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빚 수렁’에 사장이 인상 읍소…전기·가스요금 정상화해야
중앙일보
입력 2024.05.23 00:44
가스공사 미수금 13조5000억, 매일 47억 이자로
탈원전, 요금 포퓰리즘에 한전 203조원 빚더미
한국전력공사(한전)와 한국가스공사 사장이 요금 인상을 읍소하고 나섰다. 비정상적으로 낮은 에너지 요금으로 ‘빚 수렁’에 빠진 탓이다. 정치 논리에 휩싸인 ‘가격 포퓰리즘’으로 인해 한전과 가스공사는 이미 만신창이다. 빚으로 버티는 현재 상황에서 벗어나려면 요금 정상화 외에는 뾰족한 수가 없다.
최연혜 가스공사 사장은 어제 기자간담회에서 “현재 미수금 규모는 전 직원이 30년간 무보수로 일해도 회수가 불가능하다”며 “이자 비용 급증과 국제유가 및 환율 불안 속 벼랑 끝에 선 심정”이라고 말했다. 동절기 안정적인 가스 공급을 위해 상대적으로 수요가 적은 여름철에 요금을 인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가스의 원가 보상률은 74% 수준이다. 이런 역마진 구조가 장기화하며 올해 1분기 미수금(천연가스 수입 대금 중 가스요금으로 회수되지 않은 금액)은 13조5000억원이다. 부족한 돈은 공사채 등을 발행해 조달한다. 미수금 증가가 금융 비용 급증으로 이어지는 이유다. 가스공사에 따르면 이미 이자 비용으로만 매일 47억원이 나간다.
빚 수렁에 빠진 곳은 가스공사만이 아니다. 한전도 전기요금 정상화를 호소하고 있다. 매년 수조원씩 이익을 냈던 한전은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드라이브와 ‘전기요금 포퓰리즘’으로 43조원에 이르는 누적 적자에 허덕이고 있다. 지난해 말 기준 총부채만 203조원으로, 연간 이자 비용만 4조5000억원에 달한다. 김동철 한전 사장은 지난 16일 “한전의 노력만으로는 한계가 있는 만큼 최후 수단으로 최소한의 전기요금 정상화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했다.
고금리 장기화 속에 물가도 들썩이며 가계와 기업의 어려움은 커지고 있다. 전기와 가스요금 인상은 물가를 더 자극할 수 있다. 특히 냉방 전기 수요가 급증하는 여름철 전기요금 인상은 무척 부담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물가와 가계 및 기업 부담을 앞세워 국제 시세 대비 현저히 낮은 에너지 요금을 강요하며 막대하고 심각한 부실을 이어갈 수는 없다. 과도하게 억누른 전기와 가스요금으로 인한 에너지 과소비도 막아야 할 때다.
에너지 공기업의 부실은 전력망을 비롯한 각종 인프라 및 설비 투자를 위축시키고, 관련 산업 전반의 생태계를 훼손할 수 있다. 이들 공기업의 적자를 해소하지 못하면 결국 세금으로 국가가 보전할 수밖에 없다. 적자를 견디지 못한 EDF(프랑스전력공사) 지분 100%를 국유화한 프랑스의 사례가 남 일이 아니다. 요금 인상이 당장 어렵다면 정부는 단계적인 인상 계획을 밝히고, 충격과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 취약 계층 대책도 함께 마련해야 한다. 요금 결정권을 독립적인 위원회에 넘기는 방안 역시 고민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