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라카미 류가 쓴 [ 69 ]에서 잠시 등장한 반전이야기..의 반전은 아니다. 나는 전쟁이 싫어요..라는 구호를 외치는 반전은, 반전영화라 부를만한 여지는 남기지만 지금 내가 말하려는 반전은 아니다. 그렇다. 바로 반전! 관객의 뒤통수를, 캔맥주 따는 소리와 얼추 비슷한 소리를 내며 여지없이 쳐~버리는 바로 그것. 종착역에서 기다리는 그 누군가를 위해 달리는 열차는 반전영화라는 이름으로 환치해도 이상할것 없다. 전쟁을 반대하는 목적의 영화가 아니라, 관객에게 결코 추측할수있는 결말을 내놓지는 않겠다 식의 영화. 반전영화.
스포일러를 포함시키지 않은 채, 얘기를 진행시켜보자면 올드보이역시 반전이라는 히든카드를 조심스럽게 숨긴체 눈치를 슬쩍 주었던 영화다. 한국영화에서 반전이라는 요소는 그렇게 부각되지는 못했지만, 최근에 와서 그 반전이 참 매력적이라는 의식의 팽배로 조금씩이라도 시도되고 있는 실정이다. 물론 감독의 의도가 그렇다하더라고 관객은 이미 결말까지 치달은 엔딩상상에 하품을 할수도 있지만.
유주얼 서스펙트, 식스센스 디아더스....그리고 아이덴티티에 이르기까지. 반전이 주는 매력은 영화자체를 규정할정도로 막강한 카리스마를 내포하고 있다. 올드보이도 그 울림의 성격은 조금 다르지만 이와 연장선상에 있다고 해도 누가 삿대질 할정도는 아니다. 허나 문제는 양날의 검이라는 것이다. 정말 조심해야한다. 우린 반전이라는 요소로 그영화를 원츄하지만, 그반대로 결말을 알아버린다면 쉽게 질려버리다 못해 영화자체가 아주 순진해지는 걸 기억해야한다. 과연 일회용 뒤통수치기가 어디까지 통용될수 있을까. 아무리 맛있게 포장해도 영화자체의 목적이 오로지 반전, 관객 우롱하기라면 한번은 탄식을 뱉으며 좋아라하지만 그 다음엔..호.
반전의 미학은 리플레이가 불가능한, 그 순간성에 기인한다. 찰나의 순간을 포착한 사진의 미학은, 영화를 뒤집어 버리는 성격의 구조가 드러나는 한 대목과 유사하다. 바로 그 순간 반전은 완성되어버리고 다시 곱씹는순간 그것은 한낱 신기루가 되어버릴수 있다.
영화내내 이해하지 못한 행동과 대사, 그리고 사건은 결과가 드러나면서 필연성을 가진다. 그리고 영화를 보면서 짐작했던 모든 구조를 한순간에 역으로 돌림으로써 관객에게 강한 인상을 남긴다. 그런 미학의 한계는 보면볼수록 희석된다는 것. 미학의 완성은 바로 한번, 불꽃같은 찰나의 희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