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 「마지막 시가」 시리즈 2권인 ‘욕망의 그늘’은 사업에 실패해 미국으로 넘어간 영수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영수와 리차드의 연결지점을 캐피톨라로 설정한 작가의 의도는 아주 흥미로웠다. 「마지막 시가」 시리즈 1권에서 연결점이 하나 없는 저우와 영수를 그린 이유가 시리즈 2권에서 설명되기 때문이다. 영수는 그곳에서 여러 한인 이민자들을 만나게 된다. 그들은 자신의 이름 대신 천 교수니, 김 영사니, 문 국장 등으로 불리는 모습은 이민 오기 전 누렸던 삶에 대한 미련과 끝까지 놓기 싫은 자존심이라 느껴진다. 한인들과 리차드는 상가의 임차인과 임대인의 관계이다. 작가가 묘사한 그들 사이의 대립과 갈등, 그리고 더 가지려는 물질의 욕망을 좇아가는 인간의 모습은 마치 불나방 같다.
<작가소개>
소설가 진광열(秦光烈)
⦁ 1947년 경기도 인천 출생(현 77세)
⦁ 네 살 적 표류 끝에 영종도로 피란
⦁ 홍익대학교 건축공학과 졸업
⦁ 방위병으로 육군 제대
⦁ 인천 전문대학에서 건축학 강의
⦁ 결혼 후 1남 1녀
⦁ (주) 한샘 상무이사
⦁ 연세대학교 경영대학원(최고경영자 교실) 수료
⦁ (주) 토탈키친 대표이사
⦁ 현재 미국 캘리포니아 거주
<이 책 본문 中에서>
리차드는 조카들도 알아들을 수 있게 상세하게 설명했다.
― 어쩔 수 없어. 계약은 계약인 것이야. 생각들 해봐? 그들이 장사 잘 될 때 잘 된다고 말한 적 있나? 장사하는 사람들은 늘 적자라고 하지. 죽는 소리를 하면서도 그들은 집도 사고, 자식들 대학도 보내고, 또 주말이면 골프를 치러 가지.
리차드는 「나도 골프를 안 치는데」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 무엇보다도 세월의 변화에 따라 사양길에 접어든 업종이 있고, 부상하는 업종이 있게 마련이야.
형제들이 리차드에게 공감의 눈길을 보내고 있는 가운데 메리의 아들 헤리는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느라고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 세탁소는 벌써 반년째 렌트비를 밀리고 있고, 리커스토아는 냈다 안 냈다를 반복하고 있지. 모두 초창기에 입주한 사람들이야. 세탁소는 죽어가는 업종이야. 스티브 잡스가 스마트폰 설명회를 하면서 청바지에 검정 티셔츠를 입고 나온 이후로 이제 직장인들은 와이셔츠에 양복 따위는 입지 않아. 그리고 코스코에 가면 바지 하나에 10불 정도 하는데 누가 5불을 내고 세탁소를 이용하겠나? 이게 세상의 변화라는 거야.
리차드는 스마트폰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는 헤리를 근심 어린 눈으로 바라보았다.
― 헤리, 그만 보고 회의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 좋겠구나. 스마트폰 속의 유튜브는 거의 다 가짜야. 구독자가 많아지면 돈을 주니까 제멋대로 떠들어대는 거야. 아무리 들여다보아도 거기에서 돈이 나오지는 않아.
메리가 헤리에게 눈길을 주었다. 헤리는 스마트폰을 끄고 조용히 일어나 화장실을 향해 걸어갔다. 리차드의 둘째 아들 밴자민 또한 딴청을 떨고 있었다. 아버지의 말엔 전혀 관심이 없었다. 카메라를 무릎 위에 올려놓고 망원렌즈를 끼웠다 뺐다를 반복하고 있었다. 리차드가 눈치를 주었으나 반응을 하지 않았다.
― 밴자민! 카메라를 가방에 넣었으면 좋겠어. 지금 회의 중이잖아?
