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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족하게 하는 오른 눈과 오른 손의 실체
“만일 네 오른 눈이 너로 실족하게 하거든 빼어 내버리라. 네 백체 중 하나가 없어지고 온 몸이 지옥에 던져지지 않는 것이 유익하며 또한 만일 네 오른손이 너로 실족하게 하거든 찍어 내버리라. 네 백체 중 하나가 없어지고 온 몸이 지옥에 던져지지 않는 것이 유익하니라.”(마 5:29-30)
본문을 읽었던 사람이 혹시 좋은 물건을 보고 순간적으로 탐심이 생겨서 두리번거리다 물건을 훔쳤더라도 후에 회개한답시고 제 몸에 붙어 있는 오른 눈을 빼내고 오른 손을 찍어내려고 하지 마시기 바란다. 그런 사람도 없을 테지만. 필자도 처음 교회 다닐 때 본문을 문자적으로 해석해서 이 문제 때문에 많은 마음의 갈등을 겪었던 경험이 있다. 주님은 교회의 머리시고, 교회는 주님의 몸이다. 우리 몸이 많은 지체로 구성되어 있듯이 주님의 교회도 많은 지체들로 구성되어 있다. 눈의 역할을 하는 사람도 있고 손의 역할을 하는 사람도 있고 발의 역할을 하는 사람도 있다. 그렇다면 여기서 오른 눈과 오른 손은 누구인지 감이 잡히지 아니한가? 교회의 지체 중에서 오른 눈의 역할을 하는 사람은 목회자인 것은 자명하다. 오른 편은 바르고 옳고 영적인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오른편에 있는 자를 양(성도)’, ‘왼편(종교인)에 있는 자를 염소’라고 말씀하셨다(마 25:33). 눈이란 등불과 같이 빛과 어둠을 분간하여 몸 된 교회를 이끌어가는 사역자이다.
오른 손도 같은 개념이다. 손이란 일하는 사역을 상징한다. 많은 지체 중에서도 인도하는 직임을 가진 사역자를 말한다. 손에 쟁기를 잡고 말씀의 씨를 마음 밭에 뿌리는 중보자들이다. 이들은 주님의 양을 위임 받은 목동이요, 포도원을 지키는 파수꾼들이다.
“너희는 놀라고 놀라라. 너희는 맹인이 되고 맹인이 되라. 그들의 취함이 포도주로 말미암음이 아니며 그들의 비틀거림이 독주로 말미암음이 아니니라. 대저 여호와께서 깊이 잠들게 하는 영을 너희에게 부어 주사 너희의 눈을 감기셨음이니 그가 선지자들과 너희의 지도자인 선견자들을 덮으셨음이라.”(사 29:9-10)
하나님은 자기 사자들이 배도하면 그들의 영안을 덮어 맹인을 만들어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지 못하게 하신다. 그래서 교회 지도자가 맹인이 되면 온 몸(교회)이 어둡게 된다. 그래서 맹인이 맹인을 인도하여 함께 구덩이에 빠지고 만다. 거짓 그리스도와 거짓 선지자들이 하나님의 양들을 제 것으로 만들려고 할 때 하나님께서 그들의 눈을 덮어버리시니 성경을 해석할 수 없음으로 다른 예수, 다른 복음, 다른 영을 가르치며 주의 사자 노릇을 한다. 본문에서 예수님께서는 “만일 네 오른 눈이 너로 실족하게 하거든 빼어 내버리라.”고 말씀하신다. 복음을 전하는 사역자가 성도들을 실족하게 하면 단호히 쫓아내버리라는 말씀이다. 절대 용납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온 교회가 지옥에 던져지는 것보다 목회자 하나가 없어지는 것이 유익하다는 말씀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말하는 실족이란 무엇인가? ‘범죄하게 하다. 넘어지게 하다, 잘못 인도하다’는 뜻이다. 이 말 속에는 덫, 함정, 걸림돌과 같은 의미가 들어 있다. 그러므로 실족하게 한다는 말은 단순히 ‘시험 들게’ 했다는 말이 아니라, 말씀을 잘못 가르쳐서 천성을 향해 가는 길에서 벗어나게 하거나, 범죄하게 하여 구원을 잃어버리게 한다는 것이다. 사탄의 전략은 실로 교묘하다. 예수를 못 믿게 교회당 입구를 원천봉쇄하는 것이 아니라, 문(그리스도=말씀)으로 들어온 자들을 내쫓고 담 넘어 들어온 자들을 따라 예배를 드리게 하고, 성령의 계시(예언)를 설교로 대체하고, 교회당을 저속(低俗)하게 하는 방법을 쓴다. 세상사를 교회당 안으로 끌어들여서 저속하게 하는 방법이다. 전에는 목사들이 저속하다고 교회 안에서는 유행가도 못 부르게 하던 때가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어떤가? 온갖 명목으로 세상 것들이 다 예배당 안으로 흘러 들어와서 차고 넘친다. 