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 한 보따리 안에있다"
현장 스님이 말하는 '법정 스님 종교관'
제가 현대불교신문을 보다가 감명깊은 기사를 봐서 공유를 좀 할까 하고 글을 씁니다.
어려서 부모를 잃고 방황하던 한 고등학생이 있었다. 학생은 담임선생님의 권유로 법정 스님의 <산방한담>을 읽고는 다음날 한달음에 송광사 불일암으로 법정 스님을 만나러 달려갔다.
청년은 스님에게 물었다
"스님,책을 밤에 썼어요? 낮에 썼어요? 마루에서 썼어요? 방에서 썼어요?"
법정 스님은 당돌한 질문을 던진 학생의 머리를 쥐어박으며 말했다.
"차나 마시고 가거라"
이번에는 법정 스님이 학생에게 물었다 " 그래, 너는 커서 무엇이 되고 싶으냐?"
"군인도 되고 싶고, 교수도 하고 싶습니다"
법정스님이 학생에게 말했다.
"무엇이 되겠다기 보다 어떻게 살지를 고민하거라."
스님과 학생의 인연은 그렇게 시작됐다. 할머니 뒷바라지만으로 어렵게 조선대 법학과에 진학했던 학생은 등록금이 없어 학업을 중단해야 했다. 법정스님은 그런 그에게 "등록금 고지서를 광주 베토벤 음악 감상실에 맡겨 놓으라" 고 말했다.
그때부터 스님은 그가 졸업할 때까지 빠짐없이 등록금을 부쳐줬다.
법정스님은 청년에게 "어려운 친구가 있으면 소개하라" 고 해서 다른 친구 셋도 졸업 때까지 학비를 도왔다. 세월이 흘러 그들은 교수가 되고 의사가 됐지만 스님을 직접 뵌 적은 없었다. 특히 법정 스님은 그와 친구들에게 도움 받은 사실을 입 밖에 내지 못하게 했다.
그는 법정 스님의 다비식을 모신 후에야 현장 스님에게 사연을 밝혔다. 이야기의 주인공은 목포 초당대 문현철 교수.
문 교수는 가톨릭 신자이다. 대학 다닐때 가톨릭에 입문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영세를 받은 날 교통사고를 당해 2주 동안 사경을 헤매고 5개월을 입원해 치료를 받았다.
문 교수는 퇴원하자마자 송광사 불일암을 찾았다. 훌쭉해진 그에게 법정 스님이 물었다.
"어디 아팟어?"
문 교수가 답했다. "하느님이 계신다면 저를 치인 차를 붙잡아 주지 않고 영세받은 날 교통사고를 나게 할 수 있습니까? 저도 스님처럼 불교를 믿고 싶습니다."
법정 스님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천주님은 그런 만화 같은 일을 하는 분이 아니다. 이런 아픔을 통해 네가 더욱 성숙해져 더 큰 시련도 이겨 낼 수 있는 힘을 주는 것이다."
이어 스님은 "천주님의 사랑이나 부처님 자비나 모두 한보따리 안에 있는 것이니 따로 종교를 바꿀 생각은 하지마라"고 타일렀다.
티베트박물관장 현장 스님은 법정스님과 청년의 사연을 6월3일 연세대 백양관에서 한국기독자교수 협의회가 주최해 열린 ;이웃종교의 같음과 다름' 주제의 학술대회에서 공개했다.
현장 스님은 주제 발표 '법정스님이 바라본 이웃종교의 같음과 다름'에서 "법정스님의 다비식 날 불일암에 올랐다가 묵주를 돌리며 기도하는 중년의 남성을 만났다. 그가 문 교수 였다"고 말했다.
현장 스님은 "법정 스님은 불교라는 틀에 매이는 것을 거부했고, 수행자라는 상에 매이지도 않았다. 그러면서도 출가 수행자의 본분에서 벗어나지 않고 항상 처음 시작하는 마음을 잃지 않았던 선지식이었다" 라고 회고했다.
스님은 "법정 스님은 자신의 말 글과 일치하는 삶을 살았고 체험하지 않고 깨닫지 않은 사실은 글로 쓰지 않았다." 면서 " 법정 스님이 남긴 글과 삶과 죽음의 모습, 종교교류의 흔적들이 스님이 가신 후에 더욱 빛을 발하고 있다" 고 말했다.
-조동석 기자- / 출처 현대불교 신문 제 787호 /
이 글을 읽고 나니 마음이 바다처럼 넓고 편협한 다른 종교인에게 읽히기를 바라며
세상을 이런 마음으로만 살아 간다면
다툼이 없는 소통하는 세상이 될 것이며
불교만이 해낼 수 있을 꺼라는 자긍심으로 발췌해서 올려 봤습니다.
우리 모두 성불합시다. 행복합니다.
첫댓글 송광사 불일암 의자위 방명록에서 애절함이 ....
스님의 흔적은 더욱 아름답고....
법정스님은 우리들의 영원한 마음 부처님_()_()_()_
_()()()_
한생각바꾸는것이 불교라지만,,,,그영농하고.투명한영혼은 그어느한곳도 물들지안으ㅡㅡ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