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
(마가복음 5 :21-24, 35-43)
오늘 본문에서 12살 먹은 소녀가 다시 살아나는 이야기입니다.
12살 먹은 소녀가 죽었습니다.
나이 많은 사람뿐 아니라 죽음은 청년도 삼키고 죽음은 어린 아이도 삼킬 수가 있습니다.
12살 먹은 소녀 그가 죽은 그 곁에 예수님께서 다가 오셨습니다. 그리고 한마디 말씀을 하십니다.
“달리다굼”
이것은 아람 말이예요
“달리다굼. 소녀야 일어나라”
이 음성을 듣는 자마다 일어날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는 절망의 시대입니다.
절망시대에 들어야할 예수님의 말씀이 무엇일까요?
1. 문제를 가지고 예수님 앞에 나올 줄 알아야 합니다.(22절)
본문 22절에 “회당장 중 하나인 야이로라하는 이가 와서 예수를 보고 발아래 엎드리어 많이 간구하여 가로되 내 어린 딸이 죽게 되었사오니 오셔서 그 위에 손을 얹으사 그로 구원을 얻어 살게 하소서 하거늘”
이 소녀의 아버지는 회당장이었다고 성경은 기록합니다.
회당장은 그 당시 이스라엘 사회에서는 높은 지위에 있었던 사람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회당은 학교역할 도 했고, 심지어 재판소 역할도 했습니다. 문제를 가지고 나오는 사람들에게 마지막 판결을 내리는 재판관과 비슷한 역할까지 회당장은 겸하고 있었습니다. 그에게는 사회적 명예가 있었고, 사회적 존경이 뒤따르고 있었습니다.
회당마다 적어도 10명쯤의 관리들이 배치되어 있었고, 큰 회당의 경우에는 회당장이 3사람씩 배치되어 있었습니다.
자, 이런 정도의 신분을 누리는 사람이라면 예수님을 찾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그 당시 예수님은 사람들이 잘 몰랐습니다. 그러나 그 예수님앞에 와서 회당장이 엎드립니다. 그냥 나와서 예수를 만났다고 기록한 것이 아니라 오늘22절에 “회당장중 하나인 야이로라하는 이가 와서 예수를 보고‘ 그 다음에 보시면 ”발아래 엎드렸다“고 그랬습니다.
“발아래에 엎드렸다.”
이것이 쉬운 일이 아니지요. 이 정도의 사회적 신분을 가진 사람이 예수님앞에 엎드리는 것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에게는 문제가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딸이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별별 노력을 다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살릴 길이 없었습니다.
이제 마지막 희망, 마지막 소망을 예수님께 걸고 그는 예수 앞에 엎드립니다. 그리고 보면 사랑하시는 여러분, 인생을 살면서 우리가 경험 는 고통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 예요.
이 회당장에게 사랑하는 딸로 말미암은 고통의 딜레마 그것이 없었다면 이 회당장이 예수님앞에 나왔겠습니까?
우리 중에서도 고통 받지 않는다면, 인생의 역경이 없었더라면 그리고 비바람과 폭풍우 가 없었더라면 예수님앞에 나올 수 없었던 사람, 참 많을 거예요.
23절에 “많이 간구하여” 한 번만 호소한 것이 아니예요. “선생님 살려 주세요. 내 딸 살려 주세요.”
부탁입니다. 제발 살려주십시 오. 이 소리치고 부르짖는 이 사람의 모습을 보십시오.
자식을 살리는 일에 체면을 불구하고 많이 간구하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그 체면 때문에 오늘도 인생의 절박한 문제를 안고 있어도 그리고 해결될 수 없는 인생의 딜레마를 안고 있어도 주 앞에 나오지를 못합니다.
여러분의 절망이 무엇입니까?
여러분의 갈등이 무엇입니까?
여러분의 고통이 무엇입니까?
내 인생 속에 예수님의 부활의 능력, 그리고 부활의 소망을 체험하기를 원하십니까?
오늘 문제를 가지고 나사렛 예수님앞에 나와 주 앞에 엎드려 합니다.
요한복음 11장 25절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요한복음 6장 35절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요한복음 14장 6절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2. 아직 문제가 해결 되지 않았어도 예수님과 함께 걸어 가셔야 합니다.(23절)
아직 문제가 해결되지 않었어도 예수님과 함께 걸어가셔야 합니다.
