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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교산이라면 광교레포츠클럽이 전문적으로 가는 산이라 좀 단조로운 산으로
치부해 왔는데 지난 번 수리봉, 시루봉(582m)을 거치는 종주를 하면서 결코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 회원들의 반응이 호의적인 것을 단번에 눈치 챈
김회장이 이번에도 광교산으로 결정했다. “당이 결심하면 우리는 한다”는
모토를 내세우고 있는 산악회는 광교산 등반에 만장일치로 흔쾌히 동의,
9시 30분 미금역에 모이기로 했다. 이날따라 집결시간을 9시로 착각한 기자가
미금역에 도착한 시각은 8시 35분. 역 구내를 걸어 나오는데 저쪽에서 아는
얼굴이 나타난다. 징기스칸 김택열이었다. 마주치는 순간, 한 시간이나 일찍
도착한 두 사람은 서로 민망하고 겸연쩍어 뭐라고 해야 할지를 몰랐다. 겨우
한다는 소리가 “왜 이리 일찍 왔어?”, “미쳤나?” 였다. 지난 몇 번 지각한
징기스칸은 오늘은 지각 안 하겠다는 작심을 하고 서두르다 보니 이렇게
됐단다. 하릴없이 둘은 역구내 Dunkin Donuts 에서 커피를 마시며 한 시간을
죽이는 수밖에 없었다.
9시 20분 한영구가 전화로 밖에서 모두 버스 탈 준비를 하고 있으니 빨리
나오라고 재촉한다.
15번 버스 종점에 내리니 성복동에 사는 김회장과 임한석이 미리와 기다리고
있다. 김회장은 몇 장의 서류를 끼워 넣은 투명한 플라스틱 파일을 들고와서
김종남-임한석 두 고문에게 무언가 열심히 설명을 하기 시작한다. 기획부동산
업자가 어수룩한 노인들에게 사기치는 모습을 연상시킨다. 알고 보니 오늘
등반할 코스를 표시한 지도를 인터넷에서 복사해 온 것. 회장 자신은 허리가
아파 등반을 못하고 나중에 하산 지점에서 우리를 만나 예약된 식당으로
안내하겠다는 것이다. 바늘에 실처럼 따라다니는 장변호사님도 안 오셨다.
오늘은 회장이 땀흘리는 등산을 하지 않는 데다가 바로 하산지점에 식당이
있는 관계로 목욕을 하지 않기로 했다. 이 얘기를 듣고 많은 사람들이 좋아
하는데 유독 김택열은 서운해 한다.
기자, "날씨가 선선해서 땀도 별로 안 날 것 같은데 목욕 못하는 게 뭐가
그렇게 유감인가?"
김, "목욕을 반드시 땀 씻으려고 하나?"
기자, "그럼 왜 하나?"
김, "벗는 재미로 하는 거지"
아침부터 어조가 수상하게 나오기 시작한다.
회장은 자기차로 되돌아가고 남자 8명이 10시 13분 법륜사 입구를 지나 등반을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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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택열, “오늘따라 건강한 회장님이 왜 허리가 아프시다지?”
기자, “과용하셨나?”
김택열, “장변호사님은 또 어떻게 된 거야?”
배정운, “노기자는 건강상태가 어떤가?”
기자, “가벼운 협심증세가 있어 의사가 등산 같은 격렬한 운동은 자제하라는
지시를 해서 당분간 산에는 못 나올 것이다. 일상 활동에는 문제가
없으니 너무 걱정은 하지마라.”
배정운, “산악회에 박교수 못 나오는 것보다 노기자 못 나오는 것을 우리는
훨씬 더 크게 miss 하고 있다.”
기자, “그런 말 하는 자네를 내가 진정한 친구로 생각해야 할지 재고해봐야
겠다.”
조금 걸으니 날씨가 예상보다 덥다.
많이 껴입은 임한석, “더운데 옷 좀 벗자.”
김택열, “오늘은 여성도 없는데 마음대로 벗고 싶은 거 다 벗어라.”
기자, “옷만 마음대로 벗을 것이 아니라 말도 마음대로 해봐라. 오늘은 수컷들
끼리 완전한 언론자유를 한 번 謳歌해 보자.”
김택열, “여자회원 있다고 박 모가 하고 싶은 말 못하는 거 본 적 한 번도
없다.”
