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우내 동면을 하던 개구리가 바깥세상을 향해 힘차게 뛰어나온다던 경칩, 어제 낮에는 절기를 의식한듯 상쾌하고 따스한 바람이 참 기분좋게 하던 날이었다. 아침 일찍부터 슈퍼리그 예선대회 있다고 열심히 뛰어다니던 그니, 생굴넣은 귀한 매생이국을 끓여 스태미너 만땅 올려주고 간만에 여유로운 휴일을 지내는 시간이어서 우린 집앞 영화관으로 터덕터덕 걸어갔다. 작년 가을 집앞에 새로 들어온 메가박스, 딱 우리를 위한 영화관이란 생각, 깨끗하고 편리한 시설, 큰 화면과 빵빵한 음향, 거리까지 가까우니 자주 애용하게 된다. 마음 같아서는 날마다 조조영화로 하루를 시작하고 싶지만 시간이 허락하질 않아 시간 날 때마다 가는 편이다. 집 부근에 문화시설이 있다는 것은 여러모로 축복받은 일이리라. 강풀님의 원작인 '그대를 사랑합니다.' 맨처음 이 영화 제목을 들었을 때 보통 당신, 그대, 자기 등등의 단어를 쓰기 때문에 으례 그러려니 했는데 '그대'라는 단어에 담긴 깊은 뜻을 알고는 그 정성스런 마음씀씀이에 작은 감동을 받았다.
무뚝뚝하고 입이 거친 김만석 할아버지 역을 맡은 이순재, 다소곳하고 참 기구한 운명을 살다가 김만석 할아버지의 애정을 듬뿍 받는 송이뿐 할머니로 분장한 윤소정, 평생을 서로의지하며 함께하던 노부부, 다정다감한 장군봉 할아버지로 분한 송재호, 늘 같이하며 행복한 집안의 아녀자였으나 늙어서 치매에 걸려 남편을 애타게 하는 조순이 할머니로 분장한 김수미 등 기라성같은 배우들이 두 시간여가 넘는 러닝타임동안 울고 웃게 만들며 마음 깊이 애잔함과 미소짓게 하는 참 마음 따스하게 했던 영화 '그대를 사랑합니다'...
사랑은 나이를 불문하고 설렘과 감동과 기쁨, 행복을 한아름 선사한다는 것을 노년의 사랑을 잔잔하게 스케치하면서 영화는 우리에게 지속적으로 사랑하며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한다.
김만석 할아버지는 새벽에 우유배달을 하며 동네의 자명종시계 역할을 한다. 그 소리에 깨어 새벽마다 동네 폐지를 주워 파는 송이뿐 할머니... 애저녁에 송이뿐 할머니는 이름도 없이 살아온 참으로 기구한 운명의 여인이었다. 징용간 아버지가 와야 이름을 지어줄 수 있는데 아버지가 돌아오지 못하자 그저 송씨라는 이름으로 살다가 사랑의 도피를 위해 엄마 몰래 시골집을 나오게 되고 서울에 와서 맘처럼 일이 안풀리자 사랑하던 연인이었으나 폭력적으로 변한 남편한테 시달리던 나날들, 돈벌어오겠다는 말만 남기고 떠나버린 후 남편이란 작자는 다 늙어 빠져도 나타나지 않고 그 사이에 하나밖에 없던 아이는 고열에 시달리다 생후 얼마 안되어 죽고 마는 기가막힌 상황들이 연출된다. 만추에서도 그랬지만 송씨 또한 김만석 할아버지 앞에서 자신의 과거를 드러내면서 사랑의 감정을 표출했다고 본다. 김만석 할아버지에 의해 송이뿐이라는 이름을 갖게 되고 독거노인이 받을 수 있는 복지혜택을 누리게 되며 한 사람과 인연을 맺었을 뿐인데 사랑이 있었기에 세상을 향한 송이뿐 할머니의 변화는 놀라운 것이었다. 까막눈 할머니가 김만석 할아버지에게 고마움, 사랑의 마음을 표현하기 위해 글까지 깨우치는 그 노력앞에 눈물이 앞을 가린다.
