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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조 왕건 <제 17회>
씬 1 어느 길
부감으로 보여오는 어느 능선길이다.
하늘엔 흰구름이 가득히 몰려가고 있고 카메라, 점차 판 하다가 서서히 능선으로 점처럼 나타나고 있는 일단의 사람들을 잡는다.
말을 타고 점차 윤곽이 가까워져 오는 사람들은 왕건들이다.
왕건이 앞을 달리고 그 뒤로 왕식렴과 장수장들이 뒤를 따르고 있다.
씬 2 그곳 초원의 어느 길
한참을 달리다가 어느 곳에 이르러 말의 속력을 줄이며 왕식렴이 한 곳을 가르친다.
왕식렴 형님, 저어기.....
왕건도 말을 멈추며 먼 곳을 본다.
그리고 미소를 짓는다. 저만큼 멀리서 두어필의 말이 질풍처럼 이들 쪽으로 달려오고 있다. 연화와 그의 시녀인 슬인 것이다.
이들도 다시 달린다.
씬 3 초원의 어느 갈대 밭
양쪽의 말들이 서로 다가와 멈추어 선다.
왕건과 연화가 서로를 보고 미소지으면 양쪽의 가신들이 예를 올린다.
왕건 오랜만입니다. 연화 낭자.
연화 예, 공자님.
왕건 장자어른을 뫼시러 오는 길인데 벌써 출행을 하셨소이까?
연화 늦지 않으려고 서둘러 길을 나섰사옵니다.
왕건 그리되었군요? 장자 어른께선....?
연화 아버님은 뒤에 오고 계시옵니다.
왕건 끄떡이며 앞을 서면. 두사람은 곧 말머리를 나란히 하고 간다.
왕건 낭자의 말을 부리는 솜씨는 갈수록 대단 하외다. 마치 장수가 싸움터에서 달리는 것과 같아요,
연화 오랜만에 만나 하시는 말씀이 겨우 그 이야기십니까? 언제나 똑 같은 말씀만 하십니다. (흉내내듯) 낭자는 정말 말을 아주 잘 타십니다?
왕건 핫하하하. 그렇게 되었소이까?
두사람 웃으며 그렇게 간다. 식렴과 장수장들이 그렇게 사이를 두고 조용히 따르고 있다.
연화 (미소) 영영 소식을 끊으셨나 했사옵니다.
왕건 그럴리가요. 우리 송악은 그동안 여러 가지로 아주 바빳소이다.
연화 소녀 생각은 하시기나 하셨습니까?
왕건 글쎄요. 이 마음을 열어 보일 수도 없고....
연화 그 마음 속엔 무엇이 있사옵니까?
왕건 핫하하하하..... 하늘이 알고 오늘 제사를 받으시는 용왕신도 아시는 일입니다. 이 송악의 왕건이가 패서 제일의 미인인 연화낭자를 어찌 생각하고 있는지 말입니다.
연화 그만 하시오소서.
왕건 (속삭이듯) 낭자, 오늘 용왕신에게 가서 한 번 물어 보십시다. 도대체 어른들께선 언제까지 우리를 이렇게 두실 것인가 하고 말입니다...정말 너무 들 하신다고 말이지요..
연화 (끄떡이며 웃는다.)..........어서 가시지요.
그들, 웃으며 길 쪽으로 내려오면 저만큼 강장자 일행들이 오는 것이 보인다.
강장자와 그 처인 백씨, 유금필, 그리고 집사인 진서방이 가졸들과 함께 오고 있다.
왕건 어른들께서 오시는군요?
아니 마님께서도...?
연화 용왕제는 큰 제가 아니옵니까? 모처럼 나들이를 하셨사옵니다.
강장자 일행들이 점차 가까워 오면 왕건이 다가가 예를 올린다.
왕건 어르신 그간 안녕하셨사옵니까? 마님, 오랜만에 뵙사옵니다.
강장자 우릴 위해서 여기까지 나왔는가?
왕건 예.
백씨 고맙네, 자당께서도 안녕하시겠지?
왕건 예, 마님
강장자 왕성주께서도 벌써 길을 뜨셨겠네그려?
왕건 지금쯤 포구로 향하고 계실것이옵니다.
강장자 어서들 가세.
이들 그렇게 다시 움직인다. 유금필이 왕건과 묵례를 나눈다.
왕건과 연화가 앞을 서면 연화모가 끄떡이며 말한다.
백씨 나으리, 얼마나 보기가 좋사옵니까?
강장자 허허허, 그러게 말이요. 더는 해를 넘기지 말아야 할터인데.....
백씨 송악에서는 왜 자꾸 미룬답니까?
강장자 사정이 복잡한 모양이오. 송악고을을 앞으로는 건이가 맡아야할 터인데 아무래도 그 준비를 하자면 여러가지로 할 일이 많을 것이고...
백씨 그렇긴 하겠지만.....
그들 그렇게 간다.
씬 4 예성강 근처 길
왕륭 일행들이 오고 있다. 왕륭과 한씨를 비롯해 평달과 두 사부, 그리고 송악의 정예군사들이다.
이들의 모습은 강장자와는 달리 규모와 의식을 갗추었다. 성주의 나들이인 것이다. 그러나 왕륭은 많이 늙고 초췌해 보인다.
왕평달 형님, 날씨도 화창한 것이 제를 올리기에는 길일인 것 같사옵니다.
왕륭 그렇구먼
왕평달 이번에도 여러 장자분들이 다 오시겠지요?
왕륭 오기야 들 오겠지마는....어느때 보다도 마음들이 편치 않을 것일세. 도적들이 턱 밑까지 다가오고 있어.
왕평달 그 생각만 하면 마음이 무겁사옵니다. 왜 모두들 힘을 합치지 못하고 있는 것인지...
왕륭 허허허....이유야 다 있지. 욕심들 때문이야...
이들 제단이 보이는 포구 가까이 가는데 저만큼 여러 장자들이 모여 있는 것이 보인다.
왕평달 형님, 모두들 벌써 와 계시옵니다. 허허허..
왕륭은 말에서 내려서고 장자들도 가까이 온다.
모두들 인사를 나눈다.
유장자와 장자 1, 2, 3
그리고 박지윤과 그의 일행들도 보인다.
박지윤 왕성주, 올해처럼 바쁜해에도 어김없이 용왕제를 여십니다 그려.
왕륭 뱃사람이 용왕제를 빠트릴 수 있나요? 바쁜데들 와주셔서 고맙소이다.
박지윤 무슨 말씀을... 이 제사가 송악과 더불어 결국은 우리 모두의 복을 비는 일이 아니오이까?
유장자 그렇구 말구요. 세상사 아무리 바쁘고 복잡해도 여기는 아니올 수 없지요.
장자들 암요.
이때 저만큼 강장자들도 들어서고 있다.
모두 웃음으로 맞는다
왕륭 어서 오시오. 강장자. 허어, 부인께서도 오셨습니다?