그래서 가장 파급 효과가 큰 연예인들을 많이 확보하는 교회가 인기 있는 교회가 되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두아디라 교회에 보낸 편지에서 “자칭 선지자라 하는 여자 이세벨을 네가 용납함이니 그가 내 종들을 가르쳐 꾀어 행음하게 하고 우상의 제물(다른 예수, 다른 영, 다른 복음)을 먹게 한다”(계 2:20)고 책망하신다. 그런데 교회들이 주님의 책망을 듣고 회개하였는가? 다음 말씀을 들어보자. “또 내가 그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었으되 자기의 음행을 회개하고자 하지 아니하는도다”(21절). 이와 같이 지금 교회들은 여전히 우상 공장인 신학교를 운영하면서 계속해서 거짓 선생들을 양성하여 배출하고 있으면서 회개하지 않고 있다. 신앙의 근원은 하나님의 말씀에서 비롯된다. 그런데 이 생명이 되는 말씀에 누룩을 섞어서 가르치면, 영혼이 독주에 취해서 구원을 이루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믿음은 들음에서 난다. 신앙은 어떤 가르침 받느냐에 따라서 판가름 난다.
천주교의 교리를 배우면 그들의 사상으로 조성된 로마 가톨릭교회 교인이 되고, 장로교 교리를 배우면 장로회 교인이 된다. 사람의 몸이 음식에 따라서 영향을 받듯이, 사람의 영혼도 마찬가지다. 하나의 성경을 가지고 해석을 각기 다르게 하여 가르치고 있으니, 나타나는 교파도 천차만별이고, 수많은 종류의 교파와 교회가 득실거리지 아니한가?
그러나 주님의 교회는 하나뿐이다. 나머지는 다른 예수, 다른 영, 다른 복음을 전하는 사탄의 회다(고후 11:4). 기독교의 교리를 떠나, 소위 진리 모임에 왔어도 정확한 하나님의 창조 목적을 모르는 문외한들이 여기저기 우후준순처럼 기승을 부린다. 잘 살펴보면, 진리인 것 같으나 어느 부분은 전혀 열리지 않아서 세속교회 뺨치는 혼잡한 교리로 영혼들을 벼랑 끝으로 몰아가는 곳도 부지기수다. 여기서 생명의 문과 멸망의 문으로 갈라진다.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다고 하지 않았는가? 좁은 문이란 십자가의 도를 전하는 복음 전도와 그 신앙 노선을 말한다. 우리 옛사람이 갖고 있는 마귀의 본성을 십자가에서 처리하라는 말은 언제나 듣기 싫다. 마치 돌 밑에 숨어있던 벌레가 돌을 떠들면 햇볕이 싫어서 다시 어둠을 찾아서 숨듯이 마음이 불편하여 귀를 막고 떠난다. 십자가는 율법이 아니다. 복음의 핵심은 십자가다. 자아가 죽어야 하나님 나라가 임한다. 십자가는 나의 원수요 하나님의 원수인 옛사람과의 전쟁이다. 그래서 천국은 침노하는 자의 것이다. 반면에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이 크고 길이 넓다는 말은, 신앙생활을 설렁설렁 해도 된다고 교훈하는 선생과 그의 사상이다. 이런 말로 교훈을 받으면 말로는 진리 운운하지만 여전히 세상풍조를 따라 살게 된다. 그래서 속에는 진리가 없으면서도 겉으로는 거룩한 척 하는 외식(外飾)하는 바리새인이 된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저속한 자들이 득세할 것을 내다보고 그의 제자 디모데에게 편지하기를, “너는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 하는 때가 이르리니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랑하며 교만하며 비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하지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모함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하지 아니하며 배신하며 조급하며 자만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니 이 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딤후 3:1-5)고 당부하였다. 불신자와 전혀 구분이 되지 않는 생활을 한다. 오늘날의 기독교인들의 신앙생활이 얼마나 여유롭고 평안한가? 이들에게 영적인 전쟁이 없으니 고통이 있을 리 만무하다. 옛사람 그대로 살면 된다. 오른 눈, 오른 손 노릇을 하는 사역자들은 십자가는 우리 몫이 아닌 것처럼 말한다. 우리의 죄는 주님이 십자가에서 다 처리하셨으니 우리는 마음으로 예수를 믿기만 하면 된다고 거짓 평강을 외친다.