그저 작은, 그저 없는 듯, 그저 혼자서 외롭게 지내던 송이뿐 할머니에게 김만석 할아버지는 속깊은 정을 나누는 사랑하는 연인으로 등장했고 송이뿐 할머니도 그것을 알아채고 마음으로 함께하는 삶을 살게 되었던 것이다. 세상사람들이나 가족에게는 욕쟁이 할아버지, 거칠고 안하무인격인 김만석할아버지였지만 송이뿐 할머니에게는 거친 외양적인 언행속에 사랑의 감정을 녹여서 마음으로 잘 전달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쁜 손녀딸 연아가 송이뿐 할머니의 생일을 가르쳐 주면서 '당신을 사랑합니다'라며 고백하라고 하자 깜짝 놀라면서 그럴 필요 없다고 딱 잡아 떼지만 여자는 그런 말을 듣고 싶어한다고, 그런 감정을 드러내야만 뭐라도 된다고 말하는 손녀에게 고개숙이며 암으로 죽은 아내 사진을 보면서 어떻게 그렇게 하냐고 한다. '당신'이란 단어는 오로지 사별한 아내에게만 쓰던 단어, 그러기에 최소한의 예의는 지켜야 한다며 그럴 수 없다고 한다. 그말을 하던 김만석 할아버지에게 깊은 회한이 밀려든다. 생전에 아내에게 좀더 다정다감하게 해주지 못했던 것에 대한 회한...
다음 날 김만석 할아버지는 창문에 작은 돌맹이를 던져서 자신이 왔음을 알리고 그 소리에 송이뿐 할머니는 창문을 연다. 나이는 들었어도 사랑의 표출 방법 등이 젊은 연인들 못지않은 그 상황들을 보면서 그니와 서로 보면서 눈웃음을 짓는다. 창밖의 세레나데라도 부를 기세지만 그것은 젊은 연인들의 몫인지 영화에서는 그저 창밖에서 돌맹이 던지면서 할머니와 대화하는 것으로 처리한다. 글을 모르는 송이뿐 할머니에게 그림으로 데이트 장소며 약속시간을 그려낸 그 재치 앞에 한참 웃기도 하고... 그렇게 일상을 따로 또 같이 하면서 노년의 사랑은 깊어만 가고 생일날 처음으로 송이뿐 할머니 방안에 들어가게 된 김만석 할아버지는 생일 케잌을 앞에 두고 '그대를 사랑합니다'라는 말로 사랑고백을 한다. 세상에나... 살면서 그런 호사를 처음 누리는 송이뿐 할머니는 그저 고마워서 눈물만 흘린다. 어쩌면 왜 진즉 이런 인연을 만나지 못했나 하는 아쉬움의 눈물은 아니었을지... 보는 이들 마음도 아리게 하는 장면.
그렇게 온갖 우여곡절끝에 김만석 할아버지와 송이뿐 할머니의 노년의 사랑은 깊어만 가는데... 장군봉 할아버지와 순이 할머니의 다정다감하고 행복했던 결혼생활은 이미 추억속에 잠자고 있고 치매에 걸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사랑하는 아내를 잘 씻기고 돌보는 사람좋은 장군봉 할아버지 부부 이야기에서는 마음이 아리다 못해 넘 아파서 참 많이 울었다. 평생을 함께 하던 부부, 무엇을 하더라도 늘 함께해서 혼자서는 살아갈 엄두가 나지 않던 장군봉 할아버지의 고뇌... 순이 할머니가 산발을 하고 똥오줌 아무데나 싸도 그저 사람좋은 웃음을 간직하고 그 뒷수발을 묵묵히 하는 장군봉 할아버지 모습에서 안타까움과 더불어 노년의 부모를 잘 돌보지 못한 이 사회에, 자식들에게 노여움마저 들었다. 온갖 희생을 아끼지 않고 세 자녀를 잘 키웠지만 어른이 된 자식들은 자신의 일가를 위해 부모님을 나몰라라 하는 일상이 보여 마음 한켠이 쏴했다.
시간이 없다는 이유만으로 치매걸린 엄마를 보러가지도 않고 아버지에게 와서 가게 보증금을 부탁하는 딸내미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 그니 한마디 한다. "저런것도 자식이라고..." 부부는 일심동체라서인지 나도 속으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렇게 장군봉 할아버지와 순이 할머니의 노년의 삶은 한때 행복했던 가족이었지만 다시 노부부로 남은 이들에게 쓸쓸하고 고독한, 자식들에게 짐이 되고 싶지 않은 끝없는 헌신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 순이 할머니가 중증치매와 더불어 암세포가 온몸에 전이되어 더이상 회생의 가망이 없다는 진단을 받게 되자 장군봉 할아버지는 친구맺은 김만석 할아버지 연인과 함께 소풍을 가게된다. 그렇게 노년의 생을 자연과 함께하며 마지막 마무리를 하고 돌아와서 자식들을 모두 부르게 되는데 거기에 온 두 며느리의 대화가 압권이다. 어쩌면 그것이 우리네의 현실이라는 생각이 들어 참 씁쓸했다.