백씨 예, 성주님
강장자 모두들 일찍 오셨소이다 그려. 허허허....
박지윤 (왕건과 연화를 보며) 허허, 이 사람들이 누구인가? 우리 패서 일대를 떠들썩하게 하고 있는 그 선남 선녀가 아닌가?
장자1 왜 아니겠소이까?
왕건 오랫만에 뵙사옵니다. 어르신들.
연화 (함게 인사 하고).......
박지윤 이보시오 왕성주, 도대체 두 집안은 언제 사돈을 맺을것이오이까?
왕륭 그리 머지 않았소이다. 허허허. (평달에게) 이보시게 아우님, 어서 자리들로 뫼시게.
왕평달 예, 이리들 드시오소서.
장자들이 모두들 자리로 가는사이 백씨와 한씨가 말을 나눈다.
백씨 별고 없으셨습니까?
한씨 예, 부인, 잘 오셨습니다.
저리로 가시지요.
백씨 예.
군사들이 주변을 정리하며 지켜서고 사람들은 미리 마련된 곳에 자리를 잡는다. 디졸브되면
씬 5 그곳 포구의 제단
바닷가엔 사당이 한 채 서 있고 그 앞에 제단이 마련돠어 있다.
그 앞 바다로 수 십 척의 상선들이 무수한 색색의 깃발들을 펄럭이며 해안에 정열해 있다.
장자들은 왕륭을 중심으로 제단 앞에 서 있다.
몇 번의 징소리와 함께 십 여명의 무당들 중 제사를 주관하는 무당이 크게 두 팔을 모아 합장을 하고 제문을 읽는다.
무당 비나이다. 비나이다. 갑인(甲寅)년 삼월 대 신라국 송악의 성주 왕륭은 하늘의 일월신과 바다의 용왕신에게 삼가 고하나이다. 신님들이시여 오늘의 이 제사를 어여삐 흠향하시고 송악의 뱃길과 바다를 다스려주소서. 더불어 이 제사를 주관하는 송악고을의 성주 왕륭과 인근의 모든 이들의 재앙을 거두어 가시고 바람과 파도를 잠재우시고 만복을 비처럼 내려주소서.비나이다. 비나이다. 하늘의 일월신과 바다의 용왕신에게 비나이다.
제문을 읽는 동안 사람들의 면면이 스쳐 간다.
장자들과 왕건과 연화와 그리고 그들 저편에 섞여 있는 외국 상인들의 갖가지 모습들도 보여 진다....
징소리와 함께 제문이 끝나면 제금소리들에 섞여 무당들이 흩어지며 사설과 춤이 이어지기 시작한다.
씬 6 그 일각
장자들은 모두 마련된 자리에 앉아있다.
유금필과 집사 진서방이 제단의 저 편에서 행사를 구경하고 있다.
유금필 이보게 진서방, 용왕제가 거창하다는 소문은 들었지만 이정도인지는 몰랐네
진서방 하루 밤낮을 계속하는 의식이올습니다. 큰 잔치이지요. 제사도 제사이지만 결국은 뱃사람들과 상인들이 한바탕 어울려서 먹고 노는 것이지요.
유금필 (끄덕이며)헌데 알다가도 모를 일일세. 저 왕건 공자와 연화아씨 말일세.
진서방 뭐가요?
유금필 나야 장자 어른댁에 온지 얼마 아니되어서 사정은 깊이 모르네만 저분들은 어려서부터 혼인을 약속한 사이들이 아닌가? 이미 성년이 되었는데 어째서 이대로 있는겐가?
진서방 문제는 송악성주님께 있는 것 같사옵니다. 아, 우리 어르신께선 벌써 부터 서두르셨습지요.
유금필 허허.....두사람 모두 상당히 좋아하는 것 같은데...
진서방 그렇구 말굽쇼.. 패서 일대가 다 아는 일입니다요.
무당들의 춤은 절정으로 접어든다.
장자들은 미소를 띄며 간간이 귓속 말도 주고받으며 제 자리에 앉아 지켜보고 있다.
왕건은 왕륭의 옆에서 침착하게 춤을 보고 있고, 그 현란한 춤사위에서....
헤설 왕건의 나이 열 일곱, 이 해는 통일신라 진성여왕의 재위 8년, 단기로는 3227년, 서기로는 894년이 되는 때였다. 견훤은 이 즈음 무진주를 거점으로 하여 쉬임없이 동진과 북진을 거듭, 그 영토를 확장중에 있었고, 궁예는 양길에게서 군사를 얻어 나온 이후 그 독특한 미륵신앙을 앞세우며 놀라운 속도로 여러 군현을 공략해 항복 받으며 명주로 향하고 있었다. 그러나 무너져가는 신라의 변방인 송악 주변의 호족들은 서로간의 엇갈린 이해관계로 인해 전혀 뜻을 모모으지 못한 채 그저 다가오는 운명을 바라만 보고 있었다.
해설이 계속되는동안 그에 따른 장면들이 스쳐간다. 견훤과 능환, 추허조, 수달과 신강등 그의 장수들이 가고 있는 모습과 궁예와 그의 심복들인 종간, 은부, 신훤, 원회들의 모습들도 스쳐간다.
그리고 다시 화면은 예성강으로 돌아와 용왕제 모습으로 잡아든다.
씬 7 어느 산길
황톳바람이 불고 있는 산길을 도선과 경보가 걸어오고 있다.
경보가 피곤한 듯 묻는다.
경보 큰 스님, 벌서 쉬지 않고 며칠을 걷고있사옵니다. 대체 어디로 가시는 것이옵니까?
도선 허허허....이제 다 와 간다.
경보 .....?
도선 무심한 것이 세월이라 하더니....백 년을 넘긴 고목이 스러지고 있는데도 봄은 또 어김없이 오고 있으니....
경보 무슨...말씀이시온지..........?
도선 어서 가자.
이들 고갯길에 올라서면 드디어 저만큼 세달사의 전경이 한 눈에 들어온다. 두 사람은 잠시 걸음을 멈추었다가 다시 길을 잡아든다.
씬 8 세달사 경내
언제나 그렇듯이 세달사는 조용한 침묵 속에 잠겨 있다.
몇몇 스님들이 간간히 오가고 있고....앳된 동승 하나가 중문 안에서 마당을 쓸며 저만큼 범교의 방 쪽을 힐끔 보고 있다.
씬 9 동 범교의 방 앞
뜰에는 한 무리의 꽃 무리가 화사하게 피었다.
안에서 목소리가 들려 온다.
범교 (E)밖에 날씨가 아주 화사한 모양이로구나.
씬 10 동 방안
범교가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고 그 앞에 시자가 앉아 있다.
햇살이 장지문에 그림자 선을 그으며 뚜렷하게 명암을 가르고 있다.
범교 떠나기는 좋은 날이로구나.
시자 어디로 가신다 하시오니까?
범교 왔으니 .... 가야할 것이 아니더냐? (한참 사이) 오늘은 그 분이 오실게다. 그 분은 보고 가야지....
