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엄정화(35)에게 피아노는 누구보다 익숙하지만 한편으론 먼 악기였다. 가수답게 악보 보기나 음감은 누구보다 정확하지만 그의 연주 실력은 수준급이 아니었다. 그런 그가 영화 ‘
호로비츠를 위하여’에서 천재
피아니스트를 키워내는 조련사로 등장했다. 개봉(오는 25일)을 앞둔 그의 모습은 잘 조율된 믿음직한 그랜드 피아노를 닮아있었다.
오랜만에 피아노 연주 몰입
영화는 호로비츠처럼 위대한 피아니스트가 되고 싶었던 주인공 지수(엄정화)가 변두리에서 피아노 학원을 경영하던 중 피아노 연주에 천재성을 가진 꼬마 아이 경민(
신의재)을 만나면서 시작된다. 좌절과 환희의 순간이 교차하는 휴먼 드라마에서 엄정화는 자신이 이루지 못한 꿈을 아이에게 대신 꾸게 하는 과정에서 몇 번이고 목이 메었다.
“처음엔 내가 하지 않아도, 굳이 나 아니어도 되겠다고 생각했어요. 많이 망설였죠. 그러다 마음을 굳혔어요. 음악을 주제로 한 영화는 없었잖아요. 손가락이 굳어 피아노가 잘 쳐질까 걱정이 앞섰지만 일단 부딪혀 보기로 했죠. 연습해두면 나한테 나쁠 거 없다, 잘 할 수 있다, 라고요. 나중엔 엄청 빠져들었어요.”
눈치 빠르고 영악한 아역 배우들과 전혀 다른 실력파 꼬마 피아니스트 신의재는 당혹스러움을 안겨주기도 했지만 나중엔 친조카처럼 친해져버렸다.
“튀지않는 연기 처음이에요”
‘
결혼은 미친 짓이다’ ‘싱글즈’ ‘…
홍반장’ 등 도시적인 캐릭터를 연기해온 그에게 있어 묻힐 듯 튀지 않는 연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30대 여배우 가운데 섹시함과 에너지를 동시에 터뜨릴 수 있는 연기력을 지닌 그로서는 의외의 결정이었다.
“갇혀있다는 느낌을 아직 못 느껴요. 나이의 벽에 갇혔다고 생각하는 순간 도태되기 쉽잖아요. 배우에겐 그게 제일 무서운 거고요. 여배우에게 30대는 분명 축복이에요. 어린 배우들이 알 수 없는 걸 알 수 있거든요. 나이가 들어가면서 얻어지는 다양한 느낌, 감정의 흐름을 경험한다는 게 얼마나 행복한 일인데요. 이 영화를 선택한 것도 그런 의미에서 제겐 특별해요.”
동생
엄태웅과 흥행 경쟁
동생인 연기자 엄태웅이 출연한 영화 ‘가족의 탄생’과는 일주일 간격으로 흥행 경쟁을 벌이게 됐다. 얼마 전
백상예술대상에서 동생이 최우수남자연기상과 인기상 후보에 올랐을 때 가슴이 벅차올라 혼자 눈시울을 붉혔다.
“최근 태웅이로부터 문자 메시지가 왔어요. ‘이젠 내가 지켜줄 테니까 힘들면 내색도 좀 하고 그러라’고. 동생이 자기가 하고 싶어하는 일로 많은 이들에게 인정받아서 너무 좋아요. 아, 참 태웅이가 돈을 많이 버는 것도 좋아요. 으하하하.”
안은영 eve@metr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