해도 되겠으니 하루라도 속히 우리가 알고 있는 사실들에 대해 모두 털어놓고 마음 편히 살자'라며 용기를 주어, 어제까지 태국에 있다가 오늘 아침 비행기를 타고 귀국하게 되었다'고 진술했다.
검찰 진술조서에 기록된 노승일씨의 학력과 경력은 다음과 같다.
<▲ 초등학교 4학년 때 배드민턴 시작.
▲ 1995년 2월 서울체육고등학교 졸업
▲ 1995년 한국체육대학 입학. 전국체전 서울 대표선수로 참가하여 단체전에서 금메달 수상. 1999년 2월 한체대 졸업.
▲ 1999년 8월부터 그 해 12월까지 경기도 가평에 있는 설악중학에서 체육담당 기간제 교사로 근무.
▲ 2002년 2월부터 2013년 3월까지 11년간 메리츠증권 서울 종로지점 등에서 근무. 고객에게 계좌 개설 권유 및 고객의 자산관리 담당.
▲ 2013년 4월부터 2015년 7월까지 서울 노원구, 은평구 및 경기도 의정부시와 양주시 등에서 배드민턴 코치생활.
▲ 2016년 1월 11일, 고영태 소개로 K스포츠재단 입사.>
노승일씨는 '고영태를 어떻게 알게 되었냐'는 질문에 이렇게 진술했다.
「한체대는 매 학년마다 운동선수를 200명 모집하는데 저는 배드민턴으로, 고영태는 펜싱으로 1995년 같은 해에 입학하였습니다. 한 학년 정원이 200명이라도 같은 학번 동기는 200명 모두를 알고 지냅니다. 한체대는 음주와 흡연을 하지 못하게 되어 있는데도 불구하고, 일부 학생들은 술과 담배를 피우는 그룹으로 나뉘어 친하게 지냈습니다. 고영태와 저는 담배피우는 그룹에 속해 한체대 다닐 때부터 친하게 지냈습니다.」
노승일씨는 최순실씨를 알게 된 과정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진술했다.
「배드민턴 강사로 지내던 2014년 초순경, 고영태로부터 '체육 관련 사단법인체를 만들려고 하는데 같이 하자'는 제의를 받고, 고영태 소개로 최순실 회장을 만났습니다. 고영태는 최순실 회장이 대통령과 가까운 사람이라는 것을 처음에는 알려주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고영태가 최순실 회장 앞에서 쩔쩔매는 것을 보고 '도대체 최순실 회장이 어떤 사람이냐'고 물었더니, 고영태가 다른 말은 안하고 '최태민을 아느냐'고 말해 주기에 인터넷으로 찾아보니 최순실이 최태민의 딸이며 박근혜 대통령과도 친분이 두텁다는 것을 알게 되어 비로소 고영태가 쩔쩔매는 이유를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2015년 12월 말경 고영태가 '앞으로 체육재단이 하나 만들어질 것인데 최순실 회장에게 말해 놓았으니 이력서를 준비하라'고 하여, 고영태를 통해 최순실 회장에게 이력서를 제출하고 재단 설립 후 인재양성본부 부장으로 근무하게 되었습니다.」
검찰 진술조서에 기록된 고영태씨의 학력과 경력은 다음과 같다.
<▲ 중학교 때 펜싱선수로 활약.
▲ 1995년 2월 전남공고 졸업.
▲ 1995년 한국체육대학 입학.
▲ 1998년 방콕 아시안게임 펜싱 사브르 단체전에서 금메달, 개인전에서 은메달 수상.
▲ 1999년 한체대 졸업.
▲ 2002년부터 선수 생활을 그만두고 서울 동대문시장과 남대문 시장에서 옷을 도매로 사다가 소매로 파는 보따리 장사 시작. 이탈리아에서 의류와 악세사리 등을 수입하여 판매. 가라오케 운영.
▲ 가방 제조기술을 배워 2008년 서울 청담동에 가방, 핸드백, 지갑 등을 제조, 판매하는 「빌로밀로」라는 회사 설립. 가게를 방문하는 손님에게 직접 물건을 팔기도 하고, 인터넷을 통한 주문 판매도 병행.>
고영태씨는 최순실씨를 만난 과정에 대해 이렇게 진술했다.
