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전세계 반도체 강국 가운데 하나이다. 그러나 한국 정부는 반도체 산업의 빠른 성장 이면에 수많은 직업병 피해자들의 존재를 무시하고 있다. 한 라인에서 함께 근무하던 두명의 노동자가 백혈병에 걸려 사망했고, 함께 일한 4명에 엔지니어가 희귀질환에 걸려 투병중이거나 사망해도 회사의 과실책임을 묻는 민사소송은 커녕, 산재보험 조차 적용 받지 못하고 있다.
삼성반도체 공장 노동자들은 알려지지 않은 많은 화학물질과 독성가스가 사용되고 생성되는 현장에서 일하면서도 방독면 조차 지급되지 않고, 고작 제품보호를 위한 천마스크와 얇은 천에 불과한 방진복에 의존해 일해 왔다. 그래서 백혈병, 뇌종양과 같은 심각한 질환까지 가기 전에 노동자들은 이미 잦은 호흡기 질환에 시달리고 피부병, 생리불순과 하혈, 코피, 유산의 고통을 겪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구하나 산재인정을 받지 못하고 있다.
산재보험법에 근거해 산재인정을 받기 위해서는 반드시 발병 원인물질의 존재를 확인해야 하는 것도 아니다. 법원의 판례는 같은 산업재해보상보험법을 가지고 판단을 하면서도, “해당 기업과 근로복지공단이 노동자의 질병이 개인질병이라는 것을 증명 못하면 산업재해로 인정하고 보상해야 한다”는 취지의 판결을 내리고 있다. 산재보험은 사회보장적 성격의 보험인데다가 비전문가인 노동자가 질병과 업무와의 연관성을 입증한다는 것이 불가능한 현실을 반영한 것이다. 무엇보다 국가와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인정한 것이다.
노동자 보호기관인 근로복지공단은 오히려 바늘구멍보다 좁은 판정 기준을 놓고 줄줄이 불승인 남발하고 있다. 이러한 근로복지공단의 태도로 인하여 산재노동자들이 느끼는 좌절과 배신감은 산재로 당한 고통만큼 크다.
현재까지 반올림과 함께 산재신청을 제기한 16명의 산재신청자 중에서 심의를 마친 10명 모두 불승인 처분을 받았다. 나머지 6명의 산재신청자도 곧 불승인이 예정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상황이다.
삼성반도체 백혈병, 림프종 피해자 6인이 근로복지공단의 산재 불승인 처분에 불복하여 올해 1월에 제기한 행정소송에 대해, 근로복지공단은 “삼성이 소송에 적극 개입하도록 조치”하라고 내부 지시를 내렸다는 것이 지난 근로복지공단 국정감사를 통해 밝혀졌다. 이는 ‘근로복지공단이 아니라 삼성복지공단’이 ‘삼성의 이미지 훼손을 걱정하고 있는’ 셈이고 산재불승인을 남발한 진짜 이유가 들통이 난 셈이다.
우리는 삼성과 한몸이 되어 산재소송 패소에 혈안이 된 근로복지공단의 반노동자적 태도에 분노를 금할 수밖에 없다. 근로복지공단은 더 이상 피해자들을 우롱하지 말고 신속하게 산재를 인정하라.
2010년 10월 20일
다함께 경기남부지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