갑자기 자식들을 호출하자 두 며느리는 노부모를 모셔야 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서로 모실 수 없다는 자기들만의 이유를 들어 동서지간에 대화하는데 만약 그 광경을 장군봉 할아버지가 봤다면 어땠을까... 관객들로 하여금 분노와 서글픔을 느끼게 하던 장면, 이어 장군봉 할아버지 내외가 자식들을 불러 앉혀놓고 아무것도 기억못하는 순이 할머니에게 "여기 당신이 배아파 낳은 자식들이 있다"며 칭찬과 더불어 그렇게 될 때까지 헌신한 아내에 대한 고마움을 표현한다. 이제 봤으니 됐다고 집으로 가라고 하자 자식들은 영문도 모른체 그냥 가는데... 좀더 생각이 깊은 자식들이었다면 왜 부모님이 그렇게 했는지 좀더 살펴봐야 할 일이다. 마지막으로 딸의 주머니에 통장을 넣어주는 장군봉 할아버지를 보면서 마음 깊은 곳에서 자꾸 울음이 치솟아 오른다.
평생을 같이 했기에 장군봉 할아버지는 순이 할머니를 보내놓고 도저히 혼자서 살 자신이 없다. 하여 직장을 정리하고 인생을 정리하는 마지막 가는길도 같이 하고픈 맘에 연탄가스를 피워놓고 두손 꼭잡고 저세상으로 간다. 김만석 할아버지에게는 모든 것 비밀로 하게 하고 그저 자식걱정에 자연사한 것처럼 해달라고 당부한다. 그 상황앞에서 김만석 할아버지의 울분과 분노는 어찌할줄 모르지만 그렇게 서로 의지하며 지극히 사랑했던 노부부는 피안의 세계로 함께 걸어갔다. 노부부의 죽음앞에 충격받은 송이뿐 할머니는 뒤늦게 만났지만 김만석 할아버지를 그렇게 보낼 자신이 없다며 남은여생동안 그 사랑 간직하고 싶다는 말을 남기고 고향으로 떠난다.
많이 상심하고 힘들지만 김만석 할아버지는 송이뿐 할머니를 고향까지 태워다 주고 그렇게 그들의 일상은 또 흘러간다. 그렇게 그렇게 살아가다가 죽기전에 마지막으로 송이뿐 할머니를 보러 시골에 찾아간 김만석 할아버지, 그러면서 하는 한마디, "한 번 안아봐도 될까?" 지극한 정성으로 조심스럽게 껴안고 있는 노년의 사랑을 바라보는 관객의 안타까운 마음들... 이후 김만석 할아버지도 세월을 비껴가지 못하고 저세상으로 가게되는데, 참 보는맘이 아프다. 뒤늦게 찾은 노년의 사랑도 죽음앞에서 갈라설 수밖에 없는 상황들, 부모님 살아계실제 최선을 다해 찾아뵙고 모셔야겠다는 생각과 끊임없이 서로 사랑하며 살아야겠다는 당위성을 우리들에게 일깨워준 영화 '그대를 사랑합니다'...
이 영화는 중간중간에 코믹연기를 집어넣어 울다웃게 만드는 요소들이 꽤 있다. 중증치매환자인 순이 할머니가 길을 잃고 헤맬 때 의협심이 살아있는 김만석 할아버지가 집을 찾아주려 애쓰게 되는데 그때 김만석 할아버지의 욕을 그대로 따라하거나, 이문식이 양아치로 분하고 나와 어설프게 주먹쓰려다 오히려 상대에게 압도당하는 장면, 글을 모르는 송이뿐 할머니에게 온갖 그림을 그려서 데이트를 신청하는 김만석 할아버지의 그림 연서를 보여주는 장면, 김만석 할아버지가 오토바이 타고가면서 이문식의 고급승용차를 지지직 그어버린 장면들에선 폭소를 자아내기도 하지만 그렇지만 훨씬 더 많이 울게 하고 잔잔한 가족사랑과 노년의 연인들의 사랑을 묘사한 대목에서는 마음이 따스해진다. 올망졸망한 집들이 들어선 골목을 배경으로 잔잔한 선율이 울려퍼지는 대목에서는 포근함마저 느끼게 하는 영상과 음악들. 간만의 휴일날 노년의 연인과 노부부의 사랑을 보면서 부부의 정을 돈독하게 다진 시간이었다.
2011년 3월 6일 솔향 씁니다.
Secret Garden /Sometime When it Rains
첫댓글 이리 정성껏 평을 해 주시니
시간 내서 관람해 보겠습니다.
아참, 전에도 종종 영화 평론을 해 주셨던 기억이 이제 나네요
동생이 영화 감독이었던 사실도...
대단하세요
영화 직접 본거같이 잘 정리 해주셨네요 감사합니다 .꼭 봐야겠습니다.
요즘 많이 뜬다고 하데요 감사 합니다
관람 했는데 작품성이 있드군요.강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