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꿈 깨고 싶지 않아
黃梁一夢(황량일몽, huáng liáng yí mèng)
黃 누를 황, 梁 들보 량, 一 한 일, 夢 꿈 몽
《唐人傳記‧枕中記(당인전기‧침중기)》에 나온다. 子枕吾枕, 當令子榮適如志(자침오침, 당영자영적여지) : 내 베개를 베고 자면 영화가 뜻과 같이 올 것이오.
중국 당(唐, 618-907)나라 현종(玄宗)때 한단(邯鄲)에 노(盧)씨 성을 가진 서생이 있었다. 과거에 여러 번 낙방하여 매우 궁핍한 생활을 보내고 있었다.
어느 날 밖에 나가 일을 보다가 한 객점에 들러 쉬다가 우연히 한 늙은 도사를 만나 같이 음식을 시켜 먹고 마시다가 의기투합이 되었다. 한창 이야기를 나누던 중 노생은 문득 자기가 입고 있는 옷이 너무 남루하다는 기분이 들어 한숨을 쉬었다. 노인도 갑갑한 심정으로 어찌된 사연인지를 물었다. 노생이 참지 못하고 자기의 신세를 털어 놓았다.
“우리같이 책 읽는 사람은 나가면 장수가 되고 들어오면 재상이 되는 그런 큰 공을 세워 대업을 이루어야 비로소 낯을 내 놓고 다닐 수 있는 것 아닙니까? 그러나 저는 이미 중년이 다 되었으나 이렇다 하게 해 놓은 것도 없이 그저 먹고 사느라 하루 종일 논밭에서 뼈 빠지게 일이나 하는 처지가 되었으니 어찌 마음이 답답하고 괴롭지 않겠습니까?”
도사 노인이 듣고 그저 고개를 끄덕이기만 하였다. 노생이 점점 피곤하여 졸리는 모습을 보이자 도사가 자기의 행낭에서 베개 하나를 꺼내어 노생에게 베라고 하면서 말하였다.
“이 베개를 베고 자게. 이 베개가 자네의 소원을 들어 줄 걸세.”
노생이 그 베개를 베고 잠이 들기 시작하였는데, 객점 주인이 황량(黃粱, 메조)으로 밥을 짓기 시작하여 밥 냄새가 조금 나려는 중에 잠이 들어 마침내 꿈속으로 빠지기 시작했다.
꿈속에서 노생은 최씨 부잣집의 아름다운 처녀와 결혼하게 되었다. 장인의 재력에 의지하여 부유한 생활을 하다가 일 년 후 아내의 격려와 지원을 받아 열심히 공부한 결과 마침내 과거에 합격하여 진사가 되었고, 이후 열심히 노력하여 능력을 인정받아 점차 고위직으로 승진을 하게 되었다.
어느 해 외족이 침입하여 노생이 명을 받아 군사를 이끌고 출정하여 이겼다. 또 변경지역을 개척하여 영토를 넓혀 오니 황제가 기뻐하여 노생을 더욱 중용하게 되었다.
나중에 노생이 몇 번 모함을 받아 귀양도 가고 감옥에 갇히는 신세가 되기도 하였지만, 그 때마다 일이 잘 풀려 위기가 행운으로 변하고 황제의 신임이 더욱 두터워졌다. 자손들이 모두 능력이 출중하여 권문세가와 혼인하고 또 효성이 지극하여 온 집안이 행복하기가 그지없게 되었다. 노생이 인간으로서 가질 수 있는 부귀영화를 다 누리고 황제의 어의가 지켜보는 가운데 80세의 나이로 평안히 죽었다.
노생이 여기까지 꿈을 꾸던 중 부지불식간에 잠이 깨었는데, 고개를 들어보니 자기가 여전히 객점에 있었고, 도사도 옆에 앉아 자기를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는 것이었다. 그런데 객점의 메조 밥은 아직도 다 익지 않은 상태였다. 노생이 놀라 의아해 하며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설마 그 좋았던 부귀영화가 모두 하나의 꿈에 불과했단 말입니까? 믿을 수가 없습니다.”