시자 요 며칠... 어느 분을 그렇게 기다리시옵니까?
범교 허허허... 너도 뵈면 아시는 분이시니라...오실 때가 되었는데....
범교는 다시 침묵에 잠긴다. 새소리만이 방 안의 적요를 깨고 있다.
얼마만의 시간이 흘렀을까....갑자기 범교의 눈이 크게 떠진다.
시자가 긴장해서 본다.
범교 얘야.
시자 예, 큰스님
범교 저 소리가 들리느냐?
시자 무슨....소리가 들린다 하시오니까?
범교 (멀리 귀 기우리며) 그 분이 오시는가보다. 가까이 오고 있어.
시자 예?
범교 그렇구나 (사이) 오시었어, 어서 나가보거라. 대덕께서 어려운 걸음을 하셨다. ...어서 나가 뫼셔라.
시자 아니...큰..스님..?
시자는 영문을 몰라 하다가 어쩔 수 없다는 듯 공손히 방을 빠져 나간다.
범교는 염주를 굴리며 중얼거린다.
범교 허허허..... 그예 오셨구먼... 오시었어.
씬 11 그 사찰 입구
도선과 경보가 일주문을 막 들어서고 있다.
어느만큼 가는데 저만큼 시자가 오고 있다.
다가오다가 도선임을 알고는 잠시 서서 놀라며 합장을 하며 맞는다.
서로 합장을 하면....
시자 도선... 대사님이 아니시옵니까?....어서 오시오소서.
도선 빈도를 아시는구료.
시자 이 나라에 대사님을 모르는 불제자가 어디 있겠사옵니까?
도선 허허...민망한 말씀이로고.... 내 제자 경보요.
경보 경보라 하옵니다.
시자 어서 드시오소서. 큰 스님께서 기다리고 계시옵니다.
도선 (경내를 보며) 역시 이 곳은 터가 센 자리로다. 용들의 자리야.
경보 ......?
이들 상좌승을 따라 범교의 암자 쪽으로 간다.
지나치던 몇몇 승려들이 도선을 알아보고 모두 존경의 빛으로 합장을 올린다. 그들 범교의 방 가까이 가면....
씬 12 동 범교의 방 앞
상좌가 방 앞에 이르러 이뢴다.
상좌 큰 스님, 도선 대사님께서 오셨사옵니다.
범교 (E) 뫼시어라.
이들 곧 안으로 들어 간다.
씬 13 동 방안
묘한 침묵이 흐르고 있다. 범교와 도선의 시선이 한동안 강열한 빛을 발하며 부닫히고 있다.
경보와 상좌는 두 고승을 조심스레 보고만 있다. 한참만에 범교가 허탈하게 웃는다.
범교 마지막 길에 뵙기를 빌었더니 부처님께서 소원을 들어주셨소이다.
도선 미천한 소승을 기다리셨다니 민망스럽습니다.
범교 이 나라의 대덕께서 그 무슨 말씀을......찾아주셔서 고맙소이다.
도선 허허허. 아니올습니다. 소승도 스님께 한가지 청할 것이 있어 찾아뵈었습니다.
범교 내게...말이오?
도선 그렇습니다.
범교 이미 나는 쓸모 없이 삭아버린 늙은이외다. 내가...무슨 일을 해줄 수 있겠소.
도선 한동안.... 젊은 청년 하나를 데리고 이 곳에서 머물까하옵니다마는....
범교 허허허... 세상 도량이 다 부처님집이올시다. 마음대로 쓰시구료.
도선 고맙소이다.
경보 .....?
범교 그보다도..... 대사....(잠시 침묵을 지키다가) 나는... 오늘 ...가렵니다.
도선 한 백년을 넘게 세상에 계셨습니다. 가실 때도 되셨지요. 헛허허.....
범교 가기는 가야 하겠는데 .....업장이 두터워 눈을 못감겠소이다.
상좌,경보 ..........?
도선 무슨 업장이 그리 두텁다 하십니까?
범교 날개도 달지 못한 한 마리의 용이 이 곳을 떠나 중생들 속으로 갔소이다.
도선 ........................
범교 대사는 하늘이 내신 신승이십니다.... 어떻게 되오리까?
도선 허허허, 아직도 세상 일에 미련을 두고 계십니까?
범교 업장이 무거워 그럽니다. 저들은 내가 맡아 가르쳤으니......
도선 옛날 이곳에서 선종이라 불리었던 세달사의 그 젊은 중은 궁예라는 이름으로 미륵이 되었습니다.
범교 선종이가 참 미륵입니까?
도선 .............(대답 없고)
범교 그 아이가 여기를 떠날 때 스스로를 미륵이라 했소이다. 그렇소이까 대사? (도선이 대답이 없자)..그렇소이까?
도선은 여전히 댓구가 없다. 범교는 필사적으로 다시 물으며 도선을 본다.
범교 대사, 왜 대답이 없소이까?
도선은 작은 한숨을 쉬며 눈을 감는다.
또 침묵이 흐른다.
어디선가 함성 소리가 살아오르며 방안 가득히 들려 온다.
씬 14 인서트겸 몽타쥬
궁예군의 대병이 황톳바람을 자욱히 이르키며 몰려가고 있다.
연도의 백성들이 수없이 몰려들어 환호하고 있고 이름모를 성의 성문이 열리며 숱한 관리들이 영접하고 있다. 그 함성과 환호에 이어서 어느 들판이 보여오면 기다리고 있는 신라군과 궁예군의 접전이 보여 진다.
궁예와 종간, 신훤과 원회, 은부들의 치열한 전투 장면들이 지나쳐 간다.
시체로 뒤덮힌 들판과 계곡이 보여지고 있고 궁예군은 승리자의 모습으로 다시 나아갈 먼 지평선을 보고 있다. 그 위로 범교교의 늙고 힘없는 절규 같은 물음들이 계속 되고 있다.
범교 (E) 대사. 궁예는 내가 거두었고 법명까지 주어 부처님세계를 가르쳤소이다. (사이) 그 아이는 세상을 구하겠다고 이 절을 떠났소이다. 그렇게 되오리까? (사이) 그 아이는 경문대왕폐하의 아드님이고 신라 왕실의 피가 흐르고 있소이다. 그 아이가 참으로 옛 신라의 훌륭한 군주들처럼 나라를 이르켜 중생들을 구할 수 있겠소이까? 대답해주시구료 대사.
씬 15 다시 동 범교의 방
모든 소리들이 사라지면서 죽음 같은 침묵들이 계속 되고 있다.
범교 대사?
도선 (긴 한숨) 그저 다 잊고 가시오소서.
범교 (숨을 헐떡 거리며) 내가 받은 법 그릇이 작아서 미련을 놓치 못하고 있소이다.... 대사의 말 한 마디가.... 듣고 싶어서 아직도.... 숨줄을 놓지 못했소이다. 일러주시구려.
