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1일 일요일. 비 맑음. 새해가 밝았다. 집을 떠난 여행자에게는 연말이나 연시라는 말들이 별로 특별하게 다가오지 않는다. 그저 도착하고 출발하는 일이 반복될 뿐이다. 이곳 뉴질랜드는 연말이나 연시도 무척 조용하다. 거리의 축제도 보이지 않고 불꽃놀이도 시끄러움과 화려함도 없다. 가족과 함께 가정에서 조용히 보내는 것 같다. 
새 소리가 유난히 시끄러운 아침이다. 자고 있는 아내를 그대로 두고 조깅을 하려고 밖으로 나왔다. 공기는 정말 시선하다. North Pork Pins 나무가 하늘로 쭉 뻗어 있다. 오른쪽 바다 끝으로 가니 선착장이고 사람도 없고 조용하다. 이른 아침 바닷물 만 출렁인다. 다시 돌아오는데 빗방울이 약간 떨어진다. 식당에서 아침밥을 끓이고 짠지와 사과, 땅콩으로 아침 식사를 한다. 메뉴도 없이 그냥 있는 대로 먹는다. 식탁에 대한 계획도 있으면 좋으련만....... 이제 짐을 챙겨 숙소를 나선다. 빗방울이 떨어진다. 바닷가를 끼고 드라이브다. 기암괴석이 해안가를 장식하고 있다. 멋진 바위들이다. 경치가 좋은 곳은 차를 세워 잠시 쉬었다 간다. 여기에도 바다사자가 있다. 눈으로는 바다사자를 보고, 코로는 특이한 냄새를 맡고, 귀로는 파도 소리를 듣고, 피부로는 떨어지는 빗방울을 감지하고, 알고 보니 종합적이고 입체적인 오감 만족 체험이다. 
바닷가를 달리던 차는 이제 내륙을 달린다. 바다는 보이지 않고 양쪽과 전방에 산들이 펼쳐진다. 숙소를 목표로 해서 달려간다. 크라이스트처치에 들어섰다. 남 섬의 동해안 켄터베리 평야의 중앙에 위치하는 크라이스트처치는 오클랜드, 웰링턴 다음으로 규모가 큰 제 3의 도시다. 카이코라에서 오마루에 이르는 켄터베리 대평원은 남 섬의 각 도시로 향하는 거점이자 남 섬의 경제를 책임지는 중심 축 이기도하다. 남 섬에서 가장 큰 크라이스트처치는 이 중에서도 맏형 격으로 정치, 경제, 문화, 관광의 중심지 구실을 충실히 하고 있다. 교통 면 에서도 남 섬의 관문 역할을 하고 있다. 항공기, 버스, 철도 모두가 이 도시에서 시작되고 끝이 난다. 영국 밖에서 가장 영국스러운 도시, 정원의 도시 등의 별칭으로 불리는 이 도시 곳곳에는 영국 옥스퍼드 출신들이 건립한 남다른 자부심이 넘쳐흐르고 있다. 도시의 이름마저도 ‘옥스포드 크라이스트처치 칼리지’ 출신들이 자신의 출신교 이름을 따서 지은 것이다. 
도시 한 가운데를 흐르는 맑고 찬 에이번 강, 여기 저기 아름다운 공원과 고풍스러운 전차, 도시의 상징인 대성당, 고딕 풍의 건축물들, 그리고 멀리 보이는 서던 알프스의 만년설......... 도시적인 매력과 자연의 생동감이 정점에서 조화를 이루는 곳, 과거와 현재가 교차하며 새로운 미래를 만들어내는 곳, 도시 전체가 매력으로 넘치고 활기찬 이곳을 누군들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라고 가이드북에 기록되어 있는데, 아뿔싸 지난해 2월 대지진으로........... 
우리의 일차 목표는 숙소를 찾는 것이다. 크라이스트처치 외곽의 경마장 부근에 있는 Racecourse Backpackers Hostel이다. 한 번의 망설임으로 숙소를 찾았다. 정오의 뜨거운 태양으로 거리도 뜨겁고, 1월 1일 이라서 인지 돌아다니는 이도 없는 거리다. 숙소에는 찾아오는 손님도 없다. 소박하게 생긴 동남아 사람이 나와서 맞아준다. 싱가폴에서 이민 왔단다. 현금으로 숙박비를 지불하고 방 키를 받았다. 이곳은 인터넷 wi-fi가 공짜로 쓸 수 있었다. 아들 같은 젊은이가 와서 내 컴퓨터를 쓸 수 있도록 설정해 주었다. 주방에서 점심으로 라면을 끓여 먹었다. 
이제 크라이스트처치를 구경해보려고 한다. 걸어서 가기에는 좀 멀어 차를 몰고 가기로 했다. 주차가 좀 걱정이지만........ 시내사종을 잘 몰라 지도를 한참 살펴보았다. 기찻길을 건너면 주차할 곳을 찾기로 하고 숙소를 나섰다. 도로는 복잡하지 않았다. 우리는 남 해글리 공원과 북 해글리 공원을 나누는 도로 Riccarton Avenue에 차를 주차했다. 막 주차하고 있는 앞 차에 가서 물어보니 공휴일은 종일 공자란다. 차를 몰고 다니다 보니 편리함도 있지만, 걱정거리도 따라온다. 