도사 노인이 고개를 끄덕이며 탄식하여 말했다.
“그렇다네. 인생이 추구하는 것이 모두 꿈이 아니던가!“
노생이 듣고 감개무량하여 노인에게 말했다.
“인생의 모든 영화가 결국에는 잠깐 있다가 사라져 없어지는 것이군요. 노인께서 이렇게 지적을 해주지 않으셨다면 아직도 깨닫지 못하고 욕심에 눈이 어두워 그저 계속 이리저리 해매고 만 있을 뻔 했습니다!”
노생이 노인에게 여러 번 머리를 조아려 감사를 표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총총히 객점을 떠났다.
이 성어는 ‘꿈처럼 덧없는 부귀공명, 허무한 꿈, 인생의 덧없음과 영화의 헛됨’ 등의 의미를 갖는다. 후세 사람들이 인생의 모든 부귀영화가 다 허황된 것임을 비유하여 사용하였다. 盧生之夢(노생지몽), 邯鄲之夢(한단지몽), 邯鄲夢枕(한단몽침) 등은 같은 내용을 달리 표현한 것이다. 우리들이 흔히 써 낯익은 일장춘몽(一場春夢), 남가일몽(南柯一夢)도 같은 의미를 갖는다.
* 필자는 그간 100여개의 고사성어를 풀이하면서 인문학적 관점에서 필자의 어린 시절과 학창시절, 30여 년의 공직생활, 10여 년이 넘는 중국생활, 은퇴 후 15여 년의 사회생활 속에서 가졌던 경험과 읽고 보고 듣고 느낀 것을 부가하여 써 봤던 것을 이 카페에 올려 왔습니다. 이제 강랑(江郞) 그의 발끝도 못 따르는 능력으로 글을 써 오면서 독자들의 원픽 투픽마저도 감지하지 못한 채 지낸 것 같아 반성이 됩니다. 오늘 <황량일몽> 후 잠시 쉬는 텀을 갖고자 합니다..
글을 써 온 내내 즐거웠고 행복했습니다. 장시간 졸필을 읽어주신 여러분께 무한한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기회와 건강이 허락되고 또 여건이 된다면 계속 고사성어를 써 나가거나, 다른 장르-수필이나 소설-로 여러분을 만나 뵙도록 노력하겠습니다.
- 송백 정문섭 배상
첫댓글 일장춘몽 동감입니다
새로운 창의를 위해 잠시 휴식을 갖는 것도 좋지요. 그동안 재밌고 유익하였습니다. 고마워요
70고개를 넘긴 우리도 돌아보면 한바탕 꿈을 꾼 것이 아닐까요. 어쩌면 역설적으로 현재 꿈 속에서 살고 있고, 꿈을 깨는 것이 죽는 순간이 아닐까요. 고리타분하게 생각하는 고사성어를 현실 이야기로 재구성한 <에세이 사자성어>는 명저의 반열에 올려도 손색이 없지요. 배우지 않으면 폭삭 늙는다는 말처럼, 쓰지 않으면 두뇌가 많이 퇴화하지요. 요즈음 글을 쓸 때마다 절적한 용어가 생각나지 않아 잠시 주춤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한데, 그러다가 전문용어를 다시 떠올리게 되지요. 전사, 메모, 일기, 가계부라도 계속 써서 치매를 예방하기 바랍니다. 이런 마음을 가지고 있다보니 어제는 미스트롯3을 보다가 <편애도 병인 양하여>와 동기생이 던진 교훈적 한마디에 <얼굴은 제2의 마음>이란 졸작을 써보았습니다.
황량일몽, 일장춘몽, 우리의 삶이 한갓 긴 꿈의 연속인가요? 이제 머지않아 그 꿈에서 깨어나겠지요?
아쉽네요. 구름 속에, 바람 속에 사는 것만 같은 선인과 도인들의 이야기를 사자성어를 통해 재밋게 읽었는데요. 새로운 중국 고서 여행을 한 뒤에 다시 들려주시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