도선 (사이) 이 세상 많은 생명들이 모두가 제 할 일을 가지고 세상에 나옵니다. 궁예가 맡은 일은 천 년의 역사를 예비하는 일입니다. 궁예가 예비하면 다른 주인이 와서 그 자리를 받을 것입니다.
범교 ......(놀라고 충격 같은)....?
두승려 ..............?
범교 (점점 더 힘이 든다.) 허면 그 주인은 누구오이까?
도선 (대답을 피하듯) 허허허허허.....
범교 그 주인이 혹시 송악의 청솔이라는....바로..그.... 그렇소이까?
모두들 ..................?
도선 남은 일은 남은 자들에게 맡기시지요.
범교 그..그렇게 되는 ..것이었구료. 이..곳은 하늘이 내신 용의 자리..... 진정한 임자가 따로 있었단 말이구려...어허.....그랬었구료. 어허......
도선 먼 길을 떠나셔야 합니다. 세상 것은 그만 놓으시오소서.
범교 (죽어 간다) 대사는 도를 깨우쳐... 부처의 세계에 계시지만.. 나는.. 백...년을 넘게 살았어도 인간의 굴레를.. 벗지 못하였소이다. 세상에 나와 바른 일 하나 세우지 못하고 우매한 업만 짓고...가는 구료. 아아.... 이 무거운.... 짐을 지고서... 어이 황천...길을.. 갈꼬........나무 석가모니불....나무 ..서가...모니불.....
범교는 눈을 감은채 염주를 굴린다.
그리고 오랜 침묵이 이어지다가 범교의 손이 서서히 멈춘다.
좌선입망, 그는 앉은채 열반(죽음)에 든 것이다. 상좌가 놀라서 소리 지른다.
상좌 스님, 큰 스님?
도선 열반에 드셨소이다. 나무관세음보살.
도선이 합장을 한다.
경보도 그리고 상좌도 눈물을 흘리며 합장을 한다.
도선들이 열반한 범교를 보고 있다.
그 범교의 모습에서...
해설 범교, 그의 이름은 삼국사기나 유사에 그 이름이 잠시 보일뿐 자세한 내력은 전해지지 않고 있다. 그러나 그는 승려인 동시에 화랑의 한 사람으로서 궁예의 아버지가 되는 경문왕이 왕위에 오르는데 큰 힘을 발휘하였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하지만 그의 선택은 그리 좋은 결과를 만들지는 못했다. 그가 택한 경문왕은 무능하였고 왕의 아우 위홍은 진성여왕과 더불어 신라가 무너지는데 결정적인 요인이 되었던 것이다. 그러니 어찌 편한 임종을 맞을 수가 있었겠는가.
씬 16 산길
도선과 경보가 오고 있다.
경보가 자꾸만 눈치를 보다가 슬며시 묻는다.
경보 큰 스님.
도선 왜 그러느냐?
경보 세달사에 다시 오실 것이옵니까?
도선 그래.
경보 허면 ..이 곳에 누구를 데리고 오신다 하시오니까?
도선 곧 알게 될 것이니라. 그보다도 경보야. 이제 너도 이쯤해서 내 곁을 떠날 때가 된 것 같다.
경보 예?...아니 스님?
도선 큰 곳에 건너가 죽기로 공부 한 번 해보거라.
경보 큰 스님.. 그럼 스님은 누가 뫼시고....?
도선 이놈아, 언제까지 같이 있을 줄 알았더냐? 인간사 한 번 만나면 한 번은 헤어지느니......우리는 인연이 다 되었다. 여기서 당나라로 가거라.
경보 스님?
도선 어서 가자.
경보 .................?
그들 그렇게 산길로 멀어져 가고...
씬 17 예성강 포구(밤)
포구는 불야성이다.
남녀 혼성팀인 무당들이 징과 제금을 치고 격정적인 춤을 추면서 배 위로 오르고 있다. 왕륭과 장자들도 무당들을 따라 배 위로 오른다.
수많은 장자들과 뱃사람들과 이국의 상인들이 배에 가득하다.
그들은 군사들이 준비해 온 여러 가지 제기들(그릇,곡옥,엽전,토기등)과 소머리와 음식들을 바다에 던져 넣으며 “ 흠향 하소소” 하는 주문들을 계속하고 있다. 용왕에게 제물을 드리고 있는 것이다.
왕건도 왕륭을 따라 그 의식을 행하고 있다.
씬 18 그 근처 포구 일각
왕식렴과 장수장이 군사들을 이끌고 경계를 서고 있다.
두 사부도 포구 쪽 제단에서 보고 있다.
유금필과 진서방도 보고 있고.....유금필과 한씨, 백씨도 배 위의 모습들을 구경 하고 있다.
씬 19 근처 포구 길
도선 일행이 다가오고 있다. 왁자한 포구의 모습들과 소리들이 들려 온다.
이들은 걸어와 점차 제단 가까이 이르는데 군사들이 막아선다.
군사 어디로 가시오?
도선 허허허, 용왕제 구경좀 왔소이다.
군사 여기는 아무나 오는 곳이 아니오. 돌아 가시오.
이때 장수장과 함게 있던 왕식렴이 이들을 보았다. 장수장이 보고 놀라서 중얼거린다.
장수장 아니....?
왕식렴 왜 그러는가?
장수장 도선,...도선대사님이시옵니다?
왕식렴 뭐라고?
장수장 소인이 뫼시겠사옵니다. 어서 어른께 알리시오소서.(다가가며) 대사님. 어서 오시오소서.
도선 나를 아는이가 있으니 고맙구먼. 성주님은 어디에 계시오?
장수장 지금 배 위에 계시옵니다. 잠시 기다리시오소서.
씬 20 그곳 배 위
왕식렴이 급히 다가와 왕평달에게 뭔가 속삭이고 있다. 크게 놀라는 왕평달, 포구 쪽의 도선을 보고는 조심스럽게 제물을 던지고 있는 왕륭에게 다가가 알린다.
왕평달 형님, 도선대사께서 오셨사옵니다.
왕륭 으음?.....무슨 소린가?
왕평달 저어기....
왕륭도 도선을 보았다. 그러나 장자들은 미처 알지 못한다.
왕륭 용왕신께서 감응을 하셨구먼. 사부들에게 뫼시고 가라 이르게. 사람들이 모르게. 여기 일은 나 대신 자네가 보게나...내가 곧 따라가야 할테니까......
왕평달 예, 형님.
평달이 급히 나간다. 배 위의 의식은 계속되고 있다. 왕륭의 표정은 상기되어 있다.
씬 21 그 포구
왕평달이 두 사부와 함께 다가와 도선에게 예를 올린다.
사람들이 많아 다른이들은 이들을 눈치채지 못한다.
왕평달 대사님, 평달이옵니다.
도선 오랜만이구료. 제를 아주 크게 지내나 봅니다.
왕평달 예, 이곳은 번잡하오니 성 안으로 모시겠사옵니다. 마사부가 뫼실것이옵니다. 앞서 가시오소서.
도선 그리하십시다.