이러한 거짓 목자들을 사도 유다는 “화 있을진저. 이 사람들이여, 가인의 길에 행하였으며 삯을 위하여 발람의 어그러진 길로 몰려갔으며 고라의 패역을 따라 멸망을 받았도다. 그들은 기탄없이 너희와 함께 먹으니 너희의 애찬에 암초요 자기 몸만 기르는 목자요 바람에 불려가는 물 없는 구름이요 죽고 또 죽어 뿌리까지 뽑힌 열매 없는 가을 나무요 자기 수치의 거품을 뿜는 바다의 거친 물결이요 영원히 예비 된 캄캄한 흑암으로 돌아갈 유리하는 별들이라.”(유 11-12)고 질타하였다. 오늘날 교회들의 상태와 얼마나 똑같은가? 열매 없는 나무를 무엇에 쓸 것인가? 그런데 그들이 열매를 맺지 않은 것은 아니다. 열매를 맺기는 맺었는데 그 열매가 하나님이 원하시는 포도나무 열매가 아니라 들 포도나무 열매를 맺은 것이다. 이사야 선지자는 포도원(교회)의 노래에서 “내가 사랑하는 자(하나님)에게 포도원(이스라엘 족속)이 있음이여 심히 기름진 산에로다. 땅을 파서 돌을 제하고 극상품 포도나무(유다 사람)를 심었도다. 그 중에 망대를 세웠고 또 그 안에 술틀을 팠도다. 좋은 포도 맺기를 바랐더니 들 포도를 맺었도다.”(사 5:1-2)라고 탄식하였다.
오늘날도 교회 안에서 좋은 포도를 볼 수 있는가? 아니다. 들 포도는 많이 볼 수 있으나 좋은 포도는 눈을 닦고 봐도 볼 수가 없는 현실이다.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자신을 포도나무라고 말씀하시면서 포도나무에 붙어 있어야 열매를 맺을 수 있다고 말씀하신다.
“나는 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농부라. 무릇 내게 붙어 있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그것을 제거해 버리시고 무릇 열매를 맺는 가지는 더 열매를 맺게 하려 하여 그것을 깨끗하게 하시느니라. 너희는 내가 일러준 말로 이미 깨끗하여졌으니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요 15:1-5) 대다수 기독교인들은 모두 포도나무에 붙어 있는 것이 아니라 들 포도나무에게 붙어 있는 실정이다. 왜 전도를 받아 예수를 믿기로 했다면 영과 진리로 예배드리면 하나님이 받으시고, 성경을 읽으면 성령이 가르쳐주실 것인데 꼭 목사의 설교를 들어야 하느냐고 말하면 목사가 성경을 해석해주어야 깨닫기 때문이란다. 착각이다. 하나님께서 눈을 덮어 놓으셨는데 무슨 수로 성경을 깨닫는단 말인가? 예수님은 장소를 불문하고 영과 진리로 예배하는 자를 하나님이 찾으신다고 말씀하셨고,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한다고 말씀하셨는데 죽을 때까지 건물교회가 필요하고 목사가 필요하다는 말인가? 주님의 말씀을 다시 들어보자. “너희는 내가 일러준 말로 이미 깨끗하여졌으니 내 안에 거하라.”(요 15:3) 깊은 묵상이 필요한 말씀이다.
