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처: 순복음전주성령교회 원문보기 글쓴이: 임성재목사
9월4일 주일 낮
호14:9
여호와의 도(道, 度)
모든 우주 만물은 두 가지의 도를 통해 운행되고 있습니다.
하나는 길, 또 하나는 법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두 가지의 길을 주셨습니다.
그 하나는 걷는 길(道) 어디를 향하든 가야만 하는 길을 의미합니다.
또 하나는 길을 걷는데 꼭 필요한 것이 있는데 그것은 지켜야할 법입니다.
길을 가되 그냥 스스로 가는 것이 아니라 정해진 법대로 길을 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세상의 법대로 길을 갑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법대로 길을 가야 합니다.
인생은 길입니다. 가지 않으면 안 되는 절대적인 길입니다.
무엇을 위해서이건 가지 않으면 그는 죽은 자와 다를 바 없습니다.
사람 뿐 아니라 모든 동물들 까지 살아 있다는 것을 표현하기 위해서는 움직여야 합니다.
움직이지 않는 것은 곳 죽은 것입니다.
그런 움직임이 곳 정해진 법대로 움직여지고 있다는 것은 우리는 자세히 알 수 없을 뿐입니다. 천문학자라 해서 천도를 다 알 수 없습니다. 지질학자라고해서 지구의 모든 지질에 대해 알 수 없습니다. 해양학자라고해서 바다의 모든 것을 알 수 없습니다. 조류학자라고해서 하늘을 나는 새 또는 날짐승들에 대해 다 알 수 없습니다. 모든 분야에 박사학위를 소유 했다고 해도 그 분야의 모든 것을 알 수 없습니다. 단지 일 부분을 알되 전문지식이 없는 자보다 많이 알고 있다는 것뿐입니다.
하늘도 땅도 바다도 그에 합당한 법대로 움직이고 있는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비행기는 항로를 따라 가야하고 배는 해도를 따라가고, 사람은 지도를 따라갑니다.
여기에는 길과 법이 함께 적용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가야할 길을 가면서 직면하는 일들이 많을 텐데, 항상 순풍에 돛단배와 같이 평화롭고 순탄한 길이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하늘은 하늘대로 바다는 바대대로 땅은 땅대로 순탄치 못할 때가 많습니다.
시와 때에 따라 이른 비와 늦은 비만 내려 주면 얼마나 감사하겠습니까?
하지만 세상은 그렇지 않습니다. 재해라는 큰 태풍과 지진과 하늘에서는 언제 지구에 출현할지 모르는 무지막지한 행성들이 쉬지 않고 떠돌고 있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촌이란 곳에서만도 하루에 수도 없이 많은 사건들로 목숨을 잃어버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런 일들을 길이고 도라는 것에서 벗어날 수 없는 운명적 사건들이라고 봐야하는가!
아니면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일어나는 심판과 축복이라고 신앙 안에서 믿음으로 위안을 받아가며 어쩔 수 없는 운명적인 삶을 살아가야만 하는가!
가지 않으면 안되는 길, 가다가 횡재를 만날 수도, 재해를 만날 수도 있는 미지의 길을 하루하루 쉬지 않고 끊임없이 온길, 가고 있는 길, 가야만하는 길, 이 길을 오늘 하나님은 말씀을 통해 어떤 길을 선택해서 가야 하는가를 말씀해 주시고 계십니다.
이 말씀을 통해 힘들고 어려운 길을 가야만하는 우리에게 소망과 희망 그리고 축복의 길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저와 여러분 모두에게 있게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첫째: 우리들의 길은 선택의 길이 주어졌음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를 막론하고 선택이라는 문제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선택은 하나님이 인간에게 주신 최고의 축복입니다. 할까 말까 망설임 없이 누군가의 주권에 이끌려 끌려가는 처지라면 이는 곳 구속된 것이고 속박된 것입니다. 자유가 없는 노예의 신세인 것입니다. 죽이면 죽고 살리면 살고 주면 먹고 안주면 굶는 짐승과 다를 바 없습니다.
본문9절에 “누가 지혜가 있어” 라고 시작합니다.
지혜란 선택할 수 있는 처지에 있는 사람에게 필요한 값진 보물입니다.
아무것도 선택할 수 없는 무능한 입장에서 지혜는 아무 쓸데없는 것에 불과 합니다.
누가 지혜가 있는 사람입니까?
바로 선택할 권리를 가진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사람의 성패는 선택으로부터 출발합니다. 성공을 선택할 것인가? 실패를 선택할 것인가?