해글리 공원으로 걸어간다. 공원은 무척 넓다. 도시 중심에 펼쳐져 있는 Hagley 공원은 도시와 서쪽의 주택지 리카르톤, 펜탈톤, 아이락을 구분하는 광대한 녹지다. 부지 내에는 럭비장과 테니스 코트, 골프 코스 등 다양한 시설이 있다. 그리고 공원의 한 쪽은 식물원으로 되어 있어서 일 년 내내 여러 가지 꽃이 피고 있다. 이곳은 크라이스트처치시민의 휴식처이다. 또 이도시를 ‘가든 시티’라고 부르는 이유이기도 하다. 해글리 공원을 관통하여 시내를 서쪽에서 동쪽으로 비스듬히 흐르는 것이 에어번 강이다. 그리고 이강의 양쪽에 이어져 있는 것이 옥스퍼드 테라스와 캠브리지 테라스이다. 
우리는 해글리 공원 내에 있는 보타닉 가든으로 걸었다. 강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얕아 보이는 에이번 강에 사람들이 카누를 타고 있다. 오리들도 한가롭다. 놀이터와 수영장도 있어 제법 사람들이 많다. 커다란 거목들이 그늘을 가득 만들어 놓은 숲길도 있다. 다양한 꽃들이 끼리끼리 모여 활짝 피어있다. ⓘ에 들어갔으나 별로 정보가 없다. 뜨거운 태양 아래 더워보이게 서 있는 청동시계에는 Shall Rejoice 라고 새겨져 있다. 가든 내에 있는 빅토리아 호수와 알버트 호수가 더욱 공원을 예쁘게 한다. 여러 가지 조각품들이 우리를 즐겁게 한다. Archery Lawn(활터)에는 분수대가 있다. 
공원을 다니다가 도심으로 빠져나간다. 켄터베리 박물관이 나온다. 고딕양식의 검은 돌로 지어진 특색 있는 건물이다. 로버트 맥도걸 미술관도 옆에 있는데 건물 양식이 비슷하다. 길을 건너 도심으로 가는데 대성당 있는 곳이 지난 2월 지진으로 건물이 무너지는 피해를 입어 복구하려고 철망을 쳐서 사람들의 출입을 통제하고 있다. 도시 중심부 전체가 입장을 못하게 막아서 그냥 철망 너머로 부서진 모습을 쳐다 볼 수밖에 없었다. 너무 아쉬웠다. 도시가 죽은 것 같다. 지진으로 인해 통제된 , 썰렁한 건물만 있는 모습은 아주 충격적인 장면이었다. 자연의 무서움과 인간의 나약함이 새삼 느껴지는 현장이다. 지구 멸망을 소재로 한 영화의 한 장면이 실제 눈앞에 있는 것 같다. 
보려했던 대성당, 밟아보려고 했던 광장, 건너보려고 했던 추억의 다리, 만나보고 싶었던 캡틴 스콧 동상 등이 모두 헛된 계획이 되어 무너지는 순간이다. 조금만 빨리 왔으면 만나볼 수 있었을 텐데 아쉬웠다. 그 대신 지진의 무서운 위력을 직접 눈으로 확인할 수 있어서 좋은 공부가 되었다. 우리의 삶과 좀 거리가 있는 광경이라 낯설었다. 지진대에서 약간 벗어나 있는 한국에 산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지 새삼 느껴진다. 
다시 돌아 보타닉 가든으로 간다. 크라이스트처치 대학의 예쁜 문양과 아담한 교정을 본다. 길가에 서니 관광 온 대형 버스가 4대가 줄지어 서 있다. 사람들도 많다. 호랑이만큼 큰 개를 끌고 가는 부부도 있다. 해글리 공원의 여러 가지 흥밋거리를 찾는다. 장미공원 밖의 풍성하게 핀 다알리아 꽃들, 에이번 강물에 유유히 놀고 있는 송어들, 맑은 하늘과 신선한 공기, 아무 걱정 없이 편안하게 여유를 즐기는 사람들, 참 멋진 곳이다.l 늦은 오후인데 아직도 해는 떨어질 줄 모르고, 직사광선은 눈이 부시도록 강하다. 여행 와서 오랜만에 뜨겁고 빛나는 태양을 만나게 되어 휴가의 맛을 느끼게 하는 날이다. 
차를 몰고 숙소로 향했다. Countdown 슈퍼에서 물건을 사고 주유소에서 연료를 가득 보충했다. 주유소 기름 값도 지역마다 가격이 모두 달랐다. 남 섬은 대체적으로 비싸고, 제일 저렴한 곳이 북 섬의 로토루아 지역인 것 같다. 숙소에 차를 넣고 주방에서 저녁을 해 먹었다. 소세지를 사 왔는데, 생각보다 그렇게 빨리 익질 않는다. 저녁식사를 한 후에 컴퓨터를 여유 있게 했다. 싱가폴에서 공부하러 왔다는 주인 아들 덕분에......... 퀸즈타운 숙소를 예약하고 다음 카페에 들어가 글도 남기고 한국 소식도 읽어보며 저녁 시간을 보냈다. 잔뜩 기대했던 크라이스트처치는 지진으로 갈 수 없어 극히 일부만 맛을 보고 접어야했다. 대성당 광장에서 전 세계에서 온 관광객들과 광장다운 맛을 느껴보고 싶었는데 아쉬웠다. 지진의 소식을 건성으로 넘겨버린 것이 실수다. 하루빨리 복구되어 옛 모습을 되찾기를 바랄 뿐이다. 지진에 대한 새로운 생각을 갖게 된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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