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에 갈 때 자전거를 이용한다. 반쯤 공기 빠진 타이어에 공기를 가르는 육중함이 느껴진다.
거의 도착할 때쯤 커피와 밀크를 몰래 지나쳐도 금세 안다.
어제는 산책 중 목줄이 풀린 밀크 난동에 무릎 빠개지게 쫓아갔는데,
잡을 만하면 "나 잡아봐라." 도망에 결국 응징해 버렸다.
저 멀리 삐걱거리는 패달 소리에,
주인 기다림에 지친 녀석들 춤 소리가 들린다.
학창 시절 열심히 달려 학교에 가고,
종종 빠지는 패달에 기름 범벅이 되어도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우유배달 하신 어머니와 비교할 수 없다.
그 낡은 자전거는 우리 가정에 재산 목록 1호였다.
그 재산 목록 1호를 빚쟁이가 압수할 때
밥 먹도 숟가락 던지고 싶었다.
술주정에 빠진 아버지를 대신해
죽기 살기로 패달을 밟은 어머니의 자전거를 그렇게 보낼 수 없었다.
자전거는 단순한 물건이 아닌, 인격이고 자존심이었다.
인간을 그렇게 비참하게 수치스럽게 만들 수 있을까?
그래서 어렸을 적 자전거를 생각하면 눈물이 난다.
가난한 자도,
무너진 자도 가냘픈 인격이 있다.
그 흔들리는 마지막 자존심을 무참히 짓밟는 무례함은 없어야겠다.
좀 더 가진 여유,
좀 더 누린 권력이 누군가의 자존심에 상처를 낸다면,
조금도 빛을 허락하지 않는 꽉 막힌 감옥이다.
한 맺힌 억울함이 하늘에 쌓지 않게
마지막 잎새를 지켜주자.
지금도 길가에 자식 잃고, 물에 빠져 죽은 자식 잃은 부모의 한 맺힌 절규가 하늘에 쌓는다.
그 마지막 자존심을 투표로 지켜주면 좋겠다.
주님께서 눈물 흘리는 연약한 자들을 지켜주시며 더 이상 억울함이 없기를 기도한다.
(신명기 24장 10~22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