실패한 사람에게 묻습니다. 당신은 실패를 선택해서 실패 하셨습니까?
대부분 많은 사람들은 전혀 그렇다고 인정하지 않습니다. 나름대로 다 사연과 이유가 있습니다. 누구 때문에, 그 일 때문에, 이것 때문에 저것 때문에, 그렇습니다. 이유야 어떠하던 그 이유는 모두 자신을 감추는 변명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 본원은 선택의 실수 였습니다.
선택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진 만큼 선택에 대한 책임도 막중함을 알아야 합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이런 사실을 잘 알고 신중함과 세심함을 동원하여 선택권을 잘 사용합니다. 그런가 하면 지혜롭지 못한 사람은 이런 귀한 보배의 선택권을 소유했음에도 헌신짝 여기듯 버려버리고 죽은 물고기가 흐르는 냇물에 흘러 떠내려가듯 세월에 묻혀 허성세월을 보내게 되는 것입니다.
엡5:16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
때가 악하다는 말은 세상의 사람들이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으로 편만한 세대를 말하기도 하지만, 내가 선택해야 할 문제에 항상 악으로 가는 길이 존재하고 있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잘못 선택하면 악한 때를 만날 것이고, 지혜롭게 선택하면 선한 때 곳 축복의 때를 만나게 될 것이라는 말입니다.
골4:5 “외인에게 대해서는 지혜로 행하여 세월을 아끼라”
여기서 외인이란 믿음을 부인하는 자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나 외에 다른 사람들의 삶에 선택되어지는 것들을 관여하느라 내가 선택해야 할 문제에 대하여 소홀하지 말라는 말도 포함됩니다.
다른 사람들의 삶에 관여해서 이러쿵저러쿵 입담하다가 정녕 내가 선택해야 할 문제에 대하여는 지혜롭지 못한 선택으로 말미암아 오히려 퇴보의 삶을 초래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지혜로운 사람들이 보내는 세월은 말을 아끼고, 또 말을 하되 신중을 기한 선택의 말을 해야 합니다.
골4:6 “너희 말을 항상 은혜 가운데서 소금으로 맛을 냄과 같이 하라 그리하면 각 사람에게 마땅히 대답할 것을 알리라”
은혜가운데에서 소금을 맛을 냄과 같이하라는 이 말은 신중을 기한 선택의 말을 가르치는 말입니다. 쓸데없는 말 하지 말고 복 있는 말 곳 복음을 말하라는 것입니다.
선택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부분으로 곳 말의 선택입니다.
어느 말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품성과 인품이 나타납니다.
말의 선택은 나의 가치를 나타내는 것이며 또한 가치를 만들어가는 첩경이기도 합니다.
누가 지혜로운 사람입니까?
바로 선택권을 적시 적소에 잘 사용하는 사람입니다.
그 분이 바로 우리의 주 되시는 예수그리스도 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길은 지혜로운 사람들이 가는 길입니다. 동시에 예수그리스도의 길이 내 삶의 법의 길이 될 수 있도록 믿음을 부여하는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그리스도인 이라면 선택을 잘 하는 사람이 되야 하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예수그리스도가 무엇을 선택했는가를 성경을 통해 많이 배우고 깨닫는 사람이 되야 합니다.
저와 여러분 뿐 아니라 모든 사람은 이 시간도 오는 시간도 또한 오는 세대도 선택이라는 문제를 안고 살아갈 것입니다.
지혜로운 선택으로 말미암아 영혼의 부유함과 생활의 부유함을 넉넉하게 누리시는 저와 여러분 그리고 모든 민족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삶에 길과 법에 있어서 선택이 얼마나 큰 하나님의 축복에 선물인지 지혜롭게 깨달았다면,
둘째: 총명을 선택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총명을 사전에 정의하기를 영리하고 기억력이 좋으며 재주가 있음, 이라고 정의 해 놓았습니다.
영리한 사람은 좋은 것을 선택합니다. 미련한 사람은 나쁜 것을 선택합니다.
사람이 좋은 것을 선택했는데 결과가 좋지 않게 나타나는가 하면, 좋은 것을 선택하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결과가 좋은 것으로 나타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대학에 들어가면 내가 앞으로 살아가야할 직업의 방향을 정하는데 내 적성에 맡고 내가 좋아하는 과를 선택합니다. 그러나 사회에 발을 딛을 때 보면 대부분 자기의 적성과 성격에 맡는다고 택한 전문적인 학위를 마치고 다른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습니다.