본문 23절에 "많이 간구하여 가로되 내 어린 딸이 죽게 되었사오니 오셔서 그 위에 손을 얹으사 그로 구원을 얻어 살게 하소서 하거늘"
자, 그 다음에 어떤 사건이 일어났습니까? 24절에
"이에 그가 함께 가실새 큰 무리가 따라가며 에워싸 밀더라"
자, 어떤 일이 생겼어요?
'그가 함께 가실새..'
회당장은 드디어 예수님과 함께 걷기 시작했습니다.
예수님 만나고, 이제 예수님와 함께 걸어가기 시작했어요.
집으로 갑니다.
아직 이 시점에서 그의 문제는 해결되지는 않았습니다.
물론 그는 이제 예수님 만나고 예수님과 함께 걷게 되었으니까
그 예수님을 통하여 해결의 소망을 안고 걷고 있었을 것입니다.
예수님만 우리 집에 가시면, 그리고 우리 아이에게 손을 얹으시면
우리 아이는 살아날 것이다. 해결의 희망을 안고 걷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 해결 된 것은 아니예요. 그런데 그가 걷고 있었던 도상,
예수님과 함께 걷고 있었던 도상에서 문제가, 사건이 또 하나 발생합니다.
본문 25절에 "열두해를 혈루증으로 앓는 한 여자가 있어"
- 이 사건이 열 두해를 혈루증으로 앓는 여인이 치료받는 사건과 맞물려 있습니다. 사실은 회당장 야이로의 집에 가다가 한 여인이 예수님앞에 와서 또 도움을 호소하는 것이예요. 그래서 물론 이 여인을 치료를 받습니다. 좋은 일입니다. 좋은 사건이 발생 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회당장 야이로의 편에서 보면 이것은 안타까운 일이예요.
왜 그렇습니까?
자기 사랑하는 딸의 목숨이 경각에 달려 있습니다.
1분이 아쉬운 때예요. 한 순간이 새로운 때인데 그의 해결이, 사랑하는 딸의 문제의 해결이 열 두해를 혈루증을로 앓는 여인 때문에 지연 될 수밖에 없었던 사건, 회당장의 편에서 보면 이것은 방해거리 사건이 발생한 것입니다.
왜 예수님이 이런 사건을 허용하셨을까요?
이것은 이 회당장 야이로의 믿음을 강화시켜주시려는 의도적 사건이 아니었을까? 합니다.
여러분, 내 문제가 급합니다.
그런데 내 문제가 빨리 해결되지 않아요. 그런데 가만히 보니까 주변에서 다른 사람들은 기도해서 빨리 빨리 응답을 받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다 응답을 받는데 나만 응답 안받는 것 같아요.
여러분 그런 느낌을 받은 적이 없어요?
다른 사람은 다 해결되는데 나만 해결되지 않아요.
그러나 다른 사람들이 기도응답 받고, 다른 사람들이 문제해결을 경험하는 그 사건을 보면서 무엇을 느끼십니까?
내 이웃들을 불쌍히 여기신 예수님!
열 두해를 혈루증으로 앓다가 인생을 포기해 버린 이 사람의 기도를 들으시고, 이 사람을 자비히 여기시고, 이 사람을 치료하시는 예수님은 내 집에서도 동일한 역사를 행하실 것입니다.
여러분! 이웃들을 보면서 내 믿음이 강화될 수가 있어야 돼요.
“구하라, 찾으라, 문을 두드리라,”
이 말씀이 한 번만 구하라라는 말이 아닙니다. 한 번만 찾으라는 말이 아닙니다. 한 번만 문을 두드리라는 말이 아닙니다.
본래 이 말의 뜻은 계속해서 구하라, 그런 뜻입니다.
계속해서 찾으라, 문을 두드리라, 이 말은 계속해서 두드리라는 말입니다.
마태복음 7장 7절에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마가복음 11장 24절에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
고린도후서 6장 10절에 “근심하는 자가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것도 없는 자가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
믿음의 말을 계속 두드리시길 바랍니다.
오늘 이 본문은 이렇게 가르칩니다. 아직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어도 예수님만 곁에 계시다면 염려하지 마십시오. 계속 구하시길 바랍니다.
3. 최악의 절망 속에서도 예수님을 믿으셔야 합니다.(35절)
본문 35절에 “아직 말씀하실 때에 회당장 집에서 사람들이 와서 가로되, 당신의 딸이 죽었나이다. 어찌하여 선생을 더 괴롭게 하나이까. 집에서 사람들이 왔어요. 가족들하고 하인들도 왔을지 몰라요. 당신의 딸은 죽었습니다.”
상황은 끝났습니다. 희망은 사라진 것입니다.
이것은 철저한 절망의 보고였습니다.