「2012년 말경, 제 고객 중 일부가 '신상품을 가지고 까페 같은 곳에 오라'고 하기에 기방과 지갑 등을 가지고 갔더니, 웬 여자분이 악어가죽으로 만든 지갑 하나와 소 가죽으로 만든 핸드백 하나를 샀는데, 그 분이 최순실이었습니다. 명함이나 연락처를 받은 것은 없습니다. 그 후 제가 만든 가방이 마음에 들었는지 최씨가 몇 번 더 가방 주문을 하게 되었고, 주문받은 가방을 전달하는 과정에서 최씨와 자연스럽게 친분이 형성되었습니다.
그러던 중, 2013년 초순경, 우연히 인터넷에서 대통령의 패션에 관한 내용을 보았습니다. 제가 최순실에게 판매한 가방 가운데 일부를 박근혜 대통령이 공식 행사장에서 사용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때부터 최순실이 저에게 구매한 가방을 대통령에게 전달하였을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후 어느 날, 최순실이 가방 주문을 하는데 시간이 매우 촉박하였습니다. 제가 최순실에게 '주어진 시간까지 가방을 제작하려면 시간이 너무 촉박해 어렵다'고 하자, 그제서야 최순실은 '사실은 대통령이 순방할 때 입을 옷이 먼저 결정되어야 옷 색깔에 맞는 가방을 주문할 수밖에 없어서 그렇게 되었다'고 말하였습니다. 그때 처음으로 제가 만든 가방이 대통령을 위한 것이라는 사실을 정식으로 알게 되었습니다.」
이어지는 진술에서 고영태씨는 박근혜 대통령이 해외 순방을 나갈 때 입었던 옷을 제작하게 된 과정을 밝혔다.
「저는 대통령을 위한 가방을 만들어 왔다는 것에 큰 자부심을 가지게 되었는데, 가방을 만드는 김에 가방에 어울리는 옷도 같이 만들면 좋을 것 같아, 최순실에게 '대통령님의 옷도 제가 한 번 만들어 보겠습니다'라고 하였고, 최순실은 '전문가를 잘 선별해 보세요'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제 주변을 수소문하여 의상 디자인 경력이 40년 이상 된 남성 패턴실장 한 분을 섭외하여, 그 분이 시험 삼아 만든 옷을 최순실에게 보여 주었더니 마음에 들어 하였습니다. 최순실은 저에게 '대통령의 옷을 만드는 사람은 청와대 검증을 거쳐야 한다'고 말해, 저는 그 분의 이력서를 최순실에게 주었습니다. 그 후 최순실로부터 '청와대 검증 결과 이상이 없다'는 통보를 받았습니다.
그 후 2013년 여름경, 서울 강남구 신사동 신구초등학교 부근에 있는 4층 건물의 3층을 임차하여 대통령을 위한 옷을 만드는 전용 의상실로 사용하였습니다. 임차인 명의는 제 이름으로 하였지만, 사무실 보증금 2천만 원과 월세 150만 원은 최순실이 지급하였습니다. 신사동 의상실을 만든 후, 빌로밀로는 사실상 폐업하였습니다.
최순실이 '대통령이 언제, 어떤 나라를 방문할 예정이니 언제까지 옷을 만들어 달라'고 지시하면, 대통령이 순방할 나라가 좋아하는 색깔 또는 싫어하는 색깔 등을 찾아보고 그에 따라 옷을 만들어 드렸습니다. 처음에는 윤전추 행정관으로부터 대통령의 신체 사이즈를 통보받아 옷을 제작하였는데, 가봉 과정에 옷이 대통령의 신체에 잘 맞지 않는 경우가 있어, 제가 고용한 디자이너들이 청와대를 직접 방문하여 대통령의 신체 사이즈를 정확하게 체크하였습니다.
신사동 의상실 직원은 60세 정도의 남성 패턴실장과 재단 및 미싱일을 하는 남성 실장, 그리고 허드렛일을 도와주는 알바생 1명 등 총 3명이었습니다. 저는 원단 구입과 디자인 샘플을 구해주는 일을 하였습니다.」
다음은 검사와 고영태씨 간의 일문일답이다.
<문 : 월급은 얼마나 되었는가요?