이때부터 기다렸다는 듯이 각자 하고 싶은 말을 마구 쏟아내기 시작하는데,
隨筆倫理規定을 준수하는 기자로서 그 내용을 일일이 여기에 枚擧치 못하는
아쉬움을 독자 여러분께서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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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식시간. 한영구는 거봉포도를, 징기스칸은 지난 번 약속대로 게르마늄 계란을
두당 2개씩 돌린다. 입만 갖고 간 중생들, 이 고마움을 어떻게 표시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레포츠 회원들 놀러 다니는 코스와 다르기는 하지만 우습게 봤던 시루봉 올라
가는 길이 쉽지만은 않았다. 시루봉을 200m 쯤 남겨두고 김윤기가 갑자기
기운이 빠져 못 가겠다고 주저앉는다. “윤기도 과용했나?” 소리가 나오는 것
또한 오늘의 분위기에서 너무도 당연한 것이었다.
김종남, “우리 나이에 꽃밭에 물 줄 때는 정자세를 취해야 한다는 걸 명심
해라.”
김택열, “어떤 것이 정자세인지 나는 아직 잘 모른다.”
임한석, “아직도 여러분들은 그렇게 정원 손질할 여력이 있나?”
김윤기와 김종남, 한영구 세 사람을 남겨두고 나머지 5명은 마침내 광교산
정상인 시루봉에 올랐다. 징기스칸은 대형 캐논 카메라로 인증 샷을 찍으
면서 왕년의 한영구보다 훨씬 더 꾸물댄다. 다음 차례를 한참이나 기다려준
젊은이에게 기자가 징기스칸을 대신해서 죄송하다는 말을 해야 했다.
정상에서 사진 찍고 아이스케키 하나씩 물고 대기자 3명용 3개까지 사들고
하산을 시작. 내려오는 길은 일사천리였다. 김회장과 1시에 하산지점에서
만나기로 했는데 15분이나 일찍 하산, 2시간 30분간의 산행을 마쳤다.
조금 내려오니 회장이 올라오고 있다. 오늘 목욕 안 하는 것을 제일 반긴
사람은 배정운. 시내에서 이른 저녁 약속이 있는 배회장은 오늘도 목욕을
하자고 하면 자기는 싸온 샌드위치 하나 먹고 바로 서울로 갈 계획이었다고.
회장이 안내한 식당은 “善”이라는 이름의 한우 전문점이었다.
엇나가는 김종남은 식당에 들어서자마자 주인한테 “나는 한우고기를
먹으면 두드러기가 나니까 제발 미제 수입육 좀 주세요.”하며 어깃장을
놓는다.
주인, “죄송합니다만 우리 집에는 한우밖에 없습니다.”
나온 고기는 진짜 한우였고, 김종남이는 두드러기 나지 않고 식사를 잘
끝냈다.
김회장은 오늘도 최근에 개비한 하늘색 11인승 Carnival 로 일행을 전철역
까지 실어 나른다.
기자, “왜 이렇게 큰 차를 샀습니까?”
회장, “바로 오늘 같은 용도에 쓰려고요.”
임한석, “다음 회장 한 번 해 보고 싶었는데 김회장이 차까지 새로 사가면서
이렇게 회장 연임운동을 하고 있으니 포기해야겠다.”
11월 두 번째 산행은 금요일인 25일 1박2일로 馬山 舞鶴山을 가기로 잠정
결정했다. 김고문이 무학산에 관해서는 기자더러 안내를 하라고 하는데
막상 기자도 무학산에 올라가본 적이 없어 마산에 있는 친구한테 부탁을
해야 할 형편. 다른 동문들은 어땠는지 모르겠으나 고교재학 시절 S상대
입시준비에 정신없는 촌놈이 고향 뒷산이라고 마음대로 올라 다닐 시간과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1969년 수락산을 간 것이 난생 처음 해보는 등산
이었다. 그때 무학산을 많이 탔더라면 오늘날 여러분과 친구 되기가 어렵지
않았을까요? 지금은 이름마저 창원시로 변해버린 마산 선창가에서 여러분
들한테 싱싱한 남해안 생선회를 대접할 즐거움 또한 어찌 가질 수
있었을까요?
참가자(9명): 김숭자(부분 등산), 김윤기, 김종남, 김택열, 박정수, 배정운,
임종홍, 임한석, 한영구.
첫댓글 산행기 잘 읽었읍니다. 수고 많이 하셨읍니다.그런데 마산의 무학산에 잠정적으로 가기로 한 날이 11월 두번째가 아니고
네번째 금,토요일 (11월25일,26일)입니다.
산행기 감사합니다. 누구라도 교통편은 제공할 수 있읍니다요^^
박교수라는 호칭보다 박기자라는 호칭으로 불러주는게 더 여광스럽다는 박기자의 산행기를 읽어보니 숨은 뜻을 알겠네요.
박기자님 수고 많으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