회당장 집에서는 이미 장례식 준비가 한창이었을 것입니다.
38절 이하에 장례식의 광경이 시끄럽고 복잡하게. 사람들은 혼란되어 있습니다. 소란을 일으키고 혼란되어 있었습니다.
어쩔줄을 몰라했습니다. 통곡 소리가 들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절망의 한 복판 속에서 예수님은 이 회당장에게 어떻게 말씀하고 계십니까.
본문 36절에 “예수께서 그 하는 말을 곁에서 들으시고 회당장에게 이르시되 두려워 하지말고 믿기만 하라.”
이 절망의 상황 한복 판속에서 예수님은 어떻게 말씀하세요?
“두려워 하지말고 믿기만 하라.”
“두려워 하지말고 믿기만 하라. 두려워 하지말고 믿기만 하라.”
이것은 현재 시제로 기록 되어있습니다.
현재 명령형입니다. 무슨 뜻이냐 하면, “두려워 하지 말고 믿어라.”
계속 해서 믿어라 이 말입니다.
상황 끝이예요. 절망이예요.
그런데도 예수님은 아직도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계속해서 믿어라. 이 순간 속에서도 계속해서 믿음을 져버리지 않는다면,
상상할 수 없었던 위대한 기적이 일어날 수가 있습니다.
그 기적은 마침내 일어났습니다.
소녀가 곧 일어나서 걸으니 나이가 열 두 살이라 사람들이 곧 크게 놀라고 놀랐습니다.
“달리다굼. 소녀야 일어나라.”
죽었던 사람이 다시 살아났습니다.
인간이 가진 육체적 사망의 절망. 육체적 사망에 대한 하나님의 대답은 부활입니다.
부활의 소망이 확실하다면 우리는 이 죽음의 사건 앞에서도 우리는 절망할 필요가 없습니다.
말씀을 붙들고 약속의 말씀을 붙들고 예수님에 대한 신뢰를 고백할 수가 있습니다.
달리다굼.
나의 사랑하는 아들이여 일어나라, 딸이여 일어나라.
여러분 예수님의 터치 그리고 예수님의 말씀을 듣는 순간 우리는 다시 일어날 수가 있습니다. 약속의 말씀은 우리의 소망입니다. 믿으십니까.
요한복음 5장 24절에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뭐예요.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달리다굼.
주께서 말씀하시면 이 말씀은 소망이 되어 희망이 되어 이 말씀을 통해서 말씀을 말 씀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신뢰하는 순간, 우리는 절망을 박차고 일어날 것입니다.
달리다굼.
일어나시기 바랍니다.
두려워하지말고 믿기만 하라
두려워하지말고 믿기만 하라
두려워하지말고 믿기만 하라
12살 어린딸에게만 일어나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오늘 말씀을 듣고 있는 우리에게도 일어나라고 하십니다.
절망을 희망으로 바뀌어 주시는 예수님이 나의 소망이기 때문에 일어나는 것입니다.
죽음을 생명으로 바뀌어 주시는 예수님이 나의 소망이기 때문에 일어나는 것입니다.
질병을 건강으로 바뀌어 주시는 예수님이 나의 소망이기 때문에 일어나는 것입니다.
첫댓글 절망시대에 들어야할 예수님의 말씀이 무엇일까요?
1. 문제를 가지고 예수님 앞에 나올 줄 알아야 합니다.(22절)
본문 22절에 “회당장 중 하나인 야이로라하는 이가 와서 예수를 보고 발아래 엎드리어 많이 간구하여 가로되 내 어린 딸이 죽게 되었사오니 오셔서 그 위에 손을 얹으사 그로 구원을 얻어 살게 하소서 하거늘”
2. 아직 문제가 해결 되지 않았어도 예수님과 함께 걸어 가셔야 합니다.(23절)
본문 23절에 "많이 간구하여 가로되 내 어린 딸이 죽게 되었사오니 오셔서 그 위에 손을 얹으사 그로 구원을 얻어 살게 하소서 하거늘"
3. 최악의 절망 속에서도 예수님을 믿으셔야 합니다.(35절)
본문 35절에 “아직 말씀하실 때에 회당장 집에서 사람들이 와서 가로되, 당신의 딸이 죽었나이다. 어찌하여 선생을 더 괴롭게 하나이까. 집에서 사람들이 왔어요. 가족들하고 하인들도 왔을지 몰라요. 당신의 딸은 죽었습니다.”
달리다굼. 나의 사랑하는 아들이여 일어나라, 딸이여 일어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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