답 : 저는 300만 원~400만 원, 패턴실장은 약 400만 원, 재단실장은 약 380만 원, 알바생은 약 200만 원을 최순실로부터 받았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문 : 신사동 의상실은 언제부터 언제까지 운영되었는가요?
답 : 2013년 여름경부터 2014년 봄까지 운영되었습니다.
문 : 그 사이에 대통령을 위한 옷은 몇 벌이나 제작되었는가요?
답 : 대략 의상 30벌에 가방 30개 정도를 제작하였습니다. 의상은 직접 제작하였지만 가방은 외주로 제작하였습니다.
문 : 의상 제작비는 한 벌당 얼마나 소요되었는가요?
답 : 일반인을 상대로 판매하는 옷을 제작하는 곳이 아니기 때문에 가격을 매기기가 어렵습니다. 일반 기성품의 경우, 판매가는 원가의 몇 배에 달하는 경우가 많은데, 신사동 의상실에서는 오직 대통령 한 사람을 위한 옷만을 만들었기 때문에 한 벌을 제작하는 데 얼마가 들었다는 것은 계산해 본 적이 없습니다. 어떤 원단을 사용하는 지에 따라 많은 편차가 있었습니다.
(이때 검사는 2016년 10월 26일자
문 : 언론 보도에 의하면 최순실이 자신의 지갑에서 5만 원권 현금을 꺼내 옷값을 지불하는 듯한 장면이 나오는데, 화면 속의 장소는 어디인가요?
답 : 바로 신사동 의상실입니다. 화면 속에서 최순실에게 영수증을 제시하는 사람이 패턴실장입니다. 그리고 최순실이 지갑에서 현금을 꺼내주는 장면은 옷값을 지불하는 것이 아니라 패턴실장이 제시하는 원단 및 부자재 영수증을 보고, 그 비용을 꺼내주는 모습입니다. 많이 줄 때는 500만 원 정도를 줄 때도 있지만, 적을 때는 50~100만 원을 줄 때도 있습니다.
한 벌이 완성될 때마다 비용을 지불하는 것이 아니고, 거래처별로 한달치 또는 보름치의 원단 및 부자재 값을 한 번에 결제해 주는 방식이었습니다.
문 : 언론에 보도된 화면은 누가, 어떤 방법으로 촬영한 것인가요?
답 : 신사동 의상실에 CCTV가 설치되어 있는데, 그 CCTV에 저장되어 있던 파일입니다.
문 : CCTV 파일이 어떤 경로로 언론에 보도된 것인가요?
답 : 제가 2014년 연말경
그때는 보도되지 않았는데, 이번에 JTBC가 최순실의 태블릿을 보도한 이후(2016년 10월 24일), TV조선
사무실 전체가 보일 수 있는 위치에 CCTV 한 대를 설치하였는데, 방송 화면을 보니 TV조선
문 : 진술인은 청와대 이영선 행정관을 아는가요?
답 : 알고 있습니다. 신사동 의상실에 가끔 대통령의 의상을 찾으러 왔던 행정관입니다.
문 : TV조선에 보도되었던 화면을 보면, 이영선 행정관이 누군가로부터 전화를 받자 자신의 와이셔츠에 휴대폰 화면을 닦은 다음, 공손하게 최순실에게 건네주고 최순실은 통화가 끝난 후 이영선의 얼굴을 보지도 않은 상태에서 돌려주는 등 마치 청와대 행정관을 '아랫 사람 다루듯이' 하는데, 이는 어떤가요?
답 : 저도 최순실로부터 그런 취급을 받았으니 그렇게 놀라운 일도 아닙니다. 최순실은 이영선 행정관은 물론 윤전추 행정관도 자신의 직원 부리듯이 하대하는 것을 여러 번 보았습니다.
(이때 검사는
문 : TV조선에는 최순실이 극비사항인 대통령의 해외 순방일정을 미리 제공받아 의상제작에 활용하였다는 보도를 하였는데, 이에 관하여 아는 바가 있는가요?
답 : 화면 속에 있는 '북극성(4박7일)'이란 제목의 일정표는 최순실이 청와대로부터 받아서 가지고 있던 대통령의 해외 순방 일정표가 맞습니다. 위 일정표 역시 제가 2014년 연말경
문 : 대통령의 해외 순방 일정표는 테러 위험 등의 사유로 대외비로 지정되어 있는데, 최순실이 미리 이를 입수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인가요?