한국기독교 총연합회 소속 교회 교인들이 신천지에 빠지는 이유를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신천지로 간 사람들은 자기 교회 목사는 성경을 제대로 풀어주지 못하기 때문에 영적으로 갈급해서 성경을 잘 풀어주는 신천지로 갔다는 것이 그들의 한결같은 주장 아닌가? 기독교 신자들의 가장 큰 병폐가 무엇인가? 목사를 떠나서는 신앙을 유지할 수 없다는 고정관념이 굳어질대로 굳어져 있다. 교회는 성경에서 나왔으니 성경을 깊이 읽는 것보다 더 좋은 방법은 없다. 이해되지 않아도 읽으면 된다. 아이가 젖을 먹고 자라면 철이 드는 것처럼 성경 말씀도 마찬가지다. 성경은 생명의 말씀이므로 신앙인이 진리를 사모하여 갈구하고 성경을 읽으면 하나님은 그의 자람에 따라 응답하신다는 사실을 믿어야 한다. 잠언서는 “나(지혜,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라.”(잠 8:17)고 말한다. 또 예수께서도 “내가 또 너희에게 이르노니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는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니라.”(눅 11:9-10) 하셨다.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다. 말씀 안에 생명이 있다(요 1:1-5). 그러므로 생명이 생명을 낳는다. 말씀을 붙들면 목회자 없이도 구원 받는데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데 위험을 무릅쓰고 신뢰하기 어려운 목회자들을 따라서 신앙생활을 해야만 하는가? 예수께서는 사람의 미혹을 주의하라(마 24:4)고 하셨을 뿐, 사람에게 배우라는 말씀은 한 번도 하신 적이 없다. 왜 주님께서 가셔서 보혜사를 보내주셨는가를 깊이 생각해보라. 사람으로서는 예수님도 제자들을 가르칠 수 없기 때문임을 왜 모르는가?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요 16:7)는 말씀을 왜 하셨다고 생각하는가? 주님은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 큰 표적과 기사를 보여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도 미혹할 것이니 그리스도가 광양에 있다고 하여도 나가지 말고 골방에 있다고 하여도 믿지 말라(마 24:24-26)고 당부하셨지 않은가? 오늘날의 목사들 믿을 만한가? 돈만 주면 살 수 있는 목사 자격증이 그렇게 대단한가? 십자가의 복음을 말하는데 마음이 강퍅해진다면 거듭난 자가 아니다. 자아를 처리하고, 세상을 사랑하는 마음과 죄를 두둔하는 마음을 처리하자고 하는데, 너나 잘 하라는 말을 한다면, 아직 요단강을 건너지 못한 자이다. 여전히 애굽이 그립고, 좌와 결탁된 생활에 매력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또한 십자가의 가르침을 시비하여 문제 삼는 선생이 있다면, 허울만 진리로 포장된 거짓 선생이요, 사탄의 종이다. 실족하게 하는 오른 눈과 오른 손이다.
성경은 성도의 분명한 목표를 제시한다. 거룩한 성에 들어가야 된다는 것이다. 그 성에 들어가기 위해 두루마기(의의 행실)를 빠는 자들이 복이 있다고 한다. 율법적 행위가 아니라, 내가 죽고 내 안에 계신 주님이 나를 입고 사시는 삶이다. 살아 있는 육체의 욕심을 따라 행하는 이방인의 죽은 행실을 증오한다. 세상을 밟고 초월하는 삶을 추구한다. 죄와 세상과 싸워 이기는 삶이다. 이것이 행함이 있는 믿음이요, 살아 있는 믿음이다.
실족하게 하는 오른 눈을 빼내고 실족하게 하는 오른 손을 찍어내려면 하나님 경외하기를 깨달은 사람이어야 한다. 설령 거짓 목자인 것을 안다더라도 그를 교회에서 빼어 버리고 찍어버린다는 것은 돌로 바위 치기인 상황이다. 그만큼 사탄의 위력이 강하다. 지금 교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싸움을 보더라도 그렇다.
더더욱 심각한 것은 아직 세상인 신앙인들은 이런 사건을 보아도 바르게 판단할 능력이 없다. 이런 글을 읽었다고 해서 깨닫는 것도 아니다. 혹시 이단 아닌가 하고 더욱 의심할 뿐이다. 자기 마음속에서 지진이 일어나기 전에는 요지부동이다. 자기 마음 하늘로부터 들려오는 음성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또 내가 들으니 하늘로부터 다른 음성이 나서 이르되 내 백성아, 거기서 나와 그의 죄에 참여하지 말고 그가 받을 재앙들을 받지 말라.”(계 18:4)
이 문제는 누가 알려 준다고 되는 문제가 아니다. 들을 귀를 가지고 듣고 자기 마음속에서 성령으로부터 음성이 들려야지 사람들이 들려주는 소리로는 어림도 없는 일이다. 지금 전통을 주장하는 교회들이 신천지를 이단이라고 점찍고(필자가 보기에는 오십 보 백 보이지만) 거기에 빠진 자들을 빼내 오려고 목회자들과 부모들이 안간힘을 쓰고 있지만 더 골만 깊어지는 것을 보라.
멸망의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선 것을 발견하는 자들만 그곳을 탈출하여 주님이 계신 시온 산으로 간다. 롯은 탈출에 실패한 자이다. 간음의 도시 소돔 성을 천사들의 부축을 받으며 간신히 나왔지만 목적지인 시온 산으로 두려워서 못 갔다. 그렇다. 세상을 사랑하는 자는 언제나 십자가를 무서워한다. 그러므로 시온 산은 첫 사람(목숨)을 십자가에 못 박은 자만 들어갈 수 있다.