그동안 전문적인 지식을 쌓느라 많은 시간과 물질과 정성을 드린 것들이 모두 허사는 아니겠으나 실제로는 선택을 잘못한 결과로 빚은 결실이 실패나 실망 크게는 좌절이라는 열매를 맺게 됐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내가 좋아하지 않고 적성에 맡지도 않는 공부를 부모의 강요에 못 이겨 억지로 한 결과 좋은 지인들을 만들게 됐고, 내놓으라하는 회사에 입사해 승승장구 진급해서 평안한 삶을 사는 사례들도 적지 않습니다.
인생사에 있어서 이런 일들이 비일비재함으로 인생을 쉽게 논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잠16:9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여호와시니라”
마음으로 계획함은 선택이 확정 됐음을 말합니다.
확정된 선택의 길을 인도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을 의지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총명한 사람은 올은 선택을 할 뿐 아니라 선택한 그 길을 하나님께 맡기고 함께 가는 사람입니다.
본문에 “누가 총명이 있어 이런 일을 알겠느냐”
총명 있는 사람은 “이런 일”을 안다는 것입니다
이런 일이 무엇일까요?
성경의 모든 말씀은 선택을 통해 이루어 질 수 있도록 허락하셨습니다.
모세도 아브라함도 이삭도 야곱도 요셉도 심지어는 예수님도 선택의 귀로에서는 우리와 다를바 없으신 분이십니다.
예수님 앞에도 마귀의 속삭임이 있었습니다. 마귀의 달콤한 속삭임을 선택할 것인가 아니면 하나님 아버지의 말씀을 선택할 것인가? 당연히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의 말씀을 선택하시겠지만, 마귀의 달콤한 속삭임은 예수님에게도 잠시 망설이게 하는 장면이 성경에 기록되 있습니다.
마26:36~39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겟세마네라 하는 곳에 이르러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저기 가서 기도할 동안에 너희는 여기 앉아 있으라 하시고 베드로와 세베대의 두 아들을 데리고 가실새 고민하고 슬퍼하사 이에 말씀하시되 내 마음이 매우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나와 함께 깨어 있으라 하시고 조금 나아가사 얼굴을 땅에 대시고 엎드려 기도하여 이르시되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
마귀의 속삭임은 고민하고 슬프게 하는 것입니다. 얼마나 고민이 심했던지 그 고민 때문에 죽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할 만하신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예수님이 직접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막9:23 “예수께서 이르시되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 하시니”
하나님은 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런고로 예수님도 자신의 원하는 바와 하나님의 원하시는바를 잘 아시기에 마지막에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라고 아버지께 맡기기를 선택하신 것입니다.
당신의 마음은 너무 고민에 처해있습니다. 십자가에 못 박히는 상황이 오지 않았으면 너무 좋겠습니다.
예수님의 솔직한 마음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마음을 아시는 하나님은 그 마음을 밭아 들이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아버지는 당신의 아들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기를 선택함으로 모든 인류를 구원하십니다.
총명한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선택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선택하는 사람은 지혜로울 뿐 아니라 총명하여 하나님의 깊고 오묘하신 뜻을 분별하고 그 뜻을 따르기를 선택하게 됩니다.
잠9:10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요 거룩하신 자를 아는 것이 명철이니라”
총명한 사람은 하나님과 그분의 아들 예수그리스도와 그분을 통해 오신 보혜사 성령하나님 곳 삼위의 하나님을 인정하고 모셔 들여서 인생이라는 긴 여정의 길을 함께 걷는 사람입니다.
딤후2:7 “내가 말하는 것을 생각해 보라 주께서 범사에 네게 총명을 주시리라”
축복 안에 살기를 원하십니까?
시1:3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
이처럼 모든 일에 형통한 복을 받고 살기를 원하신다면,
총명을 선택하시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총명은 이 땅의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입니다.
“주께서 범사에 네게 총명을 주시리라”
그렇습니다. 총명을 주시는 하나님께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구하시길 축원합니다.
빌1:9 “내가 기도하노라 너희 사랑을 지식과 모든 총명으로 점점 더 풍성하게 하사”
저와 여러분 모두가 힘을 모아 기도해야 할 일들이 많이있습니다.
그런 가운데 무엇보다 모든 총명함으로 말미암아 점점 더욱 풍성해지는 축복의 삶을 살기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총명은 삶을 점점 풍성하게 하는 길잡이입니다.