이들 급히 그 곳을 떠난다. 그때 한씨와 한담을 나누던 백씨가 연화와 함께 사라지는 이들을 보았다.
유금필과 진서방도 보았고 한씨도 보았다.
백씨 웬 스님이...?
연화, 진서방 .........?
한씨 (모든걸 짐작 하고) 그렇군요. 아마도 지나가는 객스님이신가 봅니다. 그나저나...연화가 빨리 우리 식구가 돠어야 할터인데....
백씨 왜 아니랍니까? 걱정이 많습니다.
한씨 우리 나으리께서도 마찬가지이십니다. 건이가 맡아야 할 일은 많고 고을 밖의 일들은 하나같이 앞이 안보이고........
백씨 그럴수록 양가가 하루라도 빨리 힘을 모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한씨 집안의 내력이 워낙 엄하다보니 그렇습니다. 제 몫을 다하지 못하면 절대로 어른 취급을 아니한답니다.
백씨 이런....저렇게 훌륭하게 컷는데 무슨 말씀이십니까?
한씨 그러게 말입니다.
그들 가볍게 웃는다.
배 위에서는 왁자한 웃음소리들이 들려 온다.
의식이 끝나 가는 듯 하다.
씬 22 동 배위
장자들이 웃음을 웃으며 모여들 있다.
박지윤 용왕님께서 아주 흡족하셨을겝니다.
강장자 암요. 일년내내 송악의 뱃길은 물론이고 전 패서 일대가 두루 다 평안 할것입니다.하하하하..
왕륭 고맙소이다. 우리 내려들 가십시다. 가서 밤새 즐겨보십시다.
그러다가 왕륭은 갑자기 배를 움켜쥔다.
왕평달과 왕건이 놀라서 다가간다.
왕건 아버님, 왜 그러시옵니까?
왕평달 아니, 형님?
모두들 .......?
장자1 어디 불편하시오이까?
왕륭 (더욱 인상을 쓰며) 아, 아니올시다. 아침부터 조반을 든 것이 좋지 않았는데....(많이 아픈듯하며) 오늘따라 이 무슨 낭패인고....자, 어서들 내려가십시다.
강장자 그렇다면 약을 쓰셔야 하지 않겠소이까?
왕평달 그리하시오소서. 장자분들은 제가 모실터이니 성으로 가셔서 약을 좀 드시오소서.
왕륭 아무래도 그리 해야할 것 같구료. 배가 아픈 것은 참겠는데 묽은 변이 나올 것 같아서.... (억지로 웃으며) 용왕님 앞에서 고약한 꼴을 보일 수는 없지않겠소이까?
모두들 와 웃는다.
왕륭 어서들 내려가십시다. 내 잠시 몸을 추스리고 다시 오겠소이다. 아이구 이런....자네가 잘 좀 모시게.
왕평달 염려 놓으시오소서. 이보게, 조카. 어서 모시게.
왕건 예, 숙부님. 아버님 어서 가시오소서.
왕륭 그래. 내 다녀올터이니 즐기고들 계시구료.
박지윤 어서 다녀 오시구료. 세상에 그일보다 더 급한게 어디 있소이까?
다시 한 번 와 웃음들이 터진다. 이들 함께 배를 내려들 가고...
씬 23 밤길
초생달이 떠 있다.
왕륭부자와 장수장과 군사들이 발걸음을 재촉 하고 있다.
왕륭은 아무렇지도 않다. 왕건이 의아한 듯 본다.
왕건 좀 괜찮으시옵니까?
왕륭 음. 다 낳았느니라.
왕건 (아무래도 이상한 듯 보면)....?
왕륭 왜 그렇게 보느냐?
왕건 뭔가 서두시는 듯하여....
왕륭 그럴 수 밖에....... 큰 손님이 오셨느니라. 도선 스님이 오시었다.
왕건 예?
왕륭 용왕신께서 감응을 하신게다. 그렇지 않고서야 그분께서 오늘같은 날 오실 리가 없지.
왕건 천천히 맞으셔도 되시질 않사옵니까?
왕륭 못난소리. 얼마나 목마르게 기다려 온 분인줄 아느냐? 그 분은 너와 송악의 운명을 알고 계시느니라. 대사께서 오신 것을 되도록 남들이 모르는 것이 좋으느니라.
왕건 ...................?
이들 그렇게 급히 말을 몰아 사라져 가고........
씬 24 왕륭의 집 외경
어둠 속을 군사들이 지키고 있다.
장수장이 이들을 지휘하고 있고.... 대문은 굳게 잠겨 있다.
씬 25 동집 마당
두 사부와 식렴이 지키고 서 있다.
모두들 표정이 진지하다.
왕륭 (E) 이대로 대사님을 못 뵙고 송악의 끝을 보는가 했사옵니다.
씬 26 동집 왕륭의 거소
왕륭 부자와 한씨가 도선과 경보를 마주해 있다.
왕륭 이 몸은 너무 늙었고 도적들은 사방에서 시시각각 다가오고 있사옵니다. 모든 것이 어둠뿐이어서 갈 길을 찾지 못하고 있사옵니다.
도선 성주께서는 지금까지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소이다. 이제부터는 다가오는 운명을 맞으셔야 할 것이외다.
왕륭 그것이 무엇이온지요?
도선 (잠시 눈을 감고 생각에 잠기다가) 하늘이 주신 본분을 받아야 하겠지요.
왕륭 .....
도선 오래 전에 일렀듯이 아드님이 세상을 구할 재목임은 분명하외다. 그러나 그 나무가 열매를 맺을지 어떨지는 하늘만이 아는 법.
왕건 ...........
도선 나는 정해진 순리를 따라 열매 맺는 이치를 알려주려 온 것이외다. 그것이 내가 이 세상에서 마지막으로 할 일이니까.....
왕륭 어찌하면 되오리까?
도선 특별한 것이 있는 것은 아니외다. 진리를 보는 눈을 전하여주러 온 것이외다.
모두들 ..........
도선 이 세상 아무것도 진리를 이길 수는 없소이다. 그것을 알게되면 암흑을 꿰어 뚫고 불의와 악을 이기게되며, 나아가 자신을 다스리고 결국은 천하를 도모할 수 있게 되는 것이외다.
왕륭 모든 것을 말씀대로 하오리다.
도선 (끄떡이며) 아드님과 함께 한동안 세달사에 가 있을 것이외다.
모두들 ......?
도선 그리고 부탁이 하나 있소이다. 내 제자 경보를 당나라로 가도록 조처해 주시구료.
왕륭 그거야 어려운 일이 아니올습니다.
경보 스님....?
도선 가서 공부 열심히 하거라. 훗날 돌아오면 네가 할 일이 많을 것이니라.
경보 큰 스님....?
도선 자, 왕성주, 차비를 차려주시겠소이까?
왕륭 예. 대사님, 여봐라 게아무도 없느냐?
경보는 여전히 울 듯 도선을 본다.
도선은 따듯한 미소를 짓고 있다.
계속 서둬는 왕륭의 모습에서...