밴저민은 카메라 전용가방의 지퍼를 열고 카메라와 망원렌즈를 조심스럽게 집어넣었다. 손끝에 불만이 묻어 있었다. 제 어미가 어린 밴자민을 두고 집을 나가버린 후부터 밴자민은 누구의 말도 잘 듣지 않았다. 말을 하려고도 하지 않았다. 그의 일과는 카메라를 메고 해변을 어슬렁거리는 일뿐이었다.
― 제가 할 일은 없잖아요?
― 내가 다 생각해 놓은 게 있어. 이따가 네가 할 일을 말해줄 거야.
― 존, 아무래도 세탁소와 리커스토어에 공문을 보내야겠어. 밀린 날짜를 계산해서 벌금통지를 할 수밖에…
― 형, 아버지 대부터 안 해오던 것을 갑자기 집행하면 원성을 살 겁니다. 버티지도 못할 거구요. 유예 기간을 주어야 해요. 정부나 공공기관에서도 다 그렇게 해요.
…… 우리는 정부기관이 아니잖아? 개인 간의 사적 거래일 뿐이지.
리차드는 소리 지르고 싶은 욕망을 억눌렀다.
― 가령, 지금까지 밀린 렌트비는 다소 탕감해주고 범칙금도 지난 것은 불문에 붙이고, 다음달부터 계약서에 있는 대로 시행한다고 우선 통지하세요.
…… 아이들의 장래는 어떻게 하라고!
리차드는 말을 삼키고 오히려 더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 탕감은 곤란해. 그렇게 되면 집세를 잘 내고 있는 세입자들은 억울하게 생각할 거야. 그들끼리는 모든 정보를 공유하니까 금방 소문이 퍼질 테고.
앤이 존을 거들었다.
― 오빠, 너무 서둘지 말아요. 그들이 정말로 계속 적자를 내고 있는지도 모르잖아요. 아버지 때부터 20년 이상을 장사한 사람들인데… 잘 구슬려서 장사를 계속하게 하는 게 좋겠어요. 앞으로 한 1년간 렌트비를 좀 내려줄 테니 일단은 밀린 것부터 청산하라고요.
― 다른 점포들은 어떻게 하고? 불공평이 시작되면 모든 체계가 무너져.
<추천사>
작가는 장편소설 「마지막 시가」 시리즈 2권에서 이 책의 의도를 분명히 보여주었다. 아버지 저우의 가르침과 죠앤 할머니의 유언을 잊어버리고 탐욕스럽게 변해가는 리차드를 통해 인간이 가진 끝없는 욕심이 얼마나 위험하고 부질없는가를 이야기한다. 전재산을 탕진하고 배에서 생활하다 스스로 생을 마감함으로써 마지막 자존심을 지키려던 명 회장이나, 권력을 가진 자의 횡포에 리차드를 해하고 자신의 삶도 포기한 천 교수의 죽음은 물질의 욕망에 무기력해져 버린 자신에 대한 형벌이었을까? 영수는 이곳에서도 오직 그림으로 떠나가는 친구들의 모습과 자신의 감정을 표현한다. 그 어느 쪽에도 치우치지 않는 담담함이다. 작가는 영수를 통해 세상을 보여주고 안타까워하고 있었다. 한편 베트남에서 온 마이와 쿠엔은 비록 친남매는 아니지만 서로 의지하며 우여곡절 끝에 미국으로 이주하여 왔다. 하지만 노점상을 하며 힘든 삶을 살고 있었는데 천 교수의 도움으로 정착할 수 있었다. 특히 제2부에서의 큰 사건의 발단은 쿠엔의 화살촉에서 시작되는데, 마이와 쿠엔이 이 사건들과 어떻게 관련되는지 주목해서 읽어보기를 바란다.
(진광열 저 / 보민출판사 펴냄 / 224쪽 / 신국판형 변형(152*210mm) / 값 15,000원)