답 : 대통령이 해외 순방 때 입을 옷을 제작하기 위해서는 최소 한 달 정도의 시간이 걸리는데, 스케줄에 따라 옷을 여러 벌 갈아입으시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전에 대통령의 일정표를 입수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문 : 최순실은 이와 같은 극비 문서들을 어떤 경로로 입수하는 것인가요?
답 : 청와대에서 받은 것은 알지만 누구로부터 받았는지는 알지 못합니다.>
대통령이 해외 순방 때 입을 옷을 전문으로 제작한, 「신사동 의상실」은 만든 지 1년 후인 2014년에 문을 닫았다. 의상실 폐쇄 이유를 고영태씨는 다음과 같이 진술했다.
「2014년 초순경, 인터넷 매일경제신문에 제 이름과 빌로밀로라는 회사 이름까지 거론하며 '영세 가방제조 업자가 대통령 가방을 만들다가 망했다'는 취지의 기사가 난 적이 있습니다. 저는 기자에게 위와 같은 말을 한 적이 없는데도 마치 제가 인터뷰한 것처럼 기사가 보도되었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저는 누구한테도 제가 대통령의 옷과 가방을 만든다는 말을 한 적이 없습니다. 저는 해당 기자에게 '왜 사실과 다른 기사를 올려 난감하게 하느냐'고 따진 뒤 '해당 기사를 내리라'고 요구하였습니다.
하지만 위 기사를 본 최순실은 제가 언론에 그런 말을 흘린 것이라 생각하고, 저에게 더 이상 대통령의 옷과 가방 만드는 일을 못하게 하였습니다. 그 후 저는 서울 강남구 봉은사 뒤쪽, 오천주유소 사거리에 있던 최순실 개인사무실로 출근하였습니다. 이 사무실에는 최순실과 저, 남자 직원 1명 등 총 3명이 있었는데 특별히 하는 일은 없었습니다.」
고영태씨는 검찰 조사에서 신사동 의상실에서 만든 대통령 옷은 30벌이었다고 진술했으나, 국회청문회에 증인으로 출석해서는 100벌을 만들었다고 증언했다. 기자가 확인한 결과, 신사동 의상실에서 대통령의 해외 순방에 대비해 의상을 제작한 것은 모두 세 차례였다. 이는 고영태씨가 검찰에 제출한 대통령의 해외순방 일정표에서 확인되었다.
고영태씨의 국회청문회 증언은 부풀린 숫자였음에도 불구하고, 종편에 출연한 일부 정치평론가들은 최순실씨가 만든 대통령 의상이 100벌이 넘고, 그 값이 몇 억 원에 이른다고 주장하며, 이는 박근혜 대통령이 최순실씨로부터 받은 뇌물에 해당한다는 주장을 펼쳤다.
고영태씨가 차은택 감독을 만난 곳은 봉은사 부근에 있었던 최순실 개인사무실이다. 차은택 감독과의 인연에 대해 고영태씨는 검찰에서 이렇게 진술했다.
「신사동 의상실을 폐쇄할 무렵, 최순실이 저에게 '국가브랜드 제고(提高)를 위한 각종 홍보물을 기획, 제작할 수 있는 사람을 소개해 달라'고 하였습니다. 저는 그런 쪽 일을 해 본 적도 없고, 그런 쪽 일을 하는 사람을 알지도 못하지만, 단지 최순실이 하는 말 가운데 '광고'라는 말을 알아듣고, 아프리카픽쳐스라는 광고 회사에 다니는 친구 브랜든(호주 교포)이 생각이 나서, 그 회사 사장인 차은택을 최순실에게 소개하였습니다. 최순실과 친분을 맺은 차은택은 2014년 8월 대통령 직속 문화융성위원회 위원이 되었습니다.」
최순실씨 주변에 차은택 감독이 등장하면서 고영태씨는 큰 충격에 빠졌다. 다음은 검사와 고씨 간의 일문일딥이다.
<문: 진술인이 차은택을 최순실에게 소개한 이후에는 어떤 일들이 있었는가요?
답 : 솔직히 그 이후 벌어진 일들이 제 상식에는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 게 많아서 2014년 연말경 회사를 그만두었습니다. 그동안 보관하고 있던 최순실의 각종 문건과 CCTV 저장파일은
문 : 어떤 일들이 진술인의 상식에는 이해되지 않는 일들이었는가요?
