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샘레터 30/세종대왕의 눈물]외래어와 외국어 그리고 한글
토요일 아침 유일하게 보는 TV 프로그램에 <남북의 창>이 있다. 문화 불모지라고 할까? 소외지역에 살다보니 <세종대왕의 눈물>이라는 창작뮤지컬이 공연되고 있는 줄 그것을 보고 처음 알았다. 타이틀이 ‘통일 뮤지컬’이어서 이채로왔는데, 남북한의 달라진 언어 차이와 요즘 세대들이 쓰는 신조어, 단축어 등을 다룬 것인데, 하늘에서 ‘한글’을 창제하신 세종대왕이 울고 있다는 내용인 것같다. 그것도 그럴 것이, 세종대왕이 ‘낄끼빠빠(낄 데 끼고 빠질 데 빠져라)’을 무슨 수로 알아듣겠는가. 흔히 1세대generaton 차이를 30년이라지만, 요즘엔 3년 정도 밖에 안되는, 뭐든지 ‘초고속 세상’이다. 오죽하면 이런 용어를 알고 모르고를 두고 나이와 세대를 짐작하는 세상이 되었을까? 여기에서 이런 현상을 바람직하지 않다거나 글러먹었다로 단정지을 생각은 추호도 없다. 말이란 변하는 것이라는 것을 감안할 때, 언중言衆 대다수가 사용하는(그것이 맞춤법이나 띄어쓰기가 틀렸더라도) 것이라면 받아들여야 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하기 때문이다.
아무튼, 세종대왕의 눈물이 게속 그치지 못하는 또다른 이유는 이 땅에 범람하는, 넘쳐도 너무 넘치는 낯선 세계 각국의 외국어들 때문일 것이다. 최근 옥수수 400상자를 택배로 보내는 일이 있었다. 외래어와 외국어의 차이를 아시리라. 결코 외래어가 아닌 국적이나 뜻을 짐작조차 못하는 수많은 외국어 아파트 이름 때문에 ‘질식’할 뻔했다. 너무 놀라웠다., 약간의 예를 들어보자., 파밀리에포레스트, 위브더파크, 마스터림스, 데시앙, 프레스티지, 헤링턴플레이스, 햠샤우트두들, 뉴비전엘크루, 아크로리버파트, 아르팰리스, 호반베르디움, 뉴베뉴스타, 디큐브시티, 힐데스하임, 리치타운, 스카이렉스, 다산풀루리움, 팀버웨이, 솔레시티, 휴먼시아아이린, 반포리체, 로얄듀크, 샹떼빌, 바움하우스, 우미린, 메가타운, 등등등등. 그런 이름의 아파트에 사시는 구매자들을 무시하는 것이 아니니 오해하지 마시라. 아파트 이름은 건설업체가 짓는 것일까? 그리고 대체 왜 이렇게 짓는 것일까? 우리나라가 미국이나 외국의 식민지가 아닌 이상, 이렇게 뜻과 국적도 모르는 외국어로 우리가 사는 집의 이름을 짓는다는 게 말이 되는가? 머리카락을 쥐어뜯으며 생각해봐도 거기에 합당한 이유를 찾을 수 없다. 대체 나만 이러는 걸까?
왜 우리 사는 ‘성냥갑집(아파트나 빌라, 연립 등)’의 이름을 초원, 목련, 개나리, 진달래, 무궁화, 달빛, 햇빛, 동트는 언덕, 매화 등으로 지으면, 우리가 사는 집의 ‘격格’이 떨어지기 때문일까? ‘집격’은 곧바로 ‘집값’의 고저高低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일까? 도저히 알 수 없는 일이다. 왕년에 그렇게 어려운 외국어로 이름을 짓는 것은 농촌에 사는 시부모가 찾아오기 어렵게 만들려는 의도 때문이라는 농담도 있었지만, 이미 시대는 ‘그런 것’도 훌쩍 뛰어넘은 사회가 된 지 오래이지 않은가.
엊그제 어느 친구가 참말로 귀한 카톡 하나를 보내줘 고맙게 여겼다. 다름아닌 <방송에서 쓰는 낯선 외래어 단어 73개의 뜻풀이>이다. 가나다순으로 정리된 73개의 외국어(외래어가 아니다) 가운데 그 뜻을 정확히 알거나 설명할 수 있는 게 몇 개나 될까? 30%만 알아도 장학생일 듯하다. 하도 여러 번 듣다보니 철자나 어원도 모르면서 뜻만은 비스므레 알고 있는 단어도 있고, 난생 처음 들어보는 단어도 투성이이다. 그러니, 세종대왕이 아파트 이름에 이어 이런 외국어 때문에도 울음을 그칠 수가 있을 것인가. 모두 다 예를 들어 설명하고 싶지만, 기분이 나지 않아 몇 개만 골라 적어본다. 73개 리스트에 없는, 최근 졸지에 튀어나온 외국어 ‘도어스테핑doorstepping’이 무슨 뜻인지 아시는가? 우리의 대통령이 출근길에 기자들에게 즉석에서 자기 마음대로 몇 마디 하는 인터뷰를 말한다 한다. 알고 계셨는가? 그렇다면 그대야말로 상식맨이자 시사맨이다. 명색이 언론사에서 청춘을 보낸 나로서도 금시초문인 단어들이 쌔버렸다. 솔직히 이건 아니지 않는가? 엊그제 우연히 채널 5번을 트니 ‘스브스 뉴스’라는 코너가 있었다. ‘스브스’가 무슨 뜻인지, 아는 사람이 대한민국에 몇 명이나 있을까? 곧바로 내비형에게 물었더니 ‘SBS’의 초성모음이라는 것이다. 대체 공중파 3사를 비롯한 방송사들은, 신문사들은 왜 이렇게 이런 조어造語들을 선호하고 애용하는 걸까? 도대체 누구를 위하여, 절대로 시청자들이나 국민을 위해서는 아닐 것같다. 동업자인 자기들끼리 서로 누가 더 낯선 외국어로 뉴스나 프로그램 작명을 하는지 경쟁을 하는 것은 아닐까? 가관이다. 눈 뜨고 못봐 줄 풍경이다.