씬 27 예성강 포구
이미 제는 끝이 났고 왕평달과 장자들은 술판이 어우러졌다.
곳곳에서 웃음소리와 술을 마시는 모습들이 보여 진다. 그 한 켠에서 강장자 일행들이 소근거리고 있다. 유금필과 진서방이 그 옆에 서 있고..
강장자 알다가도 모를 일이로고... 도대체 이름모를 중이 하나 왔다고해서 그렇게 황급하게 갈 수가 있을까?
연화 몸이 편치 않아서 가신 것이 아니옵니까?
백씨 그렇지가 않다. 내가 보기로는 분명 그 스님이 오셔서 급히 따라 가신게야. 성주님댁 마님도 갑자기 안색이 변하는 것을 보았지.
강장자 그 스님이 어찌 생겼던가?
백씨 나이가 지긋 하고 얼굴이 깡마른데다가 안광이 무섭도록 빛이 났사옵니다.
강장자 (잠시 생각 하다가 정신이 번적 든다) 그렇구나,...도선스님이시다. 도선대사야.
모두들 .....?
그때 왕평달이 술을 권하며 온다.
왕평달 강장자어른 아, 한잔 더 하시지요?
강장자 아, 예, ....
왕평달 저희 형님께서 탈만 나시지 않으셨어도 오늘 밤새 장자 어른과 대작을 하셨을것인데 이것 참...
강장자 그러게 말이외다. 허허허...
그러면서도 강장자는 여전히 생각에 빠져 든다. 그 표정에서......
씬 28 길
도선과 왕건 일행들이 가고 있다.
장수장과 변사부가 그들을 모셔 가고 있다.
왕건 먼 길을 오셨는데 여독이라도 푸시고 떠나실 것을 그랬나보옵니다.
도선 남은 날이 많지 않은데 어찌 촌각인들 허비할 수가 있겠는가.
왕건 .............
왕건 아버님께서 대사님의 말씀을 너무도 많이 해주셨사옵니다. 이렇게 뵈니 꿈만 같사옵니다.
도선 허허허. 살아있다는 것 자체가 실은 다 꿈인게야...
왕건 .........?
도선 어리석은 인간들은 자신이 영원히 사는 줄 알지....하지만 산다는 것은 찰라에 불과한 것일세. 그걸 깨닫게되면 비로소 넓은 세상이 보이게 되지.
왕건 그 말씀 깊히 새기겠사옵니다.
도선 지금 이 순간에도 수많은 영웅 호걸들이 일어서고 있네. 하지만 이 도리를 아는자만이 마지막 영광을 거머쥘 수 있어. 하기사 그 영광조차도 결국은 바람 같은 것이지마는.......허허허허
씬 29 무진주 성 (낮)
성 밖 멀리서 관리차림을 한 청주 도독의 사자들이 흙먼지를 일으키며 무진주 성을 향해 오고 있다.
이들은 한참 후 성 가까이에 이르자 아까부터 보고있던 성 위의 부장 애술이 묻는다.
애술 그대들은 어디서 오는 누구요?
관리 청주도독의 영을 뫼셔온 사자외다.
애술 무슨 일로 오시었소?
관리 도독께서 폐하께 올리는 봉서를 뫼셔왔소이다.
애술 문을 열어라.
그러자 성 문이 열리고 이들은 성 안으로 들어 간다.
씬 30 동 무진주 성 정전
능환과 수달, 총례, 신강, 능애, 김총과 부장등 문무 백관들이 좌우로 길게 늘어서 있는 가운데 도독의 사자들이 무릎을 꿇고 있다. 견훤이 얼굴을 실룩거리며 서찰을 읽고 있다.
읽기를 마치자 노한 표정으로 사자를 본다.
견훤 어찌하여 도독이 아니오고 너희들이 왔느냐? 끝내 우리 군대와 싸우자는 것이냐?
사자 아, 아니옵니다. 페하. 도독께서 올리신 글 그대로이옵니다. 폐하께오서 진노하실까 두려워 소신을 앞세워 보냈사옵니다.
견훤 ............?
사자 청주의 도독은 신의 아비올사옵니다. 자식인 신을 보내어 곧 귀부 할 것임을 굳게 약속 하신다 하셨사옵니다. 믿어주시오소서.
능환 폐하, 이들의 약속을 믿으시오소서. 설마 자식을 보내 청하옵는데 거짓이야 있사오리까?
견훤 ........(노려보다가) 지금 청주성의 형편은 어떠한고?
사자 아뢰옵기 송구 하오나 서라벌과의 교통은 예전에 끊어졌사옵니다. 하루하루를 견뎌나가는 것이 고통스럽사옵니다.
수달 그런데도 어찌하여 지금까지 버티고 있는 것이오?
사자 늙은 관료들이 의견이 분분하여 그리되었사옵니다. 곧 모든 것을 정리하여 페하께 성문을 열어드릴 것이옵니다. 굽어 살피시오소서.
견훤 (그제서야 미소를 듸우며) 나는 싸우기보다는 덕으로서 세상을 다스리고자 하느니라. 나의 군대는 이미 서남해를 지나 내륙을 도모하였고 완산주의 턱 밑까지 이르러 있느니라. 너희 청주성을 치려 들었다면 벌서 끝을 보았을 것이야.
사자 어찌 모르겠사옵니까?
견훤 죄없이 전란에 시달리는 백성들이 가여워 지금껏 지켜보고 있었는데 이제라도 귀부를 하겠다하니 다행이로다. 물러가 푹 쉬도록 하라.
사자 황은이 망극하오이다, 폐하.
사자들이 물러 간다. 능환이 희색이 만연하여 다가와 말한다.
능환 폐하, 드디어 청주가 귀부를 하게되었사옵니다. 하늘이 폐하를 돕고 계시옵니다.
능애 청주가 귀부해 오게되면 황도 서라벌이 눈 앞이옵니다. 페하께 이만한 복이 없을 것이옵니다. 감축드리옵니다.
모두들 감축드리옵니다.
해설 귀부. 스스로 머리를 숙이고 의지해 온다는 뜻이다. 지역의 강한 호족들을 무조건 힘으로만 제압할 수는 없다. 서로간에 싸움이 없이 얼마간의 권리를 인정해주면서 같은 편이 되는 것이 귀부이다. 이럴 때 대부분 항복하는자는 자신의 혈족을 인질로 보내 충성을 보이면서 그 대가로 예전의 권력을 유지했는데 청주의 경우도 이와 같았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항복은 항복이라는 것이다. 이로서 견훤은 벌서 신라의 아홉 개 주중 두 개의 주를 차지하게 된 것이었다.
씬 31 동 무진주 성 대전
박씨가 차를 잔에 따르고 있다.
시녀 옥이가 옆에서 거들고 있고 능환이 마주해 있다.
능환 이번에 청주가 귀부를 하게 되면 멀리 완산주도 가부간 어떤 결정을 내리게 될 것이옵니다. 페하께서 완산주만 얻으신다면 옛 백제땅의 심장부에 이르게 되시옵니다.