답 : 가장 대표적인 일이 김종덕 문체부장관 임명에 관한 일이었습니다. 당시 차은택은 봉은사 부근 개인사무실에 수시로 드나들면서 최순실을 만나 회의를 하였고, 그 자리에는 저도 참석을 하였습니다.
저는 최순실이 대통령과 오래 전부터 친분이 있기 때문에 대통령의 가방과 의상을 만드는 일을 하는 줄로만 알고 있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최순실은 문체부장관 인사 문제 등 정부 인사를 자기 마음대로 결정할 수 있는 것처럼 행동하였습니다.
언젠가 최순실이 김종 문체부 2차관과 통화하는 것을 옆에서 들었는데, 문체부장관 후보로 내정되어 있던 아리랑 TV 사장 정성근이 폭행 전력이 문제가 되어 장관 임명이 어렵다고 하였습니다. 그 후 봉은사 부근 개인사무실에서 최순실, 차은택, 저 이렇게 3명이 있는 자리에서 최순실은 차은택에게 문체부장관에 임명할 만한 사람을 추천해 달라고 하였고, 얼마 후 차은택은 자신의 대학 은사이자 자신이 다녔던 회사의 사장이었던 김종덕을 추천하였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실제로 김종덕이 문체부장관에 임명되는 것을 보고, 저는 큰 충격에 빠졌습니다. 그 무렵 차은택은 자신이 영상제작을 하던 시절에 많은 도움을 주었던 송성각을 최순실에게 추천하여, 송성각은 한국콘텐츠진흥원장에 임명되었고,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그 무렵 차은택의 외삼촌인 김상률은 청와대 교육문화수석에 임명되었습니다.
문 : 진술인은 차은택이 (주)아프리카픽쳐스 등을 운영하면서 문체부 등 국가로부터 특혜성 광고를 수주하여 받은 이익금 중 일부를 횡령한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요?
답 : 들어본 적이 있습니다. 제가 듣기로, 차은택이 직접 운영하는 아프리카픽쳐스는 매출을 고의로 적게 만들어 놓고, 다른 사람 이름으로 되어 있는 회사들을 통해 수주하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면서 아프리카픽쳐스는 각종 정부 관련 광고를 '재능기부'하는 식으로 처리한다는 말도 들었습니다.
차은택이 문체부장관 인사에까지 관여하고 있다 보니 그런 영향력을 이용하여 각종 정부 관련 광고를 직접 수주하거나 다른 회사로 하여금 수주하게 한 후 개인적으로 막대한 이익을 챙기고 있다는 말도 들었습니다.
문 : 진술인이 봉은사 부근 개인사무실을 그만두게 된 경위는 어떠한가요?
답 : 당시 최순실과 사소한 문제로 다투는 일이 많았는데, 최순실은 저에게 '네가 뭘 안다고 대드느냐'는 식으로 저를 무시하였고, 저 역시 '그러는 당신은 뭘 안다고 나를 무시하느냐'는 식으로 싸웠습니다. 제가 더 이상 사무실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없어 보였고, 최순실이 장관 인사까지 좌지우지하는 것을 보고, 나중에 큰 일이라도 벌어질 것 같아 2014년 연말경 사무실을 그만둔 것입니다. 저와 다툰 후, 최순실도 더 이상 사무실에 나오지 않았습니다.>
고영태씨가 TV조선
이 자료들의 입수 경위에 대해 고영태씨는 '최순실이 저에게 신사동 의상실과 봉은사 부근 개인사무실을 정리하라고 하면서 남긴 물건들을 버리라고 했는데 제가 버리지 않고 보관하고 있었다'고 진술했다.
고영태씨는 '최순실이 대통령 연설문을 고치는 것을 실제로 본 적이 있느냐'는 검사 질문에 '딱 한 번 있었다'고 대답한 뒤, 보게 된 경위를 진술했다.