그래서 구원은 모든 자의 것이 아니다. 들을 수 있는 귀와 볼 수 있는 눈이 있어야 하늘의 복을 누릴 수가 있다. 그래서 깨달음이 곧 영생이다. 빛과 어둠을 아는 것이요, 참과 거짓을 분별한다. 성경을 왜 읽어야 하는가? 천성을 향해 가는 성도에게는 성경이 곧 안내자이기 때문이다. 왜 참되고 거짓이 없는 성경을 외면하고 누룩으로 범벅이 된 목사들의 설교를 들으려고 안달들인가?
“너희는 주께 받은바 기름 부음이 너희 안에 거하나니 아무도 너희를 가르칠 필요가 없고 오직 그의 기름 부음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가르치며 또 참되고 거짓이 없으니 너희를 가르치신 그대로 주 안에 거하라.”(요일 2:27)
그렇다. 성경을 읽으면 기름 부음이 가르치신다. 성경은 우리의 더러운 마음을 씻어내 주는 물이다. 그러므로 물로 마음을 씻어내야 그 밑이 보인다.
“이 교훈의 목적은 청결한 마음과 선한 양심과 거짓이 없는 믿음에서 나오는 사랑이거늘 사람들이 이에서 벗어나 헛된 말에 빠져 율법의 선생이 되려 하나 자기가 말하는 것이나 자기가 확증하는 것도 깨닫지 못하는도다.”(딤1:5-6)
목사를 의지하지 않고서는 신앙을 유지할 수 없는 신앙인은 영생의 꿈을 접는 것이 여러 가지로 유익할 것이다.
우리가..죽기전에...잠깐은... 한번쯤...생각해보고...가자 ! 2000년이 넘고넘어....그리도...기다리는 사랑이...있는지를....! 창조주앞에...까불지말라 ! 너희가...영원히...죽을까하노라 ! 너희가...별을...따랴 ! 너희가...달을...만들것이냐 ! 어린아이처럼...계속..말장난하며...까불지말라 ! 개나 소,돼지에게 성경책을 주면 무엇인지 모른다 그러나 그짐승들에게 먹을것을 주면 짐승들은 주인을 좋아라한다 ! 너희가....짐승이냐 ? 이제...너희와 약속된...용서의... 기다림의 시간이 다가왔음이라 !
창조주앞에.... 바짝...업드려... 두려움을...생각하고...참회하라 ! 그리고..지금도 기다리시는... 주님꼐...돌아오라 !
어찌하여 말벌의 침과 전갈의 독침은 두려워하면서 너의 영혼을 잡아 먹는 사탄은 두려워하지 않느냐 ! 너의 눈은 멀었으며 너의 귀는 어두워졌으며 너의 마음의 빛은 꺼져 사탄의 어둠에 갖혀있음이라 ! 인간의 썪어질...육체는... 인간의 삶의 ...목표도...목적도...전부...아니다 인간이 어찌하여... 개나...돼지나...닭이나..소처럼.... 저차원의 동물로 남아...사단과 악마의 자식으로..살려하는가! 숨어 살아있는....영원한...다음세상이 있음을... 잠들어 있는....너의 영을...깨워서...깨달으라....! 죽기전에...어서...깨달아...구원의 길로 가라 ! 생명의 길로 가라 ! 죽은후에는...하나님의 영원한 심판뿐이다 ! 사후에는 잠든 너의 영을 깨울수도 없으며 너의 영은 거듭날수도 없다 ! 잠들어 있는....너의 영을...깨워서...깨달으라....! 죽기전에...어서...깨달아...구원의 길로 가라 ! 생명의 길로 가라 ! 그길로 가는 법은...오직한길... 하나님이...예수님을 통하여 우리게 주신... 생명의 성경 말씀...뿐이라 ! 숨쉬는...우상(사탄)을 섬기지말라 !
창조주... 하나님은 반드시 계신다 ! 어리석은 자들아.... 밤하늘의 수많은 별들을 혜어보라 ! 그...끝도없이...많은 별들을... 만드신이는 석가도...마호메트도...교황도...목사도...신부도 성황당 고목나무도...돌부처도...돌아가신...내부모도... 하느님도..하늘님도 아니며...하날님도 아니라 ! 모두 ..아니다 ! 어린아이처럼...계속..말장난하며...까불지말라 ! 창조주는..오직...! 하나님 이라 !
숨쉬는...우상(사탄)을 섬기지말라 ! 그들도...모두..우리와 같은 피조물이며, 죄인이다 ! 못 알아 듣는자는....짐승이다 ! 숨쉬는...우상(사탄)을 섬기지말라 ! 신은
오직 한분...창조주...하나님이시다 !
하나님의 무한하신 참사랑으로 돌아오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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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이건 또 뭔가요? 교회와 목사를 부정하고 거부하는 토 다른 이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