아무튼, <낯선 외래어단어 73개>에서 몇 개를 선보인다. 여기에서 외래어는 외국어의 다른 말이다. 외래어外來語는 텔레비전 등 이미 우리 언중에 파고들어, 대체 우리말이 마땅치 않은 말들을 할 수 없이 빌려쓰는 말로써 국어사전에 실린 것들이다. 텔레비전을 이제 와 ‘바보상자’라거나 중국어로 ‘전시電視: 띠엔시’라고 할 수는 없지 않은가.
데자뷰Deja Vu: 프랑스어. 처음 경험임에도 불구하고 이미 본 적이 있거나 경험한 적이 있다는 이상한 느낌이나 환상.
노멀 크러쉬Nomal Crush: 평범하고 소박한 것이 행복하다고 느끼는 정서.
걸 크러쉬Girl Crush: 여성이 같은 여성의 매력에 빠져 동경하는 현상.
도플 갱어Dopple Ganger: 자신과 똑같이 생긴 사람이나 동물, 즉 분신이나 복제품.
드라이브 스루Drive Through: 승차 검진
레트로Retro: 과거의 제도, 유행, 풍습으로 돌아가거나 따라하려는 것을 통칭하는 말.
빈티지Vintage: 낡고 오래된 것 또는 그러한 느낌이 있는 물건이나 분위기
시크Chic하다: 세련되고 멋있다
아우라Aura: 예술 작품에서 흉내낼 수 없는 독특한 분위기
엠지MZ세대: 밀레니엄과 세대를 합친 용어. M세대: 21981-2000년대 초 출생한 세대. Z세대: 1994-2000년대 초 출생한 세대.
엣지Edge: 개성, 센스, 독특, 특징
워너비Wannabe: 닮고 싶은 사람이나 갖고 싶은 물건을 동경하는 마음과 행동.
인싸이더(인싸)Insider: 각종 행사나 모임에 적극 참여하면서 사람들과 잘 어울려 지내는 사람(핵인싸는 강조, 아웃싸이더는 반대어).
좀비Zombie: 살아있는 시체.
코스프레Cosplay: 게임이나 만화 속의 등장인물처럼 의상을 입고 분장하여 그 주인공 흉내를 내는 놀이
티저Teaser: 일부만 공개하여 호기심을 자극하는 예고 광고.
키치Kitsch: 저속한 작품이나 공예품 또는 싸구려 상품을 이르는 말.
인플루언서Influencer: 웹 상에서 수십만 명의 팔로어를 보유하고 있으며 유행을 선도하는 사람. SNS에서 영향력이 큰 사람.
손도 아프고 눈도 아프니, 이 정도만 하지만, 한숨이 절로 나온다. 고백한다. 73개중 명확한 뜻과 스펠링을 아는 단어는 10개정도이다. 해도 해도 너무한다. 영문학박사 아니라 박사할애비가 와도 두 손 두 발 다 들 정도인 외국어홍수, 이것을 어찌할 것인가? 선진국으로 가는 도정에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닌가? 이게 세계화이고 국제화인가? 국립국어원은, 교육부는, 문화관광부는 무엇을 하는 것일까? '오렌지'라고 발음하면 안되고 '오린쥐'라고 발음해야 한다고 주장한 사람이 누구였던가? 도대체 이게 무슨 개xx들이란 말인가? 이 나라가 대체 어디로 어떻게 흘러가는 것일까? 누구라도 남의 일처럼 손을 놓고 있으면 되는 것일까? 나는 모르겠다. 하지만, 한 마디만 하자면 이것은 정녕코 아닌 것같다. 영어를 공용어로 하자고 주장한 학자도 있었고, 우리나라가 미국의 51번째 주州로 편입되면 좋겠다고 주장하는 유권자들도 많다고 한다. 경상도 어느 시장 아줌마는 “우리는 죽었다깨도 새누리당(국힘?)이요. 설사 나라를 일본에 팔어먹더라도 말이요”라고 당당히 인터뷰하는 장면도 보았다. 정말 이러다가 남북한은 고사하고 사랑하는 손자세대들과 말이 통하지 않는 세상이 올까 은근히 걱정된다. 이러니, 세종대왕의 눈물이 어찌 그칠 수 있을 것인가? “우리의 말과 글이 바로서야 우리나라가 바로 선다”는 영원한 진리이다.
첫댓글 더위에 좋은글 읽었네
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