견훤 완산주는 청주와 달라. 호족들이 단단히 뭉쳐 있어서 한동안 관망을 해야할걸세.
능환 그렇기는 하옵니다마는....그리 오래지는 않을 것이옵니다.
견훤 허허허허...서둘지 말자고 한 것은 바로 자네였네. 청주가 귀부를 한다고하니까 너무 들뜬 것이 아닌가?
능환 아마도 그런가 보옵니다.
하하하하....
박씨 차가 다 식었습니다. 들고들 말씀하시어요.
능환 예, 황후마마.
박씨 헌데 오늘따라 추장군은 아니 보이십니다?
견훤 정말 그렇구먼. 추허조는 어딜 갔는가?
능환 그렇지 않아도 말씀을 올리려든 참이었사옵니다. 백계산으로 갔사옵니다.
견훤 백계산?
능환 예, 폐하. 최승우가 그곳 옥계사라는 절에 있다하옵니다.
견훤 최승우가?.......옥계사?
능환 예. 도선대사가 머물던 바로 그 절이옵니다.
능환 이런....이 사람아, 그런 대학자를 모시는데 하필 허조를 보낸단 말인가? 성미 급한 허조가 갔다면.,..?
능환 총례 태수를 함께 보냈으니 기다려 보시오소서.
견훤 글쎄.......뭔가 잘못된 것 같구먼......
씬 32 백계산 산길
그 산길로 추허조와 총례가 군사들을 몇 데리고 가고 있다.
추허조 멀기도 하구려, 반나절이나 산길을 올라왔소이다. 최승우인지 뭔지 앉아서 부르면 될 것이지 우리가 이렇게 고생을 할게 뭐란 말이요?
총례 그렇지가 않소이다. 그 사람은 대학자올시다.
추허조 그래도 그렇지, 대왕폐하의 위엄이 말이 아니지 않소이까?
총례 허허허, 인재 하나를 얻기 위해 열개의 성을 버린다 하였소이다. 오죽하면 능환군사께서 우리를 특별히 보내셨겠소이까? 다 와갑니다. 저기 옥계사가 보이는 구려.
그러나 추허조는 시큰둥하다. 그들 그렇게 가고....
씬 33 동 옥계사
최승우가 방 안에서 문을 열어 놓은 채 멀리 산 아래를 보고 있다.
그 시야로 길게 이어진 산구릉들이 보여온다.
바람소리와 새소리들이 적요를 깨고 있다.
도선의 소리가 들려온다.
도선 (E) 쯧쯧쯧... 그대같은 현자가 어쩌자고 여기로 왔는고...
최승우 (E) 누가 전하의 주인이 되오리까?
도선 (E) 내가 말해줄 수 있는 것은 그대가 머무는 곳엔 주인의 의자가 없다는 것이야.
최승우 (E) 소생은 어디로 가야 하오리까?
도선 (E) 허허허, 그댄 아마도 이땅을 벗어나지 못할 것일세.
그때, 한마리의 새가 울음소리를 내며 허공을 가로질러 날아간다.
최승우 아무리 보아도 길이 없구나. 한마리 새도 날아갈 둥지가 있건만 이 몸은 몸둘 곳이 없구나.
그때, 인기척 소리와 함께 추허조들이 저만큼 들어서고 있는 것이 보인다.
최승우가 그들을 보는데 총례가 가까이 오며 정중히 예를 올린다.
총례 무진주 성의 금성태수 총례, 문안인사 드리옵니다.
최승우 ....?
총례 최학사님을 뫼셔 오라는 대왕폐하의 영을 받자와 왔사옵니다.
최승우는 여전히 대꾸가 없이 그들을 물끄러미 보고 있다.
총례 다시한번 말씀 드리옵니다. 대왕폐하께오서 최학사님을 뫼시라는 영을 받자와 왔사옵니다.
그러나 역시 이번에도 최승우는 허공만을 본다.
추허조가 참다 못해 소리를 지른다.
추허조 이보시오, 귀가 먹었소? 대왕폐하의 영을 받들어 왔다고 했소이다.
최승우 누가 대왕이라는 것이오?
총례 견훤 대왕이시오이다.
최승우 견훤이라.... 견훤이라.....
추허조 이런, 버르장머리 없는 인사를 보았나? 폐하의 존성대명을 함부러 들먹거리다니, 이자가 이거 제정신인가?
총례 (만류하며) 추장군 왜 이러시오? 군사께서 당부하신 말을 잊었단 말씀이오? 이분은 모두가 공경하는 대학자 분이시오.
추허조 대학자고 뭐고 이렇게 건방져서야.... 긴말할것 없이 끌고 갑시다.
최승우 허허허, 난 그래도 견훤이란 사람이 서라벌에서 온 장군이라기에 예의를 좀 아는 줄 알았더니만 역시 그게 아니었구먼.
총례 그렇지가 않사옵니다. 이 사람의 얘기 좀 들어주시오소서.
최승우 쯧쯧쯧.. 이곳도 모두가 도적들 뿐이로구먼.
추허조 뭐, 도... 도적?
최승우 돌아들 가시오. 잠이나 더 자야 겠소이다.
최승우는 휭하니 방 문을 닫아 버린다.
추허조가 펄펄 뛴다.
추허조 이런 버르장머리 없는 놈, 글줄께나 읽었다고 방자하기가 이를데 없구나. 저 놈을 끌어내라.
군사들 예 (방안으로 달려가면)
총례 아니되오. 그리해선 아니됩니다.
추허조 태수도 보지 않았소이까? 폐하의 존성대명을 제집 강아지 이름 부르듯이 부르는데 저런 놈을 데려다가 무엇에 쓰겠소이까?
총례 글쎄...참으라니까요. (방에 대고) 참으로 송구스럽게 되었사옵니다. 다시 한 번 청하옵니다. 저희와 함께 폐하를 뵈러 감이 어떠하시오이까?
최승우 (E) 허허허...경우가 틀렸구려, 보고 싶은 사람이 와야지 어찌 날 보고 오라 한단 말이요? 견훤이란 사람이 도적인지 장군인지....나도 궁금하니 한 번 오라고 하시오.
추허조 저저저저.......? 아니되겠다. 더는 들을 수가 없구나. 애들아. 어서 끌어내라. 아니, 아니다. 저 방문 앞에 섶단을 쌓고 불을 질러라. 타죽기 싫으면 기어 나오겠지. 어서.
군사들이 대답하고 움직이기 시작하자 총례가 다시 꾸짖는다.
총례 거두지 못할까? 대체 추장군은 왜 이러시오? 불을 지르려거든 나를 먼저 죽이고 하시오. 이것이 폐하를 위한 것이 아니라 페하께 욕이 된다는 것을 모르시오? 왜 경거망동을 하시는게요?
추허조 허허.....미칠 일이로구먼. 그렇다면 태수 마음대로 하시구려. 나는 저런 놈들과는 상종하지 않겠소이다. 얘들아 가자.