'제가 2014년 12월 말경 최순실과 크게 싸우고 나서 봉은사 부근 개인사무실을 그만두었는데, 2015년 12월 말경 최순실이 '더블루K를 만드는데 도와 달라'고 하여, 다시 함께 일을 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더블루K는 서울 강남구 청담동에 사무실이 있었는데, 2016년 1월경, 최순실이 자신의 방에서 문서작업을 하다가 '프린터가 안 되니 도와 달라'고 하여, 다른 직원과 함께 최순실의 방에 가 보았더니 최순실의 책상 위 노트북 화면에 대통령의 연설문이 띄워져 있었고, 최순실이 문서작업을 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프린터를 손 볼 줄 몰라 다른 직원이 프린터를 점검하는 동안, 최순실의 노트북 화면을 볼 수 있었고, 그 직원은 못봤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다음은 검사의 이어지는 심문이다.
<문 : 당시 진술인이 본 것이 대통령의 연설문이었던 것이 확실한가요?
답 : 맞습니다. 그 내용까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대통령의 연설문이었다는 것은 쉽게 알 수 있었습니다.>
이런 진술이 있으면, 검사는 당연히 고영태씨에게 '대통령의 연설문이었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었던 근거가 무엇인가요?'라고 추궁하는 것이 순서일 것이다. 그러나 검사는 더 이상 추궁하지 않았다. 이어지는 검사의 심문은 다음과 같다.
<문 : 최순실이 대통령의 연설문을 수정한다는 말을 진술인에게 직접 한 적이 있었는가요?
답 : 아니요. 최순실은 그런 말은 하지 않습니다. 저도 대통령의 옷을 만드는 일을 해보았지만 최순실은 그런 말을 직접 입에 올리는 것을 극도로 꺼려합니다.
문 : 진술인은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최순실이 대통령 연설문 고치는 일을 잘 한다'라는 취지의 말을 한 사실이 있는가요?
답 : 2016년 9월경 미르재단 사무총장 이성한이 만나자고 하여 만난 적이 있는데, 이성한이 JTBC 기자를 데리고 왔습니다. 그러나 공식 인터뷰를 하는 자리가 아니었기 때문에 지나가는 말로 위와 같은 취지의 말을 한 적이 있는데, JTBC 기자가 제 허락도 없이 보도를 한 것입니다.>
고영태씨가 최순실씨와 영원히 결별한 것은 2016년 8월 중순이었다. 고씨는 그 과정에 대해 이렇게 진술했다.
「최순실 회장이 가끔식 말도 안 되는 이유로 저에게 누명을 씌우거나 사람들을 이간질시키고 욕을 하는 등 참기 힘들 정도로 모욕적으로 대할 경우에는 저도 화를 참지 못하고 '돌머리를 무겁게 뭐 하러 달고 다니느냐'고 같이 욕한 적도 있습니다. 이렇게 제가 맞대응을 하면 최순실 회장이 사무실에서 나가라고 합니다. 그래서 나가면 얼마 있다가 제가 필요하면 최순실 회장이 또 저를 찾습니다.
최근에 마지막으로 크게 싸운 것은 2016년 8월 중순경입니다. 당시 저는 미르재단 사무총장 이성한과 사이가 좋은 때였는데, 이성한이 저에게 '안종범 수석과 차은택이 나보고 재단에서 나가라고 하는데 최순실이 시킨 것 같다'고 하소연하였습니다. 그 무렵 이성한이 언론에 '안종범 수석이 미르재단에서 사퇴할 것을 종용하였다'는 취지의 녹취록을 공개하자, 최순실은 이성한이 언론에 자신의 존재에 대하여도 녹취록 등을 공개할까봐 이성한을 달래려고 저에게 이성한을 만나게 해 달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제가 이성한과 최순실을 한강 둔치에서 만나게 해 주었는데 최순실이 이성한을 달래기는커녕 오히려 이성한과 차은택 둘 사이에 발생한 일로 왜 나까지 걸고 넘어가느냐며 화를 내어 오히려 사이만 악화되고 말았습니다. 이성한이 떠나간 뒤, 최순실이 저에게 '이성한이 5억 원을 달라고 했다'면서 '니가 이성한과 짜고 나한테 5억 원을 뜯어내려 한 것이 아니냐'며 저를 이상한 사람 취급하기에 화가 나, 최순실에게 '인간답게 살라' 하고는 그 다음부터 최순실과 연락을 끊고 지낸 것이 오늘까지 이어졌습니다.」
고영태-노승일씨의 검찰 진술내용을 종합하면, 최순실씨는 2014년 초반까지는 대통령이 해외 순방 때 입을 옷을 만들어주는 평범한 아낙에 불과했다. 대통령의 40년 지기였기 때문에 최씨는 가끔 청와대에 들어가 밥을 먹었고, 대통령의 연설문을 사전에 전달받아 일부 수정하는 역할을 했다.