고전1:19 “기록된 바 내가 지혜 있는 자들의 지혜를 멸하고 총명한 자들의 총명을 폐하리라 하였으니” 지혜도 총명도 하나님께서 주시기도 하시지만 폐하기도 하십니다.
지혜와 총명을 주시는 하나님께 항상 기도와 찬송으로 감사하는 사람을 살 때 지혜도 총명도 하나님의 은혜의 줄기를 타고 지속적으로 우리 안에 거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길과 법도 안에 영혼이 잘 되고 범사가 잘되고 강건한 축복을 밭아 평안과 풍성의 삶을 누리려면 첫째는 삶의 길을 주안에서 지혜롭게 선택하는 것이고, 다음은 총명을 주시는 하나님께 항상 감사와 찬송으로 살아가야합니다.
우리에게 지혜와 총명이 넘쳐나게 하사 우리의 삶이 점점 더 풍성해지게 하시는 주님을 더욱더 가까이 하시고 더욱더 신뢰와 믿음으로 섬기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님의 길과 법은 정직함으로 의인들은 하나님의 길과 법을 삶의 푯대로 삶지만 죄인들은 오히려 하나님의 길과 법에 걸려 넘어지는 고통을 밭게 됩니다.
본문에 “여호와의 도는 정직하니 의인은 그 길로 다니거니와 그러나 죄인은 그 길에 걸려 넘어지리라”
성도들이 걷는 길은 바로 정직한 길입니다.
시11:7 “여호와는 의로우사 의로운 일을 좋아하시나니 정직한 자는 그의 얼굴을 뵈오리로다”
시112:2 “그의 후손이 땅에서 강성함이여 정직한 자들의 후손에게 복이 있으리로다”
시19:8 “여호와의 교훈은 정직하여 마음을 기쁘게 하고 여호와의 계명은 순결하여 눈을 밝게 하시도다”
성경 구약에서만 정직이라는 말씀이 117 번이나 나옵니다.
정직의 중요성이 얼마나 큰가는 우리가 익히 아는바 입니다.
정직하지 않다는 말은 거짓이라는 것입니다. 거짓을 좋아할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거짓을 잘 하는 사람도 거짓을 싫어합니다.
정직은 하나님의 얼굴을 볼 수 있는 길이며, 우리의 자녀들이 복을 받게 하는 것이고, 우리의 마음을 기쁘게 하고 눈을 밝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죄인들은 오히려 정직하신 하나님의 길에서 거짓의 멍에를 매고 죄의 씨앗을 뿌림으로 결국 사망의 열매로 말미암아 고통을 밭게 되는 것입니다.
사33:11 “너희가 겨를 잉태하고 짚을 해산할 것이며 너희의 호흡은 불이 되어 너희를 삼킬 것이며”
사59:4 “공의대로 소송하는 자도 없고 진실하게 판결하는 자도 없으며 허망한 것을 의뢰하며 거짓을 말하며 악행을 잉태하여 죄악을 낳으며”
정직한 길을 가는 자와 거짓의 길을 가는 자의 차이는 사망과 생명의 자이입니다.
예수그리스도를 마음에 품고 길을 가는 사람은 세상의 법까지 이기는 사람이고, 예수 그리스도가 마음에 없는 사람은 세상 법에서나 하나님의 법에서 죄인이라는 굴레를 벗어날 수 없습니다.
오직 예수그리스도 안에서만 죄인이 아닌 의인이라 칭함을 받을 수 있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그것으로 구원받은 우리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승리자의 자리에 거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도를 가고 하나님의 도를 지키는 자가 승리자입니다. 이 땅에서 영원한 승자는 한 사람도 있을 수 없습니다. 모두 사망이라는 테두리를 벗어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영생을 얻는 자 만이 영원한 승자인 것입니다.
승자가 되기를 원하십니까?
여호와의 도를 따르고 지키시기를 축원합니다.
여호와의 도는 정직합니다. 의인들이 거니는 길입니다.
죄인들은 참여할 수 없는 길입니다. 그들에게는 지킬 수 없는 법입니다.
시1편5~6 “그러므로 악인들은 심판을 견디지 못하며 죄인들이 의인들의 모임에 들지 못하리로다 무릇 의인들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나 악인들의 길은 망하리로다”
항상 의인들의 모임을 선택하시고,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의인의 길을 선택하시는 지혜롭고 총명한 순복음 전주 성령교회 성도님들 모두 되셔서 점점 더 풍성해지는 영육간의 축복이 가정과 사업과 모든 범사에 넘치게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첫댓글 귀한 글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좋은 설교 감사합니다.
좋은 설교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