군사들이 대답하고 따라 나서면 총례가 다시 말한다.
총례 대왕폐하께오서는 최학사님을 뵙기를 오래 전부터 학수 고대 해오셨사옵나다. 오늘은 너무 결례가 커서 돌아가옵니다. 편히 쉬시오소서.
총례가 절 마당을 벗어난다. 방 안에서는 여전히 기척이 없다.
그리고 이들의 모습이 다 사라졌을때 방문이 비시시 열린다.
최승우가 미소지으며 그들이 사라져 간 길 쪽을 보고 있다.
그리고 고개를 끄떡인다.
최승우 (한숨) 도선대사의 말씀이 맞는것 같구나.....내가 이곳을 떠날수 없을 것이라 하시더니......이 넓은 땅을 다 차지한 견훤이 사람이 없는 모양이로구나. 허허허허....여기가 그렇다면 과연 최승우가 죽을 땅이란 말인가?... 이 백제의 옛 땅을 가지고 견훤이와 함께 한세상 살아본다?.. 영웅이라 자처하는 저 광란하는 무리들 속으로 뛰어들어가 나도 미친듯이 어우러져 한 시대를 살아본다?.. 그렇게 살아봐? 하하하하.....
그의 허망한 웃음소리가 산중에 가득히 메아리 친다.
씬 34 들판
궁예의 전령들이 황톳바람을 일으키며 달려가고 있다.
그들 멀리로 북원성이 보여온다.
씬 35 북원성 양길의 거소
궁예의 전령이 무릎을 꿇고 있다.
양길의 아우 명길이 서찰을 다 읽고 나서 접으며 말한다. 미향이 조용히 보고 있다.
명길 궁예가 나성(영월)을 거쳐 을오(평창)를 지나고 울진과 저족(인제)을 지나 파죽지세로 삼척까지 이르렀다 하옵니다.
양길 (너무 좋아 일어나며) 뭐라?
명길 머지않아 명주를 도모할 것이라 말하고 있사옵니다.
양길 과연, 과연 내 사위로다. 으핫하하하하.... 군사를 육백밖에 아니주었는데 벌써 삼척에 이르렀다? 이게 기적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아니그런가?
양길은 거푸 웃음을 터뜨리며 신이나 주변을 돌아본다. 그러나 명길과 사위들과 환선길, 이흔암, 복지겸들은 말이없다.
양길 (미향에게) 얘야, 과연 너의 서방이로다. 너의 서방이야말로 내게는 하늘이 주신 보배로다.
미향 .....
양길 얼마아니되는 군사로 벌써 얼마나 많은 고을을 점령하였느냐? 이것이 어떻게 말로 설명할 수 있단 말이냐? 이보게들 말들 해보게.
그러나 역시 주변의 장수들은 말이없다.
양길이 그제서야 표정을 바꾸며 묻는다.
양길 천하가 지금 우리 수중에 들어오고 있네. 헌데, 자네들은 표정이 왜그러한가? 왜 말들이 없는가?
복지겸 장군, 물론 궁예는 믿지 못할 일들을 해내고 있사옵니다. 그렇기는 하나....
양길 허나....?
복지겸 지금 궁예가 있는 곳은 이곳과는 너무도 멀리 떨어져 있사옵니다.
양길 .....?
명길 지금 궁예의 군사들은 육백이 아니라 이천에 가까운 대병이 되었다하옵니다.
사위1 뿐만 아니옵니다. 사람들은 궁예를 일러 미륵장군이라 하옵니다.
양길 ......?
복지겸 장군이라함은 스스로 독립된 군대를 이끌고 있음을 말하고 있는 것이옵니다.
양길 무슨 말들을 하는겐가?
그제서야 양길은 고개를 외로 꼬며 생각에 잠긴다.
양길 자네들은 아직도 내 사위를 의심하고 있단 말인가? 지금 천하가 우리의 수중으로 들어오고 있는데.....?
복지겸 궁예는 너무 많은 군사를 이끌고 있고 또 너무도 멀리 떨어져 있사옵니다. 지금쯤 그의 충성심을 한번더 시험해 볼 필요가 있을것으로 사료되옵니다.
양길 궁예 옆에는 은부가 있어.
명길 한번 멀어지면 아무리 가까웠던 사람도 믿어서는 아니되옵니다. 제가 한번 가보면 어떠하오리까?
양길 ........?
미향 ........?
씬 36 어느 들판 (인서트)
궁예의 군막들이 벌판을 메우고 있다.
(1회 전투씬 참조)
씬 37 그 일각
바람부는 갈대 숲에 서서 궁예와 그의 막료들이 들판 건너 먼 지평선을 보고 있다.
종간 명주성은 명주를 대표하는 주치소가 있는 곳이옵니다. 길게 퍼져있는 전 동해바다를 모두 끌어안고 있사옵니다. 쉽게 도모하기는 어려울 것이옵니다.
은부 그러하옵니다. 상당한 준비가 없이 군사를 움직여서는 아니될 것이옵니다.
궁예 ......
신훤 명주성이 견고하기는 하오나 반드시 넘어야 할 곳이옵니다. 경계만 하고 있다가는 오히려 낭패를 볼 수도 있사옵니다.
궁예 명주성의 군사는 얼마나 된다 하오?
원회 삼천이 넘는다 들었사옵니다.
종간 군사의 수가 문제가 아니옵니다. 명주성의 성주는 김순식이란 자이온데 신라의 왕족이자 진골이옵니다. 군사도 정예병일 뿐만 아니라 오래전부터 이곳을 다스려와 그 뿌리가 아주 단단한 것으로 알려져 있사옵니다.
궁예 ....................?.
은부 명주성이 아무리 강해도 기필코 넘어야할 곳이옵니다. 명주만 얻을 수 있다면 장군의 대명이 천하를 호령하게 되실 것이옵니다.
궁예 해보십시다. 비록 우리가 수는 적지만 사기는 저들보다 몇배나 높소이다. 군사를 정비하고 전략을 세워 보십시다. 아마도 이 전투가 진정한 미륵의 힘을 시험하는 첫 관문이 될 것이외다. 저들에게 미륵의 힘을 보여주십시다. 미륵의 힘을!
해설 미륵의 힘, 궁예는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것인가? 이천의 농민군으로 삼천이 넘는 신라의 정예군을 치려고 하는 이 무모한 계획, 그러나 그는 미륵의 힘을 운운하며 공격을 결심하고 있다. 미륵의 힘, 그랬다. 그는 이 황폐한 시대에 오로지 미륵신앙에 의지하여 목숨을 맡겨온 농민군의 저력을 간파하고 있었다. 왕건이 송악에서 도선대사를 만나고 있던 그 무렵, 그리고 견훤이 청주를 넘겨받고 완산주까지 이르던 그 무렵에 궁예는 거대한 동해안의 관문인 명주를 눈 앞에 두고 일생일대의 결전을 가다듬고 있는 것이다.
<끝> (04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