그 후 광고감독 차은택씨를 알고 난 뒤, 최순실씨가 문체부장관과 청와대 교육문화수석, 한국콘텐츠진흥원 원장 人選에 개입한 것은 비판의 대상은 될 수 있지만 범죄행위는 아니다. 최씨가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 발족 과정에 어떤 역할을 했는지는 재판을 통해 가려질 것이다.
대통령이 퇴임 후를 대비하여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을 만들었다는 주장에 대해 기자는 동의하지 않는다. 최순실씨와 안종범 경제수석에 대한 검찰 공소장을 보더라도 알 수 있다. 공소장은 검찰의 시각에서 범죄행위를 집대성한 것이지만, 보는 관점에 따라 달리 해석할 여지가 없는 게 아니다.
문화융성을 4대 國政기조의 하나로 정한 박근혜 대통령은 2015년 7월 24일 오후 서울 삼청동 소재 안가에서 현대자동차그룹의 정몽구 회장과 김용환 부회장, CJ그룹 손경식 회장, SK이노베이션 김창근 회장과 개별 면담을 갖고, 정부가 문화, 체육 관련 재단법인을 설립하려고 하는데 기업들이 적극 도와달라고 부탁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다음 날, 같은 장소에서 삼성그룹 이재용 부회장, LG그룹 구본무 회장, 한화그룹 김승연 회장, 한진그룹 조양호 회장을 만나, 똑같은 지원을 부탁했다. 안종범 청와대 경제수석은 대통령의 뜻을 이승철 전경련 상근 부회장에게 전하고 전경련 주도로 재단을 설립하라고 지시했다.
하지만 기업체의 자금 출연이 쉽게 이루어지지 않아 재단 설립이 지체되고 있던 중, 리커창 중국 총리의 한국 방문이 2015년 10월 하순으로 정해졌다. 정부는 리커창 총리의 방한에 맞춰 한국과 중국을 대표하는 문화재단 간의 문화교류를 위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하려고 했다. 그것은 박근혜 대통령이 중국 방문 당시, 문화교류를 활발히 하자고 약속한 바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한국을 대표하는 문화재단이 없다는 것이었다. 재단 출연금을 모을 시간도 부족했다. 이에 안종범 경제수석은 2015년 10월 19일 전경련 이승철 부회장에게 '급하게 재단을 설립해야 하니 전경련 직원을 청와대 회의에 참석시켜라'고 지시하고, 최상목 경제금융비서관에게 '300억 원 규모의 문화재단을 즉시 설립하라'는 지침을 내렸다.
재단 설립일은 리커창 총리의 訪韓 시기에 맞춰야 하기 때문에 10월 27일로 잡혔다. 법인설립 허가를 담당하는 문체부 대중문화산업과는 시간을 맞추기 위해 세종시에 근무하던 담당 직원을 서울로 출장 보내, 10월 26일 오후 8시7분경 설립허가에 대한 기안서를 작성하고, 다음날 오전 9시36분경 내부결제를 끝내고 설립허가를 내주었다. 이런 과정을 거쳐 급속도로 설립된 문화재단이 미르재단이다.
미르재단에는 16개 그룹에서 486억 원을 출연했고, 2016년 1월 12일 설립된 K스포츠재단에는 288억 원을 출연했다. 검찰은 기업들이 2개 재단에 출연한 774억 원이 강요에 의해 마지못해 낸 돈으로 보고, 최순실씨와 안종범 경제수석을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및 강요죄로 구속 기소한 것이다. 대가를 바라거나 부정한 청탁을 했다는 증거를 못 찾았기 때문에 뇌물죄는 적용되지 않았다.
K스포츠재단 사업기획본부 부장 노승일씨는 재단의 설립 목적에 대해 '능력은 되는데 돈이 없어 운동을 못하는 전문 체육인을 발굴하여, 그 선수에게 금전적인 지원 및 훈련 여건을 도와주고, 남북 체육교류를 활성화하고, 체육을 통한 국위선양 등을 주요 목적으로 설립된 단체'라고 검찰에서 진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